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00화 (101/266)

〈 100화 〉 099. 동시사건(14)

* * *

사냥개들.

그들은 여일 그룹이 세간의 눈을 피해 육성한 사병집단이자, 그룹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청소부이자 청부업자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초인이긴 했으나 전투에 적합한 초능력을 타고나지 못한, 조금 나쁘게 말해서 도태된 자들이었다.

그러나 온갖 불법 약물과 시술을 통해 신체를 강화하고 그 몸에 전투에 적합한 첨단 장비를 걸치는 것을 통해 그들은 그들에게 내재되어있던 것 이상의 전투력을 끌어낼 수 있었다.

물론 그 대가로 대부분 이지를 상실한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만큼 그들의 전투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런 사냥개 스물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척.

닥쳐오는 적들 앞으로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류태현이었다. 탈리스만의 빛을 밝게 흩뿌리며, 얼굴 가득 호전적인 미소를 띤 그가 두 주먹을 치켜든 채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자세를 낮췄다.

­스윽.

그러나 그런 그의 앞을 설아현이 가로막았다. 무슨 생각이냐는 듯 류태현이 그녀를 바라보자, 슬쩍 고개를 돌린 설아현이 그에게 말했다.

“일단 대기해요. 들어오기 전에 정했던 작전 기억하죠?”

그와 동시에 설아현이 뛰쳐나갔다. 사냥개들이 가장 밀집한 구역으로.

­콰아아아앙!!

다음 순간, 커다란 굉음과 함께 창고 전체가 흔들렸다.

설아현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적들에게 달려들어서 있는 힘껏 바닥을 발로 내리찍었을 뿐이다.

단순한 발구르기.

굳이 그럴듯하게 이름을 붙이자면 진각.

땅바닥을 노리고 내지른 발차기는 직접 적들을 타격한 것조차 아니었다.

허나 S급 초인의 신체능력을 앞세운 발구르기를 과연 ‘공격이 아닌 것’으로 치부해도 되는가?

“컥!”

“크흡?!”

강력한 진동이 사냥개들의 몸을 뒤흔들었다. 수십 개의 콘크리트 파편들이 그들의 몸에 박혔다.

­철컥! 척! 척!

그러나 명색이 초인이 고작해야 돌 파편에 당할 리가 없었다. 설아현의 진각에 중심을 잃었던 사냥개들은 금방 자세를 회복하고 각자 무기를 꺼내들었다.

누군가는 검을. 누군가는 도끼를. 누군가는 총을. 누군가는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기이한 무구를.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들은 하나같이 인류가 수십 년 동안 괴수를 상대하여 쌓아올린 기술과 노력의 결정체.

그러나.

그런 괴수들조차 맨손으로 찢어발길 수 있는 S급 초인 앞에서 일말의 틈이라도 보인 그 시점에, 이미 그들의 패배는 정해져 있었다.

“일단 하나.”

­투콰앙!

둔중한 충격음.

사냥개 한 명의 허리가 기역자로 꺾인 채 벽까지 날아가 박혔다.

허나 적은 한 명이 아니었다.

­쐐애애액!

­휘리릭!

­탕! 타앙!

다음 순간 설아현의 전후좌우 모든 곳에서 무기가 휘둘러졌다. 검날이, 창끝이, 도끼날이, 총알이 그녀의 몸을 찢어발기고자 사정없이 들이닥쳤다.

­서걱! 푸욱! 콰직! 철퍽!

날카로운 칼날이 설아현의 목을 갈랐다. 창끝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었다. 둔중한 도끼날이 그녀의 뼈를 분쇄했고 손가락보다 커다란 철갑탄이 그녀의 배를 터뜨렸다.

‘……보였다.’

……까지가, 그녀가 미래시로 확인한 1초 뒤의 미래.

그리고 정확히 1초 뒤, 방금 확인한 미래와 정확히 동일한 경로를 그리며 날아드는 공격에 그녀의 손이 빠르게 휘둘러졌다.

­파바바밧!

