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15화 (116/266)

〈 115화 〉 114. 기사의 무덤 공략(1)

* * *

오버랭크 던전 <기사의 무덤="">.

본래 그 던전은 원작에서 침식형 던전이었다. 침식형 던전의 특징은 게이트 너머에 존재하는 던전의 크기가 극단적으로 작은 대신, 게이트를 중심으로 주위 환경을 던전 내부와 비슷하게 변모시킨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안수호가 여인혁을 만나기 위해 들렀던 천지던전이었다. 천지던전 게이트의 존재로 인해 백두산 천지에는 사시사철 강력한 눈보라와 마력폭풍이 불게 되었다. 본래라면 기사의 무덤 또한 그런 식으로 주변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던전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원작과 달리 이번에 등장한 기사의 무덤은 기존에 존재하던 C급 던전 내부에서 발생한 이중던전이었다. 그로 인해 기사의 무덤에 의한 환경의 변모, 침식은 던전 내부에 국한되게 되었다.

그 결과, 전대미문의 오버랭크 침식형 던전이 창궐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트 주변은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침식형 던전이 초래하는 피해를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던전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생성된 던전을 방치하면 던전 내부의 괴수가 게이트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크라이시스가 발생하니까. 비록 지금은 피해가 없다고 해도, 오버랭크 던전의 괴수들이 바깥에 활보하게 될 가능성을 생각하면 한 시라도 빨리 던전을 공략해 게이트를 닫아야 했다.

그리하여.

2020년 4월 15일.

그 내부에 기사의 무덤을 품고 있는 C급 던전 게이트 앞에는 오버랭크 던전 공략을 위한 공략대가 집결해 있었다.

“……정말 어마어마하군.”

게이트 관리국 직원이 혀를 내둘렀다. 그 말처럼 그곳에 모인 헌터들의 면면은 역대급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로 뛰어났다.

국내에 존재하는 5개의 S급 길드에서 거르고 걸러 엄선한 24명의 공략대. 그들 전원이 A급 이상의 초인이었으며 그중 열셋은 S급이었다. 그러나 그 강력한 초인들 대부분이 오늘은 그저 빌헬름에게 향하는 길을 뚫기 위한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집결해있는 공략대의 중심.

그곳에는 기사의 무덤 공략의 핵심이자 주인 괴수 빌헬름을 상대하기 위한 다섯 명의 헌터와 한 명의 학생이 있었다.

S급 1위 길드 로열 나이츠의 서브마스터. 용살자 오지훈.

S급 2위 길드 아스테로이드의 최정예부대, 팀 세레스의 팀장 진소월.

S급 3위 길드 흑룡회의 길드마스터. 흑룡회주 설아현.

S급 4위 길드 겨울 동맹의 서브마스터. 광견 성유진.

S급 5위 길드 용감한 사내들의 길드마스터. 염제 박철.

그리고 아스테로이드 길드의 학생 인턴이자 국내 최연소 S급 승급이 유력한 한여름에 이르기까지.

공략대에 속한 초인이라면 누구나가 뛰어난 헌터였으나 그 여섯 명은 다른 초인들과 궤를 달리하는 강자 중의 강자들이었다.

심지어 평소엔 경쟁하기 바쁜 S급 길드들의 주요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주변 초인들은 거의 경외감에 가까운 감정마저 느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시선은 이내 태스크포스 팀 옆에 선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도대체 왜 저들과 함께 있는지 알 수 없는, 이름조차 모르는 검은 머리의 경비원에게로.

“근데 저 놈은 누군데 계속 우리 회주님 옆에서 기웃거려?”

“몰라. 처음 보는 놈인데.”

“이 양반들아. 자네들이 모르면 어떡하나? 자네들 회주가 이번에 직접 등용한 인재라고 하던데.”

“??? 그게 참말이여? 금초시문인디?”

“저어어번 회의 때 한성그룹 후계자 여자애가 데리고 온 놈이네. 듣자하니 이번에 그 빌헬름인지 뭔지 상대할 작전을 저놈이 거의 다 짰다 그러던데.”

“뭐?? 저놈이 뭔데 작전을 지가 다 짜? 뭘 믿고?!”

