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28화 (129/266)

〈 128화 〉 127. 정실대전(2)

* * *

싸늘하다. 차가운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비수의 정체는 강하늘의 시선이었다. 몸을 쿡쿡 찌르는 듯한 날이 선 시선에 안수호가 고개를 돌린다.

“…….”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날카롭게 벼려진 눈빛은 날카로움만 따지면 빌헬름의 검에도 비견될 정도였다. 안수호의 등줄기에 섬뜩한 오한이 엄습한다.

강하늘이 왜 이처럼 적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는지, 안수호는 곧바로 그 이유를 눈치 챌 수 있었다.

‘내가 지예원하고 이미 했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인데.’

원인은 지예원이었다. 할 땐 하더라도 피임은 확실히 하라던 지예원의 말은 일종의 암시였다.

자신은 이미 안수호와 거사를 치렀다는 암시.

강하늘은 그 암시를 놓치지 않았다. 설마 자신이 술 먹고 뻗은 날 바로 옆방에서 거사를 치렀다는 걸 알아차리진 못했겠지만, 적어도 안수호와 지예원이 이미 볼 장 다 본 사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아니, 말만 추측이지 거의 확신이나 다름없었다.

안수호는 지예원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아무리 강하늘이 먼저 도발을 했다곤 하지만 그걸 왜 그렇게 되받아쳤는지. 어린애의 치기어린 도발 쯤이야 귀엽게 넘겨주면 얼마나 좋았는가.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이사 온 기분 나네. 자, 얼른 먹자.”

허나 안수호는 실시간으로 똥줄이 타들어가고 있건만, 정작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지예원은 한가로워보였다. 능숙하게 비닐 포장을 벗겨낸 그녀가 짜장면을 비비기 시작한다.

“언니.”

그때 강하늘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랑 잤어요?”

“…….”

지예원의 손이 우뚝 멈췄다가, 이내 다시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짜장면 소스가 버무려지며 나는 끈적한 소리만이 정적 속에 울려 퍼졌다.

지예원은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짜장면에 고정한 두 눈동자가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당황한 건가? 설마, 자기가 뱉은 암시를 강하늘이 눈치 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럴 리가 있을까 싶었으나 그럴 리가 있었다.

지예원은 강하늘에게 안수호와의 관계에 대해 암시할 생각이 없었다. 피임 기구 어쩌구 운운한 것은 그저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꺼낸 말이었다. 강하늘의 도발을 부드럽게 넘기려는 과정에서 나온 미필적 암시.

허나 강하늘 입장에서는 그것이야말로 도발이요, 그녀를 깔보는 언사였다.

“언니? 대답해봐요. 오빠랑 잤냐구요.”

감히 엑스트라 주제에 자기를 깔보느냐고.

강하늘은 이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진짜라는 상대적 우월감과, 그 우월감에서 비롯된 불쾌감을 담은 채 그렇게 물었다.

그 날카로운 시선에 지예원은 뒤늦게 자신의 말실수를 후회했다. 그리고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래. 잤어.”

애초에 속이려고 한 게 잘못된 거였다고.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오늘 확실하게 모든 진실을 밝히자고 그녀가 생각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밝혀야 할 일이었다. 이 위태로운 삼각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차라리 모든 것을 밝히고 시작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잤는데요?”

“저번에. 우리끼리 술 마시고 진실게임 했던 날.”

“…………네?”

다만 그 판단에 안수호의 의견은 배제되어 있었다. 숨기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 순간, 안수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시발. 좆됐다.’

언제까지고 숨길 생각은 없었다. 언젠가는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게 오늘이 아니었을 뿐.

안수호는 조금 더 온건하게. 강하늘과 지예원의 사이를 보다 원만하게 진전시킨 뒤에 그날의 일을 밝히려고 했다. 지예원이 했던 말마따나, 그날 두 사람은 강하늘의 진심을 알고도 그녀를 따돌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허나 지예원은 오늘 모든 걸 끝내고자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판단에 안수호의 의견은 배제되어 있었다.

