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125. 정실대전(0)
* * *
부상자로 분류되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된 안수호는 당일 바로 퇴원할 수 있었다. 부상이 있긴 했지만 체내에 잔류하고 있던 한여름의 포션 덕에 금방 회복되리라 의사가 판단한 덕분이었다. 입원해봤자 할 일도 없고 지루하기만 할 뿐이니 안수호로서도 잘된 일이었다.
띠리리리리.
그때 안수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하늘로부터의 전화였다.
그날 안수호의 폰에는 강하늘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가 몇십 통이나 쌓였다. 그가 능력치를 반환했을 때 불안을 이기지 못한 강하늘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댄 탓이었다.
병원으로 후송된 뒤 무사하다고 안부 전화를 하긴 했지만 강하늘의 불안감은 가실 줄을 몰랐다. 그 걱정에 혀를 내두르며 안수호가 전화를 받았다.
“어, 하늘아. 무슨 일이야?”
헉. 허억. 오빠 오늘, 오늘 퇴원한다 그랬죠? 허억. 지금 어디에요?
“아직 병원 앞이야. 왜?”
5분. 허억. 아니, 3분만, 3분만 기다려요.
“하늘아? 무슨 일인데 그래? 그리고 왜 그렇게 숨을 헐떡여?”
거기서 딱 기다려요……! 병원 정문에서! 아셨, 허억, 아셨죠?
“하늘아?”
뚝.
그 말을 마지막으로 끊긴 전화에 안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일단 기다리라니 기다려보자, 하며 그가 병원 앞에서 기다리길 약 2분.
“오빠!”
저 멀리서 부리나케 달려오는 강하늘의 모습에 안수호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오빠! 허억. 괜찮아요?! 다쳤다면서요! 심하게 다친 건 아니죠!? 허억. 설마 심하게 다쳤어요?! 포, 포션! 허억! 포션 들고 올까요?! 하, 학교 비품실에 실습용으로 남은 거 몇 개 있을 텐데”
“진정해, 진정! 나 괜찮으니까 일단 진정 좀 해. 봐봐. 멀쩡하잖아. 애초에 멀쩡하지 않았으면 퇴원도 못했을 거라고.”
“허억. 그, 그건 그렇죠. 그런데. 허억. 걱정, 걱정 돼서…….”
“너 이럴까봐 문자로 괜찮다고 한 건데……. 시험기간인데 공부해야지 무슨 마중까지 나오고 있어. 속초에서 여기까지 버스로 세 시간은 걸릴 텐데.”
“그래서. 허억. 택시 타고 왔어요……”
“뭘 그렇게까지”
포옥.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 안수호가 그렇게 물으려던 순간 강하늘이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달뜬 숨을 몰아쉬던 그녀가 안수호의 품에 안긴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야, 걱정되니까 그랬죠…….”
안수호가 능력치를 강하늘에게 반환했을 때. 강하늘은 혹시 그가 잘못된 게 아닐까 걱정부터 들었다. 그 뒤에 그로부터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은 뒤에도 한 번 생겨난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사실 무사하지 않은데, 멀쩡하지 않은데 자기를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닐까 하여.
“어차피 걱정돼서 공부에 집중도 안 되고. 게다가 오빠 퇴원해도 마중 나갈 사람 한 명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마중 나온 거죠.”
“너 진짜…….”
“진짜 잘했다고요? 이히히.”
강하늘이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 웃음에 두 손 두 발 다 든 안수호가 홀가분한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하늘이 기분 좋다는 듯, 고양이처럼 그에게 앵겼다.
“뭔가 오빠 되게 오랜만에 본 기분이에요.”
“오랜만은 무슨. 오늘 새벽에도 같이 있었는데.”
“그냥 느낌이 그렇다구요. 하긴, 생각해보니 아직 헤어지고 24시간도 안 지났네요.”
그렇게 말한 강하늘이 뺨을 빨갛게 붉혔다. 늦은 밤, 혹은 새벽에 그와 나눴던 정사를 떠올린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강하늘이 안수호의 품에 몸을 지그시 기댔다. 단단한 가슴팍에서 그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진짜 아직 하루도 안 됐구나…….’
지금 그의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고작 몇 시간 전에는 알몸으로 침대 위에서 안겨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허나 그것은 분명히 일어난 사실이었다.