“사정은 모르지만 저분들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태스크포스에 길드 마스터급만 넷인데 뭔가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 아니겠어?”

자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다른 헌터들의 말을 들으며 안수호가 멋쩍게 뺨을 긁었다.

안수호의 정체를 아는 이는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일부 간부진들뿐. 그나마도 그들에겐 함구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사정을 모르는 다른 헌터들은 안수호의 정체에 대해 온갖 추측을 늘어놓고 있었다.

“안수호 씨 아주 인기인 다 됐네요. 다들 당신 정체가 궁금해서 미치겠나본데요? 어우, 오늘따라 왜 이리 입이 근질거리나 몰라?”

한여름이 쿡쿡 웃으며 빈정거렸다. 이에 안수호가 볼멘소리를 뱉었다.

“……한여름 학생은 뭐 따로 준비할 거 없습니까? 다른 분들은 다들 최종지시다 장비점검이다 바쁜 것 같은데.”

“학생인턴인 제가 상관할 부분은 아니죠. 안수호 씨야말로 이번 작전 입안자시면서 어째 한가해보이시네요.”

“입안자는 무슨. 아이디어만 줬다 뿐이지 전술은 다 같이 짰잖습니까. 그리고 그쪽이 학생인턴이면 전 아예 부외자입니다. 뭘 하고 싶어도 못 한다고요.”

“하긴. 그건 그러네요.”

둘 사이에 한가로운 침묵이 내려앉는다.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태스크포스의 다른 다섯 사람과 달리, 그 둘은 한여름의 말마따나 이제 와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시간도 남는데 잡담이나 할까요?”

“……잡담이니 뭐니 그런 시간 낭비는 싫어한다 그러지 않았습니까?”

“딱히 지금 할 일도 없는데요 뭘. 준비가 끝나는 대로 돌입할 텐데 따로 회사 업무를 보고 있을 수도 없고. 어차피 버려질 시간이면 당신 같은 유능한 인재랑 잡담이나 나누는 편이 유익하게 시간을 쓰는 법이겠죠.”

“유능한 인재라. 칭찬이 과하군요.”

“겸손은.”

안수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으나 한여름 입장에선 겸손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아는 안수호는 적어도 S급 초인에 준하는 강자.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힘을 지니고 있는 자였으니.

“하여튼. 전부터 당신한테 물어보고 싶었던 게 하나 있었거든요. 시간이 남아서 하는 잡담이니 너무 고심하진 마시고, 그냥 편하게 대답하면 돼요.”

“좋습니다.”

“그럼 묻죠. 안수호 씨. 당신은 제 동생 한겨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예?”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그 물음에 안수호가 순간 놀라 반문했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그, 어떤 의미로?”

“음. 제 질문이 조금 명확하지 않았네요. 초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냔 거였어요. 구체적으론 그 애의 자질이랄까, 재능 같은 걸 당신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서요. 저번에 한 번 제 동생이랑 싸워봤잖아요?”

“아하…….”

그런 이야기였나, 하며 안수호가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대뜸 한겨울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기에, 영락없이 이성으로서 어떠냐고 묻는 줄 알았다. 전날 강하늘의 고백을 받은 뒤라 더욱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한겨울 학생의 자질이라……. 고작 경비대원인 제 안목이 정확해봐야 얼마나 정확할까 싶지만, 재능도 뛰어나고 노력도 하는 우수한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미적지근한 평이네요. 꼭 교사가 칭찬할 말 없을 때 생활기록부에 적당히 써넣는 멘트 같아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전 진짜 한겨울 학생이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한여름 학생만큼은 아니겠지만요.”

“……의외네요. 당신은 그런 아부랑 거리가 먼 사람인줄 알았는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하.”

한여름은 기가 차다는 듯이, 그러나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는 표정으로 살며시 웃었다.

“뭐, 그래도 나름 정확하게 보셨네요.”

“한여름 학생의 자질을 말입니까?”

“아뇨. 제 동생이 나름 뛰어나긴 하지만, 저보다는 뒤떨어진다는 거요.”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가 무엇인가. 안수호가 잠자코 듣고 있자 한여름이 이어서 말했다.

