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67화 (68/266)

〈 67화 〉 066. 술이 들어간다(1)

* * *

퇴원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전날 한겨울이 내게 제시했던 거래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봤다.

문무양도에 재색겸비. 한겨울은 명실상부 1학년 신입생 중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다. 학생이었다만, 랭킹전에 한해서는 류태현에게 밀려 만년 2위 신세였다.

한겨울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저 류태현이 규격 외로 강한 것일 뿐이었다. 적어도 작품 중반부 전개에 도달하기 전까지 1대 1로 그를 고전시킬 수 있는 자는 나타나지 않겠지.

그런 그를 이기기 위해 자신의 수련을 도와달라. 한겨울의 그런 요구가 처음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대충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제 샌드백이 되어주세요.’

한겨울의 요구는 딱 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물론 한겨울이 실제로 저렇게 말한 건 아니었다. 다만 내용이 그렇다는 말이었다.

한겨울은 자신이 류태현에게 계속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경험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한들 결국 재벌집 아가씨인 한겨울과, 아카데미 입학 전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류태현의 경험은 하늘과 땅 차이일 테니까.

한겨울이 내게 부탁한 건 그러한 경험의 보충이었다. 헌데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왜 굳이 내게 부탁하느냔 점이었다. 한성 그룹의 능력이라면 대련 상대를 구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닐 텐데.

그런 내 의문에 한겨울은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당신의 능력이 제 능력의 완벽한 카운터기 때문이죠.’

완벽한 카운터라. 처음 들었을 땐 명쾌하기는커녕 무슨 소리인가 싶어 반문했으나,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자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불꽃은 연기를 태우지 못한다. 원○스에도 나오는 내용이잖아요? 제가 에이스고 당신이 스모커인 거죠.’

하필이면 비유를 들어도 그런 비유를 드냐 싶었으나 이해는 단번에 되었다. 그녀의 말처럼 불꽃은 연기를 태우지 못한다. 반면 내 연기는 그녀의 불꽃을 가두거나 꺼뜨릴 수 있다. 완벽……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녀 입장에서 성가신 능력이긴 하겠지.

물론 그녀가 고작 능력의 상성 하나만 보고 내게 훈련을 도와달란 부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내 초능력만큼이나 나의 대인전 능력, 나아가서 나의 종합적인 전투능력을 높이 사줬다.

여명단 간부, 뒷세계의 청부업자, 그리고 빌헬름에 이르기까지. 내가 지금껏 맞붙은 이들의 면면은 하나같이 강자들밖에 없었으니까.

……실상은 죽기살기로 발버둥친 끝에 이룩한 승리들이었으나 그녀가 그런 내 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종합하자면, 한겨울에게 있어서 안수호는 뛰어난 전투능력에 더불어 자신의 초능력을 완벽하게 카운터치는 능력의 보유자였다. 대인전 능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 상대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으리라.

그렇기에 그녀는 내게 자신의 훈련을 도와달라고 부탁해왔고, 잠시 고민한 나는 이내 그 제안을 수락했다.

주요 등장인물이자 히로인인 한겨울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게다가 이 기회를 통해 그녀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원작 중반부부터 시작되는 가혹한 전개를 버티려면 지금의 한겨울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일처리 하난 확실하군.”

그 결과, 오랜만에 돌아온 집 앞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기자도 스카우터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한겨울이 손을 써준 덕분이었다.

­끼이익. 철컹.

경첩이 녹슨 문을 열자 아늑한 원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세상에 빙의하고 약 두 달. 이제는 이곳이 내 집이구나 싶었다.

병문안 선물로 온 과일이나 주스를 냉장고에 집어넣고 나는 곧바로 목욕 준비부터 시작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샤워를 하지 못해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다. 저녁은 대충 배달 음식으로 퉁치면 될 테고, 일단은 뜨끈한 물로 샤워부터 하고 싶었다.

­띵동!

그때 울리는 초인종 소리.

“누구세요?”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 싶어 되묻자 현관문 너머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집 사는 예지원인데요! 혹시 안수호 씨 퇴원하셨나요?

그 목소리의 정체는 예지원……그러니까, 지예원이었다. 옆집에 살다보니 내가 돌아온 기척을 알아차렸나보다.

문을 열자 박시한 흰색 티셔츠에 돌핀 팬츠 차림의 지예원이 서있었다. 머리카락에 살짝 물기가 맺힌 걸 보면 방금 막 씻은 모양이었다. 아마 지금 막 퇴근한 참이겠지.

