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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95화 (96/266)

〈 95화 〉 094. 동시사건(9)

* * *

허성찬. 그리고 유진수.

그 이름을 따 흔히 진수성찬이라는 웃긴 별명으로 불리는 그들은 꽤나 실력 있는 청부업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김선우는 그들을 처리할 ‘심부름꾼’ 또한 실력 있는 자들로 고용했다. 애초에 숫자부터가 2대 12다. 코흘리개 어린애들이나 보는 삼류 만화라면 모를까, 현실에서 그만한 머릿수의 격차를 이길 순 없으리라. 김선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김선우는 심부름꾼들에게 두 청부업자를 맡기고 여유롭게 성당 바깥에서 담배를 태웠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허공에 불규칙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10분.

두 청부업자가 제압되는 데에는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김선우는 발 닿는 대로 성당 주변을 거닐었다. 주변 경계? 할 리가 없었다. 자신의 유일한 적은 성당 안에 있으니까.

그래.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김선우의 유일한 실수였다.

“야.”

“어?”

김선우가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 나무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은발의 여성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

김선우의 물음이 그 형태를 이루기도 전에 지예원이 움직였다. 파밧! 그녀가 손에서 튀어나온 보랏빛 칼날이 단번에 김선우의 목으로 짓쳐들었다.

“히익?!”

“닥치고 꿇어.”

제압은 순식간이었다. 수풀에서 튀어나온 지예원은 김선우의 목에 서슬퍼런 칼날을 들이댔다. 김선우는 지예원의 명령대로 얌전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누, 누구냐? 누군데 나한테 이런­”

“닥쳐. 고개 돌리지 마. 묻는 말에만 대답해.”

지예원은 이런 일에 있어서 프로였다. 그녀는 김선우에게 그 어떤 자유도 주지 않았다. 그 입에서 나오는 냉랭한 단어들은 김선우로 하여금 본능적인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만약 자신이 그녀의 말을 어긴다면, 목이 들이밀어진 날카로운 칼날이 부드러운 살갗을 가르리라.

김선우는 여성의 얼굴을 확인하고 그 정체를 묻고 싶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꿀꺽, 하고 마른 침을 삼키며 자신이 고용한 심부름꾼들이 있는 성당을 바라봤다.

­챙! 카앙! 쾅! 콰과광!

성당에선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격전이었다.

만약 여기서 자신이 도와달라 소리쳐도, 저 안에 있는 심부름꾼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외침을 듣지 못하겠지.

좀 전에 안일한 판단이 김선우의 유일한 실책이라 했던가. 그래, 이번에도 역시 그의 안일한 판단이 한몫을 했다. 만약 자신을 호위할 목적으로 한 명만 따로 빼뒀어도, 그가 지예원에게 이처럼 간단하게 제압당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김선우 연구주임 맞지?”

“아, 아니라면?”

“그냥 확인차 물어본 거야. 이미 얼굴은 알고 있어. 지금부터 네게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야. 그 질문들에 성실하게 대답해. 알겠지?”

“…….”

“대답.”

­뿌득!

지예원이 김선우의 한쪽 귀를 잡고 있는 힘껏 비틀었다. 직후, 뼈와 살이 뒤틀리는 소리가 그의 뇌리에 진하게 울려 퍼졌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악!”

“내가 말했지. 대답. 성실하게 하라고.”

김선우는 머리 한쪽이 통째로 뜯기는 듯한 격통에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목에 칼날이 들이밀어진 그는 발버둥조차 제 마음대로 칠 수 없었다.

방금 그 비명으로 심부름꾼 중 누군가 바깥 상황을 확인하러 나오길 기대했으나, 그 누구도 성당 바깥에 나오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더욱 썩어들어갔다.

“이번엔 잘 대답할 수 있지?”

“그, 그래! 대답, 대답하겠다!”

“좋아. 우선 첫 번째. 강하늘 납치 계획에 대해서 아는 대로 불어.”

“그, 그건……!”

갑작스럽게 제시된 핵심.

김선우는 문자 그대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여자는 도대체 뭐길래, 연구소 안에서도 일부 인원들밖에 모르는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단 말인가.

‘설마……!’

일순, 그의 뇌리에 나주용 소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민채령. 아카데미 경비대 팀장.

이번 일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 있다면 바로 그 여자일 거라고.

나주용 소장이 지나가듯 흘린 그 말을 김선우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설마 이 여자가 바로 그 민채령 소장인가? 아니면 그녀가 부리는 부하?

어찌 되었든 그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해줄 수는 없었다. 강하늘은 다중능력 연구의 핵심. 나주용 소장은 물론이고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여일그룹이 무슨 수를 써서든 확보하고자 한 연구 샘플이었으니까.

