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050. 하찮은 영웅심(2)
* * *
도대체 나는 왜 일어섰는가.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저 의문이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핏물을 한바가지 쏟아내서 그런지 머릿속은 멍하기 그지없었다. 그 멍한 머리로 나는 애써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강하늘은 내게 있어 그다지 중요한 캐릭터가 아니다.
주요등장인물이 아니니 지예원 때처럼 페널티로 인해 죽을 일은 없다. 어느 정도의 페널티야 있겠지만, 그녀의 자퇴 신청이 수리된다면 그녀는 아카데미 재학생이 아니게 된다. 고로 그 약간의 페널티 역시 없어지게 될 터.
어디 그뿐인가. 엑스트라 퀘스트에는 실패에 대한 페널티도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강하늘이란 캐릭터는 원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고로 납치에 의한 영향은 무시해도 될 정도.
나주용이 강하늘을 손에 넣음으로써 생기는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이 걸리긴 하나, 그건 앞으로 천천히 대처해나가면 된다.
민채령의 임무를 실패하는 것? 애초에 내 임무는 그녀의 자퇴를 막는 거지 경호가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만신창이가 되가면서까지 싸웠다. 제아무리 민채령이라 한들 내게 뭐라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
강하늘을 여기서 놓친다 한들 내게 즉각적인 불이익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숙고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굳이 아픈 몸을 이끌며, 목숨을 걸어가며 저들에게 덤빌 이유 따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나는.
왜 나는 굳이 일어서서, 이렇게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가.
멍한 뇌리에 떠오른 의문은 처음과 같았다. 사고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공회전했다.
“미련하기 그지없군요. 그대로 누워있었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텐데.”
유진수의 그 말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말처럼 가만히 쓰러져 있었다면 편했을 텐데. 차라리 지금이라도 다시 부상에 못 이기는 척 쓰러져, 저들을 그냥 보내주는 건 어떨까.
“……!”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는 그의 손에 붙들려있던 강하늘과 눈이 마주쳤다.
강하늘은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목에 닿은 나이프 때문에 발버둥조차 못 치고, 입을 틀어막은 손아귀 때문에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다. 그럼에도 강하늘의 외침은 분명하게 내 귀에 들리고 있었다.
구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날 바라보며, 그 두 눈에 무언의 바람을 담은 채.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애써 내게 눈을 맞추고 있는 강하늘은.
비록 육성으로 말하고 있진 않지만, 분명히 그렇게 외치고 있노라고.
‘……그래.’
생각났다. 저 시선이었다. 저 시선에 이끌려 나는 멍한 머리로 몸을 일으켰다. 애처롭게 울먹이는 저 표정에 얼떨결에 일어나 버렸다.
웃긴 일이었다. 내가 무슨 주인공도 아니고, 무슨 권리로 이제 와서 하찮은 영웅심에 취하는가.
앞뒤 가리지 않는 영웅심이란 으레 주인공에게만 허락된 특권이거늘.
그래,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게 내가 아닌 주인공 류태현이었다면. 만일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강하늘을 구하고자 했겠지. 그리고 그 끝에 분명 강하늘을 구해내는 데에 성공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비단 지니고 있는 능력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설령 내가 빙의한 것이 안수호가 아닌 류태현이었다고 해도, 본래 나라는 인간이 지닌 천성이, 내포하고 있는 성격과 가치관이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전형적인 소시민이다. 내가 지난 24년간 살아온 삶은 전형적인 소시민의 삶이었다.
나는 위기를 싫어하고 위험을 기피했다.
무모한 도전보다는 편안한 안주를 택했다.
어디서든 중간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중간만 갔다.
남들만큼의 이타심과 도덕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이를 실천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게 손해가 없는 선에서였다.
살면서 치명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돕고자 한 적은 없었다. 하물며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목숨을 걸라니, 그게 가능이나 한 이야기인가.
감히 예상하건대 설령 내가 빙의한 몸이 안수호가 아닌 류태현이었다 한들, 나는 강하늘을 구하기 앞서 그녀를 구함으로써 얻는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라는 인간이었다. 나는 지극히 객관적으로 날 돌아보았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스스로에게 고했다. 하찮은 영웅심에 휘둘려 몸을 일으킨 것은 크나큰 실책이라고.
보아라. 허성찬이 날 바라보고 있다. 두 주먹을 꽉 말아쥔 채 당장이라도 날 칠 기세지 않은가.
