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06화 (107/266)

〈 106화 〉 105. 밤의 문답(2)

* * *

갑작스러운 민채령의 등장에 나주용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이 그녀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결국 접촉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도 빠르게, 그것도 그녀가 직접 자신을 찾아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으니까.

“내가 하는 걸 봐서 죽이겠다라. 그 허세부리는 성격 하나는 여전하군.”

그러나 당황하긴 하였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에 민채령이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허세? 왜,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아?”

“그러기엔 서로 얽힌 이해관계가 복잡하니까.”

“그거야 그런데. 수틀리면 그냥 다 무시하고 정말 죽여버릴 수도 있단 생각은 안 해봤을까?”

그 앙칼진 말에 나주용이 슬쩍 웃었다.

민채령은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지만, 그 또한 어두운 음지에서 몇십 년을 굴러먹어 잔뼈가 굵은 자였다. 민채령이 내보이는 날카로운 위협조차 그에게 있어선 어린 아이의 재롱처럼 귀엽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개가 언제 가장 사납게 짖는 줄 아나?”

“뭐?”

“개는 눈앞의 사냥감을 물어뜯기 직전엔 결코 짖지 않아. 자세를 낮추고 두 눈을 부릅뜨며 낮게 으르렁거릴 뿐이지. 개가 사납게 짖을 때는 공격할 의사가 없을 때뿐이다. 아무리 사나운 울부짖음이라도 대개는 겁에 질려 부르짖는 허세에 불과하지.”

“넌 내가 귀여운 강아지로 보이나봐?”

“어차피 자네 성격에 곧바로 공격하지 않은 걸 보면 오늘 날 죽일 생각은 없던 것 아니겠나. 안 그런가?”

“하.”

민채령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졌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미간을 가볍게 짚은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람이 늙으면 겁대가리만 없어진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네. 그래, 맞아. 오늘은 경고만 하러 온 거야. 그 경고도 이번이 마지막이지만.”

그럴 줄 알았다며 비릿하게 웃는 나주용에게 민채령이 고했다.

“강하늘에게서 손 떼. 아까 말했듯, 이번이 마지막 경고야.”

“왜 그렇게까지 강하늘을 싸고 돌지?”

“뭐?”

민채령의 반문에 나주용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파를 떠난 그가 천천히, 마치 한가로운 산책로를 거닐듯 유유자적 선반으로 향했다.

“강하늘이라는 ‘학생’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이해가 된다. 자네가 뒤에서 뭘 하고 다니든 자네는 일단 겉으로는 아카데미 경비대 팀장이니까.”

잡다한 물건이 잔뜩 늘어선 선반을 뒤진다. 이런저런 서류뭉치, 여러 종류의 유리병, 그런 잡동사니들 사이를 나주용의 두 손이 바쁘게 누볐다.

“하지만 상대가 여일그룹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 여일의 일을 방해한다는 것에 얼마만큼의 리스크가 따르는지 자네가 모를 리가 없으니까.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면 여일이 강하늘을 노리는 걸 알았다면 순순히 강하늘을 포기했을 거야. 아니, 평소 자네 성격이라면 오히려 자네 쪽에서 강하늘을 넘겨주어 빚을 지우려 했겠지.”

이내 그 손이 새까만 상자를 찾아 꺼냈다. 무광 재질의 흑색 일색으로 칠해진 노트북 정도 너비의 금속 상자. 표면을 따라 자그마한 홈이 여러 개 이어진 그 상자를 나주용이 두 손으로 챙겼다.

“그렇지만 자네는 그러지 않았다. 그 말은 즉, 강하늘에게 여일과 대립하는 것을 감수할 정도의 메리트가 있다는 것이지. 자네는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니까.”

“……아까부터 혓바닥이 좀 많이 긴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설마 자네 개인, 혹은 자네 뒤에 있는 그린하우스도 여일처럼 다중능력 연구를 하는 것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그런 정황은 드러나지 않더군. 다중능력 연구는 불법이니까. 이 나라의 정부기관은 의외로 자기들이 한 말을 착실하게 지키는 것 같아.”

“그래서?”

­삐빅.

나주용의 조작에 그에 손에 들려있던 상자 한 켠에 달린 렌즈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그래서 조사해봤다. 자네에 대해서. 자네의 과거에 대해서. 민채령이란 자는 누구고, 어떤 이며, 왜 강하늘에게 그토록 집착하는가…….”

그렇게 말하며 나주용이 민채령과 시선을 맞췄다. 곧 그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오른다.

‘역시.’