그러나.

“망설임.”

­뿌득!!

“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찰나의 망설임조차 지예원의 인내를 시험하기엔 충분했다.

지예원이 우악스럽게 김선우의 어깨를 쥐었다. 곧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왼팔이 재미난 방향으로 뒤틀리며 흐느적거렸다. 김선우는 초인이 아니었다. 일반인의 몸으로 초인의 근력을 감당하는 일 따위 가당키나 하겠는가.

“커, 커헉! 으헉! 으흐어어어억…….”

하물며 김선우는 전투원조차 아닌 그저 인텔리, 연구원이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격통에 그는 얼굴에서 눈물이며 콧물이며 온갖 액체를 쏟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정보를 캐내야 하는 지예원이 그를 죽일 리는 없었다. 그러나 김선우는 척추를 달리는 격통에 고작 그 정도의 이성적 판단마저 해낼 수 없었다.

“스, 스마트폰……!”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한 원초적 생각만이 김선우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스마트폰?”

“스, 스마트폰에 정보가 있다! 화, 확인을 해야, 해야 하니까, 꺼, 꺼내는 행동을 용, 용인……!”

“좋아. 얼른 꺼내. 대신 허튼 수작 부리면 알지?”

칼날을 생성한 반대손, 지예원의 왼손이 천천히 김선우의 입가를 더듬었다. 이빨. 귀와 어깨 다음은 이빨이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제스처였다. 그 행동에 김선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이윽고 그가 꺼낸 것은 스마트폰.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기 그지없는 스마트폰이었으나, 김선우의 목적은 달리 있었다.

‘어디 한 번 당해봐라……!’

­삐이이이이이!

그가 스마트폰에 특정 조작을 가한 순간, 초고주파의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일반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그러나 초인의 정신을 뒤흔드는 특정 주파수의 고음.

“꺄흑?!”

난생 처음 들어보는 뇌를 찢어발기는 듯한 소음에 지예원이 무심코 김선우를 구속하던 손을 풀었다.

“핫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김선우가 구속을 빠져나왔다. 어디 그뿐인가. 팔과 귀의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품에서 권총을 꺼내 재빠르게 지예원을 겨눴다.

­탕! 탕! 탕! 타앙!

새된 총성. 솟구치는 불길.

제아무리 초인이라도 지근거리에서 발사된 .44 매그넘탄을 맞고 무사할 수는 없었다. B급 상위 이상의 초인이라면 능히 버티겠지만, 지예원은 그 정도 수준의 초인이 아니었다.

심지어 총알이 향하는 곳은 하나같이 그녀의 급소. 연구원치고 괜찮은 조준 실력을 보여준 김선우의 탄환 네 발은 각각 지예원이 미간과 목, 왼쪽 어깨와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겼다.

총알이 발사된 순간. 두 사람이 총알이 발사되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도 전에 김선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리에 맞는 판단이었다.

­팅! 티팅! 팅!

그러나 이번만큼은 안일한 판단이었다.

“어?”

“……어?”

두 사람의 탄성이 겹쳤다. 강렬한 불꽃과 함께 사출된 총탄들은 지예원의 앞을 가로막는 투명한 방어막에 막혀 허망하게 떨어졌다.

그 정체는 안수호에게서 받은 냉염의 십자가가 만들어낸, 하루 한 번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을 무조건적으로 막아주는 방어막.

드래곤의 브레스조차 막아내는 방어 수단을 고작 총탄 막는 데에 쓴 것은 닭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쓴 격이었으나, 김선우는 물론이고 지예원조차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했다.

다만, 갑작스런 상황에 얼이 탄 김선우와 달리 지예원은 훈련받은 프로였다.

“이 자식이!”

“히익?!”

지예원의 검이 빛을 반사했다. 휘릭! 하고 아름다운 궤적을 그린 검이 단숨에 김선우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고주파의 소음을 내던 스마트폰 또한 그 궤적이 그어지던 도중 반으로 갈라진 뒤였다.

­쿵!

숫제 김선우를 넘어뜨리듯 검을 밀어낸 그녀가 쓰러진 김선우의 배를 한 발로 지긋이 누르며 말했다.

“야.”

아주 살벌한 목소리로.

“죽고 싶어?”

정보를 얻어야 하는 입장에서 죽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김선우는 그정도 사실조차 유추할 수 없을 정도로 머저리였다. 평소라면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크힉! 죄, 죄송. 그, 미, 미안합……!”

“미안하면 닥치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다음은 없어.”

“그건 곤란한데!”

그때, 살벌하기 그지없던 둘 사이에 새로운 사람이 끼어들었다.