“조금 건방지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 전 천재예요.”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불세출의 천재죠. 초인으로서의 자질은 물론이고 학문에 대한 조예나 기업 경영 능력에 있어서도 말이에요. 아마 한 삼십 년쯤 지나면 교과서에도 실릴걸요? 아니, 삼십 년이 뭐야. 당장 이번년도에 S급으로 승급하기만 하면 다음년도부터 모든 아카데미 헌터과 1학년 개론 수업에서는 최연소 S급 승급자로 제 이름 석 자를 신입생에게 가르치게 될 거예요.”

“…….”

전부 다 사실이긴 했으나 묘하게 듣기가 거슬려 안수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 태도가 퍽 우스웠는지 한여름이 피식 하고 조소를 흘린다.

“그런데 제 동생, 겨울이는 그 정돈 아니에요. 물론 뛰어나기야 하죠. 그렇지만 비범하진 않아요. 수재로 불리기엔 차고 넘칠 정도지만 천재라 말하기엔 반 발자국 정도 뒤쳐져있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한겨울 학생도 충분히 천재라고 생각합니다만…….”

“말했잖아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라고.”

기준이 가혹해도 너무 가혹했다. 국내 최고의 아카데미에서 1, 2위를 다투는 동생을 보고 기껏해야 수재라니. 안수호는 한여름의 지나치게 높은 천재의 기준에 혀를 내둘렀다.

“요즘 사람들은 천재라는 단어를 너무 남발해요. 천재.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란 말은 결코 가볍게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에요. 뛰어난 사람들을 잔뜩 모아놔도 천재는 그 안에서도 특출나게 빛나는 법이거든요. 저처럼. 그리고 오늘 함께 싸울 저 네 사람처럼.”

어쩌면 당신도 포함될지도 모르죠. 그렇게 덧붙인 한여름이 비릿한 조소를 지어보였다. 안수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말을 듣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겨울이는 결국 수재에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다른 헌터들과 마찬가지로. 재능과 자질이 뛰어나긴 하나 결코 비범하진 않죠.”

“……그런 말씀을 제게 하시는 의미가 뭡니까?”

“말했잖아요. 안수호라는 초인은 한겨울의 자질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가 궁금했다고.”

“한겨울 학생은 뛰어난 학생입니다.”

조금 전 했던 말의 반복. 그러나 안수호의 말에는 그 뒤가 있었다.

“한여름 학생은 자기 동생이 태스크 포스의 길드 마스터급 초인은 될 수 없을 거라 하셨습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한겨울 학생은 충분히 그 정도로 성장할 수 있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약점만 극복할 수 있다면.”

“……그 약점이 뭔데요?”

“자만심.”

안수호의 시원스러운 대답이 의외였다는 듯 한여름이 입을 다물었다. 안수호가 이어서 말했다.

“자만심을 버리고 자신의 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면 한겨울 학생은 분명 강해질 겁니다. 어쩌면 먼 미래에 지금의 염제 박철 대신 그녀가 염제의 칭호를 거머쥐게 될지도 모르죠.”

은연중에 원작의 내용을 흘린 안수호가 살며시 웃었다. 그 말대로, 염제 박철이 죽은 원작에서 한겨울은 국내 최고의 화염 계열 능력자로서 염제의 칭호를 계승하게 된다. 그가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이 세상에선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자만심, 이라…….”

안수호의 말을 곱씹던 한여름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대련에서 그렇게 겨울이를 짓밟은 건가요?”

“짓밟다니, 표현이 조금 그렇군요.”

“그날 집에 돌아온 겨울이 표정을 봤다면 그런 말씀 못하실 걸요?”

한겨울 쪽에서 대련해달라고 부탁해서 싸운 건데 짓밟았느니 표정이 어떠니 하니 안수호로선 조금 억울했다. 멋쩍게 뺨을 긁은 그가 뭐라고 반박하려던 순간.

“10분 후 던전 공략을 개시합니다! 헌터분들께선 최종적으로 장비와 물자를 점검해주세요!”

어느새 돌입 준비가 끝났는지 게이트 관리국 직원이 그렇게 외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한여름이 아스테로이드 길드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대화 즐거웠어요. 당신이 제 동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잘 들었고요. 나름 흥미로웠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 의견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럼 조금 이따가 봐요.

