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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90화 (91/266)

〈 90화 〉 089. 동시사건(4)

* * *

“안심하시길. 이제부터 안수호 씨가 말씀하실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제가 보증하도록 할 테니까요.”

설아현의 그 말에 회의장이 한 차례 술렁였다. 그 대부분은 놀란 표정이었다.

“거 보증은 함부로 서는 게 아닌데…….”

오지훈이 팔짱을 낀 채 농담처럼 그렇게 말했다. 곧 그의 얼굴에 진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흑룡회주 자네는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 내 묻지. 이유……라기보다는 근거라고 말하는 게 좋겠군. 저 남자가 할 말들이 다 사실일 거라 보증한다 했는데, 그 판단의 근거가 뭔가?”

그 질문은 그 자리에 있던 자들 중 설아현과 안수호 당사자들을 제외한 모두가 궁금해 하는 부분이었다. 오지훈의 질문이 끝나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 답을 기다렸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제 능력에 대해서 알고 계실 테죠.”

그 말에 회의실의 사람들이 저마다 나지막하게 탄성을 뱉었다.

설아현의 능력은 미래시. 1분 이내의 짧은 미래를 엿봐서 전투 상황에서 공방의 흐름을 예측하는 능력.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길드 간부진들은 대부분 그 능력의 또다른 부분에 대해 알고 있었다. 바로 머나먼 미래를 엿보는 진정한 의미의 ‘미래시’를.

“제가 안수호 씨가 가져온 정보가 진실일 것이라 보증하는 이유. 그건 제가 그를 통해서 저희가 기사의 무덤 공략에 성공했다는 미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섣불리 믿기는 힘들군.”

오지훈이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으며 말했다.

“믿기 힘들다? 어째서죠?”

“그야 자네 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으니까. 자네의 능력은 원하는 미래를 콕콕 집어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니잖나. 근데 공략에 성공한 미래를 딱! 하고 봤다는 게 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실제로 설아현의 미래시는 결코 그렇게 편리한 능력이 아니었다. 당장 이곳에 있는 간부진 대부분이 그녀의 능력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알아보고자 했으나, 별 쓰잘데기 없는 미래만 엿본 경험이 한 번씩은 있었으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만, 그 부분은 천운이 따랐다……라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겠네요.”

“천운……. 즉, 우연이란 말인가?”

“네.”

그러나 설아현은 그 부분을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뻔뻔하게 우연이었노라고, 그렇게 밀어붙였다.

“우연이라니. 지금 그 말을 믿으란 소리인가?”

“그럼 오지훈 헌터께선 제가 여러분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그 말에 오지훈이 말을 아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자리의 그 누구도 감히 설아현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녀의 말은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막말로 그녀가 어떤 미래를 보았든, 심지어 미래 자체를 보지 않았다 한들 당장 검증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물론 세상에는 거짓을 간파하는 능력자나 아티펙트 따위도 있었으나, 그런 걸 사용한다는 건 즉 설아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중 그 누구도 흑룡회 길드마스터와 척을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을 수밖에 없겠군.”

결국 그 언쟁조차 되지 못한 짧은 문답은 그렇게 끝이 났다. 대답한 것은 오지훈뿐이었으나 추가로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한 설아현의 시선이 슬쩍 안수호에게로 향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읏.”

그러나 곧 그녀는 그 행동이 실수임을 깨달았다. 안수호와 눈이 마주치자 조금 전에 보았던 미래의 장면이 떠올라, 빠르게 뺨이 달아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붉어진 뺨을 손으로 가린 채 그녀가 살짝 말을 더듬으며 이야기했다.

“그, 그럼 당초 말씀드린 대로 이제 안수호 씨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보도록 하죠. 바, 발언해주세요.”

그 부자연스러운 태도에 몇몇이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그들의 시선은 설아현으로부터 안수호에게로 옮겨졌다.

“발언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대량의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안수호는 주눅들지 않았다. 깍지를 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안수호가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께선 다들 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안수호고 현재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의 경비대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번 이중던전 사태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경비 업무를 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고립된 학생의 구출을 위해 던전 최심부에 돌입, 던전의 주인 괴수인 빌헬름과 마주쳤습니다.”