“그 연구원한텐 나도 볼일이 있거든! 먼저 선수치는 건 곤란해!”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는 성당 문을 열어젖히고 허성찬이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그 뒤를 유진수가 조용히 뒤따랐다.

“어,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고작 저런 놈들로 우릴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두 사람은 몸 곳곳에 피가 튀기긴 했으나 심한 상처는 없었다. 애초에 그 피 대부분이 자신의 것이 아닌 덤벼든 사내들의 것이었다.

“어떻게 살아남은 거냐?! C급 초인 여섯에 B급 초인 여섯이라고! B급 둘을 처리하기엔 충분한 전력이었을 텐데!”

“하핫! 이과 주제에 계산이 좀 서투네!”

허성찬이 과시하듯 유진수와 어깨동무했다. 그의 입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랑 진수의 파트너쉽은 덧셈이 아니라 곱셈이거든!! 아니, 제곱인가? 아무튼!”

“그, 그게 무슨…….”

“하여튼 거기 언니! 그놈한테는 내가 먼저 볼일 있으니까 좀 비켜줬으면 하는데!”

“잠깐만요. 성찬. 저기 저 사람 설마…….”

지예원을 알아본 유진수가 설마 하며 중얼거렸다. 그제야 허성찬 또한 지예원의 얼굴을 알아봤다.

“어! 예지원이잖아?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

“아, 설마 너도 이쪽 사람이야? 그건 몰랐네!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하게 끌린다 했더니 동종업계 사람이었네! 으하하핫!”

“예지원……이라고 했나요?”

방정맞은 허성찬과 달리 유진수는 냉철한 태도로 천천히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 남자에겐 저희도 용건이 있습니다. 혹시 당신이 그 남자를 죽이려고 한다면, 일단 저희의 용건을 끝마친 뒤에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너희들 용건이 뭔데?”

“죽이진 않아! 대신 우릴 배신한 걸 후회할 정도로! 죽고 싶어질 정도로 괴롭히고 고문할 거야!”

“저게 정말이야?”

“……몇 가지 정보를 얻어낸 뒤엔 제 파트너의 말대로 할 생각입니다.”

유진수는 허성찬과 달리 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그 또한 자신을 배신한 김선우를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것 또한 슬럼가 청부업자의 규칙 중 하나였으니까.

배신자에겐 그에 합당한 죗값을.

두 청부업자를 고용하겠다고 불러낸 주제에 죽이려고 한 김선우에게 합당한 죗값은, 그 죽음 외엔 달리 아무것도 없으리라.

“좋아. 난 내가 듣고 싶은 정보만 불면 더 이상 볼일은 없어. 그 다음은 니들이 알아서 해.”

“좋네! 너랑 싸우지 않아도 돼서 정말 다행이야! 난 마음에 든 여자랑 싸우는 게 정말 싫거든!”

“그거 다행이네. 나도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았거든.”

“으하하하핫! 그래? 너도 내가 마음에 들었구나?”

그 물음에 지예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성당을 바라봤다.

‘C급 여섯에 B급 여섯이라고 했나.’

그 정도 전력이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결코 적은 전력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예원 혼자선 정면으로 싸워서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전력차겠지.

그런 자들을 상대로 눈앞의 남자는 2대 12라는 전력차를 뒤집고 승리해냈다. 그것도 꽤나 손쉽게.

김선우의 말을 들어보면 저들 또한 C급, 기껏해야 B급 수준의 초인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적 열세를 이리도 손쉽게 뒤집었다는 건 초인으로서의 스펙이 아닌 기량적인 측면이 문자 그대로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뜻이리라.

‘섣불리 적대할 필요는 없지. 적어도 저 두 사람이 강하늘 납치를 노리고 있지 않는 이상.’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두 사람이 아직도 강하늘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은 적어보였다. 그러나 이 부분은 확실하게 해둬야 할 부분이였기에 지예원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일단 말하겠는데, 난 이자식이 납치하려던 강하늘을 지키려고 한 입장이거든? 혹시 두 사람은 입장이 어떠신가?”

“우린 원래 걜 납치하려고 했어!”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죠.”

“맞아! 이번에 강하늘 납치 건으로 저 연구원 자식이 우릴 또 고용한다고 했는데, 보다시피 뒤통수 씨게 맞은 참이거든!”

“이전 의뢰는 이미 계약금까지 반환한 끝난 의뢰입니다. 그리고 새 의뢰는 보다시피 시작도 전에 파토났죠. 고로 저희 두 사람은 이제 와서 강하늘을 노릴 생각은 없습니다.”

“OK. 즉 그쪽이랑 난 일단 적이 아니라는 거네.”

