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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21화 (122/266)

〈 121화 〉 120. 빌헬름(2)

* * *

이 세상에서 게이트가 출현하면 주위로 강력한 에너지 펄스가 퍼져나간다.

그것은 게이트 내에 존재하는 괴수들의 체내에 내재된 마력에 의한 현상이었다. 현대 인류는 비록 마력의 개념은 아직 알지 못하나 괴수나 던전으로부터 어떠한 ‘특수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것만은 알아냈다.

그 에너지 파장을 감지할 수 있던 덕에 게이트 관리국 같은 기관들이 게이트가 발생하자마자 곧바로 발생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펄스의 세기를 측정해 해당 게이트의 등급을 산출하는 지표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는 꽤 정확한 지표였다. 펄스의 세기는 곧 괴수들의 마력 총합을 의미하고, 대개 강한 괴수일수록 체내에 내재된 마력 또한 많았으니까.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오버랭크로 책정된 기사의 무덤은 꽤나 기이한 경우였다. 게이트 발생 당시의 강력한 에너지 반응에도 불구하고, 안쪽에 있는 괴수는 기껏해야 A급에 불과한 망령기사가 전부였으니.

망령기사의 존재만 본다면 본래 기사의 무덤은 A급 던전, 기껏해야 S급 던전으로 산정되었어야 했다.

헌데 왜 기사의 무덤은 S급마저 넘어선 오버랭크로 격상되었는가.

측정 과정에 오류가 있던 건 아니었다. 게이트 발생 당시 펄스를 감지한 여섯 개의 측정 장치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기사의 무덤이 오버랭크 던전이라고 판단했으니까.

그렇다면 그 강력한 에너지 파장은 도대체 어디서 기원한 것인가.

그 원인은 바로 지금 태스크 포스의 눈앞에 선 한 마리의 괴수, 한 명의 기사에게 있었다.

서리기사단장. 빌헬름 폰 베른슈타인.

오버랭크 던전에서 측정된 강력한 에너지 파장의 대부분을 야기한, 명실상부 역대 최강이자 최악의 괴수.

­와라. 이방의 전사들이여. 아니…….

그가 압도적인 한기를 내뿜으며 자세를 잡았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이고.

길게 다리를 뒤로 빼어.

오직 자세를 잡은 것만으로도 거대한 눈보라를 한 점에 응축한 듯 형형한 기세를 뿜으며.

­……내가 가도록 하지.

이윽고 그 말과 함께 그의 발이 지면을 박찼다. 그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투콰아아앙!!!!

신속.

이제까지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신속의 돌격에 내로라하는 헌터들조차 눈으로 쫓지 못한다. 가까스로 반응한 두 사람은 능력으로 극한의 반사신경을 얻은 성유진과 찰나의 순간 미래를 엿본 설아현뿐.

­챙!!!

오지훈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든 일격을 설아현이 막아선다. 묵빛 건틀릿에 서리검이 부딪히며 불똥 대신 새하얀 눈발이 휘날렸다.

“크르아아아아아!!!!”

거의 동시에 성유진이 주먹을 휘둘렀다. 허나 빌헬름은 이미 다음 행동에 들어선 뒤였다. 그의 발이 닿은 지면에서 거대한 기둥이 솟아나 성유진의 몸을 거세게 밀친다.

­쐐애애액!

직후 생긴 찰나의 틈. 그 틈을 노리고 진소월이 창을 내질렀다. 그 창에 담긴 기세 또한 결코 심상치 않았다.

사용자의 올곧은 정신력을 위력으로 바꿔주는 창 형태의 아티펙트. ‘정의의 창’.

거기에 진소월의 초능력, 힘을 축적했다 단번에 터뜨리는 ‘발경’이 더해지자 창의 속도는 음속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과 함께 날카로운 창끝이 빌헬름의 옆구리를 향해 빨려든다.

­타앗!

한편 반대편에서는 그보다 한 박자 느리게 안수호가 검을 겨누고 있었다. 번뜩이는 탈리스만의 빛과 일렁이는 검은 연기. 극한으로 압축된 반 고체 상태의 연기가 허공을 까만 일선으로 양분하며 날아든다.

이에 빌헬름이 서리검을 휘둘러 막아내려 했으나.

­까득!

­……!!

