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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87화 (88/266)

〈 87화 〉 086. 동시사건(1)

* * *

지예원은 웃으며 떠났다. 그 속에 품은 뜻이 어떻든, 아무튼 웃으며 떠났다.

얼떨떨하게 굳은 얼굴을 매만진다. 그녀가 웃으며 떠났다면 나 또한 웃으며 그녀를 보내줘야 했건만, 나는 이다지도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를 배웅한 건가.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그녀의 자취가 남은 길목을 바라봤다. 걱정과 미련이 무미건조한 회색 보도블럭을 따라 남아있을 리 없는 발자취를 쫓는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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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 발생! ]

[ 사상초유의 오버랭크 이중던전 '기사의 무덤'! 그 공략에 참여해 던전 공략을 성공으로 이끄세요! 이번 던전 공략에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참여합니다! 공략 과정에서 만난 이런저런 인연들은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분명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보상/>

1. 경비율 증가 10%(현재 경비율 18%)

2. <스킬 :="" 아카데미의="" 경비원=""> 등급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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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시야를 가로막는다. 마치 미련 따위 품지 말라는 듯. 지금 네가 할 일에 집중하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 지금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

기사의 무덤 공략 참가도 참가지만, 그 전에 가능하다면 강하늘의 협력을 구해야만 했다.

겸사겸사, 그녀의 정체도 알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지금쯤 수업을 듣고 있을 강하늘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에 단 둘이 만나자고.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그 문자의 답이 온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 뒤의 일이었다.

***

중간고사를 앞둔 시기. 그린하우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이론 공부나 실기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것은 강하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당초 자퇴까지 생각할 정도로 의욕이 없었던 그녀였으나, 요즘에는 나름 진지한 태도로 학업에 임하고 있었다. 기왕 아카데미를 다니기로 한 거 열심히 하자고 생각한 것일까.

하여 약속시간에 맞춰 나는 강하늘이 훈련중인 제3 기초훈련장으로 향했다. 내게 있어선 감회가 새로운 곳이었다. 아직 특수대책과가 아닌 일반과 시절 처음 배정받은 근무지가 이곳이었으니.

혹시 그때 파트너였던 권창욱이 있나 싶었으나 경비실에 자리한 이는 다른 이였다. 이쪽을 주시하는 경비대원의 눈치를 보며 강하늘을 기다리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하늘은 타이트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저쪽 세상의 헬스장에서 흔히 보이는, 위에는 쫙 달라붙는 기능성 티셔츠에 아래는 브랜드 로고가 박힌 검정 레깅스. 머리카락 끝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걸 보니 상당히 격한 훈련을 끝내고 온 듯 했다.

“오빠, 안녕하세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니. 나도 방금 왔어.”

“죄송해요. 약속 시간을 너무 늦게 잡아서. 동기들이랑 같이 훈련하기로 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니야. 이렇게 시간 내준 것만으로도 고맙지. 좀 걸을까?”

“좋아요! 밤 산책이라니 낭만 있고 좋네요!”

강하늘에게선 지난 일요일 헤어질 때 남아있던 어색함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날 만난 것이 즐거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녀는 얼굴 가득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강하늘이 내 곁에 찰싹 달라붙으려다가.

“앗.”

하고 소리를 내며 두 뼘 정도 거리를 벌렸다.

“그, 땀 냄새가 좀 심할 것 같아서…….”

“훈련장 안에 샤워실 있지 않아?”

“전 공용 샤워장은 잘 안 쓰거든요. 보통 훈련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가서 방에서 씻어요.”

그렇게 말한 강하늘이 팔뚝이며 옷깃이며 코를 갖다 대고 킁킁대며 제 냄새를 확인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순진무구한 강하늘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 모습조차 가면이 아닌가 의심하곤 했다.

“호수 쪽으로 가자.”

“넹.”

