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079. 강하늘의 비밀(2)
* * *
연심의 벚꽃.
이 세상에 빙의한 내게 주어진 두 개의 특전 스킬 중 하나.
그 정체에 대해서 수호 오빠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었다. 대뜸 당신은 소설 속 캐릭터요, 이 세상은 소설이고 난 바깥세상에서 왔다고 말해봐야 믿을 리가 없으니까.
해명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렇게 자리까지 마련한 이상 그것도 불가능하다.
즉,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한 가지.
나는 지금부터 오빠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것도 오빠가 납득할 정도로, 치밀하고 그럴듯한 거짓말을.
오빠에게 거짓말 따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 능력은”
숨을 깊게 들이쉰다. 가슴에 먹먹하게 차오르는 긴장감을 삼키며 오빠와 눈을 맞춘다.
최대한 태연하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는 오빠를 속이기 위해 미리 준비해온 일련의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그 능력은, 탈리스만을 통해 얻은 거예요.”
“뭐?”
“탈리스만을 얻은 건 입학식 전날이었어요.”
담담히 이어지는 내 말에 수호 오빠의 표정이 점차 경악으로 물든다. 그러나 나는 그저 담담히, 준비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준비한 거짓말.
그것은 이 세상의 본래 주인공, 류태현이 탈리스만을 얻게 된 경위를 차용한 것이었다.
류태현의 탈리스만에 대한 내용이 나온 것은 내가 를 하차하고 한참 지난 뒤의 일. 그러나 나와 달리 여전히 최신화를 따라가던 남동생이 넌지시 알려주었기에 대강의 사정은 알고 있었다.
류태현은 입학식 전날 여명단의 배신자로부터 탈리스만을 받았다. 정확히는 하루만 맡아달라 부탁 받은 거였지만 말이다. 허나 배신자는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류태현은 주인을 잃은 탈리스만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그것이 류태현의 탈리스만에 얽힌 이야기요, 내가 지금 수호 오빠에게 늘어놓는 거짓말의 골자였다.
‘수호 오빠가 류태현의 탈리스만에 대해 알 가능성은 한없이 적어.’
거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왜냐하면 원작부터가 그랬으니까.
탈리스만에 얽힌 이야기는 적어도 내가 를 하차한 200화 부근까지 줄곧 베일에 싸여있었다. 즉, 현재 시점에서 류태현의 사정을 파악한 이는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얼마 안 되겠지.
그리고 그 ‘얼마 안 되는’ 인원에 수호 오빠가 속할 확률은 한없이 적었다.
여명단은 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깊숙한 음지에 위치한 조직. 고작 일개 경비대 대원에 불과한 수호 오빠가 그들의 사정에 대해 빠삭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즉, 이 거짓말은 절대로 들키지 않아.’
거의 100%에 가까운 확신을 가지며 나는 다시 한 번 가능성을 되짚어보았다.
원작에서 류태현은 탈리스만의 비밀에 대해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누군가 그의 손에 있는 탈리스만을 알아차려도 그 습득 경위에 관해선 철저히 함구했다. 고로 류태현이 수호 오빠에게 직접 사정을 알려주었을 가능성은 적다.
반면 수호 오빠가 별도의 수단으로 탈리스만에 얽힌 사정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도 않는다. 뒷세계 깊숙한 곳에서 벌어진 일을 오빠가 무슨 수로 안다는 말인가.
그래. 들킬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한 나는 사고를 다음 단계로 전진시켰다. 오빠가 던질만한 예상 질문을 떠올리고 이에 대한 답변을 되짚어보았다.
‘어지간한 질문에는 모른다고 일관하면 돼. 류태현도 아무런 사정도 모른 채 탈리스만을 받았다고 했으니까. 어설프게 원작 지식을 토대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아예 모른다고 하는 편이’
“하늘아.”
그때. 생각에 잠겨있던 내게 수호 오빠가 넌지시 물었다.
“방금 한 이야기 전부 사실이야?”
“……네?”
수호 오빠의 눈에 떠오른 의심에 빛에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전부 사실이냐니, 그게 무슨…….”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사건의 세부 내용에 대해 묻는 질문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방금 한 이야기가 사실이냐 묻는 질문은, 내 말을 의심하지 않고선 나올 수가 없는 질문이었다.
즉, 오빠는 내 말을 의심하고 있다.
‘어째서?’
단순히 너무 기상천외한 이야기라? 그냥 믿기지가 않아서 사실이냐고 되물은 건가?
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수호 오빠의 눈에 떠오른 의심의 빛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빠의 눈빛, 목소리, 태도, 풍겨오는 그 분위기로부터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설마 제 이야기가 거짓말이라 생각하시는 거예요……?”
