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092. 동시사건(7)
* * *
그날 자신이 만났던 허성찬이라는 남자는 어쩌면 강하늘 납치 사건의 배후, 내지는 실행범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지예원은 허성찬과 접점이 있다던 김선우 주임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한편, 허성찬과 다시 마주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그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분명 허성찬은 하루가 멀다하고 연구소 주변을 서성이곤 했었다. 그러나 막상 지예원이 그를 찾자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꼭 지예원이 자신을 찾고 있는 걸 알고 일부러 피한 것처럼.
실상은 김선우로부터 연락을 받은 허성찬이 더 이상 연구소 주변을 서성일 필요가 없어진 것뿐이었으나, 사정을 모르는 지예원 입장에선 혹시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건 아닌가 괜히 우려가 되었다.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건 민채령이 그녀의 보고를 듣고 허성찬이라는 남자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는 것과, 다행히 아직까지는 강하늘의 신변에 이렇다 할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그 사실에 안도한 지예원은 문득 든 회의감에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왜 자신은 강하늘의 안위를, 이토록 제 일처럼 걱정하는 건가.
지예원이 강하늘에게 품은 감정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강하늘은 연적이었다. 안수호와 이어지기 위해서는 배제해야 마땅한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날 강하늘의 마음을 짓밟듯 안수호와 정을 나눈 것이 미안하기도 했으며, 비록 연적으로 삼았다곤 하나 애먼 놈들이 강하늘을 노리는 걸 방관할 정도로 나쁜 감정이 있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예원의 가슴 속에는 내심 이런 생각도 있었다.
안수호는 강하늘과 이어져야 한다고.
자신 같은 범죄자보다는 그녀처럼 평범하고 뒤탈 없는 여자와 이어지는 편이 그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그런 마음을 밝히면 안수호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가 여명단 단원인 게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상관이냐고. 설령 네가 범죄자 신분이라 한들 자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안수호라면 분명히 그렇게 말해줄 것이고, 그녀 또한 그렇게 말해주길 바라마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하아……”
생각을 이어가던 지예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겠다.
지예원은 안수호와 헤어지던 날, 임무 때문에 자신과 떨어져 있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답을 정해두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 말은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었다. 임무를 빌미로 안수호와 거리를 둔 사이에 자신 또한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모르겠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던가. 그러나 지예원은 한길은커녕 제 마음조차 알 수 없었다.
“…….”
지예원은 차가운 얼음이 동동 뜬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짜릿한 차가움이 머릿속을 채우던 상념을 아주 조금 밀어냈다. 그 기세를 몰아 지예원은 외면하고 싶은 상념들을 외면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지금 허성찬과 이야기를 나눴던 카페에 있었다. 요즈음 그녀는 퇴근하면 이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게 일과가 되었다. 퇴근한 뒤 연구소 주변에서 허성찬을 찾다가, 찾지 못하면 이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셨다. 혹시라도 그가 이 카페에 다시 들르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희망을 가지고서.
“어?”
그리고 오늘. 마침내 지예원은 그 얄팍한 희망에 보답받게 되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에 들어선 호쾌한 인상의 금발 청년. 허성찬을 본 순간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탄성을 뱉었고.
“오? 그때 그 애잖아?”
허성찬 또한 지예원을 알아보고 성큼성큼 그녀가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반가워! 이야, 별일이네! 한동안 근처에 안 와서 너랑 만나게 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여기 오자마자 이렇게 딱 마주치지?”
“그러게요. 분명 성찬 씨라고 했죠?”
“기억해주니 기쁘네! 맞아! 네 이름은 예지원이지? 예쁜 이름이라 기억하고 있었어!”
허성찬이 실실 웃으며 지예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아직 음료조차 시키지 않았지만 지예원은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저번에 당신이 저한테 도와달라고 했던 거 있잖아요.”