민채령은 동요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여유를 잃지 않으며 늘 상대방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대하는 그 민채령이, 명백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민채령. 자네…….”

그 반응에 나주용은 확신했다. 자신이 조사한 내용이. 희미하게 남은 흔적들을 잇고 또 이어 겨우 도달한 하나의 가능성이 진실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고 보니 너도 ‘요람’ 출신이더군. 강하늘과 똑같이 말이야.”

­꾸드득.

그 순간, 민채령의 그림자가 기괴하게 휘었다.

­휘리리리릭!

다음 순간, 민채령의 발 밑에서 시뻘건 촉수가 튀어나왔다. 날카롭게 가시가 돋힌 수십 갈래의 채찍이 일제히 나주용을 덮쳤다.

그러나.

­철퍽! 철퍼억!

“오.”

직후 나주용 앞에 생겨난 반투명한 방어막. 그 방어막에 핏빛으로 물든 촉수들이 하릴없이 막혔다.

­키이이잉.

방어막에서 새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민채령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울림.

“너, 그 능력은…….”

그것은 민채령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 절대방어의 방어막과 완전히 동일했다. 민채령은 설마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철두철미한 자신의 능력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이건 또 뭔가! 그림자에서 뻗어 나오는 촉수라, 입수한 자료에는 없던 능력인데! 그새 새로 능력을 먹어치운 건가?”

반면 나주용은 방어막 앞에서 꿈틀거리는 촉수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 그에게 민채령이 경악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어떻게 네가 그 능력을…….”

“역시 자기 초능력은 알아보는군. 그래. 이 방어막은 자네가 가진 초능력, 절대방어와 완전 동일한 능력일세. 자네에 대해 조사하던 중 운 좋게 손에 넣을 수 있었지.”

“설마, 타인의 초능력을 인공적으로 자기 몸에 심은 거야?”

“크하하하핫! 그럴 리가! 그건 아직 불가능한 일일세! 그 정도로 연구가 내 진척됐다면 소원이 없겠군!”

“그럼 도대체…….”

그 무엇이든 막아내는 절대적인 방어막 너머에서 나주용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아직 다중능력 연구의 진척은 미흡해. 인공적으로 초인에게 타인의 초능력을 이식하는 건 불가능하지. 그렇지만 우리 연구가라는 놈들은 막힐 때마다 늘 새로운 영감에 따른 발상을 도출하는 족속들이거든!”

나주용이 손에 들고 있던 검은 상자를 높게 내보였다. 상자 귀퉁이에 붙은 렌즈는 전과 달리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가 흥분해서 외쳤다.

“말하자면 역발상이지! 초인으로부터 초능력을 추출하거나 복제해서 이식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반대로 생각해 초인 그 자체를 가공해서 초능력을…….”

나주용은 자기과시욕이 강한 연구가였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뽐내길 즐겼고 그 탓에 민채령에게 친절하게 작금의 상황을 설명해주려 했다.

“…………아니. 아니지.”

그러나 아슬아슬한 순간 그의 이성이 그 자신의 자기과시욕을 가까스로 넘어섰다.

“내가 이걸 친절하게 설명해줄 이유는 없지. 자네는 적이니까.”

“잔말 말고 바른대로 말해! 도대체 어떻게 네가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내 지식은 공짜가 아닐세. 정 지식을 구하고 싶다면 다음 학기에 여일 아카데미에 청강생 신청이라도 해보게. 전공 선택 과목으로 초인의 초능력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과 그 기원에 대한 강의를 열 예정이거든.”

“아까부터 그 방어막 하나 믿고 너무 마음 편히 혓바닥을 놀리는 것 같은데……”

­콰아앙!

민채령의 신경질적인 발구르기에 대리석 바닥에 쩌저적 금이 갔다.

“……너무 과신하진 않는 게 좋을 거야. 말만 절대방어지 은근 약점이 많은 능력이거든.”

“내가 가진 수가 이거 하나뿐일 거라고 생각하나?”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나에 대해 조사했다면 알고 있을 거 아냐? 내가 가진 초능력이 몇 개인지­”

그 순간.

­삑. 삑. 삑. 삑. 띠로리!

현관에서 들려온 전자음에 두 사람이 동시에 표정을 굳혔다.

‘누구지?’

민채령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나주용의 아내는 3년 전에 죽었다. 그 외에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은 두 딸뿐. 첫째 딸은 그린하우스 기숙사생이니 논외. 그렇다면 남은 건…….

“아빠?”

­달칵.

