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81화 (82/266)

〈 81화 〉 080. 강하늘의 비밀(3)

* * *

묘한 어색함 속에서 강하늘과 헤어진 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도 너무 복잡했다.

강하늘이 어떻게 류태현과 탈리스만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설마 여명단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강하늘은 단역이긴 해도 원작의 빌런이었던 캐릭터.

이 세계에서 아무리 성격이 바뀌었다 한들 그 천성은 그대로일 수도 있다. 어쩌면 쾌락천마가 강하늘이란 캐릭터를 보다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해 여명단과 관련되었다는 설정을 추가했을지도.

‘……아니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믿고 싶지 않았다.

‘자, 어때요? 이 모습,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커스터마이징한 프리셋이거든요. 예쁘죠? 귀엽죠? 눈에 확 들어오죠?’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신데, 걱정되는 게 당연하잖아요.’

‘아무튼 구해줘서 고마워요. 하아, 진짜. 이게 이런 분위기에서 말할 대사가 아닌데…….’

‘아, 그리고 저한테 그렇게 존대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보다 네 살이나 많으시잖아요! 그냥 하늘아, 하고 편하게 부르세요. 저, 저도 편하게 오, 오빠라고 부를 테니까…….’

그간 강하늘이 내게 보여주었던 여러 모습들, 여러 감정들이 빠르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나의 감정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을 짓눌리는 것 같았다.

강하늘은 내 편이다. 그녀는 적이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었으나 오늘 그녀가 내게 보여준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녀를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렇다면 대비할 뿐.

“시발…….”

한참을 고민한 끝에 욕지거리를 내뱉은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일리아나 파우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안쑤호 고객님! 무쓴 일이씹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외국인 특유의 어색한 억양의 한국어가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일리아나. 강하늘에 대한 조사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

­Oh shi…….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놀란 듯한 반응.

“왜 그러죠?”

­Oh.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OK. 강하늘 학쌩에 대한 조싸! 어떤 조싸를 원하씹니까?

“그냥 전반적으로 전부 조사해주세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출신과 배경을 가졌는지. 그리고…… 남들에게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지는 않은지.”

­알겠씁니다! But, 안쑤호 고객님, 아직 저번 의뢰의 대금 지불하지 않으씬 겁니다. 이전 의뢰의 대가를 지불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좋습니다. 경비대 내부의 정보를 원한다고 했죠?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라면 뭐든지 제공해드리도록 하죠.”

­No. No. 제가 원하는 건 안쑤호 고객님께서 이미 알고 있으씬 정보입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라고?’

뜻밖의 말에 넌지시 의문을 표하자 일리아나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 이중던전 싸태 때 안쑤호 고객님의 활약상에 대한 정보를 원합니다. 민채령 팀장이 검열한 진술서 내용이 아닌, 고객님이 직접 그 입으로 말해주씨는 Real Story가 듣고 싶은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일리아나의 말대로, 저번 이중던전 사태 때의 내 행적은 민채령에 의해 검열되었다. 조사 당시 강하늘은 내가 빌헬름과 막상막하로 싸운 끝에 도주했다고(그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두었지만) 진술했으나, 정작 정식으로 올라간 진술서에는 빌헬름과의 교전 부분은 전부 빠져 있었다.

내겐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민채령 멋대로 저지른 일이었으나 나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오버랭크 던전의 보스와 마주치고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사방팔방에서 날파리가 꼬여들었는데 만약 놈과 전투가 성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간 지금보다 더 피곤한 일이 벌어지리라.

헌데 일리아나는 어떤 수단을 통해 민채령이 진술서를 검열했음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나, 그녀의 능력을 생각하면 거기까지야 뭐, 아슬아슬하게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 그 정보를 원하는 거죠?”

왜 일리아나가 저번 의뢰의 보수까지 언급하면서 내 행적에 대한,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전투력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가.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물었으나 일리아나는 짐짓 차가운 태도로 답했다.

­안쑤호 고객님. 제가 탐정 일을 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원칙이 뭔지 아씹니까? 바로 비밀 유지의 원칙입니다.

비밀 유지의 원칙.

일리아나 파우스트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이 받은 의뢰에 대한 정보를 남에게 밝히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비밀 유지의 원칙이었다.

그 말은 즉.

‘누군가 일리아나에게 나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는 거지.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민채령이었으나 그녀는 아마 아닐 것이다. 민채령은 이미 강하늘의 진술을 통해 내 행적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대금을 지불하시겠씁니까?