지예원은 돌려말하지 않고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이렇다 할 친분도 없는 사이니 오히려 이러는 편이 자연스러울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까 그쪽도 사정이 있을 텐데 너무 퉁명스럽게 대했던 것 같아서요. 꽤 곤란해 보이시던데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릴”
“응? 아! 그건 이제 괜찮아! 다 해결됐거든!”
“해결……이 됐다고요?”
지예원이 불안한 눈치로 물었다. 그러나 허성찬은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그래! 그때 말한 클라이언트가 우리 사과를 받아주기로 했거든! 게다가 지난 실패를 만회할 기회도 주기로 했고! 이번 일만 잘 끝내면 저번 실패 때문에 깎인 평판이나 신용도 어느 정도는 회복될 거야!”
그러니 해결되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기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허성찬을 보며 지예원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클라이언트.
김선우 주임.
지난 실패.
강하늘 납치.
사과.
만회할 기회.
만회할.
기회.
납치를.
‘설마.’
지예원이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추측대로 허성찬이 슬럼에서 온 청부업자고 김선우가 그에게 강하늘의 납치를 의뢰했던 거라면.그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었다는 건 즉, 허성찬에게 다시 강하늘의 납치를 의뢰했다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고마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만약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이 순간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네. 그렇지만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연락처 정도는 교환하죠.”
지예원은 재빠르게 판단을 마쳤다. 그녀의 말에 허성찬이 기쁜 얼굴로 활짝 웃었다.
“그거 좋지! 사실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너랑은 친하게 지내고 싶었거든!”
“폰 줘봐요.”
허성찬은 흔쾌히 지예원에게 스마트폰을 넘겼다. 동시에 지예원이 말했다.
“근데 당신. 음료는 안 시킬 건가요?”
“앗! 그렇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네! 알려줘서 고마워!”
허성찬은 별다른 의심 없이 테이블을 떠나 카운터로 향했다. 그 순간 지예원은 가지고 있던 파우치에서 자그마한 IC 칩을 꺼냈다.
스마트폰의 유심 칩 형태를 한, 도청 기능과 위치 추적 기능이 담긴 IC 칩. 민채령으로부터 받은 감시 장비 중 하나였다.
허성찬이 음료 주문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녀는 재빠르게 스마트폰의 유심을 바꿔치기했다. 이윽고 허성찬이 주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번호를 찍은 스마트폰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제 번호 저장해놨어요. 아, 그쪽 폰으로 제폰에 문자 하나만 보내놔도 되죠?”
그렇게 말하는 지예원의 얼굴에는 화사한 웃음이 떠올라있었다.
여명단 첩보원으로서 갈고닦았던, 완벽하게 꾸며낸 웃음이.
***
“그만!”
다급한 목소리가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그 외침에 맹렬한 기세로 뻗어지던 주먹이 허공에 우뚝 정지했다.
그 주먹 앞에서 강하늘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반면 주먹을 내지른 사내, 류태현은 태연한 얼굴로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 항복. 항복할게. 진짜 넌 도저히 못 당해내겠다.”
“너도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어.”
“빈말은.”
류태현이 손을 뻗어 바닥에 주저앉은 강하늘을 일으켜 세웠다. 그 주위에는 두 사람과 같은 1학년 1분반 학생 몇몇이 포진해 있었다.
“하늘이 기록 이번에 얼마 나왔어?”
류태현의 물음에 유설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스톱워치를 보며 말했다.
“1분 7초. 저번 기록보다 15초 더 버텼어.”
“역시. 내가 말했지? 전보다 나아졌다고. 빈말 아니라니까?”
“……그래봐야 다른 애들에 비하면 한참 멀었는걸.”
“다른 사람이랑 비교해서 뭐 해? 본인 스스로 조금씩이라도 발전하는 게 중요한 거지. 자 그럼 다음 사람!”
그 말에 유설의 쌍둥이 오빠, 유진이 털레털레 걸어 나왔다. 그 얼굴에는 다소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진하게 서려있었다.
“벌써 세 판째 연속으로 대련 중인데 좀 쉬는 편이 낫지 않아?”
“쉬면 몸 식어. 차라리 질 때까지 계속 몰아치는 게 나아.”
