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053. 랭킹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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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채령의 배려 아닌 배려로 휴가를 얻어낸 나는 퇴원과 동시에 강하늘을 만나러 그린하우스 기숙사로 향했다.
정식으로 복학함과 동시에 강하늘은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계속 혼자 원룸에서 살 수는 없으니까. 본래 기숙사 신청 기간은 진즉에 지난 참이었으나 습격 사실이 참작이 되어 뒤늦게나마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향한 곳은 그린하우스 부지 한 구석에 있는 제3 여자기숙사.
창작물이든 현실이든 본래 여자기숙사라 하면 으레 금남의 구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이곳 그린하우스 여자기숙사 역시 일부 업무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남성의 출입은 철저히 금지되어있다.
그래.
일부 업무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오전에 연락드린 경비대 특수대책과 소속 안수호 대원입니다.”
나는 기숙사 앞을 지키고 있던 일반과 경비원에게 대원증을 제시했다. 여자기숙사 앞이라 그런지 경비원 역시 여성이었다.
대원증과 내 얼굴을 번갈아가며 유심히 살펴본 여성경비원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되물었다.
“……1학년 강하늘 학생의 사정청취 때문이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내 몸을 위아래로 쭉 훑은 여성경비원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내키지 않는 듯한 얼굴로 들어오라 손짓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자기숙사는 금남의 성역이었다. 허나 나처럼 아카데미 관련 업무를 위한 경우에는 학생들이 대부분 바깥에 나간 낮 시간에 한정해서 출입이 가능했다.
아무튼 특책과 명함 만만세다 이거야.
“강하늘 학생의 방은 403호실입니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그 방 이외의 다른 곳은 절대로 가지 마시길. 특히 1층 안쪽의 공용 스페이스에는 목욕탕이나 운동시설 등이 있으므로”
“알고 있습니다. 용건만 빠르게 끝내고 나가죠.”
“부탁드리겠습니다.”
경비원의 배웅을 받은 나는 곧바로 강하늘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노크했으나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음.
분명 이 시간에 방문한다고 미리 연락했는데 어디 나간건가? 싶기도 했으나, 안쪽에서 들려오는 부산스러운 소리로 보아 그녀는 방 안에 있는 게 확실해보였다.
똑똑.
“강하늘 학생?”
다시 한 번 노크. 그리고 부름.
허나 강하늘의 대답은 이번에도 없었다. 문에 가까이 귀를 기울이자 어렴풋이 목소리 같은 게 들리긴 하는데…….
‘이거 설마…….’
묘한 기시감을 느낀 나는 살며시 문고리를 돌렸으나 잠겨있었다.
하지만 이런 잠금장치 따위 내게 아무런 장해도 되지 않았다. 특수대책과 대원증은 그린하우스 내 시설물의 마스터키를 겸한다. 일부 보안 등급이 책정된 장소가 아니라면 어지간한 문은 대원증 하나로 다 열 수 있는 것이다.
삐빅!
대원증을 갖다 대자 잠금장치가 풀렸고, 나는 곧바로 살며시 문을 열었다.
그러자.
“네~ 여러분!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까지 잊지마시구요! 앗! 하버드누렁이 님 만원 후원 감사합니닷! 냐앙! 냐아앙!”
예의 고양이 귀 헤드셋을 쓰고 있던 강하늘이 앙증맞은 목소리로 모니터 앞에서 귀여운 척을 떨어대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어지러운 방송 화면과 묘하게 익숙한 AOS 게임이 떠올라 있었다.
“네! 일정이 있어서 앞으로 1시간 정도 있다가 방종할 생각이에요. 네? 저번에 문 부수고 들어온 남자 누군지 해명……. 매니저님. 저 사람 벤해주세요. 공지에 말씀드렸지만 제 방에서 남자 언급하면 벤이에요! 아니, 뭘 자꾸 해명하라는 거예요? 자, 얼른 막판이라 하러 가……. 네? 뒤에 남자? 아니 그 얘긴 꺼내지 말라니까요! 네? 지금? 지금 뒤에 누가 있다고…….”
고개를 돌린 강하늘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
다음 순간 강하늘이 신속하게 몸을 움직였다. 재빠르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OFF한 뒤 게임 매칭을 취소하고 방송과 관련된 화면을 싸그리 아래로 내렸다.
그 일련의 동작에 걸린 시간은 약 0.7초.
과연 초인은 초인이구나 하며 감탄하고 있자, 풋사과처럼 얼굴을 붉힌 강하늘이 내게 소리쳤다.