그렇게 덧붙인 한여름이 안수호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홀로 덩그러니 남은 안수호에게 멀리서 설아현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수호 씨. 준비는 다 끝내셨나요?”

“저야 진즉에 끝냈죠. 아현 씨나 다른 사람들은?”

“전부 마쳤어요. 갑작스레 누가 배탈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10분 뒤에 정상 진입할 거예요.”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한 우스갯소리에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그 배려가 무색하게도 안수호는 전혀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심 불안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긴장은 설아현이 더욱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온해 보이는 얼굴 너머로 슬쩍슬쩍 엿보이는 불안감을 감지한 안수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툭 올려두었다.

“엣? 수, 수호 씨?”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겁니다. 미래시로 공략 성공하는 모습 봤다면서요.”

“그, 그건 다른 사람들한테 수호 씨 의견을 납득시키려고 한 거짓말이었잖아요.”

“그래도 저와 관련된 미래를 봤을 때 우리 사이가 돈독했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만약 오늘 공략이 실패했다면 저랑 아현 씨가 그렇게 좋은 사이로 남지는 못했겠죠.”

“그, 그건 그렇죠오…….”

어째서인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는 설아현의 모습에 안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설아현은 차마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흑룡회 인원들이 모인 쪽으로 이동해 돌입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10분 뒤, 24명의 헌터와 한 명의 경비대원이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오오. 들었던 대로 겁나 춥구만 이거!”

게이트 너머에는 기존 C급 던전과 동일한 미궁이 펼쳐져 있었다. 단, 돌로 된 미궁의 온 사방에 새하얀 눈과 서리가 가득 끼어 있었다. 기사의 무덤에 의한 환경 침식 때문이었다.

“이거 침식이 게이트 바깥까지 번지면 이 근처 농사는 싹 다 망하겠구만.”

“근데 침식형 던전 침식이 게이트를 넘을 수가 있기는 한가?”

“나도 몰라. 애초에 이중 던전이란 것부터가 이번에 처음 발생한 거잖아.”

“됐고 오늘도 한탕 열심히 벌어보자고! 모처럼 정부 지원금 빵빵한 오버랭크 던전이니까 말이지!”

“오우! 빌헬름인지 비스마르크인지 다 덤비라고 그래!”

헌터들은 자기네들의 여유를 자랑하듯 왁자지껄 떠들며 미궁에 진입했다. 그런 그들 앞에 기존 미궁에도 존재하던 여덟 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헌터들은 사전에 정해둔 대로 팀을 세 개로 나누어 갈림길에 돌입했다. 안수호가 속한 팀은 흑룡회와 아스테로이드 길드의 혼합 구성이었는데, 우연찮게도 설아현과 한여름 둘 다 그와 같은 팀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눈이 소복하게 쌓인 미궁 통로를 여덟 명의 초인들이 나아갔다. 대열 중간에 있던 한여름이 선두에 선 안수호 옆으로 다가갔다.

“수호 씨.”

“무슨 일입니까?”

“좀 전에 나눴던 대화 이후로 갑자기 궁금해진 게 하나 있어서요.”

언제 괴수가 나올지 모를 상황이었으나 한여름의 태도는 꽤 여유로웠다.

아니, 비단 한여름뿐만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빌헬름이 있는 최심부를 제외하곤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다는 걸 파악한 덕분이었다.

“안수호 씨가 그랬잖아요. 제 동생이 자만심만 버릴 수 있다면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예. 분명 그렇게 말했죠.”

“그냥 의문이 좀 들더라고요. 자만심을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어차피 정해진 재능과 자질은 똑같은데. 고작 마음가짐 좀 달라졌다고 사람이 그렇게 극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말이에요.”

“그거야…….”

­철컹. 철컹.

그때 미궁 너머에서부터 들려온 금속음에 일행이 일제히 멈춰 섰다. 여유로운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전원이 단번에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한여름 또한 두 손에서 냉기를 피워올리며 전방을 주시했다.

“망령 기사…….”

