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97화 (98/266)

〈 97화 〉 096. 동시사건(11)

* * *

자욱하게 깔린 연기가 가라앉음과 함께 흥분 또한 가라앉는다.

난장판이 되다 못해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방 안.

그 한복판에 쓰러진 채 두 눈을 까뒤집은 이름 모를 적을 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 모를 적. 여성. 자객. 가짜 강하늘. 아무튼.

지근거리에서 왼쪽 눈에 연기 폭발을 맞은 적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기절했다.

그래, 기절만 했다.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 한쪽 눈이 완전 뭉개지다시피한 채 피가 울컥울컥 넘쳐 흐르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죽진 않았다.

초인의 몸이란 이다지도 튼튼한 법이다. 그 튼튼함을 믿고 나는 딱 죽지만 않을 정도로 화력을 조절했다. 아무리 이 여자한테 화가 난다 한들, 이 자리에서 죽일 수는 없으니까.

‘민채령한테 넘기면 알아서 정보도 캐고 잘 하겠지.’

나는 눈앞의 여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대충 허성찬이나 유진수처럼 청부업자겠거니 싶긴 했지만, 그들과 달리 눈앞의 여성은 원작에 등장하지 않았던 자였으니까. 슬라임처럼 살갗이 녹아내리며 변신하는 능력자 따위 금시초문이었다.

‘……하마터면 감쪽같이 속아넘어갈 뻔했어.’

아니, 따지고 보면 이미 속아넘어갔다. 나도, 민채령도, 강하늘의 주변에 있던 그 누구도 강하늘이 이 여자로 바뀐 걸 눈치 채지 못했으니.

일리아나는 강하늘이 이틀 전부터 방송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고로 강하늘이 이 여자와 뒤바뀐 것은 최악의 경우 이틀 전이라는 소리.

그걸 이제야 알아차린 걸 통탄해야 할지, 아니면 이제서나마 알아차린 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굳이 따지면 운이 좋다고 해야겠지.’

그야,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우연에 우연이 겹쳐 얻어걸리듯 알아차린 거였으니까.

***

약 삼십 분 전.

스테파니가 안수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안수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어색함이 감돌았다. 안수호는 그 어색함이 저번 문답의 연장선이요, 아직 풀지 못한 어색함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 어색함은 스테파니가 안수호를 속이고자 하는 태도에서 오는 어색함이요, 전혀 다른 사람을 앞에 두고 안수호의 본능이 감지한 위화감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이야기가 뭔데요?”

묘한 웃음을 띤 강하늘(스테파니)이 그렇게 물었다.

“저번에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야.”

“저번에 했던 이야기요?”

“그래. 네 새로운 능력에 관해서.”

“…….”

그 말에 스테파니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게 뭔 소리야?’

새로운 능력? 금시초문이었다.

스테파니는 이번 의뢰를 받을 때 의뢰의 배경에 대해 듣지 못했다. 간단히 말해서, 강하늘의 납치가 다중능력 연구를 위한 샘플 확보 목적이라는 걸 모른다는 뜻이다. 하물며 그녀가 안수호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모르는, 시스템 상의 스킬인 ‘연심의 벚꽃’에 대해 알 리도 만무했다.

그렇기에 스테파니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표정에 당황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그녀가 프로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안수호는 그 침묵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알아. 이 주제가 많이 껄끄러운 거. 이해해. 능력의 기원이 그래서야, 누구한테도 마음 편히 밝힐 수 없었겠지.”

“……꼭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네요?”

슬쩍 떠보듯 질문을 던진 스테파니.

동시에 그녀는 다소곳하게 앉았던 다리를 편하게 풀면서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갈 준비를 했다. 여차하면 눈앞의 남자를 죽여 처리하기 위해서.

“……정말로 내가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안다고 착각을 하는 건지는 아직 몰라. 그래서 오늘 그걸 물어보러 온 거고.”

“…….”

“하늘아. 그…….”

말끝을 흐린 안수호가 난감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기실 그는 강하늘이 빙의자일 것이다! 라고 완전히 확신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야 여러 정황 증거가 있긴 하다만 만약이란 건 늘 존재하는 법이니까.

가령 스트리밍 닉네임의 NovelSky가 그녀 나름대로의 떡밥이 아니라 진짜 Noble의 오타라거나.

만약 그럴 경우, 대놓고 ‘너 혹시 빙의자니?’ 하고 물어봤다간 여간 골치 아파지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안수호는 어떻게든 은연 중에,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강하늘이 그 의중을 파악할 수 있도록 물어보고자 했다.

“네 방송 닉네임 말이야. 그거 영어 철자가 내가 알던 단어랑 좀 다르더라고?”