다음 순간, 거실 불이 환하게 켜지며 나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나은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대뜸 집에 들이닥친 괴한을 보았을 때 10살 꼬마아이가 보일법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

그 반응에 민채령의 얼굴에 갈등의 기색이 스쳤다. 도덕심에서 비롯된 갈등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얼굴을 본 나은주를 곧바로 죽일지, 아니면 인질로 삼아 나주용을 협박할지 고민했을 뿐이었다.

찰나의 시간, 민채령의 뇌리에 수많은 생각이 빠르게 오갔다.

반면 나주용은 차분한 표정으로 단 한 마디 내뱉을 뿐이었다.

“은주야.”

나주용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네.”

직후, 나은주의 표정에서 순진한 아이다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까득.

나은주가 사탕 형태의 강화제를 이빨로 깨물었다.

오늘로 벌써 세 번째 사용.

이미 앞서 두 번의 정신 조종만으로도 나은주의 몸 상태는 한계에 다다랐다. 여기서 또 한 번 능력을 폭주시키면 부작용을 넘어서 목숨마저 위태로울 정도였다. 허나 나은주의 행동에 망설임은 없었다.

“언니, 이름이 뭐예요?”

“민채령……어?”

“민채령? 이쁜 이름이네요.”

자기도 모르게 이름을 답한 민채령이 놀란 표정을 짓고, 나은주의 손가락이 그런 민채령을 가리켰다. 그걸 본 나주용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행운이로군.’

칼리의 호출을 받고 지원을 나갔던 나은주가 때맞춰 돌아온 것은 그에게 있어 정말 천운이 따라준 일이었다. 비록 나은주의 정신 조종이 상성을 많이 탄다고는 하나, 움직임을 멈추는 정도라면 능히 해낼 것이다. 그리고 나주용에게는 무저항의 민채령을 요리할 수단이 얼마든지 있었다.

“무릎 꿇어.”

“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민채령의 뇌리에 지끈! 하고 강한 두통이 찾아왔다.

“크윽?!”

정신이 잠식되기까지의 아주 짧은 순간. 민채령은 본능적으로 나은주가 모종의 정신적 간섭을 한 것을 간파했다. 민채령은 망설이지 않았다.

­톡.

민채령의 검지가 그녀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키고.

“빵.”

­투확!

다음 순간, 그녀의 머리에서 시뻘건 핏물이 터져나왔다.

“에?”

“무슨?!”

나주용과 나은주가 경악했다. 갑작스러운 민채령의 자해, 자살에 두 사람의 움직임이 흠칫 굳었다.

그러나.

“……빵!”

머리가 터졌음에도 두 눈의 이채를 잃지 않은 민채령이 나은주를 가리키며 다시 한 번 외쳤다.

­퍼억!

“케흑?!”

나은주의 몸이 속절없이 벽에 박혔다. 그녀의 어깨에는 연필 정도 굵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새빨간 핏물이 왈칵왈칵 뿜어져 나왔다. 당연히 초능력을 발동하고 자시고 할 상태가 아니었다.

­탓!

민채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테라스로 달렸다. 채 아물지 않은 관자놀이의 관통상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그녀가 나주용을 향해 말했다.

“분명 말했어. 마지막 경고라고.”

­팟!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민채령이 테라스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수 미터를 점프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 그녀가 재빠르게 그 자리를 이탈했다.

“흐윽! 으, 아파! 아빠, 아쁘, 흐그으으윽!”

엉망이 된 거실. 사방에 낭자한 선혈. 민채령에게 관통당한 어깨와 더불어 눈과 귀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나은주.

그 한복판에서 나주용은 멍하니 민채령이 떠난 테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불사 능력까지 가지고 있을 줄은…….”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의 뇌리에 민채령의 마지막 말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분명 말했어. 마지막 경고라고.’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강하늘에게 집착하는 거냐.”

나주용의 뇌리에 일찍이 조사했던 민채령에 관한 정보들이 떠올랐다.

“단순히 같은 ‘요람’ 출신이라 강하늘을 비호하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설마……. 놈들이 끝내 이루지 못한 비원을 제 스스로 이뤄내려는 건가?”

파르르 떨리는 그 입술이 이내 길게 찢어지며 미소를 그렸다. 나주용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얼굴로 민채령이 떠난 테라스를 바라보며 황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놈들의 끝내 이루지 못한 그 비원을. 완전한 초인이라는 그 꿈을…….”

자신의 딸이 죽어감에도 약에 취한 듯 뜬구름 잡는 소리만 반복하는 그의 모습은, 그 누가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