우리 둘은 그린하우스 안에 조성된 인공호수 쪽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학생이 꽤 보이는 곳이었지만 시험기간이라 그런가 느긋하게 밤산책을 나온 학생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짙은 어둠이 깔린 호수변의 산책로. 나와 강하늘은 말없이 그 길을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뭔가 좋네요.”

먼저 입을 연 것은 강하늘이었다.

강하늘이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마치 밤의 향취를 온몸으로 물씬 느끼겠다는 듯 두 팔을 살며시 벌렸다. 이내 그 부드러운 시선이 내게 향한다.

“요즘 시험기간이라고 너무 바쁘게 살았나 봐요. 이렇게 밤에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도 가끔은 좋네요. 공기가 맑아서 그런가? 머릿속도 화~하게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그래.”

“분위기도 뭔가 조용하고 운치 있는 게, 시험 끝나고 밤에 돗자리 깔고 맥주 한 캔 하면 딱일 것 같아요. 아, 그쯤이면 슬슬 모기가 나오려나?”

“글쎄.”

“초인이라 모기에 물리진 않지만 옆에서 앵앵 날아다니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잖아요. 마침 여긴 근처에 숲이 많아서 모기도 많을 테니, 여름 되기 전에 마트에서 전기파리채라도­”

“하늘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어지는 일상적인 대화.

그것을 견디지 못한 내가 조바심에 그녀의 말을 끊었다.

강하늘이 고개를 갸웃하며 날 올려다보았다. 곧 그 표정에 쩌적, 가느다란 금이 갔다. 아마 차갑게 굳은 내 표정을 본 탓이리라.

“왜, 그러세요?”

“오늘 너랑 만나자고 한 거. 사실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랬어.”

“부탁이요?”

“응. 꼭 들어줘야 되는 건 아니니까 부담갖지는 말고.”

“어떤 부탁인데요……?”

나는 강하늘에게 그간의 경위를 설명했다.

이중던전에서의 행적이 외부에 알려진 것.

그 때문에 한여름이 내게 접근해 공략에 참여하라고 반쯤 협박한 것.

당시의 일이 대중이나 언론에 알려지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므로 결국 그 협박 같은 제안에 응한 것.

그리고 던전에서 벌어질 빌헬름과의 전투를 위해 그녀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

“아…….”

내 이야기를 들은 강하늘이 불편한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그, 죄송해요.”

강하늘이 시선을 왼쪽 아래로 내리깔았다. 혓바닥으로 마른 입술을 훔치며, 갈 곳을 잃은 손이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태도.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한 태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강하늘은 내 부탁을 거절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내 짐작대로 그녀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무언가 숨기는 바가 있는 듯 했다.

“혹시 괜찮다면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그 증거로 강하늘은 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연신 입술을 달싹이며, 마치 내게 말할 변명을 생각하듯 길게 침묵을 가져갔다.

오버랭크 던전 공략을 돕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

그 던전은 트라우마가 있어 들어가고 싶지 않다.

시험기간이라서, 혹은 다른 이유로 일정이 맞지 않을 것 같다.

그 능력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녀가 내 부탁을 거절한 이유……로 예상되는 것들이 수도 없이 뇌리에 떠오른다. 그러나 나조차 이렇게 쉽게 갖가지 이유들을 댈 수 있음에도 강하늘은 내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거짓말이 서툴렀다.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것도 진실을 숨기는 것도 서툴렀다. 그렇기에 강하늘은 고민에 빠졌다. 고민에 빠진 채 대답을 유보했다.

그리고 그 침묵이 곧 그녀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내게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숨기고 싶은 게 있음을 증명하는 꼴이었다.

“…….”

강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요일과 달리 오늘 내가 그녀의 능력에 대해 물은 건 어찌 보면 불시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미처 변명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 부분을 추궁할까.

마치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아가듯, 그녀를 압박하여 진실을 들어낼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문득, 지예원이 내게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강하늘을 너무 추궁하려고 하지 마라.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보아라.

그녀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줘라.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강하늘은 결국 진실을 말해줄 것이다.

그 아이는, 그런 아이니까.