마주쳤고, 싸워서, 도망친 끝에, 이렇게 살아남았죠.

안수호는 마치 과시하듯 두 팔을 벌리며 그렇게 덧붙였다.

“아마 이곳에 계신 분들께선 저의 전력을 꽤 높게 가늠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흑룡회의 선발대는 빌헬름과 마주치고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심지어 선발대의 리더였던 S급 초인은 얼마 전까지 의식 불명의 중태에 빠져 있었다. 반면 안수호는 단신으로 빌헬름과 겨뤄 살아남았다. 이를 곧이곧대로 비교할 수는 없으나, 그 자리에 있던 간부진 대부분은 안수호라는 초인을 최소 A급 이상, 내지는 S급 초인 수준의 강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단 그 인식부터 정정해드려야 할 것 같군요.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강한 놈이 아닙니다. 그날 제가 빌헬름을 상대로 선전할 수 있었던 건, 말하자면 온갖 천운과 우연과 무리가 겹친 결과였으니까요.”

그러나 안수호는 그런 그들의 인식을 정면에서 부정했다. 자신은 댁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다고. 마치 겸손을 떨듯 말했다. 실상 겸손도 뭣도 아닌 사실 그 자체였으나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이 이를 알 방법은 없었다.

‘……사전에 미리 이렇게 말해놨으니 나중 돼서 대충 싸웠느니 왜 이렇게 약하냐느니 하는 말은 안 나오겠지.’

방금 그 말은 안수호 나름대로의 보험이었다. 앞으로 있을 던전 공략에서 그가 다른 이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될 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그건 나중의 일, 벌어질 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이야기였다. 지금 이 순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초인들을 대하고 있는 안수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그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뭐, 제 본 실력이 어떻든 간에 저는 놈과 일대일로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빌헬름이라는 괴수에 대해 이래저래 다양한 것들을 알아냈죠. 지금부터 공유할 정보는 바로 그 정보입니다. 앞서 설아현 헌터가 말씀했듯 제가 말할 정보의 사실 여부는 그녀가 보증해줄 겁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할 빌헬름에 관한 정보에는 일절 거짓이 없는 진실이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한 안수호가 가방에서 얇은 서류철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가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작성한 메모 다발이었다. 그 안에는 빌헬름의 기술이나 공격 패턴, 그리고 그의 약점과 이를 공략하기 위한 유효 전술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말하자면 대 빌헬름용 공략집이라고 할까.

‘문제는 이걸 어떻게든 납득이 가는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건데…….’

아무리 설아현의 보증이 있다 한들 너무 부자연스러운 정보는 의심을 사게 될 확률이 높았다. 안수호는 현재 시점에서 밝혀도 어색하지 않은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를 구분하며 천천히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우선 빌헬름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에 대해서 말씀드리죠. 가장 먼저 놈의 능력, 일단 빙결 능력이라고 칭하겠습니다만 이 능력의 경우…….”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안수호가 입을 열었다.

빙의자 주도의 오버랭크 던전 공략 강좌의 시작이었다.

***

회의는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이어졌다. 안수호가 말한 정보를 검증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검증하고, 이를 토대로 유효한 공략 전술을 짜느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덕분에 회의가 시작했을 때는 아직 낮이었으나 그들이 회의실을 나섰을 때 바깥은 이미 완연한 어둠이 깔린 한밤중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마무리됐네.’

안수호가 피곤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회의 시작에 앞서 설아현이 보증을 서주겠다 하긴 했으나, 그렇다 해서 그의 발언의 검증 과정이 대충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정보 하나를 말할 때마다 그건 어떻게 알아냈느냐,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냐 꼬치꼬치 캐물은 통에 안수호는 지금 피곤에 절어 죽을 맛이었다.

“수호 씨. 고생하셨어요.”

한여름이 안수호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한여름 학생도 고생 많았습니다.”

“전 이번에 별로 발언하지도 않았는데요.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죠.”