“다르다고요?”

“응. 노블스카이라길래 당연히 고결하다는 뜻의 노블일 줄 알았는데, 저번에 보니까 소설이라는 의미의 노벨이더라고?”

안수호의 물음에 스테파니는 더욱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라고 했으면서, 심지어 새로운 능력이니 뭐니 의미심장한 말을 했으면서 왜 갑자기 방송 이야기인가.

그야, 강하늘이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다는 건 스테파니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장에 있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라 판단해 방송 쪽으로는 별다른 대책을 세워두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강하늘의 지인 중에서도 친밀도가 높은(?) 안수호가 대뜸 진지한 태도로 방송 닉네임이 어쩌고 저쩌고 하니, 스테파니 입장에서는 아차 싶으면서도 그 의중을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노블이 아니라 노벨인 게 왜요……?”

“혹시 일부러 그렇게 한 건가 싶어서. 만약 네가 노벨이라는 단어에 암호라든가, 특정한 뜻을 담아서 그렇게 지은 거라면…….”

안수호의 말이 이어질수록 스테파니의 미간은 더욱 찡그려져갔다. 도저히 안수호의 의도를 짚어낼 수가 없었으니까.

“그, 수호 오빠?”

“어, 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모르겠거든요? 중요한 이야기라 해서 일부러 시간 내서 왔는데…….”

“아, 미안. 사실 나도 이걸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애매해서…….”

“저는 오빠가 중요한 이야기라고 하길래, 당연히 고백이라도 하는 걸 줄 알았는데.”

“뭐? 고백?”

그 말에 안수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반면 스테파니는 강하늘이라면 결코 짓지 않을 요염한 미소를 띠며 그를 바라봤다.

“다 큰 남자가 한밤중에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집으로 부르는데, 뭐 뻔하잖아요.”

그 말에 안수호가 난처하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보며 스테파니가 속으로 살며시 미소 지었다.

‘역시, 얘랑 평범한 은인 관계는 아닌가 보네.’

스테파니가 대뜸 고백 이야기를 꺼낸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이상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능력이니 방송 닉네임이니, 스테파니의 사전 조사 내용 바깥의 일로 대화를 진행하다간 자칫 어색한 부분이 탄로나 들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순전히 그녀의 흥미본위였다. 변신한 자의 주변 인물을 뒤흔들며 가지고 노는 것은 그녀의 나쁜 취미 중 하나였으므로.

서로 고백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연인 직전의 단계까지 발전한 두 남녀.

그 달달하면서도 미적지근한 관계에 장난삼아 돌멩이를 하나 던져보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스테파니는 그것이 보고 싶었다.

‘아예 작정하고 대놓고 달라붙어볼까? 분위기 보아하니 이쪽에서 밀어붙이면 그대로 넘어올 것 같은데.’

마침 장소도 둘만 있는 자취방. 잘만 구슬리면 고백을 받아내는 건 물론이고 오늘 밤 아예 거사를 치르게 될 수도 있겠다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스테파니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썸타던 여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 줄도 모른 채 고백하고, 그날 그대로 섹스까지?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어떤 표정일지 볼만하겠는데?’

참으로 악취미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테파니는 겉으로는 그런 악의를 하나도 드러내지 않은 채,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안수호를 빤히 바라봤다.

‘……낯설다.’

한편, 안수호는 낯설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여전히 당황한 채였다.

“……고백, 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뇨, 뭐 꼭 오빠가 고백할 줄 알았다! 이런 건 아니고.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는 거죠. 그래도 우리 둘 사이가 그렇게 딱딱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다 쳐도. 난 오늘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에이.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다음에 해도 되잖아요. 전 오히려 이쪽이 더 흥미가 동하는데?”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때 스테파니가 천천히 안수호쪽으로 몸을 옮기며 물었다.

“오빠. 오빠는 만약 제가 고백하면 어떨 것 같아요?”

그 물음에 안수호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워낙 갑작스럽기도 했고 질문 자체가 생각없이 대답할 질문이 아니었으니까.

‘……이상한데.’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눈앞의 강하늘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그가 강하늘을 알게된 지는 이제 겨우 한 달 정도였으나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강하늘은 본래 이런 성격이 아니라고.

강하늘. 그녀는 술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도 제 마음을 드러내기 부끄러워 쭈뼛거리다 결국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쓰러질 정도로 숫기가 없었다. 방송에서 보이는 대범하고 활발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나, 적어도 현실의 강하늘은 그런 여자였다.

자신의 감정 하나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아대며 눈치나 보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어린 여자애.

‘설마 오늘 아예 고백을 하든 고백을 들어내든 작정을 하고 온 건가?’

