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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86화 (87/266)

〈 86화 〉 085. 잠시 이별(2)

* * *

나는 다른 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정문으로 향했다.

지예원이 보낸 문자는 나로 하여금 묘하게 불안한 낌새를 느끼게 하였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이유 없이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허나 세상에 이유 없는 불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이유 없는 불안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불안의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

정문으로 향하는 길. 나는 등줄기를 타고 조금씩 올라오는 불안감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불안했다.

“안녕.”

이윽고 정문에 다다랐을 때, 건널목 옆 나무 그늘 아래서 지예원이 날 반겨주었다. 그녀는 흰색 야구모자에 까만 마스크를 쓴 차림새였는데, 아무래도 아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일하는 중일 텐데 불러내서 미안.”

“아냐. 잠깐 정도는 나올 수 있어.”

“그래? 시간 어느 정도 있는데?”

“글쎄. 한 10분 내지 15분?”

“15분…….”

말끝을 흐린 지예원이 엄지손가락으로 정문 앞에 조성된 공원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잠깐 걸을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예원이 몸을 돌려 공원으로 향했다. 커다란 캐리어 가방이 그녀의 뒤를 따라 드르륵 소리를 내며 끌려갔다.

그 캐리어를 보자 새삼 지예원이 멀리 떠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지예원은 내가 이 세상에 빙의한 날로부터 늘 내 곁에 있었다. 안전가옥에 있을 시절엔 함께 살았고 옆집으로 이사 온 뒤에도 심심찮게 마주치며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다.

그런 그녀가 오늘 내 곁을 떠난다.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며 나는 지예원의 옆에 나란히 따라붙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공원 산책로.

오전 시간대라 그런가 공원은 한산했다. 덕분에 우리 두 사람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공원을 거닐 수 있었다.

“우리 어제 저녁에 만났잖아. 내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보자고.”

“그랬지.”

“응. 그랬는데 막상 아침에 떠나려니까 또 보고 싶은 거 있지? 그래서 보러 왔어.”

지예원이 마스크를 턱에 내린 채 배시시 웃었다. 나 또한 마주 웃어주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웃음 뒤에 숨겨진, 부정적인 감정을 엿보았기에.

“……아침에 무슨 일 있었어?”

“얼굴에 티 나?”

“어. 많이.”

“그래? 근데 뭐, 딱히 별일은 없었어.”

“어쨌든 뭐가 있긴 했다는 거네.”

“응. 그냥 시답잖은 일들이 조금.”

지예원이 말하길, 오늘 아침의 자신은 유독 불운이 따랐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다가 욕실에서 미끄러졌다던가.

문지방에 새끼발까락을 찧었다던가.

토스트를 굽다가 시간을 잘못 봐서 홀라당 태워먹었다던가.

계란을 까다가 껍질 조각이 안에 들어갔다던가.

하나같이 그녀의 말마따나 시답잖은 일들이었으나, 그런 자그마한 불행과 불운이 겹치니 괜스레 불안해졌다며. 그래서 만나러 왔다고 지예원이 내게 말했다.

“왜, 보통 소설 같은 거 읽으면 이런 걸 복선이라고 하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불안해지더라.”

“복선이라…….”

마냥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다. 그야 이 세상은 소설 속 세상이었으니.

“……현실에 복선 같은 게 어디 있겠어. 신경 쓰지 마.”

그러나 나는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며 지예원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지예원은 좀처럼 불안이 가시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시기가 너무 공교롭잖아. 너나 나나 이제부터 위험한 일에 발을 들일 예정이니.”

“내 쪽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어제 이야기했잖아.”

“참나. 오버랭크 던전 공략이 위험한 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위험한 일인데?”

“내가 뭐 혼자서 오버랭크 던전에 들어가겠대? 실력 좋은 S급 초인들 사이에 꼽사리껴서 숟가락만 얹는 건데 위험할 게 뭐가 있겠어. 심지어 이미 한 번 가본 던전인데.”

“그때도 가까스로 도망쳤고 그마저도 죽을뻔했다며…….”

“괜찮을 거라니까 그러네. 걱정할 거면 네 걱정이나 해. 나랑 달리 넌 적진에 혼자 잠입해야 하잖아.”

아닌 게 아니라 나는 내 던전 공략보다 지예원의 임무 쪽이 훨씬 걱정이었다.