강하늘은 안수호와 이어졌다. 그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 비록 지예원이라는 눈엣가시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두 사람은 이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관계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안수호의 품 안에 안긴 채 몇 분이고 떨어질 줄을 모르는 강하늘. 그 전처럼 친한 오빠 동생 사이였다면 이정도의 스킨십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두근. 두근. 두근.
들려오는 심장 박동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그 박동은 자신의 것일까, 아니면 안수호의 것일까.
강하늘이 안수호의 가슴팍에 묻었던 고개를 말없이 들었다. 안수호는 앞도 아니고 옆도 아니고 애매한 곳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 얼굴을 살짝 붉힌 채.
“그, 하늘아……”
안수호가 시선을 슬쩍 내리며 속삭였다. 그 떨리는 목소리에 강하늘은 괜히 기분이 좋아져 즐겁게 되물었다.
“왜요? 오빠?”
“……주변 사람들. 지금 다 우리만 보고 있어.”
“엣……?”
그제야 강하늘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 말처럼, 병원 앞을 오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두 사람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대놓고 병원 입구에서 염장을 지르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에……. 으, 어으. 에?”
“……일단 다른 곳으로 가자.”
부끄러움에 얼굴이 사과처럼 익어버린 강하늘의 손을 붙잡고 안수호가 그녀를 이끌었다. 강하늘은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애정행각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도 부끄러웠고, 그 이전에 자신이 안수호에게 고양이마냥 하염없이 엉겨붙었던 것도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그녀를 부끄럽게, 혹은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안수호의 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을 맞잡은 채 이끄는 그를 보며, 강하늘은 자신과 안수호의 관계가 정말 변했다고 새삼 실감했다.
“…….”
두 뺨이 타오를 것처럼 달아오른 강하늘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묵묵히, 그러나 그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를 띤 채 강하늘이 안수호가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저희 어디로 가는 거예요?”
“흑룡회 강원도지부. 거기에 내 차 있으니까 그거 타고 집으로 가자.”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춘천시였다. 기사의 무덤은 인제군에 있었지만 부상자는 이곳 춘천시에 위치한 대학병원으로 후송되었기 때문이다.
흑룡회 지부까지 걸리는 시간은 차로 약 20분. 안수호는 큰 길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 곧바로 흑룡회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흑룡회 건물에 도착한 안수호는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가 주차해두었던 자신의 차로 가려던 순간.
“음? 너는…….”
안수호는 지하주차장에서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익숙하다고 할까, 아직 한 번밖에 본 적 없는 사내긴 했지만.
“조광일 헌터……?”
비록 한 번이라고 해도 함께 싸웠던 동료의 얼굴을 어찌 잊겠는가. 안수호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자 조광일이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다가왔다.
“오오오! 날 알아보는구만 그래! 병원으로 후송됐다 그러더니 금방 퇴원했나보구만! 별 심한 부상은 아니었나보지?”
“그렇죠 뭐. 조광일 헌터께선”
“거 딱딱하게 조광일 헌터가 뭔가 조광일 헌터가! 그냥 편하게 광일이 아저씨 하고 부르라고. 회주님께서도 그렇게 부르시니 말이야!”
“아, 예에…….”
“네 활약상은 들었다! 빌헬름 고놈 대가리를 네가 따버렸다면서? 처음부터 범상치 않은 친구다 싶긴 했지만 아주 대단한데? 혹시 우리 흑룡회로 올 생각 없나? 회주님께서도 살짝 생각하시던 눈치던데…….”
“아하하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따로 있어서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언제든 생각 바뀌면 말하라고. 회주님이 아니더라도 나 정도 되면 괜찮은 자리에다가 바로 팍 꽂아줄 수 있…….”
조광일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향했다. 안수호의 뒤쪽에서 우물쭈물 거리고 있던 강하늘을 뒤늦게 발견한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물었다.
“저 처자는……?”
“어, 그게……”
“여자친구인가?”
“네. 맞습니다.”
그 대답에 가장 놀란 것은 강하늘이었다. 안수호와 연인이 되긴 했지만 지예원과 양다리 상태인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섣불리 자신이 여자친구라 밝힐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딱 보니 나이 차이가 꽤 나는 것 같은데 능력도 좋구만. ……설마 미성년자는 아니겠지?”
