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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19화 (120/266)

〈 119화 〉 118. 버팀목

* * *

당초 설아현의 예상대로 안수호가 속한 1팀은 세 팀 중 가장 먼저 중심부에 도착했다. 그러나 다른 두 팀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오! 우리보다 먼저 온 팀이 있을 줄이야!”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용살자 오지훈과 염제 박철이 속한 2팀이었다. 로열 나이츠와 용감한 사내들의 인원들로 구성된 2팀은 격전을 치르고 왔는지 옷에 흙먼지나 피가 묻은 사람이 많았다.

“꽤나 격전이었나 보군요.”

“다 오지훈이 저놈 욕심 때문이지.”

박철이 혀를 쯧쯧 차며 오지훈을 가르켰다. 희희낙락 웃는 그의 손에는 초록색 빛깔이 감도는 전신갑옷 한 벌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저건 설마…….”

설아현이 설마 하는 얼굴로 눈을 빛내자 박철이 이어서 말했다.

“중간에 만난 괴수 놈이야. 자기 입으로 지가 게오르크니 무슨무슨 부대 대장이니 어쩌고 했는데 꽤 강하더군. 그걸 본 오지훈 저 친구 물욕이 도져버린 탓에 전투가 길어졌어. 자네도 알다시피, 저 친구가 검이니 갑옷이니 하는 거엔 사족을 못 쓰잖나.”

“아하……”

“상처 하나 없이 잡는다고 고생 꽤나 했지. 그래도 놈 초능력을 생각하면 써먹을 구석이야 있을 테니 마냥 헛고생은 아니었다 싶지만.”

“리빙 아머 계열을 상처 하나 없이 잡는 게 가능한 건가요……?”

“저놈이 들고 있는 갑옷에 왜 투구가 없겠어? 대가리만 일곱 번을 깼는데 죽지 않고 배기나?”

“아…….”

박철과 설아현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던 중, 그제야 다른 통로에서 3팀 인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사의 무덤 공략조 제3팀. 성유진의 겨울동맹과 진소월의 아스테로이드 소속 헌터들로 구성된 그 팀은 2팀과는 대비되게 전원이 멀쩡한 상태였다. 멀쩡하기만 한 게 아니라 땀을 흘린 사람조차 없었다.

그런 무리의 선두. 백은의 창을 든 채 걸어오던 진소월 옆으로 성유진이 미안한 기색을 풍기며 다가왔다.

“결국 여기까지 오는 동안 소월 씨 혼자만 싸웠군요. 미안합니다. 제가 뭐라도 좀 거들었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성유진 헌터께서는 빌헬름을 상대하시기 위해 체력을 온존하셔야 하잖아요.”

“그러는 소월 씨도 저랑 같은 태스크 포스 아닙니까.”

“제가 나서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나서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게다가 전 예열을 오래 해야 하는 타입이기도 하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맨 뒤에서 뒷짐만 지고 있던 제가 뭐가 됩니까…….”

그 대화에서 알 수 있듯, 격전을 치른 2팀과 달리 3팀은 오직 진소월만이 싸웠다. 그녀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검 한 번, 주먹 하나 휘두르지 않았다. 그들 또한 야코프나 게오르크와 비슷한 빌헬름의 측근 ‘요하네스’를 만났으나, 그 또한 오직 진소월 혼자 쓰러뜨렸다.

S급 2위 길드. 아스테로이드의 최정예부대 팀 세레스의 팀장 진소월.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태스크 포스에서 유일하게 길드마스터 급이 아닌 그녀였으나 ‘인간형 적’을 상대로 할 때의 전투력만은 단연 최고였다.

그렇게 모든 팀이 모이자 공략대의 리더를 맡은 설아현이 잠시간의 휴식과 재정비를 명했다.

현재 시각은 공략 개시로부터 약 44분이 지난 시점.

공략대원들은 15분 정도의 휴식을 가진 뒤 개시 60분 시점에 빌헬름이 있는 중심 게이트 너머로 돌입하기로 했다.

별다른 재정비가 필요 없던 안수호는 무너진 기둥 파편을 의자삼아 앉은 채 상태창이나 타이머 따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설아현이 슬쩍 다가와 앉았다.

“잠깐 옆에 앉아도 되죠?”