설아현이 그의 검을 꽉 붙잡은 채 비릿하게 웃었다. 제 손이 얼어붙는 것조차 신경쓰지 않으며. 오직 그를 묶어두겠다는 일념으로.

빌헬름의 동작이 멈춘 찰나, 두 사람의 공격이 마침내 그에게 적중한다.

­투콰아아아아아앙!!!!

백은과 흑암의 교차.

폭발음과 함께 바닥에 쌓인 눈이 펑 터져나간다. 그 흰색 연무를 뚫고 헌터들이 빠져나온다. 자세를 수습한 오지훈과 얼어붙은 건틀릿을 축 늘어뜨린 설아현. 창을 갈무리하며 다시 힘을 축적하는 진소월까지.

“흑룡회주.”

­화르륵.

염제 박철이 설아현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불꽃으로 녹였다. 화상은 입히지 않으면서 겉에 얼어붙은 얼음만 녹여내는 세밀한 컨트롤. 설아현이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허나 그 시선은 곧바로 하얗게 일어난 연무로 향했다. 다른 헌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필살의 일격을 먹이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빌헬름은 고작 그정도로 쓰러질 적이 아니었으므로.

­투화아아아아악!

그 말을 증명하듯, 한 차례 검격에 주위에 피어오른 연무가 단숨에 흩어졌다. 그 가운데에는 빌헬름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위용을 뽐내며 서있었다.

“어떻게…….”

진소월의 그 의문은 곧바로 해결됐다. 빌헬름의 왼쪽 옆구리와 오른팔 상박. 그 표면을 덮고 있던 얼음이 쩌저적 금이 가며 떨어진다.

“허, 거 참. 무슨 얼음이 저렇게 단단해?”

오지훈이 혀를 쯧 차며 대검을 휘둘렀다. 히드라의 엄니가 다시금 아홉 개의 검으로 쪼개어지며 그의 주위에 떠올랐다.

“흥! 그래봤자 얼음이지!!”

동시에 박철이 오른발에 거센 불길을 일으켰다. 호기롭게 무릎을 치켜든 그가 지면을 쾅! 내리찍는다.

“인페르노 필라!”

­콰르르르르릉!

그 순간 천둥 소리와 함께 지면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박철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크게 웃었다.

“아직 안 끝났다! 인페르노 필라! 인페르노 필라! 인페르노 필라아아아!!!”

그가 발을 쿵쿵 내리찍을 때마다 새로운 불기둥이 쾅쾅 터져나왔다. 사방에 퍼지는 폭연에 진소월이 다급하게 외쳤다.

“아저씨! 그렇게 마구잡이로 쏴댔다간­”

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려던 순간 불기둥을 뚫고 수십 개의 얼음송곳이 박철을 향해 날아들었다.

“오우!”

박철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불의 벽이 솟아나 날아드는 얼음송곳을 막아냈다.

그 경박한 태도에 가볍게 여기기 쉬우나 박철 또한 S급 초인이자 하나의 길드를 이끄는 길드마스터. 30년의 헌터 경력으로 전투에는 이골이 난 남자였다.

“어떠냐 빌 뭐시기! 아주 뜨끈~해서 기분 좋지!?”

­나쁘지 않군.

타오르는 불길 속. 은은한 붉은 색으로 달아오른 빌헬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가 서리검을 역수로 쥔 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 옵니다! 다들 피하세요!”

그 순간 안수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헌터들이 재빠르게 빌헬름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콰직!

거의 동시에 빌헬름이 지면에 검을 꽂았다. 직후 타오르던 불길이 단숨에 꺼지고 주위로 새하얀 얼음이 퍼져나갔다.

­빙결폭산.

­투콰가가가가가가각!!!

다음 순간 빌헬름을 중심으로 거대한 빙산들이 우후죽순 솟아나기 시작했다. 반경 50미터를 가득 채운 빙산의 범람은 태스크 포스뿐 아니라 아인과 싸우던 유격조의 헌터들마저 덮칠 기세였다.

“어딜!!”

이에 박철이 유격조와 빙산 사이로 달려들어 불꽃을 일으켰다. 그의 양손이 발한 푸른 화염이 거대한 빙산의 쓰나미와 정면으로 격돌한다.

­치이이이이이익!

