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75화 (76/266)

〈 75화 〉 074. 한겨울의 약점(1)

* * *

민채령과 담판을 지은 그날 오후. 강당에서 이뤄지는 유명 헌터의 강연에 나는 강당으로 향하는 길목의 경비를 서게 되었다. 파트너인 채소연과 함께.

다만, 그녀는 30분 전 화장실에 간다면서 강당으로 들어간 뒤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

30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다기에는 지나치게 긴 시간이지만, 여성이 화장실을 가는 이유가 꼭 대소변 처리만은 아닐 터였다.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거나 화장을 고친다거나 하는 이유도 있을 터.

‘하지만 채소연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다.

땡땡이.

‘시발년…….’

어째 투입 때부터 입이 삐죽 앞으로 튀어나와 있더니 기어코 근무를 째는구나. 내 전에 그녀와 파트너였던 이태호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눈에 훤했다.

‘모르겠다 시발.’

전화라도 걸어서 당장 오라고 말할까 싶다 이내 그만두었다. 임무라고 해봐야 어차피 강당 앞 길목만 지키면 되는 일. 굳이 채소연이 없어도 지장은 없었다.

길 모퉁이에 세워진 가로등에 몸을 기댄 채, 나는 쭉 뻗은 도로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어라. 수호 형?”

“응?”

그 순간 길목 반대편, 그러니까 강당 방향에서 누군가 날 불렀다.

“뭐야. 태현이 너가 여긴 웬 일이냐?”

“강연 듣다가 중간에 빠져나왔어요. S급 길드 인사담당자라길래 뭐 좀 도움 되는 이야기 좀 하나 했더니 40분 째 뜬구름 잡는 소리밖에 안 해서.”

그 정체는 류태현이었다. 애초에 이 세상에 날 형이라고 부르는 상대가 류태현 말고 달리 없기도 하고.

“아, 이쪽은 저랑 같은 분반 동기에요. 이름은 나은솔.”

“나은솔……?”

그 말에 나는 그제야 류태현의 뒤편에 숨어있던 자그마한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키는 150 중반 정도. 콧잔등에 닿을 정도로 애매하게 자란 앞머리가 살포시 눈을 덮고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녹색 눈동자가 음침하게 이쪽을 훑는다.

“은솔아. 이쪽은 경비대 특수대책과의 안수호 대원님. 내가 저번에 말했지? 강하늘 구해주신 분이라고.”

“응. 기억 나.”

류태현의 뒤편에서 슬쩍 나온 나은솔이 내게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수호 대원님. 그린하우스 헌터과 1학년 1분반 나은솔이라고 해요.”

“예에. 안수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의 바르면서도 어딘가 어두운 그 자기소개에 내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설마 여기서 나은솔을 만날 줄은…….’

나은솔. 그녀는 원작에 등장했던 류태현의 히로인 중 한 사람이었다. 아니, 고작 ‘히로인 중 한 사람’이라는 말로는 그녀의 개성을 반도 표현할 수 없었다.

나은솔은 양아름과 함께 원작 후반부까지 류태현의 곁에 남았던 두 히로인 중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녀는 극심한 얀데레요, 자신과 상대방의 목숨조차 신경 쓰지 않는 극도의 집착에 결국 류태현의 손에 의해 억지로 다른 남자에게 분양당한 비운의 히로인이었다.

‘분명 서로간의 관계가 피폐일로로 치닫자 나은솔의 안전을 명목으로 조연 남캐랑 외국으로 피신시켰던가.’

나은솔이 그 조연 남캐랑 이어진 건 아니었지만 사실상 분양이나 다름없는 처사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전개에 대한 여론은 반반으로 갈렸다. 그녀가 보인 얀데레적인 집착이 워낙 수위가 높았기에.

가령 원작에서 한겨울은 2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나은솔이 획책한 정치질 때문이었다. 나은솔이 한겨울을 모함한 이유는 물론 류태현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그런 극단적인 행보를 보이던 히로인이었기에 나은솔 팬덤은 다른 히로인들의 팬덤으로부터 배척받는 경향이 강했다. 애초에 팬덤 자체가 얼마 없기도 했고. 그런 주제에 거의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주인공 곁에 남을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쾌락천마의 악취미 덕분이리라.

“…….”

하여튼. 나은솔은 히로인이되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히로인이었다. 원작에선 류태현과 중간고사가 끝나고부터 관계가 진전되었으니 지금은 슬슬 안면을 트며 친분을 다지는 중이겠지.

‘……귀띔해줘야 하나?’