검날을 쳐낸다. 창끝을 흘린다. 도끼날을 차올려 부수고 총알을 피해낸다. 순식간에 무위로 돌아간 공격 앞에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유일하게 설아현만이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둘.”

­투콰앙!

또 한 번 굉음이 울리고 한 마리의 사냥개가 다시 허공을 날았다.

­챙! 채앵! 카앙!

한편, 설아현이 싸우는 반대편.

안수호와 지예원, 그리고 류태현은 설아현에게 향하지 않았던 나머지 사냥개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화르르륵!

“크윽!”

거칠게 일어나는 불길에 안수호가 급하게 몸을 숙였다. 그런 그에게 번개가 둘러진 커다란 둔기가 아래에서 쳐올려지듯 날아들었다.

‘이건 못 피한다!’

들고 있던 검으로 둔기를 막으려 했으나 방향이 안 좋았다. 결국 그가 휘둘러진 둔기를 팔로 막았다.

­파지지지직!

시퍼런 전류가 튀어오르며 안수호의 팔을 덮고 있는 코트 소매에 형광색 육각형 패널 문양이 떠올랐다. 그 정체는 디펜시브 코트 겉면에 코팅된 방어소자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형광색으로 빛나던 패널이 회색으로 물들며 빛을 잃었다. 단 한 번의 일격에 소매 부분의 방어소자가 제 기능을 다한 것이었다.

“……좆됐네 이거.”

욱신거리는 팔을 부여잡은 채 안수호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속도는 한없이 굼뜨고 느렸다.

안수호는 스스로의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실제로 그의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샛별의 숨소리를 발동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러나 싸울 때마다 늘 아티펙트의 효능을 누려오던 안수호에게 있어선 커다란 차이였다.

안수호의 전투 기술은 체계적인 훈련이 아닌 실전을 통해 갈고닦아진 것.

그리고 안수호는 대부분의 전투를 샛별의 숨소리와 함께 치러왔다. 당연히 그의 기술이나 감각 또한 아티펙트를 통해 가속된 그의 신체 능력에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지금의 안수호는 날카로운 감각에 몸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나이에 몸이 안 따라준다고 징징대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수세에 몰린 게 세 사람 중 안수호 한 명뿐이라는 점이었다. 지예원은 자신에게 달려든 사냥개들을 능히 상대해내고 있었고, 류태현에 이르러서는 사냥개 여럿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느리긴 하나 한 명씩 확실하게 적을 제압하고 있었다.

“안수호! 저기!”

그때 지예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안수호의 시선이 지예원이 가리킨 쪽으로 향한다. 그 손가락 끝은, 사냥개들에게 둘러싸인 자신들을 경계하며 창고 입구로 빠져나가려는 K를 가리키고 있었다. 당연히 강하늘 또한 그녀의 어깨에 들쳐메어진 상태였다.

“류태현!”

“알겠어 형!”

어서 가서 K를 막으라고. 안수호가 류태현에게 외쳤다.

­덥썩.

그러나 다음 순간, 류태현은 K에게 달려드는 대신 안수호의 옷깃을 꽈악 붙잡았다.

“너 지금 뭐하­”

“던질게, 형!”

“야 잠깐!”

직후 류태현이 안수호의 몸을 휘둘러 입구를 향해 던졌다.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이야?!’

안수호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만약 적 중 누군가가 강하늘을 데리고 도망치면 류태현이 그 뒤를 쫓자고. 분명 창고에 돌입하기 전에 그렇게 정했거늘.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이게 최선이지.’

그러나 류태현이 생각하길, 적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당초 여섯밖에 없을 줄 알았던 적의 숫자는 지금 스물하나. 설아현이 열 명의 사냥개를 홀로 도맡고 있다곤 하나, 남은 열을 상대하려면 류태현은 이곳에 남아있어야 했다.

지예원과 안수호만으로는 그들을 당해낼 수 없기에.

그렇기에 이게 최선이었다. 류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그런 건가.’