이미 옆에 앉았으면서 그렇게 묻는 게 어이가 없던 안수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크게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던전 자체가 주인 괴수만 빼면 별볼일 없는 던전이니까요.”

“미래에서도 그랬나요?”

“예. 미궁은 쉽게 답파되었고, 빌헬름도 어렵지 않게 잡아냈습니다.”

안수호는 설아현의 말에 숨겨진 불안감을 감지하고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설아현이 조금이나마 안심한 표정으로 숨을 후 내뱉었다. 뜨거운 숨결이 하얀 김이 되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요…….”

분위기가 어색해진 안수호가 그렇게 운을 띄우며 설아현에게 물었다.

“왜 헌터들이고 정부 기관이고 던전이나 게이트는 영어로 던전, 게이트라고 부르면서 주인 괴수만 유독 한글로 주인 괴수라고 합니까? 좀 어색하지 않아요? 똑같이 영어로 뭐, 보스라든가 그런 느낌으로 부르면 될 텐데.”

말 그대로 아무래도 좋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안수호에게 있어선 오랜 의문이기도 했다.

기실 그것은 그가 원래 세상에서 를 한창 읽었을 적부터 품어왔던 의문이었으니까.

“수호 씨 말씀이 맞아요. 그래서 헌터나 업계 관계자들도 대부분 사석에선 편하게 영어로 ‘보스’라고 불러요. 공적인 장소나 공식문서 같은 곳에만 한글로 ‘주인 괴수’라고 쓰지…….”

“뭐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정부에서 지정해준 공식 명칭이 ‘주인 괴수’거든요. 갓 게이트 사태가 터졌을 땐 영미권 쪽에서 쓰는 ‘보스몬스터’, 내지는 ‘보스’라는 명칭을 그대로 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국립국어원인가에서 외래어 쓰지 말고 순화해서 부르라고 지시했을걸요?”

“……던전이나 게이트는 놔두고 보스만 말입니까?”

“‘던전’이나 ‘게이트’도 똑같이 ‘미궁’이니 ‘차원문’이니 순화해서 부르라 하긴 했어요. 근데 외국 길드나 기업이랑 소통할 때 도통 뜻이 통하질 않으니…….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던전, 게이트라는 명칭을 인정해준 거죠.”

“근데 왜 ‘보스’만 그대로 ‘주인 괴수’로 부른답니까?”

“자기들 멋대로 순화어를 공식 명칭으로 지정했다가 뒤늦게 원래대로 바꾸던 중에 누락된 거죠 뭐. 꼭 ‘주인 괴수’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초인’이나 ‘초능력’도 그때 한글 명칭으로 바꾼 단어들이고. ‘아티펙트’도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유물’이라고 불렀는걸요.”

“허어…….”

묘하게 현실성 있는 설정에 안수호는 혀를 내둘렀다. 당장 원래 세상에서도 SNS를 가지고 ‘누리소통망’이니, 밀키트를 보고 ‘바로 요리 세트’니 하는 어색한 순화어 사용 권장 운동 같은 게 종종 일어나곤 했으니까.

‘묘사만 안 됐다 뿐이지 원래부터 이런 설정이 있던 건지, 아니면 소설이 진짜 세상이 되면서 저런 자잘자잘한 배경 설정이 생겨난 건지…….’

독자 시절부터 줄곧 품어왔던 의문 하나가 해결되자 안수호는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기에 별반 달라질 건 없었다.

“또 두 분이서 붙어 있네요?”

그때 한여름이 안수호의 뒤에서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앉아있던 안수호가 그녀를 올려다보자, 한여름이 새침한 얼굴로 설아현을 보며 말했다.

“누가 보면 수호 씨가 흑룡회 소속 헌터인줄 알겠어요. 애초에 수호 씨를 발굴해서 이번 공략에 데려온 건 저인데 말이죠.”

한여름은 안수호와 설아현이 요즘들어 계속 붙어다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여름은 그 누구보다 먼저(적어도 헌터들 사이에서는) 안수호의 힘을 알아보고 그를 자기편으로 포섭하려 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안수호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설아현의 존재는 다소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시 두 분이서 원래부터 알던 사이였나요? 옆에서 보면 도저히 초면 사이로는 안 보이는데…….”

“그건…….”