“오, 멀쩡하네? 퇴원했으면 퇴원했다고 말을 하지 왜 말도 없이­”

내 몸을 위에서 아래로 쭉 훑던 그녀의 눈동자가 움찔 떨렸다. 그 시선이 내 어깨나 가슴 근처를 왕복한다.

“아, 미안.”

이제 막 씻으려던 차여서 위쪽은 런닝밖에 입지 않은 채였다. 아무리 편한 사이라고 해도 손님을 맞을 복장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자들은 남자의 런닝을 속옷 비슷한 걸로 받아들인다고도 하고.

“아……. 옷 갈아입던 중이었어?”

지예원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괜히 머쓱해진 내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어. 지금부터 씻으려고 했지.”

“응. 그런가보네.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올까?”

“무슨 일로 왔는데?”

“그냥. 나도 막 퇴근하고 씻은 참이라. 너 밥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먹으려고 했지? 저녁은 어떻게 할 거야?”

“대충 배달시키려고 했는데.”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대답에 지예원이 방긋 웃으며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막 퇴원한 참인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지. 집에 부대찌개 재료 사놨는데 같이 먹을래? 내일 아침에도 먹으려고 해서 넉넉하게 준비했거든.”

“나야 좋지.”

사실 나는 배달 음식보다 직접 요리한 집 밥을 훨씬 좋아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가급적 식사는 내가 직접 만들려고 노력한다. 오늘이야 갓 퇴원한 참이라 재료도 없고 귀찮아서 배달 음식을 시키려던 거였고.

그런 와중에 지예원이 직접 저녁을 차려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 20분쯤 걸리니까 천천히 씻고 있어. 문 열어둘 테니까 알아서 들어오고.”

그렇게 말한 지예원이 묘하게 들뜬 기색으로 제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채 화장실로 향했다.

곧 샤워를 끝마치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자, 알싸한 매운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통통통통통.

현관에 들어서 고개를 돌리자 원룸 한 켠의 주방에서 지예원이 경쾌한 소리를 울리며 대파를 썰고 있었다. 그 옆에선 부대찌개로 보이는 빠알간 국물이 팔팔 끓는 중이었다.

“어, 왔어? 빨리 왔네?”

“뱃가죽이 등에 붙어서 재빨리 씻었지.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어?”

“별로? 아, 그릇이랑 수저만 좀 놔줄래?”

“OK.”

지예원의 옆으로 비집고 들어가 찬장에서 식기를 꺼낸다. 그 전에 왔을 때의 살풍경한 모습과 달리 이제는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원룸 풍경. 찬장에 들어있는 고양이 발모양 그릇을 보며 피식 웃은 내가 탁자로 향했다.

“어?”

헌데 그 탁자 위에 이상한 게 놓여 있었다. 샛노란 빛깔의 액체가 담긴 병과 길쭉한 유리 잔. 이건…….

“웬 샴페인이야?”

“그거? 저번에 알바처 점장님이 선물로 주셨어. 혼자 마시기 그랬는데 마침 잘 됐다 싶었지. 그 샴페인으로 너의 무사 귀환의 축배나 들자고. 어때?”

“부대찌개에 샴페인은 좀 그렇지 않냐?”

“참나, 그런 거 따질 정도로 고급 입맛이었어? 아, 근데 막 퇴원한 차라 술은 좀 그런가?”

“어…….”

그 물음에 내가 말끝을 흐렸다.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생각해보니 여기 와서 술을 마셔본 적이 한 번도 없네.’

원래 나는 술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빙의하고 두 달이 다 되어갈 때까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은 건, 아마 그간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비루한 능력치로 이 세상에 던져져 당장 내일의 삶도 불확실한데 술이 가당키나 하는가. 일과가 끝나고 남는 시간엔 근력운동이니 초능력 훈련이니 하는 것들로 보내느라 술 따위 입에 댈 겨를이 없었다. 그 사이에 특책과 회식이 한두 번 있었긴 했으나, 공교롭게도 다 내가 입원한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몸 상태는 딱히 나쁘지 않은데.’

그 비싼 포션을 탈탈 털어 넣다시피 한 터라 신체적 이상은 없었다. 게다가 초인의 몸에 샴페인 한 병 정도야 기별도 가지 않을 테고.