마음 같아선 일리아나에게 의뢰인이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녀가 대답해줄 리도 없을 뿐더러 그저 그녀와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가는 결과만 될 뿐이다.

‘그래. 나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 자가 있다고 넌지시 알려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적어도 누군가 내 행적을 캐고 있다는 건 알았으니 그게 어딘가.

“좋습니다. 대금을 지불하도록 하죠.”

­알겠씁니다! 이 번호로 고객님께 몇 가지 질문이 쓰인 질문지를 보내드릴 겁니다! 썽씸썽의껏, 양씸에 쏜을 얹고 답해주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제 의뢰는 받아들이는 걸로 알겠습니다.”

­Yes! 강하늘 학생에 대한 조싸 의뢰! 확씰하게 받았씁니다! 조만간 연락드리도록 하겠씁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끝났다. 조금 전의 통화로 기진맥진해진 나는 버스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금 풀리나 싶었더니 또 미친 듯이 상황이 꼬이는구만.’

가뜩이나 슬슬 중간고사 기간이라 원작의 사건도 신경 쓸 게 많은데 아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일리아나의 조사력은 믿을만하지만 이번 건에 한해선 아무리 그녀라도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군.’

만약 강하늘이 여명단원이라면, 일리아나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 이를 어쩐다…….’

창밖으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속초시의 풍경을 보며 나는 상념에 잠겼다.

허나 그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

“강하늘이 여명단원이냐고?”

휴일이라 집에서 쉬고 있던 지예원이 다소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현관에 선 채 반쯤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던 그녀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으음. 현관에 서서 할 이야기는 아닌데, 일단 들어올래?”

그런 그녀의 귀에는 내가 주었던 냉염의 십자가가 귀걸이처럼 이쁘게 걸려있었다. 날 집으로 들인 지예원은 풀썩 침대에 걸터앉았고, 나는 대충 그 앞 방바닥에 털썩 앉았다.

“대답하기 전에 일단 나부터 먼저 물어볼게. 왜 갑자기 걔가 여명단원이 아니냐고 의심하게 된 거야?”

“그건…….”

나는 조금 전 DVD 방에서 있던 일을 설명했다. 강하늘이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 것과, 그 능력의 기원을 설명할 때 류태현이 탈리스만을 얻은 경위를 차용해 거짓말을 했다는 점.

이야기를 들은 지예원은 ‘과연’, ‘그렇구나’ 따위의 추임새를 뱉으며 나름대로 납득하는 모양새였다. 이내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가 내게 말했다.

“강하늘이 여명단원인지 아닌지는 나도 몰라. 같은 단원끼리라고 모두 알고 지내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내 의견을 말하자면, 그 애가 여명단원일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고 할 수 있어.”

“근거는?”

“여명단에 있을 때 내가 걔를 본 적이 없으니까.”

조금 전 자신이 한 말과 상충하는 듯한 대답. 그러나 지예원의 대답은 확실한 이치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린하우스에 파견된 여명단의 스파이였던 건 기억하고 있지?”

“그래.”

“여명단은 온갖 기관에 자기네 스파이를 심어놨어. 그리고 그들은 전원 어릴 때부터 양성기관에서 철저하게 훈련받은 첩보원들이지. 즉, 강하늘이 여명단원이라면 스파이 훈련을 받을 때 나랑 한두 번은 마주쳤어야 해. 걔는 나랑 거의 동년배니까.”

“강하늘이 스파이가 아니라 그냥 일반 단원일 가능성도 있잖아?”

“그럴 리는 절대 없어.”

내 딴에는 당연한 의문이었으나 지예원은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

“그린하우스 같은 중요 기관에 훈련도 받지 않은 단원을 어줍잖게 심어둘 리가 없잖아. 안 그래도 경비가 삼엄한 곳인데 혹시라도 들켜서 잡혔다간 어쩌려고? 안 그래?”

“이미 그린하우스 재학생인 상태에서 여명단원이 되었다면?”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그랬다면 곧바로 자퇴시켰겠지?”

“자퇴……인가.”

그 말에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실제로 강하늘은 학기 초에 그린하우스를 자퇴하려 했으니까.

