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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20화 (121/266)

〈 120화 〉 119. 빌헬름(1)

* * *

황량한 풍경이다.

게이트 너머에 펼쳐진 숲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일찍이 안수호가 당도했을 때엔 그나마 색이 죽은 풀 정도는 있었다면, 지금은 말 그대로 겨울숲. 앙상한 가지와 소복하게 쌓인 눈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 숲 한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헌터들이 전진했다. 길을 헤맬 걱정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길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으며, 어차피 침식형 던전 게이트 너머의 이계는 그 크기가 반경 1km 정도에 불과했으니.

뼛속까지 사무치는 한기. 누군가 숨을 내뱉자 하얀 입김이 머리 위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 입김 사이로 보이는 표정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숨을 죽인 채 숲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길 수 분.

“정지.”

이윽고 나타난 순백의 제단과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백색 갑주의 기사를 발견한 설아현이 그렇게 말했다.

‘다른 기사의 모습은 안 보여. 빌헬름 혼자인가? 아냐. 어쩌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걸지도…….’

설아현이 함께 온 헌터들을 둘러봤다. 공략대의 리더는 설아현. 헌터들은 그녀의 지시를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격조는 이 자리에서 대기하며 경계. 빌헬름과 싸울 태스크 포스만 앞으로 전진하­”

설아현의 표정이 흠칫 굳는다. 일순 붉게 물든 눈동자가 다시 맑아지더니 그녀가 크게 몸을 뒤로 물린다.

­파바바바박!

직후 그 자리에 수십 다발의 화살이 꽂혔다. 마치 지면에 기다란 선을 긋듯 꽂힌 화살들에 헌터들이 놀란 순간.

­단장님께선 주군의 넋을 달래시는 중이다. 방해하는 자는 죽이겠다.

위쪽에서 들려온 단아한 목소리. 헌터들이 고개를 들자 앙상한 겨울나무 꼭대기에 녹색 망토를 두른 기사가 활을 겨누고 있었다.

­휘릭.

녹색의 기사가 나무 아래로 몸을 던졌다. 빠르게 떨어진 그 몸이 사뿐하게 지면에 착지한다. 약간의 흙먼지조차 일으키지 않는 그 움직임에서 헌터들은 그 기사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설아현의 눈짓에 태스크 포스를 제외한 유격조가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갖췄다. 기사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그들은 지면에 그어진 화살의 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었다. 녹색의 기사가 쓴 투구 사이로 분노에 숨을 삼키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네놈들이 정녕 목숨을 내던지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녹색의 기사가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 화살촉 끝에 싱그러운 녹색 기운이 서린다. 그 주위를 유격조 헌터들이 반원형으로 둘러싼다.

허나 그때까지도 빌헬름은 말없이 제단을 향해 고개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유격조 헌터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

­아인. 물러서라.

겨울숲 전체에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마침내 빌헬름이 몸을 일으켰다.

­휘오오오오오.

바람이 불었다. 바람과 함께 엄습한 한기가 헌터들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빌헬름은 주군의 묘에 침입한 불한당들을 주욱 둘러보며 탄식했다.

­명예도 신의도 모르는 침입자 놈들에게 어찌 그런 예의를 바라겠는가. 내 영면을 방해받은 주군의 넋은 놈들의 피와 살을 취해 기리도록 하…….

빌헬름의 말이 멈춘다. 우뚝 정지한 그 시선이 헌터들 사이에 끼어 있는 안수호에게 향한다.

­움찔!

그 순간 안수호는 수천 개의 가시가 자신의 살을 찌르는 듯한 살기를 느꼈다. 빌헬름의 투구 슬릿 사이로 형형한 푸른색 안광이 불타올랐다.

­호오.

­쩌적! 쩌저저저적!

그가 한 걸음 내딛자 발이 닿은 지면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소복하게 싸인 눈조차 딱딱하게 굳고 불어오는 바람엔 더욱 저릿한 한기가 서린다.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왔느냐. 비겁한 도적이여. 명예를 모르는 도망자여. 가증스러운 신의 어리석은 꼭두각시여…….