“한여름 학생이 왜 그걸 궁금해 하죠?”

설아현이 한여름을 째릿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안수호의 어깨에 기대다시피 얹은 그녀의 두 팔을. 마치 자기 사람을 받침대마냥 쓰는 게 아니꼽다는 듯이.

“그야……. 그 흑룡회주께서 일개 아카데미 경비대원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으시는 데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아마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일걸요?”

“수호 씨랑은 개인적인 인연이 조금 있을 뿐이에요. 사적인 이야기라 자세히 밝히고 싶진 않네요. 됐나요?”

“그 사적인 이야기가 뭔지가 궁금한 거긴 한데…….”

한여름이 슬쩍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안수호의 어깨 위로 대담하게 팔을 둘렀다. 꼭 뒤에서 껴안으며 기대는 듯한 모양새에 설아현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다, 당신 지금 무, 무슨 짓을…….”

당황해서 말을 더듬기 시작한 설아현.

“어머.”

그 모습에 설마 싶은 한여름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수호를 바라봤다. 갑작스레 자기한테 찰싹 달라붙은 한여름을 곁눈질로 쫓으며 안수호가 멋쩍게 물었다.

“……왜 그러시죠? 한여름 학생?”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혹시 두 분이서 사귀시나요?”

“예?”

“으, 넷?”

상반된 두 탄성이 겹친다. 안수호의 탄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탄성이었고 설아현의 것은 그것보단 좀 더 당황이 섞인 탄성이었다.

“한여름 학생. 저와 아현 씨는 결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똑 부러지게 아니라 밝히는 안수호를 보며 한여름이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인연이란 건 도대체 뭐야?’

한여름은 안수호로부터 시선을 거둬 이번엔 설아현을 바라보았다.

설아현은 안수호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여름의 질문에 자신과 달리 칼같이 잘 대응한 안수호 덕에 안심하는 한편, 그래도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며 똑 부러지게 부정한 그에게 다소의 서운함도 느끼고 있었다. 한여름은 그러한 설아현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으나, 그 기저에 깔린 속내를 꿰뚫어볼 수는 없었다.

“실례합니다.”

그때 감미로운 미성이 그들의 귓가를 간질였다. 세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성유진이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은 채 다가와 있었다. 아무런 전투도 겪지 않았음을 나타내듯, 그가 입고 있던 디펜시브 코트자락에는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았다.

“성유진 헌터? 무슨 일이시죠?”

“공략과 관련해서 중요한 전달사항이 생겨서요.”

빌헬름전을 십 분도 채 남기지 않은 이 시점에 중요한 전달사항이라니. 세 사람이 의문을 품은 채 고개를 갸웃하자 성유진이 이어서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전원이 모인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마침 저기 오고 있군요.”

성유진이 태스크 포스의 남은 두 사람을 데리고 다가오는 진소월을 가리키며 말했다.

박철과 오지훈 두 사람이 각자의 장비를 주렁주렁 걸친 채(오지훈은 여전히 한쪽 어깨에 자신이 쓰러뜨린 기사의 갑옷을 들쳐 업고 있었다) 안수호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성 이사. 그래서 중요한 전달사항이 뭔가?”

오지훈의 물음에 성유진이 그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정확히는 그의 어깨에 메어져 있는 게오르크의 갑주에게로.

“저희 3팀과 마찬가지로 1팀과 2팀도 ‘언어 사용이 가능한 기사형 괴수’와 마주쳤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럼. 이 놈이 바로 그 놈이지.”

“저희도 마주쳤어요. 야코프인가 뭔가 하는 놈이었고, 제가 죽였죠.”

“말씀하신 것만 들어보면 두 팀 모두 각각 한 체씩만 조우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 말에 한여름과 오지훈이 각각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성유진이 입가에 띄운 미소는 그대로 둔 채, 다만 눈썹만 찡그리며 곤란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저희 3팀이 마주친 요하네스……. 그 말하는 기사형 괴수가 한 말입니다만, 자신을 두고 빌헬름의 사방기사 중 한 명이라고 하더군요.”

“사방기사……?”

그 말에 설아현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즉 그 ‘말하는 기사’가 아직 한 체 더 남았다는 건가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방기사라는 말이 네 방위의 기사를 의미하는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겠지요.”