“……그날 떡을 쳤다고요? 제가, 저랑 소연이 언니랑 자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바로 옆은 아니고 옆집이지만. 맞아.”

“그게 말이나 되는…….”

강하늘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빠르게 그날 있었던 일을 되짚기 시작한다.

그날, 여기 있는 세 사람에 채소연까지 네 명이 모여 술을 마셨고. 진실게임을 했고.

그 과정에서 지예원이 자신에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좋아하는 이가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 자리에 남자라곤 안수호밖에 없었으니, 사실상 안수호를 좋아하냐고 물은 것이었다.

강하늘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벌주를 마셨다. 그리고 지예원에게 똑같은 질문을 건넸다. 지예원은 그 질문에 ‘없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지예원의 그 답에 강하늘은 안심했었다. 지예원은 안수호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다행이구나. 하며 밀려오는 술기운에 몸을 맡기고 기절했다. 그래, 분명하게 기억이 났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다 거짓말이었고.

자신이 잠든 뒤에, 두 사람은 옆방으로 넘어가 거사를 치렀다?

강하늘이 원망에 찬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오해할까봐 말하는 건데.”

그때 지예원이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널 따돌리려고 한 건 아니야. 단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옆방에서 이어서 술을 마셨고, 그 과정에서 내가 안수호를 유혹했어.”

마치 고해성사하듯, 지예원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낱낱이 고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강하늘의 표정이 차츰 굳어가기 시작한다.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한 것도 나고. 먼저 몸을 겹치자고 한 것도 나야. 안수호가 나랑 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던 건 알았지만, 그날 하루만은 내 어리광을 받아달라고. 술김에 반쯤 강요하듯이 그렇게 고백했어.”

참 비겁하지?

그렇게 덧붙인 지예원이 담담한 표정으로 강하늘을 바라봤다.

마치 원망하려면 자신만 원망하라는 것처럼. 안수호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이.

“그러니까, 다 당신 탓이라 그거죠?”

그러한 지예원의 의도대로 강하늘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라는 호칭조차 버린 차갑고 날이 선 물음.

그러나.

“아니. 전부 내 탓이야.”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안수호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강하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안수호를 바라보는 그 표정은 지예원 때와는 사뭇 달랐다. 배신감이나 원망이 드러나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사이로 보이는 애절함은 강하늘이 여전히 안수호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오빠……?”

“지예원이 먼저 고백한 건 맞아. 그렇지만 받아준 건 나야. 거절하려면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었어. 거절하는 게 맞았겠지. 바로 옆방에서 네가 자고 있었고. 나는 그때 너랑 지예원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욕심이 나서.

둘 중 그 누구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만약 거기서 거절했다가는 지예원이 자신을 떠날 것 같아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고.

“잘못한 건 나야. 내가 내 멋대로 욕심을 부린 탓이라고. 그러니 탓할 거면 나를 탓해줘. 다 내 잘못이니까.”

빈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실제로 그가 둘 중 한 사람을 골랐다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안수호는 자신의 과오 때문에 지예원이 강하늘에게 미움 받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차라리 자신을 탓해주었으면 했고, 어렵다는 건 알지만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냈으면 했다. 그 또한 그의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

부디 탓할 거면 자신을 탓하라고.

그 이기적인 부탁에 강하늘은 할 말을 잊은 채 그를 바라봤다. 그 표정이 크게 일그러지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검은 머리카락이 축 늘어지며 그녀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다.

“……비겁해요.”

강하늘은 차마 안수호를 탓할 수 없었다. 그가 이기적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러한 부분까지 포함해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탓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안수호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 다, 정말 비겁해요.”

그렇기에 비겁했다.

그녀가 안수호를 좋아함을 알고 있음에도 따돌리듯 고백한 지예원이 비겁했고, 그녀가 안수호를 탓할 수 없을 걸 앎에도 자신을 탓하라 말한 안수호가 비겁했다.

