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091. 동시사건(6)
* * *
안수호가 공략 회의에 참가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해 천천히 나아가는 한편.
용인에 위치한 초인재활연구소. 지예원 또한 그곳에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 중이었다.
아직 핵심 보안 구역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그 외 구역에는 카메라와 도청장치 설치를 전부 완료하였고, 나주용 소장의 일거수일투족 또한 그녀가 파악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파악하여 민채령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지예원은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굳이 위험을 자처하진 않았다. 안수호의 당부대로 자신의 정보 수집보다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오로지 무사히 안수호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오직 그 일념만으로 임무에 임하는 지예원이었으나, 문제는 이번 임무의 기한이 미정이라는 점이었다. 막말로 나주용이 무언가 일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이대로 몇 주고 몇 달이고 계속 감시 임무가 지속될 가능성도 0은 아니었다.
하여 지예원은 기약 없는 임무의 끝을 최대한 몸을 사리며 기다렸다.
……기다리려 했으나.
“네?”
그녀는 그녀도 모르는 사이, 초인재활연구소의 어두운 면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선배님도 그 남자한테 갑자기 붙잡혔었다고요?”
“말도 마라. 그 인간 여기 직원들 사이에선 꽤 유명해. 아무나 붙잡고 제발 안에 들어가게 해달라, 누구를 직접 보고 싶다, 벌써 며칠째 그러고 있었을걸?”
청소 업체 직원들과 휴식 도중 우연찮게 나온 허성찬에 대한 이야기.
그 말대로 허성찬은 지예원뿐 아니라 온갖 직원과 관계자들에게 비슷한 요구를 해왔다. 물론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보안 규칙은 장식으로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누가 경찰에 신고해보기도 했다는데 신고만 하면 귀신처럼 사라지는 거 있지? 그러다가 경찰이 돌아가면 다시 스리슬쩍 나타나서 연구소 근처를 서성이고. 아주 귀찮아 죽겠어 정말.”
“근데 그런 일로 경찰을 부를 수 있나? 뭐 불법 침입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주위 좀 돌아다니고 들여보내달라 말로만 하는 정도라서.”
“맞아. 아마 그래서 신고할 때 스토킹으로 신고했을걸? 뭐 거짓말은 아니니까.”
선배 직원들이 하나둘씩 뱉는 허성찬에 관한 이야기를 지예원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허성찬의 정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딱 봐도 연루되면 귀찮아 보이는 일이었기에 엮이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도대체 그 사람은 왜 연구소에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이래?”
“무슨 고객이 맡긴 일을 실패해서 사과하고 싶다던데.”
“그래? 무슨 일 하는 사람인데?”
“그거야 모르지.”
“그 사람도 연구직 아니야? 저번에 보니까 김선우 주임님한테 뭐라뭐라 사과하던데?”
“……김선우 주임님이요?”
그러나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지예원은 더 이상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어……라?’
김선우.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민채령이 그녀에게 임무를 맡길 때에 특별히 감시하라던 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 이유는 김선우가 나주용의 수족 중 하나요. 강하늘 납치 사건 때 의정부에 향했던 정황이 있는 바, 아마 그를 통해 나주용이 청부업자를 고용했을 것이라는 민채령의 예측 때문이었다.
‘그럼 그 허성찬이라는 사람이 설마?’
허성찬은 이렇게 말했다. 고객의 맡긴 의뢰에 실패하여 이에 대해 사과하고, 만회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의 동료로 보이던 남자, 유진수는 자신들을 잡역부라고 했다.
지예원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증거 따윈 없었다. 그저 정황에 따른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꽤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해선 좀 더 조사해봐야겠다고.
제아무리 지예원이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다고 해도, 강하늘의 납치 사건과 연루된 자의 행적을 모른 채 하기에는 뒷맛이 씁쓸했다.
그때.
“무슨 얘기 하고 있어?”
등 뒤에서 들린 앳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자그마한 소녀가 그녀와 직원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구…….”
“어이구 우리 은주 왔구나!”
