〈 132화 〉 131. 한겨울의 난(2)
* * *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예전에 쾌락천마가 이런 설정을 지나가듯 언급한 적이 있었다.
‘초인의 흡연율은 일반인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낮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초인의 신체는 일반인보다 월등히 튼튼하다. 그 말은 비단 물리적 강도뿐 아니라 신체의 항상성이라든가 내독성이라든가…….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초인의 몸은 종합적으로 튼튼하고, 그 튼튼함 덕에 담배는 초인의 신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한 마디로 말해, 초인은 담배에 중독되지 않는다.
흔히 담배는 술, 커피와 함께 사회적 매개체로 통한다. 이 세계에서도 흡연은 학연, 지연, 혈연과 함께 4대 연줄이라 불리고 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의 이야기.
초인은 담배에 중독되지도 않을 뿐더러 애초에 담배의 효과를 체감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등급이 낮은 C급 이하 초인이라면 모를까, B급 이상의 초인에게 담배는 사실상 겉멋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물론 상위 등급 초인을 위한 전용 담배가 별도로 존재하긴 하나, 그런 걸 일일이 찾아가며 피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격도 비쌀뿐더러 애초에 초인은 담배에 중독되지 않으니.
따라서 일반인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은 흡연자마저도 대부분 하위 등급 초인이고, 상위 등급 초인 중에선 흡연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이 세상, 초인들의 시대의 배경 설정이었다.
헌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맛 더럽게 없네.’
바로 내가 그 ‘상위 등급 초인’에 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에 내구 능력치를 올리면서 몸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담배 맛이 이상하게 변했기 때문.
맛이 연해졌다고 해야 하나, 꼭 누가 뱉은 담배 연기를 그대로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런 주제에 매캐한 느낌은 그대로 있어서 맛이 없어도 정말 더럽게 없었다.
‘차라리 이참에 끊을까.’
애초에 원래 세상에서 피우던 버릇 때문에 계속 피웠던 거였기에 끊으려면 얼마든지 끊을 수 있었다. 반도 타지 않은 꽁초를 비벼 끄며 나는 맨션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시계를 바라봤다. 시각은 오전 10시 50분.
한겨울이 말한 시간까지는 약 10분 정도 남았다. 그동안 담배나 태우며 기다릴까 싶었으나 졸지에 멍하니 시간을 죽이게 되었다. 예원이는 술이 덜 깼다며 좀 더 자야겠다고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였으니 말동무를 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하늘이는 슬슬 일어났으려나?’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 표시된 통화목록에는 하늘이 번호 앞으로 된 부재중 통화가 8통이나 이어져 있었다. 전부 이쪽에서 건 통화였다.
뚜루루루루루.
통화버튼을 누르자 길게 이어지는 신호음.
허나 1분이 지나갈 때까지 하늘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뻗어도 아주 제대로 뻗었나 보네.’
하늘이는 나나 예원이에 비해 주량이 약했다. 아바타 능력 덕에 사실상 주량이 두 배였지만 그럼에도 약했다.
그런 주제에 전날 그렇게나 달려댔으니, 아직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도 당연지사리라.
‘다른 조원들하고 실기 준비도 한다더만, 괜찮을지 모르겠네.’
그게 염려되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를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담배를 꺼냈다가 좀 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다시 집어넣는다.
그때.
부우우우우웅.
골목 저편에서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정 세단이 다가왔다. 계단에서 일어서 앞으로 나가자, 세단이 정확히 내 앞에 정차한다.
“타세요.”
그리고 뒷좌석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더니 한겨울이 두 눈만 새침하게 빼꼼 내밀며 말했다. 날 위해 비켜줄 것 같진 않아서, 나는 반대편으로 빙 돌아가 차에 올랐다. 곧 세단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오랜만입니다. 한겨울 학생.”
“별로 오랜만은 아니죠. 마지막으로 만난 게 일주일 전이니까.”
“그 정도면 오랜만 아닙니까?”
“딱히 자주 만나는 사이도 아닌데요 뭘. 안 그래요?”
어째 평소보다 더 차가운 태도에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이래저래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섭섭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한겨울이 힐끔 이쪽을 곁눈질했다. 그 얼굴에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떠오르고.
“……담배 냄새가 조금 심하네요.”
이내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 말에 아차 싶은 나는 곧바로 사과했다.
“이거 죄송하네요. 기다리는 동안 무심코 한 대 피워서…….”