“가, 가가가가갑자기 들어오시면 어떡해요!! 들어오시기 전에 노크는 하셨어야죠!!”
“노크도 두 번이나 했고 이름도 불렀습니다. 대답 안 한 건 그쪽이에요.”
“그럼 문 앞에서 전화라도 하시면 됐잖아요! 왜 멋대로 들어오신 거냐고요! 아니, 애초에 분명 잠갔는데 어떻게 열고 들어오신 거예요?!”
“그건…….”
내가 보란 듯이 대원증을 문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삐빅 소리가 나며 잠금장치가 작동했다.
“와 미친…….”
마스터키의 위용에 혹한 강하늘이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거 뭐예요? 아카데미 마스터키? 그런 게 있어요? 세상에, 엄청 탐나는데 저도 하나만 주시면 안 돼요?”
“졸업하시고 경비대에 들어오시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 그건 좀…….”
강하늘이 진심으로 질색이라는 듯 진저리를 쳤다. 애초부터 우스갯소리였고 경비대에 이렇다 할 소속감은 없었지만, 저렇게까지 질색을 하는 걸 보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렇게까지 정색할 건 없지 않습니까. 경비대가 그렇게 나쁜 곳도 아닌데.”
“일하는 시간이 어떻게 되는데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죠.”
“추가근무는?”
“야간 순찰이나 당직이 가끔…….”
“급여는 어때요?”
“특책과 초봉이 아마 세후 4000 정도였을 겁니다. 각종 경비나 성과급은 별도고요.”
“복리후생은?”
“어, 일단 아카데미 내부 시설 전면 무료 이용에 각종 장비 지급이랑……. 아니 근데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겁니까?”
“그렇게 나쁜 곳도 아니라면서요? 들어보고 정말 괜찮다 싶으면 생각 좀 해보려고요.”
당연히 우스갯소리였다. 위험 부담 때문에 헌터는 물론이고 다른 초인 관련직도 전부 마다한 그녀가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 한들 경비대에 들어가고자 할 리가 없으니까.
“근데 그, 방송은 괜찮습니까?”
“이제 와서 걱정은.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여스트리머 방송에 갑자기 남자가 난입한 건데. 하아, 진짜. 당분간 또 해명해라 해명해라 한참 불타겠네…….”
“시청자가 몇 명이나 되길래 그럽니까?”
“조금 전에 봤을 때가 아마……. 한 300명 정도였을걸요?”
의외로 숫자가 꽤 높았다. 인터넷 방송 쪽 생리는 잘 모르지만, 방송을 시작한 지 이제 보름 좀 넘은 스트리머의 시청자가 300명이라면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닐 것이다. 몇 년을 방송하고도 시청자 숫자가 두 자릿수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하니.
“도대체 무슨 방송을 하길래 시청자가 그렇게 잘 모인 겁니까?”
“?? 평범한 게임 방송인데요? 뭐 제가 이상한 방송이라도 할 줄 아셨어요?”
모니터 앞에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귀여운 척을 떨어대는 건 이상한 짓이 아닌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고이 접어두었다.
“그야 컨텐츠가 단순히 게임 하나뿐이면 차별화가 안 되겠지만 저는 이렇게 눈에 띄는 차별화 요소가 있잖아요?”
강하늘이 발랄한 표정으로 자기 외형을 과시하듯 양팔을 벌렸다. 위에 걸치고 있던 펑퍼짐한 박스티의 옷감이 당겨지며 의외로 큰 가슴 윤곽이 봉긋 솟아올랐다.
“이렇게 귀엽게 생긴 여자애가 친한 여자 후배처럼 살갑게 굴면서 온갖 아양이랑 아양은 다 떨어대며 자기들이 좋아하는 게임 방송을 한다는데 안 보고 배기겠어요? 심지어 얼굴 원툴도 아니고 게임도 잘해!! 게다가 리액션도 혜자야!! 다른 스트리머는 질색하는 온갖 이상한 드립도 다 받아줘!! 이건 절대 못 참거든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강하늘이 음흉하게 웃었다. 조금 전 방송 송출 중에 보인 가식적인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지금 그 말 혹시라도 마이크로 송출되고 있으면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확실하게 꺼뒀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만에 하나 송출되더라도 그때는 아예 대가리 깨진 시청자 착취하는 악덕 스트리머 컨셉으로 나가면 되죠 뭐! 그러다 정 안 되면 아바타 새로 파면 되고!”