“질 때까지…….”
그 말에 유진이 혀를 내둘렀다. 중간고사 실기 대비를 위한 이 연속대련에서 류태현은 지금껏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질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말은 즉 훈련장 이용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진짜 괴물이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류태현을 제외하곤 1분반 대인전 랭킹 중위에서 중하위권 학생들이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결코 약한 이들은 아니었으나, 류태현에게 패배를 안겨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설령 쉬지 않고 계속 싸운다 해도 말이다.
'류태현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한겨울이나 하성민 정도는 와야겠지.‘
현재 류태현을 상대로 일대일 대련에서 승리를 따낸 적이 있는 1학년 학생은 단 세 명.
그중 둘은 강하늘이 떠올린 한겨울과 하성민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바로 나은솔이었다. 각각 현재 1학년 대인전 랭킹 2, 3, 4위에 해당하는 이들이었다.
“어째 좀 미안하네. 우리야 너랑 싸우는 게 대인전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쳐도, 네 입장에선 우리처럼 약한 애들이랑 싸워봤자 아무런 이득도 없을 텐데.”
“무슨 소리야? 너희랑 대련해서 배우는 게 얼마나 많은데?”
유진의 자조 섞인 말에 류태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대인전 능력은 경험이 많이 쌓여야 성장해. 그런데 우리 학교 랭킹전은 일주일에 많아봐야 세 번이잖아? 그래가지고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지!”
“네 대인적 능력에 이 이상 성장할 여지가 있을지부터가 의문인데.”
“하하하핫! 좋게 봐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나도 아직 많이 부족해. 지금 수준으론 A급 승급도 간당간당할걸?”
학생 수준에서 A급 초인 승급을 논하는 시점에서 이미 충분히 대단한 것이었으나 유진과 다른 학생들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심지어 류태현의 자기평가는 그마저도 다소의 겸손이 가미된 평가였다.
“잡담은 그쯤 하고 슬슬 시작해 오빠! 곧 훈련장 이용 시간 끝나니까!”
“알겠어! 야, 내 최고 기록이 몇 분이었지?”
“3분 48초!”
“오케이!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4분은 넘기고 만다!”
“기왕이면 좀 더 커다란 목표를 잡지 그래?”
“그럼 좀 봐주던가!”
그럴 순 없다며 호쾌하게 웃은 류태현이 자세를 잡았다. 유진 또한 커다란 말통에 담은 물을 초능력으로 뽑아내어 자신의 주위에 둘렀다.
‘좀 씻고 와야겠다.’
그런 두 사람의 대련을 앞두고 강하늘은 화장실로 향했다. 남은 이용 시간을 보면 자신의 순번이 다시 돌아올 것 같진 않으니 미리 땀이나 좀 씻으려는 생각이었다.
쏴아아아아.
훈련장 복도 끝에 위치한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중간고사가 코앞인 이 시점 대부분의 학생들은 실기보다는 이론 공부를 우선시했다. 늦게까지 남아 대인전 훈련을 하는 류태현이나 다른 1분반 학생들이 특이한 것이었다.
‘그래도 나름 주인공네 반이라는 거지.’
지금은 류태현과의 대련에서 몇 분을 버티네 마네 하고 있지만 저들의 자질은 역대급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뛰어났다. 단순히 류태현이나 한겨울, 하성민, 나은솔 같은 일부 학생이 지나치게 뛰어나 상대적으로 덜해 보이는 것일 뿐, 1분반의 나머지 학생들의 수준은 같은 학년은 물론이고 상위 학년 학생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간단하게 손과 얼굴을 씻은 강하늘은 종이 타월을 몇 장 뜯어 물기를 닦았다. 거울에는 땀과 물기에 앞머리가 새초롬하게 젖은 여학생이 비치고 있었다.
“흐음…….”
강하늘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보았다.
‘그래도 나 정도면 꽤 괜찮은 편인데…….’