“담배 냄새는 그다지 싫어하지 않지만, 차에 냄새가 배는 건 조금 그렇거든요. 다음부터는 조심해주세요.”
“마침 이제 끊을 생각이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그래요? 그거 잘 됐네요. 그런데…….”
한겨울이 슬쩍 운전하는 기사의 눈치를 보다 이내 목소리를 조금 낮추며 물었다.
“……왜 오늘 제가 당신을 부른 이유가 류태현의 선물을 고르는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건…….”
네가 원작에서 그랬으니까. 혹은 네가 류태현의 히로인이니까.
목구멍까지 올라온 진심을 삼키며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둘이 꽤 친해보여서요. 생일 선물 정도는 챙겨줄 사이겠다 싶었죠. 안 그런가요?”
“전 류태현이랑 별로 안 친한데요? 그쪽은 절 일방적으로 친구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저한테 있어서는 넘어서야 할 경쟁자일 뿐이거든요.”
“큽…….”
그 말에 나는 튀어나오려던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 한겨울이 한 말, 원작에서도 그대로 나오던 대사였다.
‘속으로는 친해지고 싶어 하면서. 솔직하지 못한 건 원작이랑 똑같네.’
겉으로야 경쟁자니 뭐니 하며 차갑게 대하지만, 기실 이맘때쯤의 한겨울은 류태현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끙끙대는 상태였다. 그 구실로 꺼내든 게 바로 류태현의 생일 선물이었고.
그리고 그러한 한겨울의 의도대로, 원작에서는 생일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크게 진전된다. 단순한 경쟁자에서 친밀한 라이벌 정도의 관계로. 물론 류태현은 그 전부터 한겨울을 살갑게 대했지만 말이다.
“……뭐예요? 제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음……”
한겨울이 미심쩍은 시선으로 이쪽을 흘겼다. 무언가 말하려고 벌어진 그 입술이 이내 다시 닫힌다.
“뭐, 됐어요. 아무튼 오늘은 잘 부탁드릴게요. 이번 랭킹전 중간결산을 대비해서 이런저런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류태현하고 부딪히기 전에 당신을 상대로 그것들을 시험해보고 싶네요.”
“분명 중간결산 순위도 성적에 들어갔었죠?”
“맞아요. 게다가 중간결산 기간의 랭킹전은 평소랑 달리 헌터 협회 직원이 평가하러 오거든요. 평가 내용은 길드 스카우터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항목이니, 어떻게 보면 학기 성적보다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죠.”
말하자면 중간결산 기간의 랭킹전은 학교 외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자기 PR의 성격도 가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한 배경이 있으니 한겨울이 어떻게든 중간평가 전에 류태현을 이기는 데에 혈안이 된 거겠지.
“준비를 많이 했다라……. 이거 만만치 않겠군요.”
애초부터 한겨울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비록 류태현에게 밀린다곤 해도 학년 2위의 수재였으니 당연한 일.
게다가 그녀는 이미 한 번 나와 싸워본 적이 있는데다가 준비한 것도 많다 했으니 분명 저번보다 더 힘든 대련이 되리라.
‘그렇다고 쉽게 져줄 생각은 없지만.’
마침 내구 능력치를 올렸을 때 들어온 대련 제의. 이참에 향상된 신체 내구를 테스트해볼 생각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허억. 허억. 허억……!”
차 안에서의 다짐을 정확히 실현하듯, 나는 향상된 내구 능력치의 효능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 말은 즉, 한겨울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단 소리였다.
한겨울의 초능력은 발화능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들겨 맞았다는 표현을 쓴 건 결코 실수가 아니었다. 그녀가 준비한 ‘신기술들’은 불꽃임에도 불구하고 두들겨 팬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것들이었기에.
“후우우.”
지끈거리는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나는 양손에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는 한겨울을 바라봤다.
“하아. 하아. 하아.”
한겨울 또한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찡그린 표정에는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허나 그건 자기 능력의 소모를 견디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지 결코 내 공격에 당해서가 아니었다. 기실 대련이 시작하고 나서 나는 한겨울에게 이렇다 할 유효타를 거의 먹이지 못했다.
띠링!
===
[ ‘샛별의 숨소리’를 발동합니다(3/3). 신체의 움직임이 3분간 2배의 속도로 가속됩니다. ]
[ ‘샛별의 숨소리’의 모든 사용 횟수를 소모하였습니다. 금일 자정이 지날 때까지 발동 효과의 사용이 제한됩니다. ]
===
샛별의 숨소리가 붉은 빛을 발하고 느려졌던 신체가 다시 2배로 가속한다. 그 징조를 알아차린 한겨울이 호승심 넘치는 웃음과 함께 오른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팡! 팡! 파앙! 팡!