‘그렇지만 강하늘은 내 의견을 들어 자퇴를 번복했다. 만약 강하늘이 여명단원이라면 내가 아무리 반대한다 한들 자퇴를 강행했겠지. 하지만 그 판단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지예원 개인의 의견뿐이다. 어쩌면 나와 지예원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

상념에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사고가 복잡하게 엉켰다. 내가 입을 다문 채 끙끙거리고 있자 지예원이 넌지시 덧붙였다.

“그리고.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난 그 애가 여명단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어째서지?”

“그냥, 여자의 감?”

……그건 또 뭔 소리야.

나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지예원을 바라봤다.

“여명단의 목적은 지금의 잘못된 사회를 부수고 초인 위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

지예원이 한쪽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 안은 채 말했다.

“그런 사상에 동조해서 여명단에 들어간다는 건 즉 지금 이 사회에 불만이 가득하다는 뜻이거든. 그런 놈들은 눈을 보면 딱 견적이 나와. ‘아, 얘는 지금 삶이 더럽게 팍팍하고 힘들어서 죄다 부수고 파괴하고 뒤집어엎고 싶구나.’ 이런 느낌?”

그런데 강하늘한테선 그런 느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덧붙인 지예원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날 흘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걔는 널 좋아하고 있잖아.”

가늘게 흘기며 내키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날 너도 봐서 알겠지만 강하늘은 널 이성으로서 좋아하고 있어. 여자는 감정적인 동물이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뭘 숨기려면 티가 나는 법이거든. 그래서 묻겠는데 네가 보기엔 어땠어? 강하늘이 너한테 뭔가 숨기느라 급급한 것처럼 보였어?”

“……아니.”

오늘 만났을 때는 그런 기색이 조금 느껴지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늘만의 일.

강하늘은 그동안 내 앞에서 솔직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독심술을 쓴 것도 아니고 그녀가 내게 뭘 숨기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냐만은, 적어도 난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진심과 진실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녀를 소설 속 캐릭터로 생각하던 내가 그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게 되진 않았을 테니까.

“강하늘 걔가 어떻게 류태현의 일을 알게 됐는지는 몰라. 아마 너나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겠지. 어쩌면 그 비밀을 숨기기 위해 그런 거짓말을 한 걸 수도 있고.”

강하늘에겐 강하늘의 사정이 있다.

그러니 너무 추궁하려고만 말고 일단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봐라. 그녀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줘라. 비록 시간이 걸리긴 하더라도 강하늘은 결국 네게 진실을 말해줄 것이다. 그 아이는 그런 아이니까.

그렇게 말한 지예원이 살며시 미소 짓다가 돌연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녀의 입에서 진한 한숨이 새어나온다.

“하아. 근데 내가 왜 걔한테 좋은 말을 해주고 있담.”

지예원이 발끝으로 앉아있는 내 무릎을 툭툭 건드렸다.

“너도 참 웃기다. 나랑 강하늘이 연적 사이인 거 알면서도 강하늘 문제를 나한테 상담하러 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거야?”

“상담이라기 보다는 그냥 네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게 그거지. 덕분에 난 모처럼의 휴일인데 기분만 꿀꿀해졌네. 에잉. 쯧.”

지예원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볼멘소리를 뱉었다. 그러나 말과 달리 정말로 불쾌해보이지는 않았다.

“뭐, 걔한텐 나도 몹쓸 짓을 했으니 이걸로 쎔쎔인가.”

지예원이 말하는 몹쓸 짓이란 저번 술자리가 있던 날의 일을 말했다. 강하늘이 날 좋아하는 걸 뻔히 알고 있음에도 술에 꼴은 그녀를 내버려둔 채 술김에 거사를 치렀으니, 그야 몹쓸 짓이긴 하다.

“미안. 네 기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괜찮아. 아무튼, 이번 일은 나중에 강하늘한테 솔직하게 물어봐. 아마 네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아닐 테니까.”

“그래. 고맙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로 뭘.”

짓궂게 웃어 보이는 지예원을 보며 나 또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기실 해결된 일은 아무것도 없으나,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덕에 조금은 머릿속의 복잡함이 가시는 것 같았다.

“쉬고 있는데 귀찮게 굴어서 미안했다. 난 이만 가볼게. 마저 푹 쉬어.”

“아니. 잠깐 있어봐. 사실 나도 너한테 할 말 있었거든.”

그게 무슨 말이지?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민채령이 나한테 내렸던 임무, 조금 전에 막 구체적인 일정이 나온 참이거든.”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