선배 직원 중 한 명이 호들갑을 떨며 그 소녀를, 은주를 안아들었다. 공중에 떠오른 소녀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신난다는 듯 붕붕 흔들었다.
“누구……에요? 이 애는?”
“은주? 소장님 딸이야. 집이 바로 옆건물이라 가끔 이렇게 아빠 일하는 곳으로 놀러오거든.”
“소장님 딸이요?”
지예원은 그렇게 되새기며 소녀, 나은주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주용한테 딸이 둘 있다고 했었지. 그중 한 사람인가보네.’
나주용의 관계자라면 필히 경계해야 했으나 열 살짜리 꼬마애가 무얼 알겠는가. 선배 직원의 손에 안긴 채 와! 와! 떠드는 어린 소녀를 보며 지예원은 별 생각 없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근데 민구 아저씨! 아까 무슨 얘기 하고 있어써?”
공중에서 내려온 나은주가 물었으나 질문을 받은 선배 직원, 강민구는 고개를 저으며 얼버무렸다.
“별 거 아니다. 그냥 아저씨네 일하는 이야기야.”
“그치만 궁금한데! 나도 알려줘! 나도 알려줘어어어!”
“하하하하. 우리 은주가 호기심이 왕성하구나.”
주먹을 꽉 쥔 채 위아래로 붕붕 휘두르는 나은주를 보며 그 자리의 모두가 어쩔 수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예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그 누구도 갑작스레 나타난 나은주를 경계하지 않았다.
강민구는 별 수 없이 자신들이 하던 허성찬에 대한 이야기를 나은주에게 들려주었다. 어린 소녀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다.
“우와! 그 아저씨 엄청 수상하다! 이름이 뭔데?”
“어이구. 아저씨가 그 남자 이름까지는 잘…….”
“허성찬이라고 했을 거예요 아마.”
그의 이름을 들었던 지예원이 대답했다. 강민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예원을 가리켰다.
“저 언니 말 들었지? 허성찬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그 말에 나은주가 또르르 지예원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은주가 지예원의 손을 꼬옥 잡더니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언니야만 그 이상한 아저씨 이름을 알고 있어?”
“엊그제 만나서 잠깐 이야길 나눴거든. 그때 들었어.”
“그럼 언니야는 그 이상한 아저씨랑 친해?”
“아니. 그냥 이야기만 한 번 해본 정도야. 친하지 않아.”
“그렇구나아. 언니야도 그 아저씨 수상하지?”
“응. 아주 수상하지.”
“왜?”
“왜냐하면…….”
나은주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려던 지예원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뒤늦게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뭐야. 내가 왜 이걸 다 대답해주고 있지?’
그녀는 직장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가능한한 삼가했다. 그래서 좀 전에 허성찬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도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다. 강하늘이 걱정되어 허성찬에 대해 독자적으로 조사해보자, 하고 마음먹긴 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유지해오던 행동 방침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이 소녀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하며 쓸데없이 눈에 띄는 짓을 한 것인가.
‘심지어 조금 전에 나, 이 아이한테 납치 사건에 대해 말하려고 했어.’
허성찬이 강하늘 납치 사건에 연루된 청부업자일 지도 모른다는 것.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되는 정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실을 밝히려 했다. 정신을 차리는 게 조금만 늦었다면 분명 그렇게 말했겠지.
도대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한 지예원의 두 눈이 자신을 올려다보던 어린 소녀에게 향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뭔데??”
그 순간 나은주의 두 눈에 일순 불그스름한 기운이 서린 게 보였다. 아주 흐릿한 기운이었으나 지예원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설마 정신 관련 초능력인가?’
나주용의 딸들이 초인이라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나주용의 연구 분야를 생각하면 그 딸이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 아이가 무슨 능력을 사용해서 자신의 경계심 따위를 누그러뜨린 게 아닐까? 그래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말에 술술 대답한 건 아닐까?
“……언니야?”
나은주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지예원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별 이유는 없어. 그냥 척 봐도 수상하잖아. 안 그러니?”
“…….”