불꽃에 얼음이 녹고 녹은 물에 불꽃이 꺼진다. 새하얀 수증기가 폭발적으로 퍼지며 이른 아침의 안개처럼 주변을 뒤덮는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수증기 때문에 바로 앞조차 보이지 않았다.

­타앗!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빌헬름이 돌진했다.

방금 전 자신의 공격을 막은 박철을 향해.

‘우선 불꽃부터 죽인다.’

지금 빌헬름에게 있어 가장 성가신 상대가 바로 박철이었다. 얼음과 상성인 불꽃의 능력은 그 존재만으로 빌헬름의 전력 대부분을 약화시켰다.

그런 그만 쓰러뜨린다면 남은 적들은 훨씬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터.

­투화악!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증기 속, 빌헬름은 미리 기억해둔 박철의 위치로 정확하게 날아들었다. 그가 연무를 가르며 검을 치켜들자 그곳에는 놀란 얼굴을 한 박철이 있었다.

‘일단 하나.’

빌헬름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허나.

­투확! 투화악!

직후 박철의 양 옆에서 설아현과 진소월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틀릿과 창, 두 개의 무기가 서리검과 교차하여 빌헬름을 노린다.

‘방어는 버린다.’

그러나 빌헬름은 두 사람의 공격은 무시한 채 박철만을 노렸다. 콰드드득! 뼈와 살이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서리검이 박철의 어깨에 깊숙이 박혔다.

­콰앙!!

직후 두 사람의 공격이 빌헬름의 몸에 격돌했다. 흉갑이 살짝 우그러지며 빌헬름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고.

­챙!

밀려나던 그 등에 허공에 떠있던 검 한 자루가 걸렸다.

“거기냐!!”

노도와 같은 함성. 직후 다른 여덟 자루의 검이 빌헬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보이지 않는 연무 속을 가르며 빌헬름의 사각을 노리고.

­어설프군!

­캉! 채앵! 카앙!

그러나 빌헬름에게 사각이란 없었다. 극한에 다다른 감각을 곤두세우며 그가 자신을 노리는 검들을 정확하게 튕겨내었다. 튕겨내며 박철에 대해 생각한다.

‘일격이 얕았다. 뼈와 살은 끊었지만 내장에까지 이르진 못했어. 그 정도 상처는 강자들에겐 경상에 불과하지.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빌헬름이 박철이 있던 방향을 노려봤다. 그의 검에 극한의 냉기가 서린다.

비록 눈으론 볼 수 없더라도 빌헬름은 박철과 다른 이들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상처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박철과 그를 부축하는 진소월, 경계 태세인 설아현.

그 셋을 단번에 휩쓸어버릴 기세로 그의 서리검이 거대한 얼음을 뿜어내려 한 순간.

­휘오오오.

옅은 바람과 함께 흰색 수증기 사이로 새까만 연기가 섞여들었다.

‘이건…….’

섞여든 연기가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빌헬름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찾았다.”

나지막한 속삭임. 직후 공격에 나서러던 빌헬름이 허리를 크게 꺾으며 정면이 아닌 왼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가각!

지면을 따라 거세게 일어난 빙산의 파도.

­투콰아아아앙!

직후 그 파도가 무언가에 부딪혀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부서진 빙산 너머로 넘실거리는 검은 연무를 보며 빌헬름이 침음성을 삼켰다.

‘……조금 이상하군.’

무언가 답답하듯이 불쾌한 감각.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모종의 불안감에 빌헬름이 좀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그러고 보니, 놈들은 어떻게 내 기술을 알아차린 거지?’

조금 전 빌헬름이 사용한 광역 공격기 ‘빙결폭산.’

지면에 검을 꽂아넣는 것으로 일대의 대지를 단번에 얼리고, 직후 거대한 빙산을 솟아나게 해 사방의 적들을 동시에 공격하는 광역기.

그 기술을 사용하려 한 순간, 안수호는 빌헬름이 검을 꽂기도 전에 동료들에게 피하라고 일렀다. 빌헬름은 뒤늦게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내가 무슨 기술을 쓸지 알고 있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꽃을 다루는 자를 공격하려 했을 때에도, 그 수증기 속에서 내가 그자를 노릴 걸 알고 미리 대기하고 있었어. 마치 일어날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무슨 일인가. 빌헬름의 푸른 안광에 일순 의문이 서렸다.

