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057. 세 사람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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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늘과 지예원이 내게 반했다. 안수호의 그러한 판단은 정확히 말해 반만 들어맞았다.
지예원과 강하늘. 두 사람이 안수호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흔히 말하는 연애감정을 품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 감정의 총량이 얼마만큼이냐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안수호의 판단이 절반만 들어맞았다 하는 이유는, 두 사람이 그러한 자신들의 감정을 아직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그가 그렇게 생각한 그 시점까지는.
“……선배. 잠깐 배가 아파서 그런데 17번 테이블 서빙 좀 대신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 어어, 그래. 근데 안색이 많이 안 좋네. 괜찮아?”
“네. 괜찮아요. 잠깐 다녀올게요.”
아르바이트 선배에게 안수호 쪽 테이블을 맡긴 지예원은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이내 가장 안쪽 칸에 들어간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분이 왜 이러지?’
지예원이 변기 커버 위에 걸터앉은 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슴 속에 휘몰아치는 정체 모를 감정에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 옷깃을 꽈악 쥐었다.
그 감정의 시작은 안수호의 곁에 있던 강하늘을 봤을 때였다.
마치 누군가 심장을 콱 틀어쥔 듯한 그 답답한 감정은 두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을수록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갔다.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았을 때.
데이트니 뭐니 하며 안수호와의 관계를 강조하는 강하늘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녀의 입에서 자연스레 튀어 나온 오빠라는 친근한 호칭을 들었을 때.
그리고 자신에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며, 마치 자신이 안수호의 여자친구인 것처럼 행동하는 강하늘과 마주했을 때.
그 매 순간마다 지예원은 가슴을 강하게 죄어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짜증이었다. 분노이기도 했고. 실망감이었으며, 아니꼬움이었으며, 서운함이기도, 씁쓸함이기도 했으나.
그 복잡한 감정을 전부 묶어 아우르는 것이 그녀조차 자각하지 못한 연애감정에 의한 질투였다는 것을, 지예원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답답했다.
답답해서 손님을 상대로, 강하늘을 상대로 지나치게 날을 세웠다.
알아차리지 못한다 한들 그 감정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질투에서 비롯된 강하늘에 대한 적대감은 그녀의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에서 진하게 묻어나왔다.
노골적으로 강하늘에게 반감을 표했다. 의도적으로 그녀의 말에 토를 달았다. 필사적으로 그녀보다 자신이 안수호와 가까운 사이임을 어필했다.
평소의 그녀라면 결코 하지 않을 유치하고 치졸한 행동.
허나 그녀 스스로도 왜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었다.
‘꼭 무슨 집착 심한 여자친구 보는 느낌이네.’
안수호가 농으로 던진 그 말을 듣기 전까진.
그 말을 들은 순간 뺨이 화끈거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걸 느낄 수 있었다.
부끄러움? 그래, 부끄러움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화끈거리는 창피함 속에서 살며시 느껴지는 기쁨이, 안도감이, 기대감이, 행복감이, 그러한 뭉클한 감정이 낯설어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 이렇게 화장실에 틀어박혔다.
틀어박힌 채로, 양손으로 뜨겁게 익은 뺨의 열기를 식히며 그녀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내가 걔를……?”
설마 나는 안수호를 좋아하는 것인가.
일순 뇌리에 들어찬 의문에 그녀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안수호에게 호감을 품고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호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 대한 감사함을 담은 호의였다.
안수호의 옆집으로 이사 갔던 날. 처음으로 예지원으로서 그를 만났던 날. 그의 앞에서 속에 쌓아둔 감정을 쏟아내며 우는 소리를 해댔던 날.
안수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인간적인 호의였다고. 분명 그날 그렇게 결론지었건만.
두근. 두근. 두근.
이 가슴을 울리는 고동은 도대체 왜 점점 빨라지기만 하는 것인지.