저 낯선 어프로치들이 사실 그간의 애매모호한 관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녀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스킬 이름도 연심의 벚꽃이었지. 혹시 지금 행동도 그 스킬과 관련이 있는 건가?’

“……하늘아. 혹시 그 능력에 뭔가 부가 조건 같은 게…….”

“오빠. 그런 이야긴 나중에 해요. 전 그보다 좀 더 달달한 얘기를 하고 싶다니까요?”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았으나 스테파니는 질문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완고한 태도였다.

‘……역시 뭔가 좀 이상해.’

그리고 그 태도가 안수호의 사고를 의심과 당황 중 의심 쪽으로 기울게 했다.

영문 모를 위화감이 그의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스테파니는 안수호의 반응을 떠보며 점점 몸을 가까이 하는 중이었다. 바닥을 짚은 안수호의 손등 위에 그녀의 손이 살포시 얹어지고, 서로의 숨결이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 순간, 안수호도 모르는 새에 그의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상태창.”

안수호는 스스로 말해놓고도 왜 갑자기 강하늘의 상태창을 보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본능 레벨의 직감이 무의식적으로 안수호로 하여금 그 단어를 입 밖에 내게 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그 단어를 말해야만 한다고, 아주 짧은 순간 그러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띠링.

그 무의식적인 행동 하나가 두 사람의 운명을 갈랐다.

===

[ 상태창 열람 불가. ]

[ 대상은 아카데미 관계자가 아닙니다. ]

[ <스킬 :="" 아카데미의="" 경비원="">으로는 아카데미 관계자가 아닌 자의 상태창을 열람할 수 없습니다. ]

===

“……어?”

허공에 떠오른 무미건조한 메시지.

그 문자의 나열에 안수호가 옅은 탄성을 뱉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스테파니는 강하늘의 모습을 한 채 그에게 달라붙었다. 얼어붙은 안수호의 표정을 보며 그 몰래 실실 웃으며.

그러나.

“뭐야.”

다음 순간, 안수호가 무심코 뱉은 한 마디에.

“너, 누구냐?”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던 스테파니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파밧!

동작은 신속했다. 안수호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던 스테파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출수하여 그의 급소를 노렸다.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는 프로의 움직임.

그러나 안수호 또한 프로라 할 순 없을지언정 더 이상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었다. 그간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연마된 그의 본능이 재빠르게 경종을 울렸다.

그렇게, 스테파니의 손날이 안수호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파 파 파앙!

안수호의 왼팔에 채워져 있던 샛별의 숨소리가 세 번의 빛을 발했다.

­쿠웅!

“어?”

다음 순간, 지면에 쓰러진 스테파니가 얼빠진 탄성을 뱉었다.

“……어?”

순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안수호의 목을 향해 공격을 내질렀을 텐데, 다음 순간 그가 시야에서 홱 사라지더니 어느새 자신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칫!”

스테파니가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모든 스톡을 단번에 해방해 8배로 가속된 안수호 앞에선 달팽이처럼 느린 동작이었다.

­팡! 파앙! 팡! 파앙!

“으, 에?”

짧게 내지른 네 번의 주먹이 그녀의 급소를 때린다.

관자놀이, 턱, 목젖, 그리고 명치.

순간적인 일격에 다리가 풀린 스테파니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프로인 그녀의 눈으로조차 따라가는 게 겨우일 정도로, 신속하고 간결한 움직임.

“이게, 도대체 무슨…….”

그러나 정작 공격한 안수호조차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지 못했다.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올려다보며, 스테파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케흑! 오빠?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강하늘의 목소리로 강하늘의 표정을 연기하며, 스테파니가 등 뒤로 가져간 손으로 단검을 슬며시 뽑았다.

‘한 순간이면 된다. 딱 한 순간의 틈만 만들면 돼!’

그런 스테파니의 염원에 답하듯 안수호는 스테파니를 내려다보며 엉거주춤 자세를 풀었다.

‘지금이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스테파니가 출수했다. 날카로운 단검이 은광을 흩뿌리며 안수호의 오금을 노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군더더기라곤 하나도 없는, 재빠른 움직임.

그러나 이번에도 안수호에 비해선 한없이 느렸다.

­휙!

속절없이 허공을 가른 단검이 부르르 떨린다. 어느새 스테파니의 뒤로 돌아간 안수호가 그녀를 말없이 내려다봤다.

“야. 너 뭐냐?”

“……이이익!”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뒤가 잡힌 스테파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저항.

분명 선수를 친 건 그녀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싸움은 이미 압도적인 안수호 앞에서 스테파니가 저항하는 형국이 되었다.