막말로 나야 주변에 쟁쟁한 헌터들이 있으니 최악의 경우엔 그들에게 맡기고 도망이라도 칠 수 있지, 지예원은 까딱 잘못하면 적진 한복판에서 홀로 싸워야 하지 않는가.

“지예원. 저번에도 말했지만 늘 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응.”

“되도록이면 위험을 감수하지 마. 민채령한테 지킬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알겠어.”

“괜히 무리하려 하지 말고. 딱 최소한의 일만 하면서 몸 잘 사리다가 무사히 돌아오는 게 네 일인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알고 있어. 벌써 너한테서 몇 번이나 들었으니까.”

지예원이 입술을 내밀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그 표정은 그리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한가로이 걷던 지예원이 발걸음을 멈추고 공원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날씨 진짜 좋다. 그치?”

“그러게.”

“생각해보니 너랑 이렇게 산책해본 거 처음인 것 같아.”

“……그러게.”

그 말처럼, 나는 지예원의 옆집에 살면서도 그녀와 이런 가벼운 산책조차 함께 나와본 적이 없었다. 비단 산책뿐 아니라 그녀와 함께 단 둘이서 어딘가를 가본 적 자체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안전가옥에 있을 때엔 그녀의 외출이 불가능했으니 그랬다 쳐도, 그 이후엔 외식이든 뭐든 그녀와 함께 외출할 기회가 차고 넘쳤을 텐데.

‘기껏해야 같이 편의점이나 마트에나 간 게 전부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주말에 같이 시내로 놀러나가 보기라도 할걸. 하다못해 외식 한 번이라도 해볼걸.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으나 그 말대로 이미 늦었다. 지예원은 오늘 이곳을 떠나 용인으로 간다. 거리만 놓고 보면 충분히 만나러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아마 만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민채령이 말하길 놈들은, 여일은 민채령이 개인적으로 둔 부하들마저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내가 그녀의 부하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터. 그런 와중에 내가 연구소에 잠입한 지예원을 만나러 갔다간 그녀의 정체가 놈들에게 들켜버릴 수도 있다.

그녀에게 내려진 임무가 무사히 끝난다면 다시 만날 수야 있겠지.

그러나 지예원에게 겉으로는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나조차 은연중에는 임무가 무사히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불안했다.

돌이켜보면 이 세상에 빙의하고나서 내 주변에서 터지는 일은 늘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감히 단언하길 이는 전부 쾌락천마 탓이었다. 이 세상을 만든 그 가증스런 작가 놈이 보고 싶어 하는 건 아마도 나의 고통이요, 내가 절망에 몸부림치는 꼴일 터. 그 고통과 절망의 일환으로 지예원에게 무언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였다.

‘이중던전 사태로부터도 꽤 시간이 지났으니 슬슬 놈이 다시 한 번 지랄할 때가 되긴 했어.’

그 대상이 이번엔 지예원일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직감했다.

이유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지금 내게 있어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은 지예원이나 강하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는 것. 그렇다면 쾌락천마는 내게 고통을 주기 위해 그 두 사람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테니까.

“복선하니까 말인데.”

그때, 상념에 잠겨있던 내게 지예원이 말했다.

“영화나 소설 같은 거 보면 복선 중에 사망플래그라고 있잖아. 무슨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면 무조건 죽는다는.”

“갑자기 그건 왜.”

“지금 우리 상황이 딱 그 상황 아니야? 위험한 임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만나는 남녀. 보통 영화에서 이러면 둘 중 하나는 꼭 죽던데.”

“불길한 소리 하지마.”

“일부러 이러는 거야. 이렇게 자기 입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느니 사망 플래그니 너스레 떠는 캐릭터는 보통 끝까지 살아남거든.”

“……하핫.”

마치 이 세상이 영화나 소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그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예원은 전혀 예상치 못했겠지만, 참으로 공교롭게도 그녀의 말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딱 맞아 떨어졌으니까.

“그렇게 말하니 불안감이 좀 가시긴 하네.”

빈말이 아니었다. 기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실제로 불안감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소설 속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너스레를 떤 이들은 끝까지 살아남곤 했으니까.

‘어쩌면 이 세상에서도 그럴 지도 모르지.’