그간 자각하지 못했던 자그마한 연애감정이, 자각한 순간 폭발적으로 그 덩치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호감의 성격은 다를지언정 어찌되었든 호감은 호감. 자그마한 연애감정이 기폭제가 되어 그간 쌓은 호감이 차츰 연심으로 바뀐다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느새 커다랗게 덩치를 불린 그 연정을 그동안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나, 조금 전 강하늘과 마주치고 안수호와 마주치는 것으로 그녀는 그 연정을 확실하게 자각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그래선 안 돼.’
자각했으나, 지예원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애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제발 고개를 들지 말아달라고 꾹꾹 눌러 담았다.
‘지금 내 상황에 연애가 무슨 말이야.’
지예원은 밝은 애쉬그레이 색으로 염색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가슴에 채워진 명찰에 적힌 예지원이라는 이름을 보았다.
민채령이 목 어딘가에 삽입한 도주방지용 마이크로칩을 떠올렸다.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자신의 친구, 김민아를 떠올렸다.
꾸욱.
가슴의 옷깃을 꽈악 쥔 그녀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민채령의 장기말이 되는 것을 조건으로 안전가옥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딱히 본신의 자유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녀의 목적은 오직, 여명단에 잡힌 자신의 친구 김민아를 구해내는 것뿐이었다.
지금 그녀가 영위하는 이 위장 생활도 결국 그 목적을 위해서였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한 근무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의 대부분을 김민아의 수색에 쓰고 있었으니까.
헌데 그런 삶에 연애가 웬 말인가. 가장 소중한 친구는 지금 이 순간도 조직의 손에 고통 받고 있을지 모르는데, 자신만 마음 편히 연심을 가슴에 품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때문에 지예원은 고개를 들려는 연심을 애써 억눌렀다. 억누르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품고 있는 이 감정은 착각이라고. 감사와 사랑을 헷갈린 것에 불과하다고.
자신은, 안수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와 만난 지 이제 겨우 한 달인데 그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진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러니 이 감정은 다 거짓이요 착각이고 오해에 불과하다고.
몇 번이나 그렇게 되뇌었으나.
두근. 두근. 두근.
한 번 자각한 감정에 쉴 새 없이 뛰어대는 심장은 조금도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아…….”
그녀의 탄식 섞인 한숨이 나지막하게 화장실에 울려 퍼졌다.
한편 그 시각. 안수호의 맞은편에 앉은 강하늘은 어색한 침묵 속에 음식을 깨작이고 있었다.
살며시 고개를 든 강하늘이 안수호를 바라봤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얼굴. 그래도 180은 아슬아슬하게 넘기는 키에 적당히 벌어진 어깨. 결코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자연스레 이목을 끌 정도로 잘생긴 것도 아닌, 평범하다면 평범한 외모.
그럼에도 보고 있다 보면 절로 입가에 웃음이 그려지는 것을 보니,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긴 있구나.
문득 그렇게 생각한 강하늘이 배시시 웃었다.
지예원과 달리 강하늘은 안수호에 대한 연애 감정을 순순히 인정했다. 안수호가 네가 내 여자친구냐면서 농을 던졌을 때, 뭉클하게 가슴을 감싸는 기분에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품은 연심을 알아차렸다. 비록 입으로는 볼멘소리를 뱉었지만 사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의 여자친구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그 상상에서 막연히 전해져오는 행복감에 웃음마저 흘릴 정도였다.
안수호와 친해지고 싶다. 가까이 지내고 싶다.
요즈음 들어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문자 그대로 친해지고 싶은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에게 살갑게 다가갔다. 설마 그 욕구의 발로가 연심이었을 줄은 차마 예상치 못했으나, 이제는 확실히 알아차렸다. 알아차렸으니 됐다.
안수호와 만난 지는 이제 겨우 보름. 하지만 연심을 품는 데에 기간이 무슨 상관인가. 설령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갈 수는 있는 법 아닌가.