꾹꾹 눌러 담은 분노와 함께 어째선지 모를 유쾌함마저 감도는 목소리.

그 말에 몇몇 헌터들이 안수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안수호는 말없이 빌헬름을 노려보며 검을 쥔 손에 꽈악 힘을 줄 뿐이었다.

“당초 작전대로 태스크 포스는 빌헬름을, 유격조는 저 녹색 기사를 상대합니다. 녹색 기사가 쓰러지면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인원 외엔 전부 빌헬름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세요.”

설아현의 지시와 함께 태스크 포스에 속한 헌터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그 흉흉한 기세에 빌헬름과 아인 또한 자세를 낮췄다.

­레온하르트의 마지막 검. 서리기사단 단장 빌헬름 폰 베른슈타인.

­서리기사단 척후대장이자 제1 부관. 아인 디트리히.

두 개의 목소리가 겹친다. 중세 로망스 문학에서 튀어나온 듯한 시대착오적인 자기소개.

허나 그 둘을 마주한 헌터들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인 디트리히는 그렇다 쳐도 빌헬름은 오버랭크 던전의 주인 괴수. 선발대로 돌입했던 S급 초인을 의식 불명의 중태에 빠뜨린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었으니까.

­검을 들어라. 침입자들이여.

빌헤름의 주위에 한기가 몰아쳤다. 사방에서 모여든 자그마한 얼음조각들이 그의 손에 결집해 이내 한 자루의 검을 만들어낸다.

­하다못해 검을 쥔 채 죽는다면, 그 죽음에도 일말의 명예는 함께 하겠지.

나지막하게 고해지는 사형 선고.

다음 순간, 태스크 포스에 속한 일곱 명이 일제히 발을 박찼다.

­키이이이이이잉!

아인이 겨눈 화살에 번뜩이는 섬광이 서렸다. 그 화살 끝이 노리는 목표는 선두. 제일 앞에서 달리고 있는 설아현의 미간.

“이 짜식이 어딜!”

“네 상대는 우리들이다!!”

허나 그 화살이 날아들기 앞서 유격조의 헌터들이 아인을 덮쳤다. 기세 좋게 뛰쳐나간 ‘용감한 사내들’ 길드의 헌터들이 그 이름에 걸맞게 각자의 무기를 용맹하게 휘두른다.

­크읏……!

결국 아인은 목표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시위를 놓자 한 발의 화살이 수십 갈래로 갈라지며 유격조를 노렸다. 그 화살 세례와 교차하듯 태스크 포스의 헌터들이 아인을 지나쳐 빌헬름에게 당도한다.

­단장님!

­맡겨둬라.

빌헬름이 제단을 지키듯 앞으로 튀어나왔다. 이내 그가 검을 휘두르자 지면을 따라 거대한 빙산이 솟아나 달려오던 헌터들을 덮친다.

그 순간.

­화르르르륵!

염제 박철. 그의 손에서 시퍼런 불길이 일어나 빙산을 덮쳤다. 솟아나던 얼음이 단번에 녹아내리고 자욱한 수증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박철 헌터!”

“암!”

설아현의 외침에 박철이 지면을 박차 크게 뛰어올랐다. 오른주먹을 굳게 쥔 그가 낙하와 동시에 지면을 세게 강타했다.

“헬즈 플레어!!”

­콰르르르르릉!!!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지축이 진동하더니 온 사방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그 모양새가 꼭 빌헬름과 태스크 포스를 원형으로 가둬두는 것 같았다.

­화르르르륵!

사방에서 불길이 타오르며 거센 열기를 토해냈다. 그 열기에 숲에 가득 차올랐던 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는 빌헬름을 향해 박철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흐흐흐. 보아라! 이 염열지옥을! 사방이 이렇게 불바다면 네 얼음 능력도 쓰기 힘들 테지?”

“게에엑…….”

그 호기로운 외침에 진소월이 진절머리 쳤다.

“철이 아저씨. 제가 제발 그 이상한 기술명 좀 말하지 말라 그랬잖아요. 헬즈 플레어니 염열지옥이니, 그 나이 먹고 부끄럽지도 않나요?”

