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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56화 (57/266)

〈 56화 〉 055. 오빠라고 불러도 되나요?

* * *

슬로우 스타터(유니크. S). 그리고 연심의 벚꽃(레전더리. S).

그 이질적인 이름의 스킬들을 보며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간 봐왔던 상태창에 표기되어있던 스킬은 격투술이니 팔극권이니 하는 식으로 그 사람이 가진 기술을 나타내는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헌데 슬로우 스타터에 연심의 벚꽃? 그게 도대체 무슨 스킬이란 말인가.

게다가 스킬 랭크도 둘 다 S랭크에 그중 하나는 그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레전더리 등급. 그 류태현조차 보유 스킬의 랭크와 등급은 아직 A랭크와 유니크 등급이 고작이었는데.

원작의 주요등장인물이나 후반부에 활약할 빌런이 저런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야 뭐,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저 정체모를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는 건 강하늘이었다. 그녀는 원작에서 지나가는 단역에 불과한 캐릭터였을 터.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생각한 순간,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기억.

[ 강하늘의 자퇴를 막으세요. 강하늘과 친분을 쌓으세요. 강하늘을 당신의 곁에 두세요. 그녀의 존재는 당신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

평소와는 다른 어투로 표시되었던 엑스트라 퀘스트의 시스템 메시지.

‘강하늘은 분명 내게 도움이 될 것이다.’

민채령과의 문답 이후 저 글귀가 의미하는 바가 막연히 민채령의 약점과 관련된 일이리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설마 강하늘에겐 그 이상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건가?

­그만!!

그때 심판의 외침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상태창에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뒤늦게 경기장을 확인했다. 경기장 구석,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아있는 강하늘의 몸이 라인 바깥에 걸쳐져 있었다.

­강하늘 학생 장외! 이로써 이번 랭킹전의 승자는 류진 학생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스윽.

그 말과 동시에 옆에 앉아있던 한겨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국 볼 것도 없었네요. 먼저 일어나죠.”

새침하게 몸을 돌린 한겨울이 출구로 향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관객들이 하나둘 관중석을 떠나기 시작했다.

승자를 향한 환호나 박수 같은 건 없었다. 일부 지인이나 기록을 정리하는 몇몇 사람을 빼고 나머지 관객들은 미련 하나 없다는 듯 떠나갔다.

‘나도 가볼까.’

경기장으로 통하는 통로로 내려가자 때마침 경기를 마친 강하늘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 수호 씨.”

날 알아본 강하늘의 얼굴에 일순 화색이 돌았다.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정말 보러 오셨네요.”

“고생했습니다. 아쉬운 패배였군요.”

“빈말은 괜찮아요. 상대도 안 되던걸요. 애초에 이기려는 생각도 없었지만 이걸로 제 수준을 확실히 알았네요. 최소 판수만 채우고 나머지 랭킹전은 다 기권으로 끝내야겠어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그 모습에선 조금의 분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초반에 나름 열심히 싸우기에 생각이 달라진 건가 싶었으나, 강하늘은 여전히 랭킹전 순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강하늘.”

그때 강하늘이 나온 출구로 그녀와 싸웠던 류진이 따라 나왔다.

“어, 진아. 왜? 할 말 있어?”

“그, 다친 곳은 괜찮아? 마지막에 좀 세게 맞았던 것 같은데.”

“괜찮아. 아바타 상태일 때 생긴 상처는 능력을 해제하면 같이 사라지거든.”

그 말대로 그녀의 몸에 새겨졌던 베인 상처는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가. 그래도 미안. 승패에 초조해져서 필요 이상으로 몰아친 것 같아. 원래 대련에서 칼날 형태는 쓰지 않으려고 하거든.”

“그건 좀 너무했긴 했어. 나 같은 애 상대하면서 초조할 게 뭐 있다고.”

“그야 하늘이 넌 강하잖아.”

“어?”

그 말에 강하늘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하늘이 강하다고?’

그야 초인이니 일반인보단 강하겠지만 1분반 소속인 류진의 입에서 나올 감상은 아니었다. 당장 조금 전의 경기만 해도 류진이 강하늘을 일방적으로 압도하지 않았는가.

“입학시험 때 네가 싸우는 걸 봤거든. D급 괴수 다섯 마리를 단번에 해치웠잖아. 종합 성적은 내가 더 높게 나왔지만, 전투 실기 성적만 보면 네가 나보다 훨씬 위지.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어? 그게…….”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았나봐?”

“아…….”