이런 부분에서 강하늘은 시원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그녀는 지예원처럼 애써 스스로의 기분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알아차린 그 감정이 반가웠다. 안수호를 향한 알 수 없는 끌림이, 그와 친해지고 싶었던 욕구가 그를 이성으로서 좋아했기 때문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은연중에 가슴에 자리했던 답답함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수호 오빠를 좋아하게 됐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잖아.’
강하늘이 안수호를 바라봤다. 조금 전에는 평범한 외모라 했지만 다시 보니 꽤나 잘생긴 것 같기도 했다. 그새 콩깍지가 씌였는가. 아니,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이 눈앞의 남자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외모가 아니었을 테니까.
눈앞의 남자는, 안수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다.
고작 그것뿐이라면 경비대 사람이니까, 그게 그 사람의 일이니까 하고 대충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 모습은.
자신이 속한 경비대마저 위험할지 모른다며 믿지 말라고 걱정하던 그 모습은.
아카데미에 적응하지 못하던 자신을 배려하고 신경 써주면서도 내색하지 않던 그 모습은.
무엇보다, 자신을 구해주었던 그날 죽음조차 마다하지 않고 적에게 덤벼들던 그 필사적인 모습은.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충분히 반할만한 모습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한 강하늘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눈앞에 놓인 음식은 이미 뒷전이었다. 뭉클하게 가슴을 감싸는 이 묘한 만족감에, 행복감에, 강하늘은 마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잔디밭에 누운 것처럼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뭘 그렇게 웃어?”
“그냥요. 잘 드시는 게 보기 좋아서?”
강하늘에 대답에 안수호가 떨떠름하게 시선을 피했다. 그 시선이 저 멀리, 직원들이 오가는 카운터로 향했다.
그 시선이 누굴 찾고 있는지 강하늘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까 그 분이 신경 쓰이세요?”
“응? 어어. 그렇지 뭐…….”
“저 때문에 그러시죠? 죄송해요. 제가 그 예지원이라는 분께 좀 많이 무례하게 굴었죠?”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안수호가 멋쩍게 입술만 달싹였다. 그런 그를 보던 강하늘이 작게 물었다.
“오빠. 그 분이랑은 정말 아무런 사이도 아니죠?”
“그냥 이웃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냥 이웃치고는 많이 친해 보여서요. 밥도 같이 드시고, 장도 같이 보시고, 욕실에도 같이 들어가셨다면서요?”
“그건…….”
안수호가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그를 강하늘이 빤히 바라봤다. 마치 대답을 재촉하듯.
“그냥 이런저런 일이 있었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뭔데요?”
“예지원이 내 여자친구라든가, 내가 걔랑 잤다든가. 아무튼 그런 거 다 아니라고.”
예상 외로 명백한 부정이었으나 강하늘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녀에게도 눈치라는 게 있었다. 안수호와 지예원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아봤다. 애초에 여자친구도 섹스프렌드도 아닌데 욕실에 같이 들어가는 사이가 도대체 무슨 사이란 말인가.
강하늘은 안수호가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해주었으면 했다. 허나 그럴 일은 없으리라고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설령 자신이 꼬치꼬치 캐묻더라도 결코 대답해주지 않으리라. 오히려 그 집착어린 질문이 그의 반감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
턱을 괸 강하늘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으나 애써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여자친구도 뭣도 아니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그걸로 됐다. 적어도, 일단은.
“……저, 오빠. 아까 오빠가 했던 농담 있잖아요.”
강하늘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그를 불렀다. 어느새 그 뺨에는 옅은 홍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농담?”
“집착 심한 여자친구니 뭐니 했던 거요.”
그 말에 안수호의 표정이 굳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 강하늘의 연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으니.
“그냥 우스갯소리로 꺼낸 말이야. 별로 신경 쓸 거 없”
“사실 그 농담,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뭐?”
“오히려 조금은, 아주 조금은 기뻤던 것 같기도 해요.”
허나 그런 안수호의 사정 따위 아랑곳 하지 않겠다는 듯, 강하늘이 살며시 한걸음 내딛었다.
“그냥 그렇다고요.”
자그마한 한걸음.
은유적인 한걸음.