원작 중반 이후의 전개가 악화일로로 치달은 것엔 나은솔의 지분도 어느 정도 있었다. 고로 내게는 적정 시점에서 그녀의 행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환으로 나은솔의 정체를 류태현에게 경고해줄까 싶었으나.

‘아니,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은솔이 류태현을 좋아하게 되면 골치가 아픈 건 사실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는 류태현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동료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감정이 연심으로 발전하는 것은 막되, 어느 정도의 친분은 쌓도록 방치하는 편이 좋겠지.

“…….”

내가 내 나름대로 행동방침을 정하는 동안, 나은솔이 나를 말없이 빤히 바라봤다. 앞머리 사이로 빛나는 녹색 눈동자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내 얼굴에 고정되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게 대답한 나은솔이 한 발자국 물러났다. 마치 제 할 말은 다 끝났다는 듯.

그러자 바톤을 터치하듯 류태현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맞다 형. 혹시 요 근래에 겨울이가 형 찾아오지 않았어요?”

“어. 한 번 찾아오긴 했지. 그게 왜?”

“겨울이가 혹시 형보고 자기 훈련 좀 도와달라고 하던가요?”

“어어. 그렇게 말했어.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한겨울이 내게 도움을 구한 것을, 널 이기기 위한 훈련을 도와달라 한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내 물음에 류태현이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겨울이한테 형을 추천한 게 저거든요.”

“뭐?”

“겨울이가 랭킹전에서 계속 저한테 지기만 해서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벽에 가로막힌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그 벽을 극복하는 데에 형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넌지시 형에 대해 말했죠. 겨울이가 형한테 가서 훈련을 도와 달라 말하게끔.”

“네 말을 한겨울이 순순히 따랐다고?”

“넌지시 말했다고요 넌지시. 그냥 형이 저랑 비슷하게 강한 초인이다, 저번에 함께 싸워보니 알겠더라. 뭐 대충 이런 식으로만 말했죠.”

“하하…….”

내가 류태현과 비슷하게 강하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였다.

‘하지만 류태현이 한 말이 마냥 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현재 한겨울이 봉착한 벽을 극복하는 것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은 사실이었으니까.

“한겨울이 봉착한 벽 말인데, 그거 초능력 컨트롤 문제 말하는 거지?”

“오. 용케 알아차리셨네요? 저도 얼마 전에야 깨달은 건데.”

“그냥 그럴 것 같더라고.”

차마 원작을 읽어서 알고 있다곤 대답할 수 없었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한겨울을 가로막은 벽, 다르게 말해 한겨울의 약점은 그녀를 주의 깊게 살피기만 하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문제였다.

한겨울의 초능력은 발화능력. 몸에서 불꽃을 뿜어낸다는 그 심플한 능력은 초능력 계통 상 방출계라는 계통으로 분류된다. 여기서 말하는 방출계란 초능력을 통해 특정한 물질이나 에너지를 방출 및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겨울은 그중에서 후자, 조종 능력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한겨울의 초능력은 단순 화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그 강한 화력 탓에 반대급부로 컨트롤은 남들보다 미숙한 면이 있었다. 어지간한 적이 상대라면 그저 압도적인 화력으로 찍어 누르기만 하면 되니 컨트롤 부족이 티가 나지 않을 테지만, 류태현처럼 호각의 적을 상대로는 아무래도 그녀의 약점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겨울은 그런 자신의 약점에 대해 모른다.’

아니, 모른다기 보다는 일부러 간과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으리라. 컨트롤 능력이 딸린다면 더욱 강한 화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고자 하는 게 한겨울의 성격이니까. 물론, 그런 주먹구구식 방식은 류태현과 같은 강적을 상대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가 매번 류태현과의 랭킹전에서 죽을 쑤는 것이고.

한겨울이 류태현을 이기려면 스스로의 약점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류태현은 내가 한겨울의 약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왜냐하면 나 또한 그녀와 같은 방출계 능력자였으니까.

“형은 싸우실 때 근접격투에 더불어 초능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시잖아요? 그런 형이랑 싸우다 보면 겨울이도 자기 컨트롤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일리 있는 말이야. 같은 계통의 능력자와 싸우면 서로의 장단점이 유독 잘 보일 테니까.”

내 컨트롤 능력이 한겨울보다 뛰어나다는 전제 하에만 성립하는 말이었지만 그 점은 걱정할 것 없었다. 저번에 확인한 그녀의 상태창에 표시된 기교 능력치는 D. 그에 비해 나는 C였다. 내가 그녀보다 기교가 뛰어나다는 건 시스템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나보다 기교 능력치가 낮다는 건 그만큼 한겨울의 약점이 심각하다는 거야. 1분반에서 기교가 C를 넘지 못하는 건 아마 한겨울 밖에 없겠지.’