“으하하하핫! 뭘 모르는군! 자고로 존나 쎈 기술을 쓸 때는 기술명을 외쳐줘야 하는 법이라고! 그래야 존나 쎄보이니까! 안 그런가 오지훈이!”

“날 자네랑 같은 취급하지 말게.”

오지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후끈하게 엄습해오는 열기에 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다.

­휘오오오오.

그때 그의 몸 주위에 한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허나 빌헬름의 서리마법과 달리 불꽃의 열기만을 막아주는 기분 좋은 서늘함이었다. 오지훈이 고개를 슬쩍 돌리며 말했다.

“고맙군. 학생.”

“별 말씀을.”

한여름이 두 손을 뻗자 나머지 사람들의 몸에도 서늘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몸 자체는 얼리지 않으면서 주위의 공기만을 냉각시켜 열기를 차단하는, 한여름의 세밀한 컨트롤이 돋보이는 기술이었다.

사방에 뜨거운 불길을 일으켜 빌헬름의 서리마법을 약화시키는 한편, 한여름의 빙결 능력으로 열기에 의한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한다.

이것이 안수호가 대 빌헬름 전에 관해 제시한 첫 번째 전략이었다. 의기양양하게 무기를 꺼내드는 헌터들을 보며 빌헬름이 살며시 웃었다.

­재미있군.

재미있다. 그 말대로 빌헬름은 그들로부터 실로 오랜만에 재미를 느꼈다. 비록 주군의 묘소에 침입한 것은 불쾌했으나, 그들 한명 한명에게서 느껴지는 강자의 기운에 빌헬름은 기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전사로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작 이까짓 불로 정령의 권능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까드드드등!

그 말과 함께 빌헬름의 등 뒤로 얼음으로 이루어진 칼날 수십 개가 떠올랐다. 그 모습에 의기양양하던 박철이 땀을 삐질 흘리며 안수호에게 물었다.

“이보게 친구. 어떻게 된 건가 저거? 내 불이 효과가 없나본데?”

“효과는 있습니다. 저게 그나마 약해진 거라고요.”

“허어…….”

허망한 얼굴을 한 박철. 그런 그를 향해 빌헬름이 들고 있던 검을 지휘봉처럼 휘둘렀다. 그러자 수십 개의 얼음 칼날이 일제히 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

­쿠웅!

오지훈이 등에 매고 있던 거대한 대검을 지면에 꽂았다. 길이만 해도 2미터에 폭이 60cm나 되는 몽둥이에 가까운 검.

그 정체는 과거 어느 S급 던전에서 발견된 아티펙트 ‘히드라의 엄니’였다. 그 이름처럼, 일순 그 검신에 가느다란 선이 그어지더니 거대한 대검이 아홉 자루의 크고 작은 검으로 나뉘었다. 이내 그 검들이 소리 없이 허공에 떠오른다.

“흐아아아아압!”

오지훈이 노도와 같은 기합과 함께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홉 자루의 검이 일제히 허공을 종횡무진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들을 향해 날아들고 있던 수십 자루의 얼음 칼날을 향해서.

­파캉! 캉! 카강! 카가가가가가강!

새된 파쇄음이 사방에 울려 퍼진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직접 휘두르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궤도를 꺾어대는 아홉 자루의 검이 날아들던 얼음 칼날을 전부 격추해낸다.

“오지훈이 자네 실력도 여전하구만.”

“흐. 기술명 따위 외치지 않아도 강한 자는 강한 법이지.”

용살자 오지훈. 보유 초능력은 국내에서도 단 다섯 밖에 없는 S급 초능력 ‘금속 조작’.

그 재질이 금속이라면 철이고 알루미늄이고 텅스텐이고 상관없이 자신의 수족처럼 다루는 최강의 조작계 능력.

짓쳐드는 얼음 칼날을 전부 쳐낸 히드라의 엄니가 다시금 대검의 형상을 취했다. 오지훈은 그 커다란 대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빌헬름을 겨눴다.

“지금이다.”