슬쩍 나와 류진의 눈치를 살피던 강하늘이 이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응. 컨디션이 좀 안 좋았네? 아니, 입학 시험 때 컨디션이 너무 좋았던 거려나……?”

“역시 그랬던 거지? 솔직히 말해서 너한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 전혀 안 했었거든. 이번에 지면 내리 3연패였는데, 이렇게 승점을 챙기네.”

“그러게. 아하, 아하하하…….”

“하여튼 너도 얼른 컨디션 회복하길 바랄게. 그럼 내일 보자.”

대화를 마친 류진이 내게 꾸벅 인사하더니 먼저 출구로 나갔다. 혼자 남겨진 강하늘이 복잡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청부업자 놈들이 습격했을 때, 분명 저한테 약해졌다고 말했죠?”

원래는 강했었는데 아무튼 약해졌다. 분명 그런 식으로 말했었지.

그동안은 경황이 없어서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슬슬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어쩌면 그녀가 보유한 ‘슬로우 스타터’라는 스킬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르고.

“무슨 사정으로 약해진 겁니까? 부상이라도 입은 겁니까?”

“그건…….”

강하늘이 난처한 얼굴로 옆머리를 배배 꼬았다.

“말하기 껄끄러운 사정입니까?”

“……네, 조금.”

“…………그렇다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신경 쓰이긴 하지만 억지로 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하늘과 보다 깊은 관계를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그녀가 약해진 이유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으리라.

“죄송해요. 정말 남한테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정이라…….”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수업이라도 들어가나요?”

“아, 아뇨. 오늘은 이제 수업은 없고, 보급대에서 재학생 지급용 장비만 수령해가면 돼요. 원래 첫 주에 주는 건데 전 그때 자퇴 대기 상태여서 못 받았거든요.”

“아하.”

그린하우스에선 각종 실습에 필요한 장비를 학생에게 무상으로 지급해준다. 총이나 냉병기 같은 무기류는 필요할 때만 대여하는 방식이지만, 기본적인 방어구와 각종 던전 탐사용 장비는 학기초에 지급해주는 걸로 기억한다.

‘던전 탐사라, 그러고 보니…….’

“혹시 조만간 던전 탐사 실습이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네. 맞아요. 다음 주 월요일이에요.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도 어제 막 들은 건데.”

원작에서 읽었으니까.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대충 웃으며 얼버무렸다.

‘그런가. 벌써 그 에피소드가 다음 주인가.’

아카데미 근처에 열린 C급 던전 탐사 에피소드. 원작 초반부에 배치되었던 짤막한 단편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

던전 탐사라고 하니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그 실상은 가벼운 현장 체험에 불과했다. 탐사에 사용되는 던전은 진즉에 주인 괴수가 토벌되어 소멸이 예정된 던전으로, 내부에는 던전을 공략한 길드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잔여 괴수 몇 마리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고로 학생들에게 위험이 될 요소는 전혀 없었다.

실제 원작 내용도 별다른 사건 없이 캐릭터들끼리 으쌰으쌰 협력하여 던전을 체험해보는 게 끝이었다. 사건이라고 해봐야 나은솔이라는 히로인 캐릭터가 벌레를 무서워해서 주인공한테 앵기는 것 정도.

그런 에피소드였으니 별로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건이 원작대로만 진행되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지금껏 숱하게 원작으로부터의 변경점을 경험해 온 나는 더 이상 원작의 내용을 마음 놓고 믿을 수 없었다.

당장 이번 던전 탐사만 해도 갑자기 여명단이 학생들을 목표로 테러를 저지른다든가, 외부 수업을 노리고 나주용이 다시 한 번 강하늘의 납치를 꾀한다든가, 그게 아니면 대뜸 소멸 예정 던전에서 강력한 괴수가 튀어나온다든가.

‘뭔 내용이 이리도 꼬였는지 원.’

빙의한 지 두 달도 안 되었건만 벌써부터 예측이 안 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게 다 빌어처먹을 쾌락천마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떠올린 그 이름에 괜히 기분이 나빠져 혀를 쯧 찼다.

빙의물에서 원작 작가는 최후반부까지 등장하지 않는 게 국룰이건만. 그래도 명색이 작가란 놈이 오만가지 전개에 다 개입하는 꼴 하고는.

……치졸한 새끼.

“……호 씨? 수호 씨?”

강하늘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디 안 좋으세요?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신데…….”

시선을 돌리자 강하늘이 어딘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쾌락천마에 대한 짜증이 표정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나저나 던전 실습이 다음 주라니, 이래저래 준비할 게 많겠군요.”