조금 전엔 운 좋게 살았다고 하나, 다시 한 번 저 주먹에 맞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죽을 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 순간 기적처럼 새로운 힘을 각성해 허성찬을 무찌를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덧붙여서 이 세상은 내게 그렇게나 친절하지도 않았다.
잘못된 선택은 곧 죽음이다.
그래. 지금이라도 항복하자.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자. 그렇게 하면 저들도 날 살려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결코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그럴 것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는 류태현도 아니고 한겨울도 아니다. 나라는 인간은, 소시민으로 태어나 소시민으로 살아간 나라는 인간은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법이다.
제 분수를 알아라.
끊임없이 그렇게 되뇌었다. 되뇌었으나, 그럴 때마다 강하늘의 애처로운 시선이 밟혔다.
그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강하늘은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남이다.
그녀가 여기서 납치된다 한들 내게 돌아오는 불이익은 없다.
애초에 원작에서부터 지나가듯 스러진 엑스트라 악역이지 않은가. 그런 그녀를 위해 내가 목숨을 걸 이유 따위 어디에도 없었다.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강하늘의 얼굴에.
서글프게 일그러진 그 표정에.
뺨을 따라 흐르는 맑은 눈물에.
애처롭게 날 바라보는 저 눈빛에.
문득 정신을 차린 순간, 나는 두 손으로 가드를 올린 채 허성찬과 대치하고 있었다.
강하늘을 저들에게 넘겨선 안 된다.
그러한 판단엔 어떠한 이해득실도, 합리도, 당위성도 없었다. 다만 그래선 안 된다고. 그러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가슴 한 켠에 자리한 이 죄책감 때문에.
강하늘은 본래 이런 위기에 처할 운명이 아니었다.
원작에선 나름대로 강했던 그녀가 이토록 약해진 것도.
그로 인해 그녀가 헌터의 꿈을 포기하고 자퇴를 결심하게 된 것도.
그 결과 그녀를 납치하려는 자들에게 붙잡히게 되어,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한 채 무력하게 내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리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내 탓이라고. 본래라면 예정대로 흘러갔을 그녀의 삶이 이토록 뒤틀린 것은, 이 세상에 멋대로 끼어들게 된 나의 탓인 게 아니냐고.
웃기지도 않는 생각이었다. 강하늘이 저렇게 된 게 왜 내 탓인가. 누군가를 탓한다면 강하늘을 저렇게 바꾼 쾌락천마를 탓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쾌락천마에게 놀아난 피해자이지 결단코 가해자가 아니다.
허나 한 번 뇌리를 잠식한 생각은 쉽사리 지울 수 없었다. 제아무리 그녀의 삶을 바꾼 게 쾌락천마라 한들, 그 목적이 내게 위기를 주기 위함이라면 곧 내가 그 원인이라 해도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 생각이 내 가슴 한 켠에서 죄책감을 샘솟게 했고, 그 죄책감이 곧 나를 일으켜 이 자리에 서게 했다.
“……이런 시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분명히 주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그 이유는 채 버리지 못한 일말의 양심이요.
남들만큼은 가지고 있다 자부하던 알량한 도덕심의 흔적이요.
이대로 패배를 인정하기 싫다는 치졸한 자존심이요.
날 싫어하는 작가에게 보여주는 한 걸음의 반항심이요.
허나 그러한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하여 굳이 덧붙이자면.
“……덤벼. 몸 식는다.”
그것은, 참으로 하찮은 영웅심의 발로였노라고.
먼 훗날 문득 이 날을 돌아보게 되면,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그렇게 나와야지!”
그러한 감상이 뇌리에서 흩어짐과 동시에 허성찬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 있는 속도도 아니었고 피해낼 생각도 없었다. 곧 둔중한 그의 주먹이 내 복부에 꽂혔다.
“크흡!”
가까스로 버텨서 몸이 날아가진 않았다. 허나 그 충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단번에 내장을 짓뭉개는 위력에 애써 삼킨 핏물이 푸확! 하고 입에서 터져 나왔다.
턱.
쓰러지려던 몸을 가까스로 허성찬의 어깨에 기대었다. 어설픈 클린치.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버티고 서기 위해선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 꼴사나운 저항에 허성찬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런 간단한 공격도 못 피하다니, 정말 죽기 일보 직전인가 보네.”
그는 천성부터 전투를 즐기는 자였다. 목적의 달성보다 싸움 그 자체를 중시한다는 것은 청부업자로서는 마이너스 요소이나, 그러한 점은 철두철미한 성격의 유진수가 파트너로서 보완해주고 있었다.