“성인 맞습니다. 제가 일하는 아카데미 1학년이에요.”
“아하. 너도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가 보구만? 사실 내 딸이 아카데미 경비대거든. 저기 속초에 그린하우스라고 알지? 거기에 경비대 중에 특수……대책……과, 라고…….”
신나서 말하던 조광일의 말소리가 점차 느려졌다. 무언가 떠오를 듯 말듯 한 그가 인상을 찌푸린 채 고심했다.
“안수호……. 안수호…….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안수호……. 어어, 그러니까…….”
애매하게 생각날 것 같으면서도 생각나지가 않았다. 조광일이 답답한 마음에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그의 나이 올해로 쉰아홉. 스스로는 젊다고 자부하지만 한창 건망증에 시달리는 처량한 중년이었다.
“으음.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구만. 뭐 중요한 거였음 진즉에 생각이 났겠지! 아무튼 이번에 수고했어!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같이 던전에나 들어가자고. 너처럼 강한 헌터는 언제든 환영이니까!”
호탕하게 웃어재낀 그가 지하주차장의 반대편으로 멀어져갔다. 얼떨떨한 얼굴을 한 안수호가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제 차로 향했다.
“……저 분은 누구에요?”
조수석에 오른 강하늘이 안수호에게 물었다.
“이번에 같이 싸운 흑룡회 소속 헌터셔. 그리고 그…….”
조광일이라는 이름. 게다가 딸이 특수대책과에서 일한다는 설정까지. 긴가민가하긴 하지만 아마 맞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덧붙였다.
“……아마 내 직장 동료분 아버지신 거 같은데.”
“진짜요? 기막힌 우연이네요.”
“그니까. 조광일 저 사람은 원작에도 나왔던 캐릭터거든. 경비대는 원작에 등장도 안 했었는데. 기묘한 우연이지.”
“그 직장 동료분은 남자예요?”
움찔.
그 말에 안수호의 뺨이 움찔 떨렸다.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님에도 본능적인 떨림이었다.
“……여자예요?”
“응. 여자야. 조유리라고, 내 같은 팀 선배…….”
“제가 어제 했던 말, 기억하고 있죠?”
안수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여자를 늘리지 말라고.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그 선배하곤 아무런 사이 아니니까.”
“……진짜요?”
“그렇다니까 그러네……”
실제로 안수호와 조유리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직장 동료긴 해도 조유리는 극도의 남성공포증 환자였다. 그나마 안수호와는 같은 팀에서 계속 지내다 보니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사이가 남녀 간의 무언가가 일어날 정도로 가까워진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안수호는 더 이상 여자를 늘릴 마음이 없었다. 애초에 그의 지상목표는 원래 세계로의 귀환이지 소설 속 캐릭터들로 하렘을 차리는 게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얼떨결에 지예원과 강하늘에게 반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삼다리는 진짜 쓰레기지. 난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야.’
양다리를 걸친 시점에서 쓰레기라는 걸 자각한다는 점은 그나마 갱생의 여지가 있었다. 물론 안수호는 갱생 따위 할 생각 없었다. 지예원도 강하늘도, 한 번 품은 이상 욕심쟁이처럼 끝까지 품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류태현 걔는 요즘에 어때? 원작대로 여기저기 여자애들 후리고 다녀?”
“말도 마요. 벌써 걔한테 반한 것 같은 애만 한겨울, 나은솔, 성아라까지 해서 셋이라니까요? 도소영 교수님이랑도 저번 주말에 따로 만나서 데이트한 것 같고. 완전 알파메일 그 자체예요.”
“딱 원작대로의 전개네.”
중간고사가 다음 주로 다가온 시점. 원작에선 이즈음 한겨울과 나은솔은 이미 류태현에게 마음이 가있는 상태였다. 강하늘이 말한 성아라라는 캐릭터는 기말고사 시즌에, 도소영 교수는 여름방학 즈음에 류태현에 대한 연심을 자각하게 되고.
“그러고 보니 이번에 중간고사 끝나고 다같이 놀이공원 가기로 했어요. 이거 원작에 나왔던 에피소드 맞죠?”