그 확신에 찬 발언에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강하늘은 인터넷 방송 업계의 생리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바타 능력을 이용해 전력으로 돈을 빨아먹겠다는 의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그 프라이드로 똘똘 뭉친 강하늘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이 또한 쾌락천마의 농간이긴 하겠다만, 도저히 그 의도가 짐작되지 않는 변화였다. 원작에서 온갖 드리프트를 저질렀던 걸로 모자라 이젠 인방 드리프트라도 할 생각인가.
“근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뭐 급한 용건 있으시다 그러시지 않았나.”
그 말에 나는 오늘 그녀를 방문한 용건을 떠올렸다.
“예. 강하늘 학생한테 해줄 말이 있어서요.”
“사건 관련인가요?”
그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괜스레 찾아온 긴장감에 손아귀에 식은땀이 찼다. 빠르게 뛰기 시작한 가슴을 심호흡을 하며 애써 진정시킨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민채령에 대해 강하늘에게 말해줄 생각이었다.
민채령이 누구며, 어떤 사람이며, 그녀가 얼마나 수상하고 위험한 사람인지, 그리고 민채령 또한 다중능력 연구에 관련되어 있으며, 나주용과 마찬가지로 강하늘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까지.
그 일련의 사실에 대해 말할지 말지 몇 번이고 고민했으나 결국 말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
엑스트라 퀘스트 메시지에 따라 나는 앞으로 강하늘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런 그녀를 민채령이 노리고 있는 이 상황에, 강하늘도 최소한 누가 자신의 위협이 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건 관련해서 뭔가 수사에 진척이라도 있었나요?”
“아직까지는 전혀 없습니다. 범인의 소재나 배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에요.”
“네?”
그럼 왜 찾아온 거냐? 그런 얼굴을 한 강하늘에게 나는 품안에서 자그마한 쪽지를 꺼내 보였다.
“그건”
“쉿.”
내 제스처에 강하늘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강하늘에게 가깝게 붙어 주위에서 쪽지가 보이지 않게끔 한 뒤 반으로 접힌 쪽지를 살며시 열었다.
“흣.”
곧, 쪽지의 서문을 읽은 그녀가 나지막하게 숨을 삼켰다.
[ 도청을 경계하여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글로 전달하겠습니다. 이 쪽지는 다 읽은 뒤에 당신의 능력으로 불태워 없애세요. ]
강하늘이 눈을 치떴다. 마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그런 그녀에게 나는 쪽지의 다음 내용을 가리켰다.
[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 저의 직속 상사 민채령 팀장은 나주용 연구소장과 마찬가지로 다중능력연구에 관련되어 있는 자며, 아마도 나주용 소장과 비슷한 이유로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 ]
[ 이 기숙사 방 안에도 카메라나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로 이하의 내용은 그러한 감시 장비가 없을만한 장소에서 혼자 확인해주세요. 또한 갑작스레 대화가 끊기면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으니, 지금부턴 제 말에 맞춰서 적당히 맞장구쳐주시기 바랍니다. ]
“……수사에 진척은 없었지만 놈들이 다시 습격해오는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린하우스의 보안은 철두철미하니까요. 그러니 안심하셔도 된다, 오늘 온 건 그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겸사겸사 잘 지내는지 얼굴도 볼 겸 해서 말이죠.”
내 말에 강하늘이 긴장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긴장감에 입술이 말랐는지 혀로 입술을 핥은 그녀가 천천히 쪽지를 접어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안부 확인이라. 겨우 그런 이유로 방송 중에 난입하신 거예요?”
“설마 기숙사에서 대놓고 방송 중이실 줄은 몰랐죠.”
“뭐 어때요? 1인실인 데다가 방음도 확실하게 되는데. 국립 아카데미라 그런지 시설 하나는 좋잖아요.”
강하늘이 어색한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이따금 좌우로 시선이 향하는 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감시카메라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여튼,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사실 그다지 잘 지내고 있진 않아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강하늘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자퇴하려다가 뒤늦게 아카데미 생활을 시작하려니 이거저거 걸리는 게 많더라고요. 수업을 거의 2주 넘게 빠져서 진도 따라가기도 벅차고. 특히 이번 주부터 시작된 랭킹전이 참……. 격투술이고 나발이고 하나도 안 배웠는데 다짜고짜 다른 학생들하고 싸우라는데 아주 죽을 맛이네요.”
랭킹전. 그 단어에 나는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듯 눈을 크게 떴다.
‘벌써 시기가 그렇게 됐나.’
랭킹전은 원작에서도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진 메인 스토리 요소였다. 당장 눈앞에 있는 강하늘만 해도 흑화 계기가 랭킹전에서 한겨울에게 패배한 것이지 않은가.