자기 입으로 연적이라고 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강하늘의 처지를 생각한 지예원이 내게 해준 당부.

그 당부를 떠올린 순간 나는 강하늘을 추궁할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설명하기 힘들면 안 해도 괜찮아.”

내 말에 강하늘이 곤란한 표정으로 눈을 치떴다. 그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퍼진다.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나는 최대한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너한테도 사정이 있겠지. 굳이 그 사정을 추궁하진 않을게.”

천천히.

“물론 나는 너의 사정을 듣고 싶어. 그렇지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

분명하게.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고 고민해봐. 그래서 내게 말해줄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 말해주고, 아니다 싶으면 영원히 말해주지 않아도 돼.”

나는 지예원이 내게 해주었던 말을 적당히 포장해서 그대로 강하늘에게 전했다.

사실, 궁금했다.

미치도록 궁금했다.

그녀가 숨기고 있는 사실은 무엇인지. 왜 그녀는 능력의 기원을 설명할 때 류태현이 탈리스만을 얻은 경위를 차용했는지. 그 경위를 그녀는 어떻게 알았으며, 능력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강하늘이라는 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뼈에 사무치도록 궁금했으나 굳이 묻지 않았다. 묻지 않겠노라고 했다.

감정은 당장이라도 추궁하라고 날뛰었으나, 다만 이성은 이것이 옳은 일이겠거니 하였다.

“……제 능력에는 페널티가 있어요.”

그 배려가 전해진 것인가. 아니면 그제야 내게 할 변명을 생각해낸 것인가.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강하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페널티?”

“제 두 번째 능력, 연심의 벚꽃은 몸에 새겨진 다섯 개의 꽃잎을 매개로 발동하는 능력이에요.”

“그러고 보니 능력을 발동했을 때 가슴에 꽃 모양 문양이 떠올랐었지.”

분명 핑크색 벚꽃 모양이었을 거다. 꽃잎 수가 다섯 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다섯 개의 꽃잎이 제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에요.”

“한번에? 아니면…….”

“평생이요.”

“그럼 만약 그 꽃잎을 다 쓰면­”

더 이상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렇게 물으려던 순간 강하늘이 선수를 쳤다.

“죽어요.”

“뭐?”

“죽는다고요. 꽃잎을 다 쓰면 죽어요. 그게 제 능력의 페널티에요.”

그렇게 말한 강하늘의 눈은 한껏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올곧게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기도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강하늘의 말은 진실이거나 적어도 진실에 아주 가깝다고.

즉 그녀의 능력의 페널티는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디메리트.

“……미안.”

그렇게 판단한 순간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그녀에 대한 사과였다.

“오빠가 뭐가 미안해요?”

“그냥. 그, 여러 가지로.”

“괜찮아요. 제가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오빠가 제 능력 페널티를 어떻게 알겠어요? 오히려 제가 미안하죠. 제가 도와주지 못해서 오빠가 곤란해지는 게 아닌가…….”

“아냐. 그건 괜찮아.”

강하늘의 협력을 얻어내지 못한 건 상정 범위 내였다. 강하늘의 능력이 없으면 빌헬름과의 전투에서 제 몫을 하는 건 어렵겠지만, 내게는 원작을 통해 얻은 빌헬름에 대한, 기사의 무덤의 공략 정보가 있었다. 그 정보를 적절하게 푼다면 이번 퀘스트도 무난하게 클리어할 수 있으리라.

“괜찮다고요……?”

“그래. 꼭 싸우는 게 아니더라도 도울 방법은 있거든.”

“……그렇구나. 다행이네요.”

내 말에 강하늘이 안심했다는 듯 살며시 웃었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의문.

강하늘의 능력의 페널티는 그녀의 죽음. 그래, 분명 충격적인 정보이긴 했다.

그렇지만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을 때 그녀가 보인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태도. 그 불안해보이던 표정을 생각하면 뭔가 이상했다.

‘그렇게까지 전전긍긍하며 숨길 정보는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아직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적어도 이 자리에선 더 이상 그녀를 추궁할 수 없었다.