그간 아득바득 필사적으로 달려왔는데, 오늘 하루 정돈 좀 편안히 쉬어도 되지 않을까.

­뽕!

코르크 마개를 누른 채 병목의 철사를 풀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코르크가 밀려나왔다. 알싸한 알코올 향이 코끝을 살며시 간질인다.

“말도 없이 혼자 따버리네. 그렇게 술이 그리웠어?”

“어. 그리웠지.”

콜콜콜 샴페인을 따르자 지예원이 넓은 냄비에 담은 부대찌개를 들고 왔다. 국물이 적고 자작한 비주얼이 딱 술집 안주로 나오는 부대찌개였다.

“와, 직접 보니 진짜 더럽게 안 어울린다. 부대찌개랑 샴페인.”

“아하하하! 그렇긴 하네. 그럼 샴페인은 한 잔만 하고 다른 술 깔까? 냉장고에 몇 병 있는데.”

아예 각을 잡고 술판을 벌이려는 듯한 지예원의 모습에 내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술은 잘 먹는 편이야?”

“나? 난 완전 주당이지. 범죄자랑 술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관계거든. 임무 없을 땐 같은 조 사람들이랑 사흘에 한 번은 술판을 벌였지. 넌 어떤데?”

“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아.”

대학교 개강총회 때마다 취한 애들 챙기는 건 늘 내 몫이었다. 주량으로는 어지간해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뭐, 덮어놓고 마시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각자 내일 일도 있으니까 적당히­”

­우우우웅.

그때, 지예원의 말을 끊듯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뭐야? 전화?”

“어. 잠깐 나가서 통화 좀 하고 올게.”

화면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현관을 나섰다. 지예원 앞에서 받기에 조금 껄끄러운 상대였기에.

통화 버튼을 누르자 발랄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오빠! 저 하늘이에요. 오늘 퇴원하셨다면서요?

강하늘이 모처럼 병문안을 갔는데 내가 이미 퇴원한 뒤였다며 투덜거렸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어제오늘 연락이 안 되던데 무슨 일 있었어?”

내가 깨어난 뒤로 강하늘은 줄곧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나로선 걱정도 되고 답답할 노릇이었다.

­아, 그거요? 별 일 아니에요.

“무슨 일이었는데?”

­그냥 제가 오빠 연락 씹은 건데요?

“……뭐?”

강하늘이 일부러 내 연락을 씹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아니, 그게 당당하게 할 소리인가?

­오빠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그 능력에 대해서요.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기실 내가 강하늘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한 것도 절반 정도는 그녀의 스킬, 연심의 벚꽃에 대해 묻기 위해서였으니까.

­퇴원하셨으면 지금 집이시죠? 오빠만 괜찮다면 지금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밖에서 만나기엔 듣는 귀가 신경 쓰여서…….

“아니,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지금 누구랑 저녁 식사 중이거든. 아니면 늦게라도 괜찮으면 그때 올래?”

­저녁식사? 누구랑요?

“옆집 사는 예지원이라­”

‘아뿔싸.’

대답하다 말고 숨을 삼킨다. 강하늘에게 밝혀선 안 될 내용이었는데 무심코 그대로 말해버렸다.

‘내가 지예원이랑 같이 있는 거 알면 엄청 신경 쓸 텐데…….’

아니나 다를까, 내 말을 들은 강하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말이 없다가, 곧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왜요?

왜요. 그 짧은 한 마디에 그토록 깊은 감정이 묻어날 수가 없었다.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내가 미안하다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 그. 옆집이라 내가 집에 돌아온 걸 바로 알아차리더라고. 그래서 그, 퇴원한 기념으로 같이 식사나 하자고 그래서. 마침 집에 저녁 찬거리도 없고, 배달 음식보단 집 밥이 나을 것 같아서 신세 좀 지려고 했지……?”

­그럼 지금 그 예지원이라는 사람 집이겠네요?

내가 그렇다 답하자 그녀가 숨을 삼켰다.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낭패였다. 강하늘은 날 좋아하고 있었다. 그간의 태도도 그렇고 당장 내게 사용한 스킬의 이름부터가 연심의 벚꽃이지 않은가. 지예원은 아직 아리송하지만 강하늘에 대해선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날, 안수호라는 인간을 명백하게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퇴원하자마자 다른 여자랑, 그것도 그 여자의 집에서 단둘이 저녁을 먹고 있다는데 신경이 안 쓰일 리가.