명백한 의사 표현은 아니나, 안수호라면 그 담긴 뜻을 능히 알아차릴 수 있을만한 한걸음.
그 한걸음을 내딛은 강하늘이 괜히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렸다. 허나 그 시선만은 확실하게 안수호에게 향한 채였다.
“……그래?”
강하늘이 은연중에 던진 메시지에 안수호는 떨떠름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보이지 않는 애매한 웃음.
일견 우유부단한 태도로 보일 수 있으나 기실 그것은 강하늘에 대한 배려였다. 그가 무심코 입에 담은 단어 하나, 무심코 흘린 제스처 하나가 강하늘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만약 여기서 내가 강하늘을 좋아한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강하늘이 자신에게 연심을 품고 있다면, 방금 저 말이 그 연심의 발로라면, 그리고 자신이 그 연심에 답해준다면.
강하늘과 자신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리라.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었던 그의 입장에선 바라마지않던 일.
허나 안수호는 섣불리 그렇게 행동할 수 없었다.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이전의 그라면 일말의 주저도 없이 강하늘을 포섭하기 위해 자신의 태도를 꾸며냈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녀의 감정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용했겠지.
비단 강하늘만이 아닌 지예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자신에게 연심을, 적어도 그 비스무리한 감정을 품고 있다면 좋을 일이다. 미래를 위해, 앞으로의 전개에서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 얼마든지 두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겠노라고.
갓 빙의했을 때의 그라면, 얼마 전까지의 그라면 주저 없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어차피 이들은 소설 속 캐릭터에 불과하다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간 그와 마주칠 때마다 마치 정말 살아있는 사람처럼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침울해하고, 화내고, 짜증내고,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고, 감사해하는 강하늘의 모습에. 지예원의 모습에.
빙의 첫날부터 늘 품고 있던 ‘이 세상은 소설에 불과하다’라는 인식이 점차 흔들리고 시작하고 있다는 걸, 그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두 사람의 연심을 이용하는 건 지극히 타당한 판단.
허나 합리만을 쫓아 그렇게 행동하고자 마음을 먹자, 가슴 한 켠에 찌르는 듯한 거북함이 찾아왔다. 이른바 양심의 가책이라는 놈이었다.
‘제아무리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고 한들, 이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면 두 사람 역시 진짜 인간 아닌가. 그 감정에 진실된 답을 해주지도 못하면서 그 감정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강하늘이나 지예원과 달리 안수호는 아직 두 사람에게 연심을 품고 있지 않았다. 그런 말랑한 감정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마음은 여유롭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두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고자 여지를 주는 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으나, 한편으로는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봤자 어차피 소설 속 세상, 소설 속 캐릭터다.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이용해야만 한다.’
눈앞에 들이닥친 갑작스런 상황에 안수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상반되는 두 의견이 그의 머릿속을 종횡무진 누볐다.
귀환을 위한 합리만을 추구하는 자신과, 평범한 사람으로서 필히 가지고 있는 양심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을 내세우는 자신. 그 두 개의 가치관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렇기에 안수호는 이 자리에서 애매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애매한 웃음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대답은 강하늘을 위한 것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그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
그러한 사정을 거의 알지 못하는 강하늘이었으나, 안수호가 자신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깊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에헤헤. 뭘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해요? 저도 그냥 농담 한 번 던져본 건데.”
그래서 일부러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고민을 끝낸 안수호가 자신의 고백 아닌 고백에 명백한 거절을 표할 것 같아서.
그 일말의 가능성이 두려워 도망치듯 강하늘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난 또 뭐라고.”
그리고 안수호 역시 도망치듯 강하늘의 말에 편승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웃음이 흘렀다.
이후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이 가게를 나섰다. 지예원은 끝까지 두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윽고 그 둘이 헤어지고 안수호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분명 찾아온다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예원은 안수호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 사람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그날의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강하늘에게도, 지예원에게도, 그리고 안수호에게도 각자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마침내 월요일.
1분반 던전 탐사 실습 날의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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