역시 연하라는 점이 발목을 잡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강하늘은 남들이 오지 않나 바깥을 살피며 조용히 능력을 발동했다.
밝은 빛이 그녀의 겉을 뒤덮고, 이윽고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본래 모습보다 조금 성숙해진 여인의 것이었다. 물론 강하늘은 이미 성인이었지만, 새로 만들어낸 아바타는 그녀에게 남아있던 약간의 소녀스러움을 완전히 벗어던진 완연한 숙녀의 모습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가슴이 조금 커졌다거나, 골반이 좀 더 넓어졌다거나, 키가 조금 자라고 퇴폐미가 물씬 풍기게끔 속눈썹이 좀 더 길어지는 등.
“으음.”
마치 포토샵으로 보정한 인스타 사진처럼 변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피던 강하늘이 이내 피식 웃었다.
‘이 모습으로 달라붙으면 조금 반응이 달라지려나?’
달라붙는 대상은 당연히 안수호였다. 요즘 들어 안수호와 묘하게 어색해진 것이 강하늘은 마음에 걸렸다.
그 어색함의 원인이야 빙의자니 스킬이니 하는 진실을 숨긴 강하늘 본인에게 있었으나 이를 시원하게 밝힐 수도 없는 노릇.
하여 강하늘은 차선책으로 오랜만에 둘이서 술자리나 한 번 가져볼까 하고 생각했다. 술을 빌미로 이 어색함을 풀고, 기왕이면 둘 사이의 관계를 보다 진전시키는 게 그녀의 계획이었다. 좀 전의 어른스러운 아바타도 그러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마침 예지원 그 여자도 일 때문에 어디 멀리 갔다고 했으니, 지금이 바로 기회 아니겠어?’
안수호의 방에 놀러가 술을 마신다 해도 바로 옆방에 방해꾼이 있으면 겨우 무르익던 분위기도 식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그녀의 뇌리에 문득 자그마한 위화감이 자리했다.
‘그날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날, 이라고 함은 그녀와 안수호, 그리고 지예원과 채소연 네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신 날을 말하는 것이었다.
강하늘은 술에 취한 탓에 그날의 기억이 중간부터 없었다. 그러나 어렴풋이 자신이 뭔가 중대한 일을 저지른 것 같다는 느낌만은 남아있었다. 다음날 무슨 일 없었냐고 안수호에게 물어보았을 때 그의 반응이 미심쩍기도 했고.
‘이번에 다시 한 번 물어볼까?’
혹시 숨기는 게 있더라도 단 둘이 자취방에서 술잔을 꺾으며 물어보면 진솔하게 답해주지 않겠느냐고.
강하늘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한편으로는 그 술기운 때문에 자신이 해선 안 되는 말을 해버리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가령 이 세상이 소설이고.
당신은 소설 속 등장인물이며.
자신은 소설 바깥에서 이 세상에 빙의한 사람이다, 따위의 말들.
안수호는 연심의 벚꽃을 포함해 그녀에게 아직 의심을 품고 있었다. 단 둘이 마주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질문이 나오지 않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그때 술기운에 실수로 진실을 말해버리기라도 했다간…….
“……별일 있겠어? 그냥 술 취해서 하는 헛소리인줄 알겠지.”
세상 그 어느 사람이 자기가 사는 세상이 소설이라 말한들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는가.
거울을 보며 피식 웃은 강하늘이 조용히 능력을 해제하며 몸을 돌렸다. 어른스럽던 강하늘은 사라지고 아직 소녀다운 느낌을 지닌 강하늘이 그녀의 눈에 비춰졌다.
“……어라?”
그녀는 분명히 거울로부터 몸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엔 여전히 그녀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강하늘이 생긋 웃었다. 좀 전까지 안수호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강하늘이 아닌, 그 강하늘의 눈동자에 비치는 강하늘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기이한 광경에 강하늘이 흠칫 얼어붙은 순간.
“당신누구”
푸욱.
또 다른 강하늘이 휘두른 시퍼런 날붙이가 그녀의 목에 푹 박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