허나 아무리 파트너라 한들 전투에 돌입한 그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제한하진 못할 터.
내가 일어선 순간, 허성찬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무언가 보여주리라고 믿는 얼굴이었다. 그렇기에 날 단번에 끝내지 않았다. 내 다음 행동을 지켜보기 위해 마무리를 짓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도 이렇게, 내가 그의 몸에 바짝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날 밀쳐내지 않고 있잖은가.
허성찬이라면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 만에 여기까지 거리를 좁힐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건만, 참으로 요행이었다.
턱.
허성찬의 어깨에 걸쳤던 오른팔을 들어 그의 머리를 잡았다.
아무런 힘도 담기지 않은 느릿한 동작.
그렇기에 놈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던 비겁한 일격.
키이이이잉!
이내 있는 힘껏 탈리스만을 발동하자 맑은 공명음과 함께 반지의 보석이 푸르게 빛났다.
“엉?”
“성찬! 피하십시오! 뭔가 이상합니다!”
뒤늦게 반응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 오른손에서 흘러나온 검은 연기가, 거의 끈적한 액체 수준으로 압축된 시커먼 뱀이 허성찬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으왓?! 이게 뭐야”
직후, 놈의 귓속에 똬리를 튼 뱀이 은밀하게 몸집을 부풀렸다.
펑!
그간의 소음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한 자그마한 폭발음.
허나 그 결과는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너 나한테 무슨 짓을……. 어, 어라?”
비틀거리며 물러선 허성찬의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르륵.
“어, 어어?”
허성찬의 한쪽 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당혹감에 젖은 그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그 모습에 나는 내 시도가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내가 가진 최대 위력의 공격은 탈리스만을 통해 생성해낸 다량의 연기를 압축한 뒤 단번에 터뜨리는 것. 당연히 좁은 실내에서 이를 발동했다간 나까지 공격에 휘말리게 된다. 방금 일격은 그렇기에 꺼낸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다.
최소한의 연기로 적에게 데미지를 주기 위해, 작게 압축한 연기를 적의 체내에서 터뜨려 오직 적에게만 충격을 주는 기술.
성공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난관이 몇 가지나 있었다. 우선 전제조건으로 주먹이 오가는 거리보다도 가깝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적의 체내와 연결된 구멍을 노려야만 했고, 마지막으로 탈리스만의 발동에 걸리는 약간의 딜레이를 적이 기다려주어야만 했다. 저만한 압축률은 본래 내가 가진 마력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하여튼, 본래라면 지극히 성공하기 어려운 기술이었다. 허나 성공하기가 어려운 만큼 그 효과는 확실했다.
“뭐야, 앞이 왜 안 보이지? 게다가 안 들려? 어라? 어어어?”
허성찬은 한쪽 귀를 붙잡은 채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의 귓속에서 터진 연기는 그의 머릿속을 종횡무진 누볐을 터. 보아하니 왼쪽 귀의 청력과 더불어 균형감각, 그리고 왼쪽 안구의 시각이 맛이 간 것 같았다.
'단번에 죽이려고 했는데 위력이 부족했나.'
별다른 충전시간도 없이 지른 일격이니 어쩔 수 없었다. 좀 더 시간을 들여서, 대충 10초에서 20초 정도 연기를 압축했다면 아예 머리를 터뜨리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아무리 허성찬이 방심했다 하더라도 그만한 시간을 기다려주지는 않았겠지.
허나 결과적으로 허성찬은 전투불능에 빠졌다.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저 모습을 보면, 아마 더 이상 싸우지는 못하겠지.
‘자 그럼.’
천천히 올라오는 탈리스만의 반동을 느끼며, 나는 이제 어쩔 거냐는 눈으로 유진수를 바라보았다.
유진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투에 관해선 일임하던 자신의 파트너가 맥없이 당해버렸으니.
허나 그라고 해서 아예 싸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그가 이판사판으로 내게 덤벼든다면, 솔직히 말해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이봐.”
그렇기에 나는 선수를 쳤다. 그가 행여나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거래다. 강하늘을 얌전히 내게 넘겨. 그러면 나도 네 파트너를 넘겨주지. 물론 쫓지도 않겠어. 어때?”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손아귀에 검은 연기를 일으켰다. 눈앞에 쓰러져 있는 허성찬을 향해서. 당장에라도 그를 죽일 수 있다는 것처럼.
내 행동에 유진수의 얼굴에 고민의 기색이 스쳤다.