“누가 아니래요! 당장 내일만 해도 사전 교육이랍시고 이론 강의만 네 시간에, 주말에는 실습 때 같이 들어갈 조원들하고 탐사 계획도 짜야 해요. 진짜,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 빈 던전인데 준비할 게 뭐가 있다고…….”

“복학하자마자 바쁘게 사시는군요.”

“수호 씨는 내일까지 휴가라고 하셨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하늘이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그럼……. 혹시 내일 저녁에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무슨 일인데 그러죠?”

“그냥. 같이 저녁이나 먹으면 어떨까 하고…….”

갑작스런 식사 제안에 내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자 강하늘이 변명하듯 빠르게 덧붙였다.

“별 다른 의미는 없고요! 그냥 그, 저번에 저 구해주신 거 답례도 아직 못 했잖아요? 근데 마침 금요일까지 휴가라고 하시니까! 답례 겸 해서 식사라도 대접해드리려고 했죠!”

“제안은 감사하지만 굳이 사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직장인 체면이 있지,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밥을 얻어먹겠습니­”

“저, 저 돈 아주 많아요!”

“예?”

“바, 방송! 방송으로 많이 벌고 있으니까요! 아직 출금받기 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 벌었거든요! 광고 수익은 아직 적지만 이래저래 후원금이 많이 들어와서…….”

그 말에 불현듯 강하늘의 방송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하와와노벨쨩 님 2개월 구독 감사합니닷! 구독냥이요? 당연히 해드려야죠! 냐앙! 냐아앙~! 구독 감사하냥! 냐아아앙!’

화면을 향해 발랄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귀여운 동작을 취하던 강하늘.

순간 떠오른 그 모습이 눈앞에 서있는 강하늘 위로 오버랩되자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차마 시선을 맞추기 민망해 내가 고개를 슬쩍 돌리자 강하늘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호, 혹시 저랑 저녁 드시는 게 싫으세요……?”

“아뇨! 그, 싫진 않습니다. 그냥 강하늘 학생한테 얻어먹는 게 미안해서 그렇죠.”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말씀드렸잖아요. 저 그래도 꽤 번다고.”

그 버는 방식이 문제였다. 강하늘이 온갖 아양을 떨어대며 시청자들로부터 뜯어낸 돈으로 식사를 대접받는다 생각하니, 무언가 커다란 도덕적 결례를 범하는 느낌이 들었다.

‘뭐,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지.’

이 또한 강하늘과 돈독한 관계를 쌓기 위한 일이라 생각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강하늘이 쓰는 돈의 출처가 조금, 아주 조금 걸리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그럼 감사히 얻어먹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요? 정말이죠?!”

내 수락에 강하늘이 이상하리만치 좋아하며 방방 뛰어댔다. 그렇게도 답례가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강하늘이 불현듯 생각났다며 내게 덧붙였다.

“아,그리고 저한테 그렇게 존대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보다 네 살이나 많으시잖아요!그냥 하늘아, 하고 편하게 부르세요! 저, 저도 편하게 오, 오빠라고 부를 테니까…….”

다소 뜬금없는 말이었으나 난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류태현하고도 호형호제하며 지냈는데 강하늘에게 오빠라 불리지 못할 건 뭔가.

“그럼 그렇게 하죠. 아니, 그렇게 하자. 하늘아.”

“네. 오빠!”

발랄하게 외친 강하늘이 곧 얼굴을 화악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자기가 먼저 그렇게 부른다고 했으면서.고작해야 오빠라는 호칭에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이 조금 의외였다.

……방송에선 오빠라고 잘만 말하던데.

“그, 그럼 내일 저녁에 만나요! 아, 혹시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아니면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라든가……?”

“특별히 가리는 건 없어.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

“그럼 속초역 앞에 저번에 새로 생긴 패밀리 레스토랑은 어때요? 동기들이 그러는데 메인 요리 스테이크 맛도 좋고 사이드 메뉴 구성도 알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기숙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데리러 갈게. 수사가 한창인 와중에 다시 습격할 거란 생각은 안 들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민채령의 말에 따르면 여일이나 나주용은 당분간 상황을 지켜볼 거라고 했다.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 강하늘 혼자서 그린하우스 부지 바깥으로 나오는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게 좋겠지.

‘근데 잠깐, 역 앞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에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모르겠다. 중요한 일이면 어련히 생각나겠지.’

대수롭지 않게 넘긴 나는 강하늘과 구체적인 약속 시간을 정한 뒤 경기장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

"……너가 왜 여기 있냐?"

레스토랑에 들어간 순간 나는 전날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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