‘……그래.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당장 일리아나의 조사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강하늘에 대한 일은 그녀의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 이어서 고민해도 늦지 않겠지.

“엣?”

긴장된 분위기도 완화할 겸, 어색함을 타파하고자 나는 우물쭈물하던 강하늘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대로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는다. 마치 기특한 아이를 칭찬하듯.

“??”

갑자기 웬 쓰다듬인가 하는 표정으로 날 보던 강하늘이 무어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두 눈을 감은 그녀가 주인의 쓰다듬을 받는 강아지처럼 내 손 움직임에 따라 천천히 고개를 좌로 우로 흔들었다.

“……아.”

그렇게 잠시 쓰다듬을 만끽하다가 갑자기 그녀가 탄성을 뱉었다. 제 머리 위에 올라간 손을 치우며 강하늘이 어색하게 이야기했다.

“그, 땀 흘리고 아직 머리를 안 감아서…….”

헤헷. 하고 어색하게 웃는 그녀를 보며 나 또한 웃었다.

“아무튼. 미안했어. 그리고 고맙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상황. 무엇이 미안한지, 무엇이 고마운지는 나조차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네. 저도요.”

강하늘 또한 그렇게 대답했기에, 나는 그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그렇게 야밤의 호수에서 이뤄진 문답은 명쾌하면서도 흐지부지하게 일단락되었다.

***

경기도 용인시.

여일그룹 산하 초인재활연구소.

지예원은 골목 귀퉁이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 채 연구소 건물을 멀리서 지켜봤다. 밤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소의 각 층은 불이 꺼진 곳이 없었다.

내일부터 지예원은 저곳에 청소업체의 직원으로서 출근, 즉 잠입하게 된다. 그 잠입에 앞서 지예원은 정탐도 겸하여 연구소의 모습을 보러 온 것이었다.

‘보안이 꽤 삼엄하네.’

높은 담벼락과 입구에서 철통처럼 경비를 서는 경비원들. 출입 시에는 무조건 ID카드를 제시해야 하며 보아하니 반입, 반출하는 물건들도 일일이 검사하는 모양이었다.

감시 장비 등을 들일 때 꽤나 주의를 요해야겠다며.

멀찍이 떨어진 연구소를 보며 지예원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뭐야. 너도 저 연구소에 들어가고 싶어?”

등 뒤에서 들려온 경쾌한 목소리에 지예원이 기겁하며 거리를 벌렸다.

‘어떻게?’

자신의 등 뒤 지척까지 접근했음에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여명단 첩보원으로서 훈련 받은 지예원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예원이 당황한 눈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나도 어떻게든 들어가 보려고 기를 써봤는데, 저긴 보안 카드가 없으면 입구에도 못 들어가더라고! 덕분에 몇날며칠 계속 이 주변만 맴돌고 있다니까! 하하하핫!”

목소리의 주인은 호쾌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찰랑이는 금발의 앞머리를 반 정도만 이마 뒤로 깐 헤어스타일에 몸에 착 달라붙는 탱크톱과 작업용 바지. 겉으로 드러난 어깨와 팔뚝에는 두꺼운 근육과 힘줄이 돋보였다.

“누구……?”

청년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대하듯 지예원에게 말을 걸었으나, 지예원은 청년이 초면이었다. 그 당황스런 물음에 청년이 아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었다.

“내 정신 좀 봐! 또 모르는 사람한테 갑자기 말을 걸어버렸어!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서로 통성명하면 그때부턴 아는 사이고 친구인 거지! 진수랑도 그렇게 처음 사귀었으니까?”

“저, 실례지만 혹시 누구신지­”

“반가워! 나는 허성찬이라고 해!”

허성찬. 의정부의 슬럼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부업자이자 나주용의 사주를 받아 강하늘의 납치를 꾀했던 자.

그가 얼굴 가득 호쾌한 미소를 띤 채 지예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근데 너 되게 예쁘게 생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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