위험을 무릅쓰고 의뢰 완수를 위해 내게 덤비느냐, 아니면 파트너의 안위를 위해 의뢰 실패를 감수하고 물러나느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나는 그가 선택할 답을 알고 있었다. 무얼, 허성찬과 유진수는 서로를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파트너 관계였다. 그에게 허성찬의 목숨을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거래를 받아들이죠.”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내키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유진수에게 내가 눈짓하자, 그가 강하늘을 겁박하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탓!
강하늘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반쯤 기다시피 내게 도망쳐왔다. 그녀가 내 등 뒤에 숨은 채 오들오들 떨었다.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나는 손에 만들었던 연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허성찬의 발목을 멀리서 잡아 유진수에게로 휙 던졌다. 그 몸을 받아든 유진수가 아직 멀쩡한 허성찬의 반대쪽 귀에 작게 속삭였다.
“성찬. 괜찮습니까?”
“진수! 나 때문에 의뢰를 포기하지 마! 지금이라도 놈을 공격해! 어서!”
“그럴 순 없습니다. 저 혼자선 당신을 지켜내면서 저 자를 쓰러뜨리고 강하늘을 납치할 수 없어요. 게다가 곧 경찰도 오겠죠. 저희의 패배입니다.”
“패배라니?! 난 안 졌어! 우린 안 졌다고! 저 자식이 비겁한 짓만 안 했어도”
“그런가요. 하지만 승리를 위해선 한 번 물러나야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성찬.”
“이런 빌어먹을……!”
부아가 치민다는 듯 이를 간 허성찬이 내게서 조금 어긋난 방향을 가리킨 채 외쳤다.
“너 얼굴 기억했어! 두고 봐! 다음에는 절대 방심하지 않아! 반드시 내가 이길 거라고! 알겠냐?!”
“……얼른 데려가지 그래?”
“……자비에 감사드리죠.”
악에 받친 채 날뛰는 허성찬을 들쳐멘 채 유진수가 현관을 나섰다. 열린 문틈으로 멀리서부터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 사이렌 소리에 내 몸을 지탱하고 있던 마지막 긴장감이 탁 풀렸다.
털썩.
“어, 어어? 괘, 괜찮아요?”
엉겁결에 쓰러지던 날 받아든 강하늘이 당황한 채 물었다. 허나 고개를 끄덕일 기운조차 없었다. 누적된 부상과 더불어 막판에 사용한 탈리스만의 반동 탓에 당장에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았다.
“……넌, 괜찮냐?”
스러져가는 의식 속에서 가까스로 그렇게 물었다. 엉겁결에 반말로 물었으나 강하늘은 그런 것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네! 전 괜찮아요! 그보다 그쪽 상처가 너무 심한데……. 이, 일단 119부터…….”
“그래. 괜찮다면 됐다…….”
내가 서서히 눈을 감기 시작하자 강하늘이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산스럽게 굴 필요 없는데. 누가 보면 내가 죽기라도 하는 줄 알았다.
아니, 생각해 보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부상이긴 했다.
……잠깐, 그럼 설마 나 지금 죽어가고 있는 건가?
‘이런 시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좀 전까지 죄책감이니 영웅심이니 나름대로 세웠던 각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미쳤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판에 무슨 강하늘을 구해내겠다고 설쳤을까.
“저, 정신 좀 차려 봐요! 눈 감으면 안 돼요! 의식을 잃으면 거기서 끝이라고요!”
“……아, 시발…….”
“그래요! 욕이라도 해서 의식을 붙잡는 거예요! 곧 경찰이랑 구급차가 올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그러길래 왜 자퇴한다고 지랄을 해서…….”
“에, 네?”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무심코 강하늘을 탓했다. 구질구질하게 그녀를 탓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주인공은 되지 못할 팔자인가 보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제가, 제가 자퇴한다고 해서…….”
그렇게 중얼거린 강하늘이 날 내려다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댔다.입술을 잘근 씹으며 히끅 히끅 울어대는 게 꼭 채소연을 보는 것 같았다.
‘……아.’
그 순간 문득 든 생각.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올 때 채소연이라도 데리고 올걸…….’
그야말로 때늦은 후회였다. 곧 기력이 다한 나는 힘없이 두 눈을 감았다. 강하늘이 그런 내게 무어라 소리쳤지만 귀가 먹먹하여 잘 들리지 않았다.
‘이런, 시발…….’
그 욕지거리를 마지막으로, 이내 내 의식은 깊은 수면 저 아래로 가라앉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