두 비겁자 앞에서, 강하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했다.

안수호도. 지예원도 그 침묵을 깰 수 없었다. 세 사람 사이에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째깍.

­째깍.

­째깍.

오직 시곗바늘 소리만이 작게 울려 퍼지는 방 안.

그렇게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또 몇 분이 지났을까.

“……밥이나 먹죠. 짜장면 시킨 거 다 불겠어요.”

마침내 강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착잡해보이긴 하지만 조금 풀어진 표정으로. 그녀가 테이블 위 음식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뭐해요? 어서 안 먹고.”

그 말과 함께 강하늘이 짜장면 포장을 지이이익 벗겨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안수호와 지예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늘아? 그, 너 괜찮­”

“괜찮지 않아요.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괜찮지도 않고. 납득한 것도 아니고. 용서한 것도 아니에요.”

다만 참고 넘기겠다고.

강하늘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러나 전혀 덤덤하지 않은 말을 흘리며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이미 불기 시작한 짜장면이 꾸덕지게 늘어졌다.

“저 지금 진짜 충격적이에요. 그날 둘 다 제가 오빠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을 텐데. 절 그렇게 따돌리고 둘이서만 그렇고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마음 같아선 울고불고 난리치면서 둘 다 꺼지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에요.”

평온한 어조였으나 두 사람은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일견 평온해 보이는 강하늘의 눈동자에 서린 물기를 알아차렸기에.

“……그렇지만. 울면서 나가라고 하는 건 이미 한 번 했으니까. 이번엔 안 그럴게요.”

그렇게 말하며 강하늘이 안수호를 바라봤다. 새벽녘의 고백을 떠올린 그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진짜 화나고. 원망스럽고. 억울하고. 아무튼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이해는 돼요. 그날 워낙 다들 술에 취해 있었으니까. 다 큰 남녀끼리 술김에 그럴 수도 있는 거고. 당장 저만해도 술김에 오빠한테 고백한 거니까……. 그러니까 이해……할게요.”

뒤로 갈수록 말이 늘어지며 짜장면을 뒤지는 젓가락질이 점차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이해……. 이해 해야죠. 이해해야 하는데……. 하, 진짜……”

이내 젓가락 째로 주먹을 꽉 쥔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두 사람을 노려봤다. 안수호와 지예원 사이에서 번갈아 휙휙 바뀌던 시선이 이내 지예원에게 고정된다.

“머리로는 원만하게 넘기자고 생각하는데, 도저히 못 그러겠어요! 예원 언니!”

“읏?”

쾅! 하고 강하늘이 바닥을 때렸다. 긴장하고 지예원이 퍼뜩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그날 진실게임에서 좋아하는 사람 없다 그랬잖아요! 오빠 안 좋아한다면서요! 근데 그날 바로 고백하고 떡을 쳐?! 그것도 제가 꽐라돼서 뻗어있는 사이에?! 옆방에서 다 들리게!? 그게 지금 말이나 되는 일이에요!?”

“미, 미안…….”

“제가 그날 자면서 무슨 꿈 꿨는지 알……! 하, 말을 말지. 진짜,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 먼저 올라간다더니 완전 도둑고양이시네 도둑고양이!”

“정말 미안해. 그, 수호가 내 첫사랑이었거든. 그래서 다급하고 초조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날 그렇게 고백­”

“그게 뭐 어쨌는데요?! 첫사랑?! 저도 오빠가 첫사랑이었거든요!?”

강하늘이 테이블 위로 넘어오다시피 하며 지예원에게 소리쳤다. 지예원이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앙 다물었다.

“저라고 뭐 안 초조하고 안 급했던 줄 알아요?! 살면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상대라고요! 그래서 제가 먼저 데이트 약속도 잡고!! 학교 다니면서도 없는 시간 쪼개서 오빠 만나러 다니고!! 엄청 노력하면서 오빠한테 고백할 각 재고 있었는데!!!”