거의 회의 내내 발언과 질의응답을 이어간 안수호와 달리 한여름은 회의 내내 침묵을 지키다시피 했다. 발언할 내용이 없기도 하거니와, 혼자 생각할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수호 씨.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빌헬름에 관한 건가요?”

“아뇨. 설아현에 관한 건데요.”

그렇게 말한 한여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의가 끝나고 참석한 이들은 각 길드끼리 모여 각자 떠난 뒤였다. 주변에 듣는 귀는 없었다.

그럼에도 한여름은 목소리를 한껏 죽인 채 안수호에게 물었다.

“당신,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설아현을 포섭한 거죠?”

올 질문이 왔구나.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미리 생각해두었던 답을 말했다.

“……뭐, 회의 때 나온 이야기 그대로입니다. 아현 씨가 제 미래를 보았는데 그 미래가 썩 괜찮은 미래였고, 그 덕에 그녀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죠.”

기실 대답이라기보다는 얼버무림에 가까운 답이었다. 그리고 한여름은 당연히 안수호의 답에 납득하지 않았다.

“지금 저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못 믿으실 건 뭡니까?”

“그야 이상하잖아요. 당신은 제게 부탁해서 일부러 회의 시작 전에 설아현을 만나러 갔어요. 그리고 돌아왔을 땐 보란 듯이 그녀의 신뢰를 얻어낸 뒤였죠. 설마 설아현이 당신한테서 긍정적인 미래를 볼 거라고 예측했을 리도 없고.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그녀를 만나러 간 거 아니겠어요?”

“네. 믿는 구석이 있긴 했죠.”

“그게 도대체 뭐냐는 거예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안수호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나 굳이 그 이상 설명해주진 않았다.

“그건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네?”

“아무리 한여름 학생이더라도 그런 정보를 공짜로 알려줄 순 없죠. 정 궁금하시면 이번에도 그 탐정을 통해 조사시켜보시면 어떻습니까?”

아마 절대 알아내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덧붙인 안수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한여름은 그 태도가 조금 짜증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수호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무어라 반박하지 못하고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때.

“아, 안수호 씨?”

복도 저편에서 설아현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

헌데 그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다. 그녀로부터 풍겨오는 묘한 위화감에 한여름이 고개를 갸웃하며 설아현의 안색을 살폈다.

설아현은 무슨 일에서인지 홍조를 빨갛게 띄운 채였다. 늘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던 두 눈은 갈 곳을 잃은 채 갈팡질팡 흔들렸고 팔짱을 낀 손의 손가락은 그녀의 심리를 대변하듯 연신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척 봐도 어딘가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 회의 고, 고생하셨어요. 이렇게 기, 길게 이어지는 경우는 벼, 벼벼별로 없…….”

심지어 숫기 없는 신입생마냥 말까지 떠는 그 모습에 한여름은 거의 경악하다시피 두 눈을 부릅떴다. 안수호 또한 그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의아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지금 설아현이 보이는 모습은 원작에서 읽었던 모습과 전혀 딴판이었으니.

‘도대체 무슨 미래를 봤길래.’

안수호는 설아현의 저런 반응은 분명 그녀가 본 미래의 장면이 원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회의 시작 전에 이에 대해 물어봤지만, 설아현은 한사코 고개를 저으며 알려주지 않았다.

“…….”

설아현이 쭈뼛거리는 태도로 안수호를 올려다봤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의 눈치를 살피는 꼴에 안수호가 멋쩍은 듯 미소 짓자, 설아현이 더욱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허…….”

그리고 한여름은 그런 설아현의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흑룡회의 길드마스터인 그 설아현이 맞나 싶었다.

‘이게 도대체…….’

안수호 앞에 선 설아현은 마치 사춘기 시절의 풋풋한 소녀 같았다. 그야 그녀의 외모가 앳되보이기는 했다만 그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분위기라고 할까, 그 눈짓 몸짓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아주 달달하기 그지없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얘가 이래……?’

한여름이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으로 안수호를 바라봤다. 그러나 안수호도 사정을 모르긴 매한가지였다.

세 사람이 마주선 복도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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