오지훈의 나지막한 말에 진소월과 설아현이 빌헬름에게 달려들었다. 진소월은 기다란 창을, 설아현은 묵빛으로 물든 건틀릿을 앞세운 채 빌헬름을 향해 공격을 내지른다.

그 돌격에 빌헬름이 자세를 낮추며 검을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철컹!

­……?!

검을 휘두르려던 빌헬름의 움직임이 돌연 멈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힌 듯한 감각.

­이건…….

빌헬름이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이 본능적으로 오지훈에게 향한다. 자신을 향해 대검을 겨누고 있는 초로의 남자.

“감이 꽤 좋은 모양이군.”

이미 설명했듯 그의 초능력은 금속 조작.

그 재질이 금속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설령 던전에서 등장하는 괴수라 할지라도 조종할 수 있는 최강의 조작계 능력.

“하아아앗!”

“흐읍!”

얼어붙듯 멈춘 빌헬름의 좌우로 설아현과 진소월의 공격이 빨려 들어간다. 빌헬름의 몸은 여전히 삐걱이기만 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허나.

­까드드드드등!

다음 순간, 지면에서 솟아난 수십 갈래의 얼음송곳 앞에 두 사람은 몸을 내뺄 수밖에 없었다. 솟아나기 시작한 얼음송곳은 그 기세를 늦추지 않고 빌헬름의 주위 십여 미터를 가득 채운다.

­철컥. 철커덩!

그 안에서 빌헬름의 몸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삐걱이는 몸으로 팔을 휘둘러보거나 다리를 접었다 피는 등, 마치 무언가를 시험해보는 듯한 모습.

­흐음. 그런가.

이내 빌헬름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지면을 발로 쾅 내리찍었다.

­쿠우웅!

“크윽?!”

그 순간 오지훈의 팔에 저릿한 통증이 달렸다. 능력을 무리하게 사용했을 때의 반동.대검을 겨누고 있던 그가 신음하며 오른쪽 어깨를 붙잡는다.

­과연. 이 정도 힘으로 움직이면 뿌리칠 수 있나. 이해했다.

'설마 힘으로 뿌리쳤다고?'

어느 정도의 힘으로 움직이면 되는지 이해했다고. 빌헬름의그 한 마디가 오지훈은 그토록 소름돋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가다시금 빌헬름을 조종하려 했으나 빌헬름은 약간의 저항만을 느낀 채 평소처럼 움직였다.

­……성가시군.

­투콰앙!

빌헬름이 지면을 박차자 사방으로 얼음 파편이 비산했다. 오지훈을 향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가 쥐고 있던 서리검을 아래에서 위로 크게 올려쳤다.

­카앙!

그러나 그 일격은 푸른색 건틀릿에 가로막혔다. 그 순간 빌헬름의 안광이 파르르 떨렸다.

­게오르크……?

빌헬름의 공격을 막아선 건 그의 부하 게오르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지훈이 쓰러뜨리고 몸통 부분의 갑옷만 가져온 시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참상을 목도한 빌헬름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네놈이 감히……!

자신의 부하의 시신을 욕보인 그 모습에 빌헬름이 불같은 분노를 토해냈다. 왼손으로 게오르크의 갑옷을 치워낸 그가 서리검을 크게 내리찍었다.

­카가가가강!

허나 이번에는 오지훈이 쥐고 있던 히드라의 엄니에 막혔다. 거대한 대검은 그 자체로 어지간한 방패와 맞먹었다. 쿠웅. 한쪽 무릎을 꿇으며 힘겹게 일격을 막아낸 오지훈이 비릿하게 웃었다.

­꽈악!

목 없는 게오르크의 갑옷이 빌헬름의 허리를 안았다. 꽈아악 조여드는 그 두 팔에 빌헬름이 당황한 찰나. 오지훈의 다급한 외침이 터진다.

“성유지이이이인!”

­……!!

그 순간 빌헬름은 등 뒤에서 접근하는 거대한 살기 덩어리를 감지했다.