지예원이 얼버무린 답에 나은주가 빤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지예원은 긴장감에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소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단순히 자신의 능력으로 호기심을 풀려고 한 평범한 소녀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사주를 받아, 허성찬에 관한 정보를 캐내려고 한 ‘적’인가.
만약 후자라면 나주용은 이렇게나 어린 자신의 딸마저 이용해먹는 천인공노할 악인이라는 게 된다. 그러나 지예원은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라 생각했다. 당장 자신만 해도 아주 어릴 적부터 고아원에서 길러지며 여명단의 첩보원으로 훈련받았으니.
“하긴! 수상하니까 수상한 거지!”
지예원의 답에 납득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지금은 물러나겠다는 신호인지.
방긋 웃으며 그렇게 말한 나은주가 통통 튀는 걸음걸이로 떠나갔다.
“하여간. 자기 아빠를 닮아서 호기심이 왕성한 애라니까.”
강민구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겉으로 보기엔 새로 놀 것을 찾아 떠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으나, 지예원은 더 이상 나은주를 평범한 어린애로 볼 수 없었다.
지예원의 경계심 가득 어린 두 눈이 나은주가 사라진 방향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
의정부 북부. 범죄의 온상이 된 슬럼 지역.
서울 바로 옆에 붙은 의정부시의 한 구석이 그러한 슬럼이 된 기원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0년 전. 연천군 이북의 북한 땅에서 대규모 던전이 열리는 일이 있었다. 그 규모는 북한의 헌터 전력으로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규모였다. 이에 남한과 그 주변국은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헌터를 지원해준다 하였으나, 당시 쇄국이나 다름없던 외교를 펼치던 북한은 이를 한사코 거절했다.
그리고 그 결과 21세기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크라이시스’가 발발했다.
제 때 처리되지 못한 던전에서 수많은 괴수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휴전선 인근에서, 그 괴수들은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향했다. 크라이시스 직전까지 북한이 공략 현황을 은폐한 결과, 남한이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건 휴전선 부근 GP가 괴수에 의해 뚫린 이후였다.
당시 피해규모는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휴전선과 인접한 연천과 파주시가 문자 그대로 궤멸했고 포천, 동두천, 양주도 반파. 괴수의 손길은 그 아래 의정부와 서울에까지 미쳤다.
간단히 말해서 서울 이북이 완전이 쑥대밭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물론 헌터 전력이 훨씬 뛰어났던 남한마저 이 지경이었으니 북한이라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당시의 크라이시스 사태로 인해 북한에선 최소 오백만에 달하는 인민이 죽었고, 그 사태가 계기가 되어 결국 북한은 남한에게 흡수되는 방식으로 통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지금 의정부 북부에 자리한 슬럼가는 그때의 흔적이었다. 광범위한 피해 지역 중엔 상대적으로 복구가 늦거나 미비한 지역이 있었고, 그런 지역은 자연스레 슬럼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의정부 북부의 슬럼에 위치한, 어느 허름한 삼층짜리 건물 한 구석.
띠리리리리리리.
이제는 구식으로 치는 유선 전화가 시끄럽게 울린 순간 허성찬이 기세 좋게 수화기를 낚아챘다.
“네 감사합니다! 늘 신속하고 확실한 일처리를 약속드리는 진수&성찬 파견사무소입니”
안녕하신가요 고객님? 언제나 고객님들의 곁에 함께하는 KG캐피탈입니다. 오늘은 자사의 신규 대출 상품에 대해 안내해드리고자…….
“이런 씨발!”
쾅!
허성찬이 있는 힘껏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 꼴을 본 유진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성찬. 전화기 망가집니다. 조심해서 내려두세요.”
“그렇지만 진수! 그때 납치 의뢰 실패하고 벌써 몇 주째 의뢰가 하나도 안 들어온다고! 나 답답해 미치겠다니까 지금?!”
“원래 이쪽 업계가 한 번의 실패도 타격이 큰 거 알고 있잖습니까. 그래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슬슬 일감이 오기 시작할 겁니다.”
“기다리다가 굶어 죽는 게 먼저겠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보존식은 늘 넉넉하게 구비해뒀으니까요. 건빵이라면 아직 석달치는 남아있습니다.”