­투쿠웅!

안수호의 발길질에 스테파니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직후 발로 그녀를 밀친 안수호가 있는 힘껏 스테파니의 명치를 밟았다.

“케흐윽?!”

폐 속의 공기가 단번에 튀어나올 정도의 고통.

­주륵.

그 순간 고통을 이기지 못한 스테파니가 자신도 모르게 능력을 풀어버렸다.

강하늘의 모습을 한 껍데기가 주르륵 녹아내리고 진짜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 그러나 이국적인 외모를 한 강하늘과는 전혀 다른 얼굴의 본모습이.

“……너 뭐야.”

그 모습을 본 안수호의 두 눈에는, 어느새 분노의 감정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하늘이 어디 있어 이 자식아.”

***

­……! ……!! ……!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에 안수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전화로 민채령과 통화하던 중임을 떠올렸다. 바닥에 팽겨쳐둔 전화기를 집어들자 민채령이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야! 안수호! 대답 안 해?

“저 여기 있습니다 팀장님. 말씀하시죠.”

­안수호.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미 잡았다고? 그, 납치범을?

“예.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교환했다. 안수호는 가짜 강하늘의 정체를 눈치 채고 제압한 것을, 그리고 민채령은 지예원으로부터 들은 사건의 배경에 대해서.

“결국 나주용 그 양반이 칼을 뽑아들었다 그거군요.”

­맞아. 설마 아카데미 안에서 대놓고 납치를 벌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것도 이틀이나 지날 동안 눈치를 못 챘다니…….

“변신 능력자를 통해 순식간에 바꿔치기 한 거겠죠.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당장 찾으러 가야 합니다.”

­동감이야.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두 가지 문제가 있어.

첫 번째 문제점은 강하늘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문제점은 민채령에게 당장 기용 가능한 전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 두 가지 문제점을 들은 안수호가 담담하게 말했다.

“첫 번째는 해결됐습니다. 강하늘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거든요.”

­뭐라고? 어떻게?

“여기 있는 납치범을 털어서 알아냈죠.”

거짓말이었다. 장소를 알아낸 건 어디까지나 시스템의 도움 덕분이었으니까.

“그런데, 두 번째 문제는 뭡니까? 지금 당장 기용할 수 있는 전력이 없다니?”

­말 그대로의 의미야. 지금 내 부하들 중에 손이 비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경비대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경찰이라든가.”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가능하면 이번 건은 경찰의 개입 없이 조용하게 처리하고 싶어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뿌득. 안수호가 꽉 말아쥔 주먹에서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울렸다.

강하늘이 납치당한지 최대 이틀이 지났다.

그 사이 강하늘이 어떻게 되었을지, 혹시 생명에 위협은 받지 않았는지 생각하면 안수호는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뭐? 가능한한 조용하게 처리하고 싶어? 그게 지금 할 소리인가.

­꼭 내 사정 때문만은 아니야.

안수호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어지는 민채령의 말에 결국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잊었니? 나주용의 뒤에는 여일 그룹이 버티고 있어. 당연히 경찰은 물론이고 그린하우스에도 연줄이 있지. 만약 경찰에 신고하거나 경비대 인원을 움직이면 단번에 놈들에게 연락이 갈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가 들이닥치기 전에 강하늘을 다른 곳으로 내뺄 것이다. 그 말입니까?”

­그래.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되면 안수호로서도 조심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늘의 위치가 바뀌었을 때 퀘스트가 제시해주는 위치 정보가 최신화 되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지금 쓸 수 있는 부하가 하나도 없다 그랬죠. 그렇다면 저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그러나 안수호로서는 더 이상 1분 1초도 지체하기 싫었다. 이렇게 된 이상 혼자서라도 쳐들어가겠다고. 그 무모한 발언에 민채령이 그를 만류했다.

­조금 진정해. 거기 적이 얼마나 있을 줄 알고? 네가 무슨 S급 초인도 아니고, 너 혼자 가서 다 쓸어버릴 수 있다는 거니?

“그건…….”

­마음 급한 건 이해하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시간을 가져 보자고. 나도 최대한 쓸 수 있는 패가 없나 찾아볼 테니까. 일단 지예원은 네쪽으로 붙일게. 강하늘이 납치된 이상 연구소를 감시해봤자 소용없으니까.

“지예원을 말입니까?”

순간 지예원을 위험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생각했으나 안수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었으니.

‘그래. 일단 진정하자. 진정하고, 천천히 생각해보는 거야. 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뭘 준비할 수 있을지…….’

민채령의 말대로 흥분을 가라앉힌 안수호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마침내 이 상황에서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