설아현이 슬쩍 안수호에게 눈길을 보냈으나 안수호는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일 뿐이었다. 빌헬름의 사방기사니 뭐니 그 또한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으니까.

“사방기사면 네 마리 있는 게 맞겠지. 셋 밖에 없는데 사방이니 뭐니 하진 않을 것 아닌가. 그럼 문제는 그놈이 지금 어디 있느냐는 거로군.”

“이 미궁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도 0은 아니지만…….”

박철이 그렇게 운을 띄우며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빌헬름이 기다리는 제단으로 향하는 푸른 게이트를.

“나는 어째 그 마지막 사방기사라는 놈이 저 게이트 너머에 있을 것 같군.”

“근거는 있고?”

“근거야 없지. 그냥 감이야.”

“흑룡회주처럼 미래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네깟 게 감은 무슨…….”

오지훈은 겉으론 그렇게 말했으나 그 또한 속으로는 마지막 기사가 게이트 너머에 있을 거라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그 이유 또한 박철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근거 따위가 아닌 그저 ‘감’이었다.

허나 수십 년의 헌터 경력 동안 몇 백 개의 던전을 답파해온 그들의 감은 결코 무시할 게 못 되었다. 그 감이라는 것도 결국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상황 판단의 결과였으니까.

“경우의 수는 셋입니다. 하나, 마지막 사방기사와는 마주치지 않은 채 공략이 끝난다. 둘, 마지막 사방기사는 빌헬름과 함께 게이트 너머에 있다. 그리고 셋, 태스크 포스가 빌헬름을 상대하러 간 사이 마지막 사방기사가 남아있는 헌터들과 마주친다…….”

“먼저 마주쳤던 놈들이 쎄긴 쎘지만 그렇다고 쓰러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여기 남은 인원들 정도면 쓰러트릴 수 있다 못해 아주 떡을 치겠지. 다만…….”

“마지막 기사가 게이트 너머에 있을 경우에는 우리 일곱이서 빌헬름과 놈까지 둘을 동시에 상대해야겠지.”

태스크 포스는 빌헬름을 쓰러뜨리기 위해 엄선된 멤버들이었다. 자신들이라면 반드시 빌헬름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안수호뿐 아니라 다른 태스크 포스 인원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빌헬름의 곁에 방해꾼이 있다면, 심지어 그 방해꾼이 일반적인 망령기사보다 훨씬 센 사방기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지막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인원을 분산하면 당연히 빌헬름을 상대할 이들의 부담이 커질 테고, 최악의 경우 공략 실패를 넘어서 누군가 심하게 다치거나 죽게 될지도 모르니까.

“……어쩔 수 없군요. 여기서는 잔여 인원 중 몇 명을 추려서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로 합시다. 만약 마지막 기사가 게이트 너머에 있다면 그들에게 상대를 시키는 거죠.”

“그게 좋겠군. 인원 분배를 잘하는 게 핵심이겠어. 잘 싸우는 놈들을 다 게이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가 남은 인원들이 당해버리면 안 되니까.”

“근데 그럴 거면 차라리 다 같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건 어떤가?”

“박철 이 양반아. 자네는 회의 때 졸기만 했나? 어중간한 실력으론 빌헬름 그놈이 뿌려대는 광역 공격에 당할 게 뻔하니까 번거롭게 태스크 포스니 뭐니 짠 거 아닌가.”

“그랬었지 참. 그럼 자네 말마따나 들어갈 사람과 남을 사람의 실력이나 조합 같은 걸 잘 고려해야겠구만.”

자기들끼리 말을 나누던 헌터들의 시선이 이내 설아현에게 향했다. 그들은 각자 소속 길드가 다르기에 수평적인 위치였으나, 이번 기사의 무덤 공략을 주관하는 건 어디까지나 흑룡회였기 때문에 최종 결정권은 설아현에게 있었다.

“……그 방법밖에 없겠네요. 서둘러 인원을 선별하도록 하죠.”

잠시 고민하던 설아현이 그렇게 답했다. 안수호는 그 과정에서 설아현의 얼굴에 서린 불안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각 길드별로 인원을 반씩 나눠서 따로 돌입조를 구성하는 것보다는 길드별로 돌입할 길드와 대기할 길드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팀워크를 생각하면 그게 맞겠지. 일단 인원수만 보면 우릴 제외하고 흑룡회가 넷, 아스테로이드가 둘, 로열나이츠가 다섯에 나머지가…….”