원작의 강하늘은 랭킹전 기간 동안 아득바득 순위를 올려서 당시 랭킹 1위였던 한겨울에게 도전할 수 있는 순위에 올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작의 이야기.
원작과는 성격도, 그 강함도 180도로 달라진 지금의 강하늘이라면 그와 같은 행보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강하늘을 제외하곤 아직 재학생 중에 큰 변경점이 생긴 학생은 없는 것 같으니, 아마 랭킹전 결과는 원작 스토리대로 진행 중이겠지.’
랭킹전이 시작된 것은 아마 이번 주 월요일. 그렇다면 원작에서 있었던 한겨울 vs 류태현의 랭킹전도 이미 벌어졌을 것이다.
‘구경하고 싶은 이벤트 중 하나였는데 입원 때문에 시기를 놓쳐버렸네.’
1학기 랭킹전은 같은 학년 학생들만으로 진행된다. 그 1학년 랭킹전의 첫 경기가 바로 당시 잠정 순위 1위인 한겨울과, 잠정 순위 2위인 류태현의 경기였다.
첫 번째 경기임에 더불어 1위와 2위의 싸움이라는 그 상징성. 당연히 그 두 사람의 대련에는 수많은 관객이 몰렸다. 한겨울은 그 자리에서 그간 류태현과 비공식적으로 치른 몇 번의 대련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했으나, 그녀는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보란 듯이 패배해버리고 만다.
원작에선 그 공식전에서의 패배를 기점으로 한겨울의 류태현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고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진전되기 시작한다.
아마 결과가 바뀌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 류태현에게 조만간 연락해볼까.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고개를 들자, 강하늘이 어딘가 불안한 기색으로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랭킹전 때문에요. 순위 따위야 아무래도 좋아요. 문제는 제가 한 학기 내내 전국에서 엄선된 엘리트들하고 싸워야 한다는 점이에요. 마음 같아선 죄다 기권하고 싶은데 최소 10경기는 치러야 한다 그래서.”
“첫 경기는 언제입니까?”
“오늘이요. 오늘 14시.”
14시. 정확히 두 시간 뒤였다.
'뭔 시발.'
즉, 강하늘은 두 시간 뒤에 랭킹전 첫 경기가 있음에도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따로 뭐 준비하지 않아도 됩니까?”
“준비할 게 뭐 있어요. 어차피 이길 생각도 없는데. 경기 전까지 할 것도 없겠다, 긴장이나 풀 겸 게임이나 하고 있으려고 했죠.”
순위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게 빈말은 아닌 듯 했다. 하긴, 애초에 아카데미를 자퇴하려던 사람인데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여튼. 전 다시 방송 켤 생각인데 수호 씨는 이제 어떻게 하실래요? 설마 여기 계속 있으실 생각은 아니죠? 볼일은 이제 끝났잖아요?”
강하늘이 은연중에 쪽지를 넣어둔 주머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그 말대로 이곳에 온 목적은 달성했다.
이후 예정된 일정은 아무것도 없었다. 본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랭킹전이 14시라 그랬지.’
어차피 시간도 남는데 강하늘의 랭킹전을 관람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여기서 방송하는 걸 구경하다 같이 경기장으로 가겠다고 말을 꺼내자.
“……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강하늘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제가 아무리 철면피여도 수호 씨한테 방송 톤으로 아양 떠는 걸 보여드리는 건 조금 많이, 많이 부끄럽거든요? 랭킹전을 보러 오시는 거야 상관없는데, 부디 여기선 제 사생활을 존중해주시고 이만 나가주시지 않겠어요? 사생활 침해는 이미 두 번이나 멋대로 문 따고 방송 중에 난입한 걸로 충분하잖아요?”
그 말에 나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강하늘이 어떤 식으로 방송하는지 보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는데, 역시 방송하는 모습을 옆에서 직접 보는 건 안 되나보다.
‘아니지. 그냥 강하늘 방송 채널을 찾아가서 보면 되잖아.’
닉네임은 모르지만 워낙 특이한 외형이니 찾는 게 어렵진 않을 터. 랭킹전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으니 그 사이 인터넷을 뒤지다보면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으리라.
“……알겠습니다. 그럼 두 시간 뒤에 뵙죠.”
그 말을 남긴 채 나는 강하늘의 방을 나섰다.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이쪽 세상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노블스카이] 남탓충 죽엇!!! 시청자 297명
내가 강하늘의 방송 계정을 찾아낸 건 그로부터 정확히 20분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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