“미안……”

“솔직히 알고 있었잖아요!! 두 사람 다!! 제가 오빠 좋아하는 거!! 맞죠?!”

반쯤 울먹이며 던진 질문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모를 리가 없죠. 그렇게 티를 냈으니까!! 당장 둘이 떡친 그날만 해도!! 제가 술게임에서 오빠 좋아한다고 그렇게 티를 냈는데!! 그건 쏙 무시하고 바로 옆방에서……. 옆방에서…….”

강하늘의 고개가 안수호에게로 향했다. 화난 듯 억울한 듯 복잡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다 오빠 탓이에요!! 백 번 양보해서 고백은 받아준다 쳐도!! 그날 바로 섹스까지 할 필요가 어디 있다고!! 바로 옆에서 저 자고 있던 거 뻔히 알면서!! 이 짐승!! 변태!! 금태양!!”

“윽. 잠깐. 하늘아, 아팟. 아프다고!”

강하늘이 꽉 쥔 주먹을 투닥투닥 휘둘렀다. 투정부리듯 휘두르는 주먹이더라도 초인의 몸으로 휘두르면 적잖은 위력이 담기는 법. 뼈까지 울리는 충격에 안수호가 연신 사과해댔다.

“거절했어야죠!! 절 생각했으면!! 저랑 언니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로 했으면 적어도 그날은 거절했어야죠!! 제가 옆에서 듣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그……. 분위기가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었어. 바, 반대로 생각해봐. 만약 어제 새벽에 네가 ‘그년이랑 어디까지 했든 제가 다 앞질러 줄 거예요’하면서 하자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으면 얼마나 상처입었겠­”

“으아아아아!!!!”

­퍼억!!

강하늘의 주먹이 안수호의 안면에 정통으로 꽂혔다. 미처 생각지 못한 공격이었기에 피할 새도 없었다.

“부, 부끄럽게 그걸 왜 말해요 진짜!! 그렇게 자세하게 비유할 필요는 없잖아요!!”

“미, 미안…….”

“……날 앞지른다고 했어? 수호랑 섹스할 때……?”

“네!! 했어요!! 언니랑 어디까지 진도 뺐든 제가 다 앞질러준다 했다구요!! 왜요!!”

당당한 대답에 지예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말하고 부끄럽지도 않은가. 지예원이 그렇게 생각했다.

“…….”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강하늘에게도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순식간에 귀까지 빨갛게 익은 그녀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 무릎을 감싸 안으며 시선을 내리깐 그녀가 무어라 웅얼웅얼 툴툴댔다.

­째깍.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다시금 정적이 내려앉았다. 분위기는 전보다 더 어색해져 있었다. 안수호도 지예원도 차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저, 예원 언니.”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 침묵을 끝낼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강하늘이 지예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언니는 수호 오빠의 어디가 좋아서 반한 거예요?”

하렘물 히로인간의 단골 질문. 어색해진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강하늘은 마음에도 없는 질문을 툭 던졌다. 허나 막상 질문을 꺼내자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똑같은 남자를 좋아하고 있는 입장에서 궁금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안수호의 어떤 부분에 반했냐고……?”

그 낯간지러운 질문에 지예원의 뺨이 서서히 붉어져갔다.

“그…….”

좋아하는 부분이야 잔뜩 있었다. 종이에 써내려가면 족히 몇 장은 채울 것이다. 다만 맨정신으로 말하기엔 조금 부끄러웠다. 그것도 당사자가 듣는 앞에서였으니 더더욱.

­스윽.

지예원의 시선이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안에는 그녀가 사들였던 대량의 술들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용인으로 떠났을 땐 임무 때문에 간 거였기에 따로 술은 챙기지 않았었으니까.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혹시 뭐 좀 마시면서 해도 될까?”

그렇게 말하며 지예원이 냉장고를 가리켰다. 그 의중을 파악한 강하늘이 미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단, 오늘은 절대 옆방으로 넘어가지 마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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