오지훈이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헷갈려하자 박철이 말을 받았다.

“겨울동맹이 셋에 우리 용감한 사내들이 넷이다. 인원수만 보면 흑룡회랑 로열나이츠를 묶고 나머지 길드끼리 또 묶으면 딱 9대 9로군.”

“그럼 편성은 그렇게 하고. 돌입조는 어떻게 정하지?”

“그거야 태스크 포스를 구성할 때랑 마찬가지로 빌헬름과의 상성이나 집단 전투 능력을 고려해서…….”

오지훈과 박철을 위시한 다른 헌터들이 저마다 의견을 꺼내며 토의하던 중, 한 발자국 멀찍이 떨어져 입을 다물고 있는 설아현에게 안수호가 슬쩍 다가갔다.

“아현 씨.”

“? 아, 네. 수호 씨.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은 아현 씨한테 있겠죠. 아까부터 표정이 좀 불안해보이셔서.”

“아…….”

정곡을 찔린 설아현이 무어라 반문하려다 이내 멋쩍게 웃었다.

“그냥, 당초 계획과 계속 달라지는 게 불안해서요. 저도 참 웃기죠. 던전 안에서 돌발 사태가 일어나는 거야 일상다반사인데, S급 길드 길드마스터란 사람이 고작 이런 걸로 불안해해서야…….”

“불안할 수도 있죠. 전대미문의 오버랭크 던전이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안수호는 설아현이 느끼는 불안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회귀자임에도 이미 자신이 겪었던 미래가 끝나 앞날이 보이지 않는 그녀의 불안감은, 마찬가지로 빙의자임에도 워낙 많은 것이 바뀌어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그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과 일맥상통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안수호는 그런 설아현의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고자 그렇게 말했다. 물론 고작해야 말뿐인 격려 따위가 설아현의 불안감을 진심으로 해소시켜줄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정말 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그러나 설아현은 안수호의 별 거 아닌 격려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뿌리를 단단히 내린 거목에 기댄 것처럼 든든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사정을 헤아려보자면, 기실 외로운 회귀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신의 사정을 헤아려주고 한결같이 곁을 지켜주는 버팀목이었기에.

자신이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묵묵히 괜찮을 거라 격려해주는 안수호의 존재에. 설아현은 비록 그 격려가 말뿐인 격려일지언정 무의식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요. 수호 씨.”

다만 자신의 가슴을 옥죄던 불안감이 조금이나마 가신 건 사실이었기에, 설아현이 살며시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그 미소에 안수호는 무언가 말캉한 감촉이 가슴을 스치는 것 같았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마주하자 설아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수호 씨 말대로, 정말 모든 게 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그 말에 담긴 묘한 뉘앙스를 안수호는 감지해내지 못했다. 그저 설아현의 불안감이 조금은 가신 것 같아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입조와 대기조를 나누는 회의가 끝났다. 로열나이츠와 흑룡회는 남고 아스테로이드와 겨울 동맹, 그리고 용감한 사내들이 태스크 포스와 함께 돌입한다. 그러한 결론에 설아현이 최종적으로 승인을 내리고 이내 태스크포스를 포함한 16명의 인원이 게이트 앞에 섰다.

“회주님! 파이팅하십쇼!”

“그 빌헬름인지 비스마르크인지 아주 그냥 묵사발을 내버리십쇼! 우리 회주님께서 용도 잡으셨는데 그깟 기사 놈이 뭐 대수랍니까?!”

“야 안수호인가 뭔가하는 놈! 우리 회주님 옆에서 잘 지켜라잉! 알겠냐!?”

“……근데 진짜 안수호라는 저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흑룡회 헌터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설아현을 격려했다. 그들은 설아현의 회귀 사실에 대해선 알지 못했지만 설아현이 남들에게 말 못하는 고민이나 불안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의도해서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설아현을 응원했다.

“고마워요. 다들.”

그 자상한 배려에 설아현이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우우우우우웅.

눈앞에서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푸른 게이트를 향해.

“그럼, 들어가도록 하죠.”

그렇게 기사의 무덤 공략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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