그리고 안수호 또한 날아가던 도중 류태현의 그 의중을 짐작해냈다. 이윽고 사냥개들을 넘어 창고 입구 부근에 착지한 그가 어느새 바깥으로 나간 K와 눈이 마주쳤다.

“막아!”

안수호를 발견한 K가 짧게 외쳤다. 그 외침을 들은 사냥개들이 류태현과 지예원으로부터 몸을 돌려 안수호에게 달려들려 했다.

“어딜!”

그러나 그 앞을 류태현이 가로막았다. 지예원 또한 그 곁에 선 채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을 뽑아들었다.

두 사람이 입구를 등진 채 안수호를 지키는 모양새.

달려들다 주춤한 사냥개들을 앞에 둔 채, 류태현과 지예원이 그 등으로 소리 없이 말했다.

어서 가라고.

강하늘을 구해내라고.

이에 안수호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만치 도망치고 있는 K의 뒤를 쫓았다.

샛별의 숨소리의 스톡이 다시 차기까지 딱 한 시간 남은 시점이었다.

***

버려진 섬유공장. 그 뒤편에 위치한 숲이 우거진 북한산 자락. K는 강하늘을 들쳐업은 채 그 산 속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안수호는 그런 K의 뒤를 바짝 쫓았다.

“헉! 허억! 헉!”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제아무리 초인이라한들 불빛 하나 없는 밤의 산길을 뛰어올라가는 데엔 극심한 체력 소모가 따르니까.

그러나 그것은 K도 마찬가지.

하물며 등에 강하늘이라는 짐까지 매달고 있으니 체력 소모는 안수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그렇게 제대로 길조차 닦이지 않은 산을 거칠게 탄지 약 이십 분.

“…………후우.”

이윽고 나타난 자그마한 공터에 K가 발걸음을 멈췄다.

‘이렇게 도망만 쳐서는 끝이 안 나겠어.’

가능한 한 싸움은 피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취약 때문에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한 강하늘을 바닥에 내려두고 K가 몸을 돌린 순간.

­퍼엉!

갑작스레 닥쳐온 까만 연기덩어리가 그녀의 턱을 흔들었다.

“크윽?!”

기습적인 일격에 K의 몸이 주춤 밀려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수호가 있는 힘껏 달려들었다.

‘반격하기엔 늦었어. 일단 피해야……!’

있는 힘껏 뒤로 당겨진 안수호의 주먹을 보며 K가 몸을 피했다. 그러나 안수호가 노린 건 K가 아니었다. 바닥에 쓰러진 강하늘을 낚아챈 안수호의 발이 달려들던 기세 그대로 촤르르륵 지면을 긁었다.

“하늘아!”

다급한 부름.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안수호의 부름에도 강하늘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마치 죽은 것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만 있을 뿐이었다.

“……초인이 수술받을 때 쓰는 특수한 마취제를 사용했다. 해독제를 주사하지 않는 이상 내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깨어나지 못해.”

그 말에 안수호가 두 눈을 부릅뜨며 K를 노려봤다.

“눈빛 한 번 살벌하네. 걱정할 건 없어. 부작용은 없다고 그 연구원 양반이 그랬거든.”

“너 이 자식…….”

“왜, 역시 여자친구가 그런 꼴이 되면 화가 나긴 하나봐?”

“뭐?”

안수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K가 히히덕거리며 말했다.

“강하늘의 주변인물은 다 조사를 마쳤거든. 네가 안수호지? 듣자 하니 그 여자애랑 꽤 돈독한 사이라지? 스테파니가 너 놀려주려고 한 번 들이대본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어? 벌써 한 판 했나? 아, 설마 걔 정체를 알아차린 게 떡감으로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 푸흐흣!”

“……그래. 나에 대해서 조사를 끝냈다고?”

K의 이죽거림에 안수호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손에 끼워진 탈리스만이 맹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분노가 그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이윽고 그 분노는 살의가 되어 눈앞의 청부업자에게 쏘아졌다.