그가 게오르크를 매단 채 몸을 반전했다. 오른손에 쥔 서리검에 거센 한기가 휘몰아치며 거대한 얼음의 참격을 날릴 준비를 끝마친다.

­투콰앙!

허나 그보다 적의 주먹이 빨랐다. 거대한 주먹이 그의 가슴에 꽂히고 빌헬름의 몸이 속절없이 허공을 날아 지면에 박혔다.

­콰드드드드드드득!!!

얼어붙은 지면이 뒤집어지며 그의 몸이 반쯤 땅에 박힌다. 곧바로 자세를 바로한 그가 자신을 공격한 적을 노려본다.

“크르르르르…….”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숲에 울려 퍼진다.

빌헬름을 공격한 건 태스크 포스의 한 사람인 성유진이었다. 허나 그 모습에는 신사적인 미청년이었던 그의 모습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2미터가 넘게 자라난 신장.

전신에 차오른 다부진 근육과 그 근육을 뒤덮은 흑색 털.

길에 튀어나온 주둥이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였고 두 눈은 광기어린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광견 성유진.

그 초능력은 A급의 변형계 초능력 ‘괴수화.’

자제심을 대가로 막강한 신체능력을 자랑하는 웨어울프로 변한 그의 신체능력은 자타공인 국내 초인들 중 최강이었다. 반인반룡 상태의 채소연조차 성유진 앞에선 한 수 접어주리라.

그 막강함의 비결은 그의 초능력이 가진 두 개의 페널티에 있었다. 하나는 웨어울프 상태에선 자제심이 사라진 흉포한 성격이 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평소 능력을 발동하지 않은 채 힘을 모아야만 비로소 100%의 강함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문에 성유진은 빌헬름 공략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능력을 발동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최대한 힘을 축적하기 위해 어지간하면 전투에조차 나서지 않았다. 그가 속한 3팀이 미궁을 답파할 때 진소월만 전투에 임한 건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성유진은 그간 축적해온 모든 힘을 온전히 빌헬름을 상대하는 데 쏟아부을 수 있었고.

­철그럭.

그 힘은 앞서 말했듯, 최강의 반열에 든 드래곤조차 무섭지 않을 정도였다.

­…….

빌헬름이 말없이 자신의 가슴팍을 만졌다. 움푹 들어간 갑옷은 조금 전 성유진의 일격에 의한 것이었다.

­아오오오오오오올!!

성유진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며 포효했다. 그런 그의 주위로 설아현과 진소월이 모여들어 무기를 겨눴다.

­…….

빌헬름이 말없이 자신을 노리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자신의 서리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상쇄해낸, 작열하는 불꽃을 다루는 중년의 남자.

거대한 대검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알 수 없는 힘으로 자신의 움직임조차 잠시나마 막아낸 갑옷 차림의 사내.

방금 전 그에게 강렬한 일격을 먹인 웨어울프는 말할 것도 없으며, 그 좌우에 선 두 여인들 또한 그 풍겨오는 기세로 미루어보아 역전의 전사임이 분명했다.

그런 그들 뒤에 선 붉은 머리의 여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냉기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듯 했다. 그녀로부터 풍겨오는 농후한 마력의 기운은 일찍이 그가 만났던 궁정마법사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 일찍이 자신에게 치욕을 안겨주고 도망친, 다른 세계에서 온 남자까지.

­크흐.

빌헬름의 투구 사이로 나지막한 웃음이 새어나온다. 기사가 아닌 전사로서의 웃음.

­……나의 영원한 주군 엘리야 레온하르트시여. 간악한 침입자들과의 싸움에서 전사의 즐거움을 느끼는 부끄러운 종복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진심을 다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상대들이라며. 자신의 주인에게 용서를 구한 빌헬름이 호기롭게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와라. 이방의 전사들이여. 아니…….

그의 갑옷에서 푸른 기운이 거세게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지닌 서리정령의 권능 그 자체요. 눈에 보일 정도로 응집된 극한의 냉기였다.

그 냉기의 폭풍 속. 그 사이로 보이는 빌헬름의 안광이 유쾌하다는 듯 요동쳤다.

­……내가 가도록 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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