수호 오빠는 날 의심하고 있다고.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본능적으로 떠오른 직감이 의식에 경종을 울렸다.
***
“설마 제 이야기가 거짓말이라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가까스로 삼킨다. 당황한 표정을 애써 가다듬으며 나는 강하늘의 태도를 살폈다.
강하늘의 새로운 능력.
대상의 잠재능력을 개방해주는 불가사의한 능력.
그 능력의 기원을 그녀는 탈리스만이라 설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탈리스만을 얻게 된 경위는 원작에서 류태현이 탈리스만을 얻은 경위와 거의 동일했다.
세세한 부분에서, 가령 호숫가에서 지예원을 마주친 류태현과 달리 골목에서 마주쳤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 기본 골자는 동일했다.
동일했기에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동일했기에 의심이 들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간 나는 내가 모르는 일, 즉 원작과 다른 일이 발생하면 으레 쾌락천마 그 놈의 짓이겠거니 싶었다. 놈이 직접 바꾼 변경점이거나, 그 변경점으로 인한 나비효과일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놈은 원작의 핵심을 관통하는 탈리스만을, 본래 주인공에게 갔어야 할 탈리스만을 내게 쥐어주었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알고 보니 류태현 또한 동일한 탈리스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강하늘마저 동일한 날에 여명단의 배신자로부터 탈리스만을 얻었다고 한다.
‘작위적이야.’
진실로 치부하기엔 지나치게 작위적인 이야기.
나는 도저히 쾌락천마가 이딴 식으로 이야기를 짰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놈은 비록 치졸하긴 해도 제 이야기에 대한 프라이드만은 높았다. 이런 작위적인 전개를 놈이 용납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놈이 날 엿 먹이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로서 생각되는 가능성은 둘 중 하나다.’
하나. 강하늘의 말은 진실이며, 어떠한 연유로 인해 그녀 또한 류태현과 마찬가지로 입학식 전날에 탈리스만을 얻게 되었을 가능성.
그리고 둘. 강하늘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게 거짓말을 치고 있을 가능성. 그 경우 강하늘은 어떠한 수단을 통해 류태현이 탈리스만을 얻은 경위를 알아내었고, 그 경위를 자신의 거짓말에 차용했다는 소리가 된다.
“…….”
나는 탈리스만을 숨기기 위해 낀 가죽장갑을 내려다보았다. 그 다음으로는 다소곳하게 허벅지 위에 모여 있는 강하늘의 양손을 보았다. 일단 그녀의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았다.
“탈리스만이라면 장신구의 형태로 몸에 지니고 있겠지. 혹시 보여줄 수 있어?”
“네.”
내 물음에 강하늘이 왼손을 들어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겼다.
반짝.
그러자 그 속에서 살짝 빛나는 자그마한 귀걸이.
작은 원반 형태 한 가운데 푸른 보석이 박힌 귀걸이를 내보이며 강하늘이 말했다.
“이 귀걸이가 탈리스만이에요.”
그 귀걸이를 보자 나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저런 귀걸이가 원래 있었던가. 모른다. 그녀는 늘 옆머리로 귀를 가리고 다녔으니까. 설마 그게 탈리스만을 숨기기 위한 방책이었던 건가? 아니면 거짓말을 위해 평소에 안 보이는 부위에 달 수 있는 악세서리로 귀걸이를 선택한 건가?
일단 색깔은 파란색으로 나나 류태현의 것과 동일하다. 그렇지만 보석의 색이 파랗다고 꼭 탈리스만이란 소리는 아니야.
검증할 수 있을까? 무슨 수로? 탈리스만은 한 번 귀속되면 평범한 장신구일 뿐이다. 탈리스만이 탈리스만임을 알아내려면 원 소유자를 죽여서 귀속을 해제한 뒤에 착용하는 수밖에 없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수많은 상념이 뇌리에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생각을 이어갈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오빠.”
그때. 강하늘이 날 불렀다.
“만약 제 이야기가 믿기 어렵다면, 거짓말이라 느껴지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셔도 돼요.”
강하늘이 불안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그제야 나는 내 미간이 불쾌하다는 듯 찡그러져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뒤늦게 표정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냐. 하늘아. 믿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그럼 제 이야길 믿어주신다는 건가요?”
“그건”
말끝을 흐리며 나는 강하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안하게 떨리는 눈꺼풀. 착잡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힘없이 처진 눈꼬리.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달싹이는 입술.
그것들은 거짓말을 들킬까 조마조마하는 모습으로도, 진실을 말하고 있음에도 믿어주지 않아 억울해하고 슬퍼하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렇게 보이는 애매한 징후들.
‘아.’
그 순간 번뜩인 아이디어에 나는 강하늘에게 들리지 않도록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상태창.”