그러자 한겨울의 오른손에서 자그마한 불덩이 네 개가 뿜어졌다. 전에 봤을 때보다 아득히 빨라진 불덩이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파이어볼’보다 ‘파이어불릿’이 어울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짓쳐들었다.
“흐읍!”
몸을 피하며 한겨울의 주위를 크게 돈다. 그런 나의 궤적을 그녀의 불꽃이 쫓는다. 이전보다 더욱 빨라진 불꽃은 이전보다 더욱 확실하게 나의 숨통을 조여온다.
퍼엉!
“크윽!”
그러다 결국 불덩이 하나가 어깨에 직격했다. 충격으로 인해 멈춰선 것을 오히려 기회 삼아, 두 팔을 교차해 방어를 굳힌 채 한겨울 쪽으로 돌격한다.
화르륵!
그러자 한겨울이 반대손인 왼손을 펼쳤다. 타오르던 불꽃이 일순 한 점에 뭉친 순간 나 또한 초능력을 발동했다.
투화악!
양팔에서 뿜어진 검은 연기가 팔을 따라 회전하며 방패를 형성한다. 동시에 한겨울의 손에서 자그마한 화염구 수십 개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퍼버버버버버벙!
불꽃 세례에 양팔에 두른 방어가 벗겨졌다. 허나 접근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은 벌 수 있었다. 한겨울의 지척까지 다가간 나는 있는 힘껏 주먹을 뻗으려 했으나.
퍼어엉!!
직후 그녀의 발치에서 일어난 폭발에 방어를 굳힌 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간의 경험에 따라 본능적으로 시선이 위로 향한다.
한겨울은 발바닥에서 일으킨 폭발의 반동으로 공중에 채공하고 있었다. 몸이 180도 뒤집혀 머리가 바닥을 향한 채, 두 손을 깍지 끼듯 포갠 그녀가 검지와 중지만 내밀어 권총 같은 형상을 만든다.
“크윽!”
그 제스처에 나는 곧바로 있는 힘껏 연기를 일으켰다. 탈리스만이 맹렬하게 빛을 발하고, 순식간에 압축된 연기가 검은 파도로 변해 그녀를 집어삼키려 아가리를 벌리고.
화륵!
동시에 한겨울의 손끝에서 백색 섬광이 터져나왔다.
스파앙!!
공기가 갈라지는 파공성. 가느다란 백색 줄기가 내가 쏘아낸 연기를 관통하고 그대로 내 어깨에 꽂혔다. 디펜시브 코트의 방어소자를 뚫고 들어오는 열기에 화끈한 격통이 찾아온다.
스팡! 팡! 팡! 스파앙!
허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낙하하면서도 줄곧 손끝은 이쪽으로 향한 채 몇 번이고 발사되는 백색 섬광.
샛별의 숨소리의 가속력과 탈리스만을 통해 쏘아낸 검은 연기. 거기에 서리정령의 권능까지 사용해가며 어떻게든 그 연격을 피하고 흘리고 막아낸다.
탓.
허나 그 사이 한겨울은 다시 내게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 거리는 조금 전 돌격을 감행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
‘……또 이렇게 되는군.’
그 말마따나 지금과 같은 상황을 나는 이번 대련에서 벌써 몇 번이나 겪었다.
내 초능력, ‘검은 연기’는 원거리 화력에 있어서 한겨울의 발화능력보다 한 수 내지는 두 수 아래의 능력이었다. 평시 화력이든 최대 화력이든 말이다.
따라서 승기를 잡으려면 어떻게든 그녀에게 접근해 근접전을 벌여야 했다. 실제로 저번 대련도 시종일관 그런 양상으로 흘러가다, 막판에도 기습적으로 근접 공격을 먹여 승리를 따냈었다.
허나 오늘 대련에서는 그 접근 자체가 어려웠다.
이전보다 화염의 투사 속도가 빨라져 견제가 심해진 것에 더해 접근하기 시작하면 쏘아지는 산탄 같은 불꽃 세례. 설령 접근에 성공한다 해도 로켓과 같은 화염 분출로 거리를 벌리며 강력한 관통성 공격으로 추격을 막는다.