내가 빙의한 곳은 소설 속 세상이었다. 만약 이 세상이 아직도 소설의 법칙에 영향을 받는다면, 노골적인 복선일수록 오히려 반대로 작용하게 될 터.

‘……그럼 지금 미리 사망플래그를 잔뜩 깔아놔야 하나?’

설마 그럴 리는 없겠다만, 혹시 모르니. 이 자리에선 한 번 지예원의 장단에 맞춰줘보도록 할까.

“지예원.”

“응?”

“네가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때야말로 반드시 네 마음에 대해 대답해줄게.”

“갑자기 그게 무슨…….”

말끝을 흐린 지예원이 이내 내 의도를 짐작하고 피식 웃었다.

“……그거 참 엄청 노골적인 사망 플래그네.”

“보통 이런 대사 나오면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죽더라고. 네가 죽으면 내 쪽에서 ‘그때 그냥 미리 대답할 걸…….’하고 후회하는 거고 내가 죽으면 네가 내 무덤 앞에서 ‘돌아오면 대답해준다고 했잖아!’하고 펑펑 우는 거지.”

얼핏 저주처럼 들리나 그렇게 될 거라는 예고가 아닌, 결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염원이 담긴 반어적인 표현.

“쓸데없이 디테일한 거 봐. 아주 시나리오를 쓰세요 진짜.”

“그러니까 몸 사리고 조심히 다녀와. 네가 그랬잖아.내가 널 택할지 강하늘을 택할지, 아니면 양다리를 걸칠지 돌아오면 반드시 들어내겠다며?”

“푸흣! 야,내 입으로 그렇게 말하긴 했는데, 네가 직접 말하는 걸 들으니까 좀 쓰레기같다?"

나와 지예원은 뭐가 그리 재밌다고 서로 마주본 채 키득키득 웃어댔다. 불안감을 날리고자 일부러 과장되게 웃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아마 지예원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하여튼. 네가 그쪽에 가있는 동안 고민 많이 해보고 결정할게. 그러니까 넌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

“알았어. 열심히 살아남아서 반드시 네 대답을 들으러 올게. 아, 슬슬 가봐야겠다.”

시계를 확인한 지예원이 길가에 세워둔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그녀와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가 공원 입구로 향했다. 벽돌이 깔린 바닥 위를 캐리어가 가로지르며 드르륵 거리는 바퀴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이윽고 공원 입구가 저 멀리 보일 즈음.

“안수호.”

앞서 가던 지예원이 갑자기 몸을 돌려 내게 달려들었다.

­포옥.

무어라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가 내 품에 안겼다. 헤어지기 전에 포옹이라니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등을 감싸안으려던 순간그녀의 두 팔이 살며시 내 목덜미를 감쌌다.

“지예원?”

지예원은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내 머리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 위에 살포시 포개어졌다.

아주 잠시, 세상이 얼어붙었다.

짧은 순간.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그 찰나가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따스한 입술의 감촉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봄날의 햇살처럼 내 안으로 녹아들어갔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봄꽃의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질였다.

“후으.”

이윽고 입술이 떨어지고. 지예원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날 올려다보았다. 그 입에서 달콤한 숨결이 새어나온다.

"지예원. 너……."

당황한 내가 말끝을 흐리자조금 전까지 내게 포개어져있던 그녀의 입술이 살며시 벌어지며 말했다.

“헤어지는 순간에 이렇게 키스하는 것도 사망 플래그지?”

“……뭐?”

“이번엔 술김에 한 거 아니다?”

지예원은 무어라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내게서 떨어졌다. 반쯤 도망치듯 캐리어를 끌고 뛰쳐나간 그녀가 공원 입구에 서서 다시 내 쪽을 돌아봤다.

“그럼 다녀올게!”

지예원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 특유의 묘한 장난기가 묻어나오는, 여느 때와 같은 활기찬 웃음.

내가 얼떨결에 마주 손을 흔들어주자 그녀는 더 이상 미련은 없다는 듯이 몸을 홱 돌려 내게서 멀어져갔다.

“…….”

이윽고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홀로 남겨진 채 엉거주춤 서있던 나는 손가락으로 살며시 입술을 훔쳤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입가에는 흐릿한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 신기루 같은 따스함을 느끼며 나는 뒤늦은 후회의 한숨을 뱉었다.

‘잘 다녀와.’

그녀의 다녀올게라는 말에 그렇게 대답해주었어야 했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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