그 말에 허성찬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수 또한 말없이 동의하는 모습에 지예원이 다시금 김선우를 내려다봤다.

“들었지? 자, 이제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좀 잡혀?”

“나, 나는…….”

“불어. 있는대로 다. 뒤지기 싫으면.”

“…….”

지예원의 강압적인 말에 김선우가 덜덜 떨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히, 히힛.”

곧 그 입가에 진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지예원은 설마 이 남자가 실성한 것인가 싶었으나, 그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 그 여자를 구하려는 거면 이미 늦었어! 우, 우리가 고용한 새 청부업자가 이미 납치를 끝냈으니까!”

“……그 말 사실이야?”

“아마 사실일걸! 좀 전에 우리 앞에서 이틀 전에 납치 끝냈다고 말했거든!”

허성찬의 말에 지예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김선우가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외쳤다.

“가, 강하늘은 이미 우리 수중에 있다! 그 여자를 구하고 싶은 거라면 수, 순순히 내 말에 따르는 게 좋을걸?”

“지랄하네.”

“뭐? 지, 지라르끄으아아아아아아악!!!”

지예원이 손목에서 자라난 칼날을 90도 비틀었다. 꾸드드득! 살이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어깨를 뒤틀었다.

“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네 입장을 아직 모르나본데. 너 지금 나한테 큰 소리칠 입장 아니야.”

“아아악! 으헉! 으흐, 으허어어억!”

“좀 닥치고 있어. 어디 전화 좀 할 테니까.”

지예원은 곧바로 민채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그녀가 받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강하늘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물었으나.

“뭐? 강하늘이 멀쩡히 있다고?”

민채령은 강하늘이 멀쩡히 있다고 대답했다. 김선우의 주장과 맞지 않는 상황. 그 차이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한 찰나, 허성찬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스테파니 짓이야!”

“뭐? 스테파니?”

“스테파니는 변신 능력자거든! 아마 그 강하늘이란 애가 납치된 걸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고 그 여자애 행세를 하고 있는 걸껄?”

“들렸어? 그렇다는데?”

전화기 너머로 허성찬의 말을 들은 민채령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변신 능력자? 지금 강하늘이 가짜라고? 이미 납치 당했어?’

‘그럴 리가. 강하늘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감시하고 있었어. 최소한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고! 납치를 당한 기색은 조금도 없었는데?’

‘아니, 그런가. 감시의 사각, CCTV가 없는 곳에서 일을 벌이고 강하늘로 변신했다면……. 가령 화장실이라든가? 그래, 가능성은 있어. 이럴 수가. 이 내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거의 진실에 가까운 추측을 해낸 민채령이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납치는 언제 당한 거지? 방금 막 당한 건가? 아니면 며칠 전? 만약 시간이 상당히 지났다면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져 내 눈에 띄지 않게 숨겨졌을 가능성도 있어. 그렇다면…….’

강하늘의 소재를 파악하기보다 앞서, 그 실행범인 자를 붙잡아 정보를 캐낸다.

그렇게 생각한 민채령이 곧바로 마지막으로 보고된 강하늘의 위치를 참고했고.

“……어?”

곧 그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안수호네 집이라고……?”

강하늘의 위치. 정확히 말하자면 강하늘로 변신한 스테파니의 마지막으로 보고된 위치는 안수호의 집이었다.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약 한 시간 전, 안수호의 집에 들어간 뒤로 줄곧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민채령은 재빠르게 안수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약 안수호가 그 스테파니라는 여자와 함께 있다면, 그 여자가 눈치 채기 전에 안수호로 하여금 그녀를 제압하게 만들려고.

그러나.

“안수호.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지금 너랑 같이 있는 강하늘은­”

­팀장님. 이미 잡았습니다.

“…………뭐?”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민채령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빌어처먹을 납치범. 이미 잡았다고요.

그 시각. 강원도 속초에 있는 안수호의 자취방.

“이, 이이이이익!”

“가만히 있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으니까.”

난장판이 된 자취방 한 가운데, 탈리스만의 빛으로 맹렬하게 빛나는 안수호의 오른손이 스테파니의 멱살을 틀어쥐고 있었다.

“이거 당장 안 놔?! 내가 누군지 알고!”

“네가 누군지는 관심 없어. 이본편에 등장도 못한 단역 빌런 자식아. 닥치고묻는 말에나 대답해.”

안수호의 두 눈은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형한 살기로 빛났다. 순수한 적의, 순수한 분노로 가득 차오른 두 눈이 눈앞의 여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야."

감히 말하건대, 그가 이 세상에 빙의하고 지금껏 이처럼 분노한 적이 또 없었다.

“하늘이 어딨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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