‘……설마 갑자기 칼 들고 찾아오진 않겠지?’

현실이라면 그런 극단적인 여자가 어디 있겠냐 싶겠지만 이곳은 소설 속 세상이었다. 게다가 마침 에는 얀데레 히로인이 둘이나 있었다. 실제로 원작에서 류태현이 비슷한 일을 당하기도 했고, 그에게 벌어진 일이 내게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강하늘이 나지막하게 내게 고했다.

­……저 지금 그쪽으로 갈게요.

“뭐?”

­왜요? 안 돼요? 퇴원을 기념하는 자리면 사람이 많을수록 좋잖아요?

그렇게만 말하면 맞는 말이었다. 허나 강하늘의 의도가 그런 건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이야 눈 감고도 알 수 있었다. 뇌리에 시퍼런 식칼을 든 채 생긋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강하늘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그,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집 주인이 허락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물어봐주세요. 제가 가도 되겠냐고.

“안 된다고 할 거 같은데…….”

­물어봐주세요.

강하늘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 변화에 불안감을 느끼며 나는 날 기다리고 있던 지예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혹시 한 사람 더 합석해도 되겠느냐고.

“누군데?”

그 질문에 강하늘이라고 답하자 그녀의 눈이 게슴츠레 옆으로 찢어졌다. 곧 그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린다.

“그래. 오라고 해. 나는 상관없어.”

“어, 어어?”

“사람이 추가되면 지금 있는 요리만으론 부족하겠네. 간단한 안주 몇 개만 더 만들어둬야겠다.”

그렇게 말한 지예원이 주방으로 향했다. 아니, 진짜?

“정말 불러도 돼?”

“부르라니까? 난 정말 상관없대도?”

어딘가 음흉한 웃음을 띤 지예원의 대답. 별 수 없이 나는 강하늘에게 지예원의 답을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지금 갈게요.’라는 한 마디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좆된……건가?’

눈앞에 차가운 식칼을 들이민 채 입가에 묻은 피를 할짝이는 강하늘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니, 최악의 경우에도 그럴 일은 없겠지. 일단 나도 지예원도 강하늘보단 강하니까.

‘그래도 설마 지예원이 이걸 허락해줄 줄은…….’

강하늘의 반응이야 예상한 바였지만 지예원의 허락은 의외였다. 저번에 레스토랑에서 서로 헐뜯던 두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면 단번에 거절할 줄 알았는데.

‘……설마 지예원은 날 안 좋아하나?’

문득 떠오른 가능성에 고민하다 괜히 얼굴이 화끈해졌다. 좋아한다고 고백 받은 것도 아니면서 상대가 날 좋아하네 마네 지레짐작하는 꼴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정황상 지예원도 날 좋아하는 것 같긴 하지만? 어쩌면? 나 혼자 김칫국 한 사발 거하게 들이킨 걸지도?

복잡해져만 가는 머릿속에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지예원은 숫제 콧노래까지 부르며 강하늘을 위해 새로운 안주를 요리하는 중이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띵동!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울린 초인종 소리에 지예원이 날 현관으로 보냈다.

긴장되는 순간. 그럴 일은 정말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이 문을 여는 순간 시퍼런 칼날이 내게 짓쳐들지도 모른다. 마른 침을 삼킨 나는 샛별의 숨소리를 발동할 준비를 하고서 문고리를 잡았다.

‘에라 모르겠다!’

반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나는 있는 힘껏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자.

“안녕! 나 와써!”

“……엉?”

현관문 너머에 있던 건 강하늘이 아닌 채소연이었다. 얘가 왜 갑자기?

“야 안수호! 퇴원 기념 파티라며! 그럼 날 불렀어야지! 나만 빼놓고 니들끼리 놀려구 했지?! 진짜, 내가 오는 길에 얘랑 못 마주쳤으면 어쩔뻔했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소리치는 채소연.

그 말에 내 시선이 채소연의 옆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강하늘이 세상 다 산 사람처럼 허탈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귀찮은 짐덩이를 달고 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하, 아하하…….”

강하늘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이 참피는 갑자기 왜 나타난 건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미 와버린 걸 어쩌겠는가. 눈물을 머금고 맞이해주는 수밖에.

“이, 일단 안으로 들어와.”

……부디, 이 갑작스러운 전개의 결말이 파국만은 아니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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