직후, 내 시야에 강하늘의 상태창이 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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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늘’의 상태창 ]
이름 : 강하늘
성별 : 여성
신장/체중/나이 : 161cm/47.3kg/20세
직업 : 아카데미 재학생
소속 : 그린하우스 헌터과 1학년 1분반
보유 초능력 : 아바타(C)
[ 능력치 ]
근력 D
민첩 C
내구 D
마력 B
기교 B
의지 C
행운 D
[ 보유 스킬 ]
1. 슬로우 스타터(유니크. S)
2. 연심의 벚꽃(레전더리. S)
===
“아.”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내 시선이 상태창의 가장 밑단에 고정된다. 보유 스킬. 연심의 벚꽃. 그날 강하늘이 내게 사용한 능력은 아마 이것이리라. 그녀의 가슴에 떠오른 벚꽃 모양의 문양도 그렇고, 애초에 보유 초능력 칸에는 아바타 능력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래. 바로 그게 결정적인 증거였다.
강하늘의 상태창을 옆으로 옮긴 나는 빈 공간에 내 상태창을 띄웠다.
===
[ ‘안수호’의 상태창 ]
이름 : 안수호
성별 : 남성
신장/체중/나이 : 182.3cm/76.5kg/24세
직업 : 아카데미 경비원
소속 :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보유 초능력 : 검은 연기(D), 마력 흡수(A)
[ 능력치 ]
근력 D+*
민첩 C+*
내구 D
마력 C
기교 C
의지 C
행운 B
1. 의 착용 효과에 의해 근력과 민첩에 플러스 보정이 붙습니다.
[ 보유 스킬 ]
1. 아카데미의 경비원(유니크. D)
2. 서리정령의 계약(유니크. E)
===
내가 탈리스만으로 얻은 능력, ‘마력 흡수’는 ‘보유 초능력’ 칸에 기재되어 있었다. 이는 언젠가 보았던 류태현의 상태창 또한 마찬가지.
즉 탈리스만을 통해 얻은 능력은 상태창에서 보유 초능력 칸에 기재된다.
반면 강하늘의 보유 초능력은 아바타 능력 하나뿐.
즉, 강하늘이 내게 사용했던 그 능력은 ‘검은 연기’나 ‘마력 흡수’ 같은 초능력이 아니다.
즉, 강하늘은 탈리스만을 사용하지 않았다.
즉, 강하늘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녀의 귀걸이는 탈리스만이 아니다. 저 ‘연심의 벚꽃’이라는 능력의 기원 또한 탈리스만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류태현이 탈리스만을 얻게 된 경위를 알고 있고 이를 자신의 거짓말에 차용했다는 것.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단순히 우연히 김민아가 류태현에게 탈리스만을 넘기는 장면을 보았다고 해서 이토록 자세히 사정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할 터.
류태현은 그날의 일에 대해 경비대를 제외하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즉 류태현으로부터 사정을 직접 들은 것도 아니다. 애초에 직접 들었다면 내가 그날의 일을 알고 있다는 것도 들었을 테고.
즉 강하늘은 어떠한 독자적인 루트를 통해 류태현의 탈리스만에 얽힌 사정을 알아내었고, 내가 그걸 모를 거라 생각해 자신의 거짓말에 류태현의 사정을 차용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독자적인 루트라.’
당장 떠오르는 건 두 가지밖에 없었다.
경비대. 혹은 여명단.
류태현이 직접 말해주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강하늘이 류태현의 탈리스만에 대해 알아낼 방법은 그 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린하우스 경비대는 절대로 외부인에게 사건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다.
‘설마.’
강하늘이 여명단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게 아니고서야 강하늘이 어떻게 류태현의 탈리스만에 대한 일을 알아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자, 강하늘이 재촉하듯 다시금 물어왔다.
“정말 제 말을 믿어주시지 않는 건가요……?”
강하늘이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젠 그 표정조차 진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차라리 곧이곧대로 물어볼까.
방금 네가 말한 사정은 류태현이 탈리스만을 얻게 된 경위가 아니냐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왜 내게 거짓말을 했냐고. 그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냐고.
그러나 대놓고 물어본다 한들 대답해줄 리가 없었다. 물어봐서 대답해줄 거였으면 애초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짧게 고민한 나는 강하늘을 보며 살며시 웃어주었다.
“아니, 믿을게.난 하늘이 널 믿어.”
웃어주며 그녀의 거짓말을 믿노라고 긍정했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하는 게 최선이었다. 쓸데없이 그녀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내가 그녀의 거짓에 속아넘어갔다고 그녀가 믿도록 이렇게 대답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야만 그녀에 대해 조사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믿어주셔서 고마워요.”
내 대답에 강하늘이 기쁜듯 하면서도 묘하게 서글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조차 이제는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