모습을 드러낸 건 전신이 칠흑 같은 검은 갑옷으로 뒤덮인 다섯의 기사였다. 기존 던전에 등장하던 리빙 아머와 외양은 비슷하지만 그 정체는 전혀 달랐다.

망령 기사. 그들은 생전 서리기사단장 빌헬름의 밑에서 복무하던 기사단원이 던전의 힘으로 되살아난 존재들이었다.

그 추정 등급은 A. 이번 공략에 참가한 헌터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는 적이었으나 그렇다 해서 결코 만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한여름 학생의 말은 즉, 사람은 정해진 재능이나 자질 이상으로 강해질 수 없다. 그 말 아닙니까?”

그때 안수호가 한여름에게 말했다. 설마 적을 앞에 둔 이 상황에 좀 전의 대화를 이어갈 줄은 몰랐기에, 한여름이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그렇죠. 누구나 성장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니­”

“근데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네?”

“이 세상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잖아요.”

그렇게 말한 안수호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다섯의 망령 기사를 마주한 채 홀로 나선 그를 보던 헌터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피어올랐다.

“안수호 씨? 그게 무슨 말…….”

“그냥 그렇다고요. 별 의미는 없어요.”

그렇게 대답한 안수호가 전방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시야에 떠오른 푸른색 시스템 메시지를.

===[ <스킬 :="" 연심의="" 벚꽃="">의 두 번째 효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효과를 활성화하겠습니까? Y/N ]===

얼추 한 시간 전부터 그의 시야 중앙에 떠올라 있던, 일부러 무시하고 있던 시스템 메시지.

“……활성화.”

안수호가 작게 읊조리자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지며 새로운 글자들이 휘리릭 떠올랐다.

===[ <스킬 :="" 연심의="" 벚꽃="">의 두 번째 효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지고지순의 사랑! 지금부터 120분 동안 스킬 사용자 ‘강하늘’의 ‘초인으로서 지닌 모든 능력’을 대상 ‘안수호’에게 ‘대여’합니다! ][ 사용자 ‘강하늘’의 능력치만큼 대상 ‘안수호’의 신체 능력치를 보정합니다! ] [ 근력 능력치가 D+에서 C+로 상승합니다. ][ 민첩 능력치가 B+에서 A+로 상승합니다. ][ 내구 능력치가 D에서 C로 상승합니다. ][ 마력 능력치가 C에서 A로 상승합니다. ][ 기교 능력치가 C에서 A로 상승합니다. ][ 행운 능력치가 B에서 S로 상승합니다. ] [ 보유 초능력에 아바타(E)가 추가됩니다. ] [ 사용자 ‘강하늘’로부터 대여 받은 ‘초인으로서 지닌 모든 능력’은 대상 ‘안수호’가 120분 이내에 반납하지 않을 경우 영구 소실되오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시야를 가득 채운 시스템 메시지를 비활성화하고, 동시에 안수호의 손에 시커먼 연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투화아아아아아악!!!

커다랗게 부풀어올라 소용돌이치던 연기가 이내 극한으로 압축되어 기다란 검의 형상을 취했다. 그 순간 천천히 다가오던 다섯의 망령기사가 금속음을 울리며 일제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후우.”

일촉즉발의 상황. 안수호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직후, 연기로 이루어진 검을 쥔 그의 손이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러졌다.

그 순간.

­콰가가가가가가각!!!!

휘둘러진 궤적을 따라 뻗어나온 수십 가닥의 검은 가시가 일제히 기사들을 덮쳤다. 터더더더덩! 육중한 금속음을 내며 온몸이 꿰뚫린 기사들은 채 두 걸음을 더 걷지 못하고 그대로 지면에 쓰러졌다.

­쿠웅!

이 이상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일격.

안수호가 보인 그 무위에 함께 한 헌터들은 저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정체를 모르고 있던 이들은 물론이고, 내심 그의 실력을 높게 사고 있던 한여름이나 설아현조차 방금 그 일격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망령기사가 그들 모두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는 적이라곤 하지만, 하나도 아니고 다섯을 일격에 무찌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이었으니까.

‘……미친.’

그리고 놀란 건 안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단단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칠흑의 검을 보며 안수호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완전 대박인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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