그러나.

‘……그저 이들이 그만큼 뛰어난 전사들이란 뜻이겠지.’

일찍이 그가 살아왔던 다른 세상에선 수많은 강자들이 있었다.

목숨을 뺏고 빼앗기는 싸움이 일상이던 그 전란의 시대. 미래 예지에 다다른 육감 정도는 어지간한 강자라면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소양에 지나지 않았으니.

­투화아아아아악!!

빌헬름의 검격에 사방에 퍼진 수증기가 일제히 날아갔다. 탁 트인 시야에 빌헬름이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다.

제일 먼저 불꽃의 남자. 그는 창을 쓰는 여자의 부축을 받은 채 한참 뒤로 물러난 채였다. 허나 어깨의 상처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다. 그리고 그 옆 바닥에 나뒹구는 붉은 액체가 담겼던 유리병이 하나.

‘포션인가.’

이쪽 세상에도 포션이 있었나. 하긴, 신이란 작자가 자신의 권능으로 온갖 차원과 통하는 문을 열어대는 세상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며.

박철과 진소월을 지키듯 서있던 설아현을 마지막으로 빌헬름의 시선이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반대편에 있는 적은 세 사람과 한 마리.

대검을 지닌 갑옷차림의 남자. 늑대인간으로 변한 남자. 얼음을 다루는 여자. 그리고 일찍이 자신과 마주쳤던, 다른 세상에서 온 ‘섞인 자.’

그들은 저마다 무기나 손톱을 앞세운 채 빌헬름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에 빌헬름이 비릿하게 웃었다.

­……무얼 그리 겁내는가. 전사들이여.

­화르르르륵!

직후 회복을 마친 박철이 다시금 빌헬름과 자신들을 빙 둘러싸듯 화염의 벽을 만들어냈다. 허나 빌헬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아니던가. 헌데 왜 그리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느냔 말이다.

그 말처럼 헌터들은 빌헬름의 무위에 조금씩이지만 겁을 먹은 상태였다.

빌헬름은 상대를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강하진 않았다. 허나 결코 만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그 증거로 그는 한여름을 제외한 여섯 명의 합공을 어렵지 않게 버텨내고 있었으니.

게다가 그들은 빌헬름이 아직 전력을 발휘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안수호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빌헬름에겐 아직 쓰지 않은 ‘비장의 수’가 하나 있었다.

전력이 아닌 빌헬름조차 이정도라면 전력을 발휘한 그는 도대체 얼마나 강해진단 말인가.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미약한 두려움은 바로 그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빌헬름은 그 사실을 보기 좋게 간파해냈다.

“씨발거. 누가 겁을 먹었다 그래? 안 그런가! 오지훈이!”

박철이 입을 삐죽 내밀며 외쳤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오지훈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 어깨에 기대서 빌빌대는 주제에 입은 살았군. 하지만 그 말에는 동감이다!”

­쿠웅!

오지훈이 한 발 내딛자 그의 주위로 아홉 자루의 검이 도열했다. 안수호와 성유진도 자세를 낮춘 채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반대편의 헌터들도 마찬가지. 회복을 마친 박철이 두 손에 불꽃을 두르고 설아현과 진소월이 각자의 무기를 앞세웠다. 그런 그들의 주위에 한여름이 발한 냉기가 감돌며 불꽃의 열기를 차단한다.

빌헬름은 그들의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좋구나.

그 용기에, 혹은 의무감에 살짝 웃은 빌헬름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리석은 침입자들이여. 내 그대들의 무위를 인정하고 그대들이 이룩한 경지를 인정하노라. 이에 그 인정의 증거로써 나 또한 진심을 다하리라.

­고오오오오오.

그 순간, 앙상한 겨울 숲에 계속해서 불던 바람이 멎었다.

‘설마.’

안수호가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으로 물든 겨울 하늘. 그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빌헬름의 머리 위를 중심으로 천천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꺼내는 건가……!”

안수호의 중얼거림에 다른 헌터들 또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저마다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한 점으로 모여드는 회색빛 먹구름이 나타내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안수호로부터 들어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오라.

그런 헌터들과 앞뒤로 대치한 채 빌헬름이 작게 읊조렸다.

­나의 애검. 흐림투르스여.

­까드드드드드등!

다음 순간, 세상이 얼어붙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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