일찍이 스테파니에게도 느꼈던 순수한 살의.

그 노골적인 감정에 K가 흠칫한 순간, 안수호의 손아귀에 시커먼 연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오오!

나무에 가려진 숲의 그늘보다 더욱 검게 차오르는 연기의 심상찮은 기세에 K가 주춤했다. 직후 안수호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럼 이것도 조사했냐?”

다음 순간, 그의 손에서 시커먼 탁류가 터져 나왔다.

­투콰아아아아아아앙!!!!!!

검은 해일이 숲을 뒤덮었다.

사방에 굉음이 울려퍼졌다. 우거진 나무가 걲이고 흙과 돌로 된 바닥이 들고 일어나며 사방에 폭풍이 불었다. 안수호는 휘날리는 바람으로부터 강하늘을 지키려는 듯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등을 돌렸다.

이윽고 폭풍이 꺼지고 연기가 사라지자, 폭격이라도 맞은 듯이 초토화된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자리에 조금 전까지 서있던 K는 보이지 않았다.

“…….”

허나 안수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탈리스만을 완전 해방한 일격. 그 위력은 일찍이 지예원을 쫓아왔던 여명단의 킬러조차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분쇄해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방심할 순 없었다.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죽었으리라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휘오오오오오.

고요한 숲 속. 때 아닌 차가운 밤바람이 그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1초. 2초. 3초.

그리고 10초. 20초. 30초.

마침내, 1분.

아무리 기다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적을 기다리며 안수호는 더더욱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방심이라곤 한 치도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긴장감 속에서 장장 5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이쯤 됐으면 정말 단 일격에 죽어버린 게 아닌가 하고 안수호가 생각할 때쯤, 파삭 하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스쳤다.

“!!”

안수호가 곧바로 그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탈리스만이 맹렬하게 빛을 발하며 검은 연기가 휘몰아쳤다. 당장이라도 발사할 수 있게끔.

그러나.

“형!”

안수호가 초토화시킨 방향과 수직 방향에 위치한 숲 속.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K가 아닌 류태현이었다. 그가 안수호에게 다급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류태현……?”

“괜찮아요 형?! 다친 곳은 없죠?”

안수호 근처로 다가온 류태현이 주변을 경계하며 물었다.

“네가 여긴 어떻게…….”

“형 찾아서 산 탔다가 좀 전에 그 연기 터진 거 보고 찾아왔죠! 하늘이는 괜찮아요? 그보다 적은?”

“하늘이는 괜찮아. 그리고 적은……. 아마도 쓰러뜨린 것 같아.”

“아마도……?”

애매한 답에 미간을 찌푸린 류태현이 초토화된 숲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대충 사정을 파악했다는 듯이.

“창고 쪽은 어떻게 됐어?”

“지금쯤 다 끝났을 거예요. 거의 다 쓰러뜨렸을 즈음에 설아현만 남고 저랑 그 여자랑 같이 형 찾으러 바깥으로 나온 거거든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일단 하늘이부터 아래로 옮기죠. 형이 업을 수 있겠어요? 아니면 제가 업을까요?”

“내가 업을게. 딱히 다친 곳도 없으니……까…….”

그 순간. 안수호의 뇌리에 위화감이 엄습했다.

‘어라?’

안수호가 류태현을 바라봤다. 류태현은 걱정된다는 듯 그와 강하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이상할 건 없는 모습.

그러나.

‘……왜 다시 나한테 존댓말을 쓰는 거지?’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을 놓기로 한 것을 잊었다, 익숙한 존댓말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조금 전까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던 안수호의 감각은 그 자그마한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형?”

류태현이 무슨 일이냐는 듯 안수호를 불렀다. 이에 '너 왜 나한테 다시 존댓말 쓰냐'라고. 안수호가 그렇게 물으려던 순간, 류태현이 멋쩍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 혹시 내가 뭐 실수했나?”

“뭐?”

­푸욱!

다음 순간, 류태현이 뻗은 칼날이 안수호의 배를 꿰뚫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