“그아아아아아악!!!!”
아침에 먹었던 건빵의 퍽퍽함이 생각난 허성찬이 떼를 쓰는 어린애마냥 바닥에 드러누운 채 팔다리를 휘둘렀다. 그 꼴을 보며 유진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슬럼 태생이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곤 하나, 자신의 파트너인 허성찬은 성격이 지나치게 어린 감이 있다고.
“진쑤!!”
“왜 그럽니까.”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니까?! 그 강하늘이란 애를 우리가 다시 납치해서 연구소 놈들한테 갖다 바치는 거야! 그럼 의뢰를 성공한 거니까 잔금도 받을 수 있을 거고! 다시 의뢰도 잔뜩 들어올 거라고!”
“……지적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엄두도 나지 않는군요.”
그렇게 말했으나 유진수는 다소 모자란 자신의 파트너를 이해시키기 위해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성찬. 잘 들으십시오.”
“듣고 있어!”
“일단 첫 번째. 강하늘의 납치 자체가 저희에겐 이제 어렵습니다. 강하늘을 납치하려 했을 때, 저희가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갔다 나왔음에도 경찰에 잡히지 않은 이유 기억나나요?”
“당연하지! 프로페서가 CCTV랑 블랙박스 기록 같은 걸 싹 다 지워준 덕이잖아!”
“예. 맞습니다. 다 프로페서 덕분이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그 프로페서를 고용할 돈이 없습니다. 저번 의뢰를 실패해서 보수는커녕 계약금마저 고스란히 다 토해냈으니까요. 이해 됐습니까?”
“그럼 CCTV가 잘 안 보이는 밤에 납치하면 되는 거 아냐?”
“아뇨. 강하늘은 이제 원룸이 아니라 그린하우스 기숙사 안에 삽니다. 그리고 그린하우스의 감시장비에는 기본적으로 열화상 카메라가 탑재되어 있죠. 뿐만 아니라 경비 또한 삼엄합니다. 그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
“끄응…….”
“그리고 세 번째. 이건 성찬이 들으면 싫어할 것 같아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별 수 없다며. 유진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강하늘의 납치 건은 이미 다른 청부업자가 물었습니다.”
“뭐?! 우리 의뢰를 다른 놈이 가로챘다고?! 도대체 누군데?!”
“K랑 스테파니 듀오입니다.”
“스테파니이이이이이?!”
콰앙!
허성찬이 있는 힘껏 발을 굴렀다. 어찌나 세게 지면을 찍었는지 천장에서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지며 휘날렸다.
“성찬. 그러다 바닥 무너지면 누가 책임질”
“스테파니면 맨날 우리 둘 무시하고 업신여기던 년이잖아! 근데 우리가 실패한 의뢰를 걔가 받았다고?! 진수! 역시 이번 의뢰는 우리가 해결해야 해! 이대로 가다간 평생 스테파니한테 놀림 당하게 생겼다고!”
“……다른 청부업자가 받은 의뢰는 결코 가로채지 말 것. 이곳 의정부의 룰입니다. 잊었습니까?”
“끄으으응. 그렇지만…….”
아무리 막나가는 허성찬이라도 슬럼의 룰을 어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답답한 건 답답한 것이고 분한 것은 분한 것이었다. 스테파니. 그 가증스러운 여자가 이후 자신을 놀려댈 걸 생각하니 허성찬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띠리리리리리!
그때, 전화기가 다시 한 번 시끄럽게 울려댔다.
“이번에도 대출 권고면 그 KK인지 KB인지 아주 내가 그냥 묵사발을 내주고 만다!”
안 그래도 짜증나던 허성찬이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낚아챘다. 만약 이번에도 대출 권고라면 적어도 상담사에게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사발 박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선우입니다.
그 말에 허성찬은 물론이고 옆에서 듣고 있던 유진수마저 표정이 굳었다.
허성찬 씨. 그리고 유진수 씨. 혹시 저번 실패를 만회해볼 생각 없으십니까?
다음 순간, 허성찬의 얼굴에 진한 웃음이 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