쓸데없는 화력의 낭비를 배제한 채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격을 꽂아넣는 그 전법은 저번 대련에서 그녀가 보였던 약점을 거의 완벽하게 보완한 모습이었다. 고작 일주일만의 발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산탄 형태의 불꽃을 쏘아내는 버드샷. 관통성 불꽃은 AP(Armor Piercing)샷. 둘 다 원작에선 2학기에 들어서서야 개발한 기술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벌써부터 사용하다니…….’
한겨울 입장에서 보면 원작과 달라진 건 나와의 대련 한 번 정도가 전부일 터. 헌데 그 대련 한 번이 그녀의 발전을 거의 6달이나 앞당겼다. 그녀의 빠른 성장을 도모하던 나로서는 환영할 변화였으나, 이렇게 대련에서 그 기술들을 직접 맞고 있으니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원작이랑 달리 급하게 개발한 모양인지 아직 기술의 숙련도는 많이 낮아 보여. 그렇지만 성가신 건 사실이다. 적어도 지금 상태로 한겨울한테 접근하는 건 꽤 힘들겠어.’
저번처럼 샛별의 숨소리 스톡을 단숨에 다 썼다면 충분히 접근이 가능했겠지만, 이번에는 내구 능력치의 변화를 시험해보겠답시고 대련을 질질 끈 터라 그럴 수도 없었다. 탈리스만을 100% 발동해 최대 화력의 검은 연기를 쏜다면 빈틈이 생길 수도 있지만, 이쪽이 연기를 압축하는 동안 그녀도 큰 기술을 준비할 게 뻔하고 그마저도 빈틈이 생긴다는 보장도, 그 빈틈을 내가 성공적으로 찌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무리할 이유도 없고.’
한겨울의 약점을 깨우치게 해준다는 목적이 있던 저번과 달리, 이번 대련은 어디까지나 연습.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녀를 이겨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한겨울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날 이기려 들겠지만 말이지.’
승패에 대한 집착이 심한 그녀라면 분명 그러리라.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한겨울과 대치하고 있던 나는 이내 자세를 풀며 두 손을 들었다.
“제가 졌습니다. 항복하죠.”
“……네?”
내 선언에 한겨울이 미간을 찌푸렸다.
“항복이라뇨. 연습이긴 하지만 엄연히 실전을 대비한 대련이에요. 끝까지 진지하게 임하세요.”
“진지하게 해도 못 이길 것 같아서 그럽니다. 일주일 사이에 아주 칼을 갈아오셨군요. 솔직히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한겨울 학생의 승리에요.”
“제 승리라고요……?”
한겨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렇게 반문했다. 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찡그리고 있던 미간이 점점 풀림과 동시에 그녀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하고.
“……!!”
이내 그녀가 주먹을 꽈악 쥐며 소리 없이 기쁨을 표현했다. 환호성만 내지르지 않았지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웃는 모습이 어지간히 기쁜 모양.
“……저한테 이긴 게 그렇게 좋습니까?”
보다 못한 내가 피식 웃으며 묻자 한겨울이 앗 하고 정신 차리며 뺨을 살짝 붉혔다. 그러나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고압적인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새침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기쁘죠. 저번 대련에서 당신이 저한테 말해줬던 약점들을 보란 듯이 극복해서 당신을 이긴 거니까요. 기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새침한 태도와 달리 말의 내용은 꽤 겸손했다. 한겨울이라면 저번 대련의 결과를 실수 따위로 포장하며 인정하지 않으려 들 줄 알았는데.
‘다른 캐릭터들이 조금씩 변했듯 한겨울도 원작이랑은 달라졌다는 건가.’
그 변화가 나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쾌락천마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긍정적인 변화였다. 한겨울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의 단점을 돌아보지 못하는 오만함이었으니까.
“아무튼! 이걸로 1승 1패네요. 뭐, 당신은 앞으로 펴어어어어엉생! 절 이길 수 없을 테지만요! 저번 대련과 같은 요행은 절대! 결코! 다시는 없을 거예요!”
……아직 그 오만함을 완벽히 털어낸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뭐 저 정도야 원래 한겨울의 성격이 저러니 그러려니 했다. 오히려 이래야 한겨울답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쎄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나는 일부러 그녀를 도발하듯 대답했다. 허나 내 도발에도 한겨울은 불쾌하다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훗. 재도전은 언제든 환영이에요! 그게 바로 승자의 의무니까!”
정말 어지간히도 이긴 게 기쁜 모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