“맞아. 그 놀이공원에서 ‘태초의 은’이라는 아티펙트의 밀거래가 이루어지거든. 중국 쪽 브로커가 겨울 동맹 소속 헌터한테 팔아치우려던 걸 여명단 소속 간부……중에 누구더라. 다나카 진이었나? 아무튼 그놈이 브로커를 습격해서 아티펙트를 빼돌리려다 전투가 벌어지지. 류태현도 그러다 휘말리고.”
“엄청 자세히 기억하고 계시네요.”
“원작을 질리도록 읽었으니까. 게다가 그 ‘태초의 은’이라는 아티펙트는 나도 노리고 있는 거거든.”
“네?”
안수호의 말에 강하늘이 놀란 듯 반문했다. 안수호가 덤덤하게 답했다.
“‘태초의 은’은 원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력한 아티펙트야. 그게 여명단 손에 넘어가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져. 가능하면 내가 중간에서 가로채고, 그게 아니더라도 원래대로 겨울동맹 소속 헌터가 가져가게 하는 편이 좋겠지.”
실제로 태초의 은을 강탈한 ‘다나카 진’은 이후 류태현의 앞길을 막아서는 중간보스격 빌런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때 묘사되었던 태초의 은의 강함을 안수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빠. 꼭 빙의물 주인공 같아요. 저는 굵직굵직한 사건들만 기억나서 그런 시도는 생각도 못 해봤는데.”
“하늘이 네가 정상이야. 나야 워낙 웹소설에 미쳐 살았으니까.”
자조하듯 내뱉은 안수호가 비릿하게 웃었다. 웹소설에 미쳐 산 덕에 이런 세세한 내용까지 기억하고 이용해먹을 수 있던 거지만, 애초에 원작자랑 키배가 붙을 정도로 초인들의 시대에 미쳐있던 탓에 이 세상에 빙의당해버리고 만 것이었으니…….
“……으음. 하여튼. 그럼 오빠도 그날 놀이공원에 가신다는 거죠?”
“어. 토요일이니까 출근도 안 하고. 그때 대비해서 경비 근무는 미리 다른 날로 다 빼놨으니까…….”
“그럼 저도 같이 갈래요!”
“엉? 네가?”
왜? 라고 반문하려던 안수호를 막아서듯 강하늘이 곧바로 대답했다.
“사실 태현이가 저한테도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날 사건 터질 거 알아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빠도 그날 놀이공원 간다면 그냥 오빠랑 같이 가면 되잖아요. 그쵸?”
“그쵸? 가 아니지. 내가 놀러가는 줄 알아?”
“일찍 가서 저랑 놀다가 아티펙트 빼돌릴 때만 빠지면 되죠. 여차하면 제가 도와줄 수도 있구요. 그럼 일석이조 아니에요?”
“그런……가?”
맞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말에 안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었다. 어차피 브로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빼돌리고 싶어도 빼돌릴 수 없고, 강하늘이 함께한다면 적잖은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 그럼. 그날 같이 가자.”
“아싸!”
안수호의 수락에 강하늘이 주먹을 꽉 쥐며 신나했다. 꼭 데이트 신청이 성사되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따지고 보면 데이트가 맞았다. 다만 안수호는 머릿속이 ‘태초의 은’에 관한 것으로 가득 차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두 사람을 태운 차가 어두운 밤길을 빠르게 달려나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강하늘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두 사람을 태운 차가 안수호의 집 앞에 도착한 순간.
“안수호?”
“지예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두 사람은 마침 그날 용인에서 복귀한 지예원과 집 앞에서 떡하니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예원이 언니.”
조수석에서 내린 강하늘이 싱긋 웃으며 지예원에게 인사했다. 그 인사를 얼떨결에 받으려던 지예원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예원, 이라고?”
“네. 예지원은 가명이라면서요? 오빠한테 들었어요.”
그 말에 지예원의 시선이 곧장 안수호에게 향했다. 안수호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대충 어떻게 된 건지 감은 잡히지만…….’
그러나 지예원은 안수호가 자신의 본명을 강하늘에게 말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얼추 상황을 짐작했다. 허나 그녀의 짐작이 100% 맞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 저녁은 먹었어?”
지예원은 안수호의 입에서, 그리고 강하늘의 입에서 직접 진실을 들어내고자 했다.
“아직 안 먹었으면 우리 집에서 같이 먹을래?”
지예원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