류태현은 말하자면 그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 역할을 내게 맡긴 셈이었다.

“네. 아무튼 잘 부탁드릴게요 형. 사실 제가 직접 면전에 대고 걔한테 컨트롤 구리다고 말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귓등으로도 안 들을 테지. 한겨울은 남의 조언을 듣는 성격이 아니니까.”

“잘 알고 계시네요.”

정확히는 자신이 인정한 자 이외의 조언은 듣지 않는다. 물론 한겨울은 류태현을 인정했겠지만 그는 현재 그녀의 라이벌. 라이벌의 조언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걸 한겨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겠지.

“……태현이 넌 왜 그렇게까지 겨울이한테 신경 쓰는 거야?”

그때, 잠자코 있던 나은솔이 넌지시 류태현에게 물었다.

“겨울이가 강해져봤자 너한텐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 네 순위를 위협하는 거의 유일한 상대인데. 이대로 약한 채로 있는 게 너한테도 좋지 않아?”

“랭킹전 순위만 생각하면 물론 그렇겠지.”

그렇게 대답한 류태현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재미……?”

“그래, 재미. 기왕 싸울 거 강한 상대랑 싸우는 편이 더 재미있잖아. 안 그래?”

그 전투광스러운 대답에 나은솔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류태현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류태현은 약점을 극복한 한겨울과의 일전이 기대되는지 연신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에 나은솔이 넌지시 그에게 물었다.

“강한 상대랑 싸우는 게, 재미있어? 그럼 나는?”

“은솔이 너? 너도 물론 강하지! 지금 순위가 6위던가? 얼른 나 있는 곳까지 올라와. 기대하고 있을게.”

“기대, 한다고?”

그늘진 그녀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오른다. 류태현의 말을 몇 번이나 곱씹은 그녀가 이내 기쁜 듯 중얼거렸다.

“응, 얼른 올라갈게. 한겨울도 다른 애들도 다 제치고, 반드시 네 곁으로 갈 거야.”

네 곁으로 가겠다. 그 말이 어째 다른 의미로 들린 나는 팔에 돋은 소름을 살살 문질렀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는 건 중간고사 이후일 텐데. 저 태도는 이미 류태현에게 단단히 빠져있는 것 같은데.’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전개가 바뀐 건가. 불안한 가정을 품으며 나은솔을 바라보자 그녀가 슬쩍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앞머리에 가려진 녹색 눈동자가 은은한 안광을 뿜었다.

***

그리고 시간은 흘러, 그 주 토요일.

그린하우스 인근에 자리한 한성그룹의 사유지 중 한 곳. 가로세로 150미터의 드넓은 벌판에서 나는 한겨울과 마주섰다.

한겨울과 대련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한성그룹 소유의 훈련 시설이라도 가나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날 데리고 온 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왜 이런 곳에서 대련을 하느냐고 그녀에게 묻자.

‘? 훈련 시설이 제 화력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라고 상큼하게 대답해주었다. 그 말은 즉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는 이곳에서 최대 화력을 아낌없이 퍼붓겠다는 소리이리라.

‘진심으로 싸우겠다는 뜻이지.’

한겨울은 내가 류태현에 준하는 강자로 알고 있다. 아니, 비단 한겨울뿐만 아니라 저번 이중던전 사태의 전말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류태현보다 강하다 생각하는 자가 훨씬 많겠지.

그렇기에 한겨울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전력을 부딪히려 하고 있었다. 이쪽의 사정은 알지도 못한 채.

‘한겨울이랑 맞상대가가능하려나……?’

제안 자체를 수락한 건 나였으나 막상 그녀와의 대련을 앞에 두니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드래곤의 브레스에 비견되는 불꽃. 내 스펙으로는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겠지.

‘샛별의 숨소리의 가속으로 어지간한 공격은 다 피하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은 연기로 막아내고, 연기를 뚫고 들어오는 열기는 서리정령의 증표로 식히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 놓고 보니 내가 가진 패들은 하나같이 한겨울을 상대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공교롭다면 공교로운 우연이었다.

“그럼 서로 실력도 확인할 겸 슬슬 시작하죠. 제가 먼저 갈까요? 아니면 그쪽에서 먼저?”

“제가 먼저 공격하죠.”

그 말에 한겨울이 어디 한 번 들어와 보라는 듯, 양손에 거센 불꽃을 일으키며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내 양손에 끼워진 탈리스만과 샛별의 숨소리가 각각 푸르고 붉은 빛을 토해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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