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049. 하찮은 영웅심(1)
* * *
허성찬. 27세. 슬럼가 출신의 무호적자. 신장 188cm에 체중 87kg. 추정 초인등급은 B+. 보유 초능력은 근골나선화.
그가 자세를 낮추자 그의 다리 근육과 뼈가 나선형의 스프링 형태로 말려들어갔다. 이내 압착된 근육의 탄성이 단번에 해방된 순간, 그가 박찬 지면에 가해진 힘은 본래 그의 각력의 4배에 달했다.
그 돌진 속도는 말 그대로 ‘사라졌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속도.
나름대로 블레이드를 겨눈 채 경계 자세를 잡은 안수호였으나, 그의 속도 앞에선 무방비하게 서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파지지직!
허나 허성찬의 주먹이 짓쳐든 순간, 그의 블레이드가 시퍼런 전류를 뿜었다.
“오!”
허성찬이 주먹을 거둔다. 제동을 걸듯 내뻗은 다리가 스프링으로 변하고, 다음 순간 그의 몸이 돌진했던 속도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물리법칙을 정면에서 부정한, 평범한 인간에겐 불가능한 움직임.
파, 파앙!
거의 동시에 울린 두 번의 파공성에 강하늘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블레이드를 휘두른 채 굳어 있는 안수호의 모습에서 한 차례의 공방이 있었음을 뒤늦게 짐작할 뿐이었다.
“이야, 빠른데! 실력이 좋은 경호원이야! 그쪽 뒷배가 누군지는 몰라도 돈 꽤나 썼나 본데!”
어지간한 초인은 반응하지 못할 속도였음에도 안수호는 반응했다. 반쯤 때려 맞추듯 내지른 일격이었지만 어떻게든 반응해냈다.
‘……방금 일격으로 확실해졌어. 놈은 원작에 나왔던 캐릭터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안수호가 눈앞의 남자, 허성찬의 능력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훤칠한 키에 호쾌한 인상의 금발 미남. 의정부 슬럼의 청부업자. 그리고 무엇보다 성찬이라는 이름.
그 요소들로부터 안수호는 원작에 나왔던 어느 빌런을 떠올렸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렇다면 같이 온 저 진수라는 놈도 원작에 등장했던 ’그‘ 유진수가 맞겠지. 젠장, 성가시게 됐는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으나 그건 지금 상황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허성찬과 유진수. 원작 중반에서 후반부에 걸쳐 등장한 청부업자 팀.
두 사람은 양지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류태현과 대비되는 음지의 범죄자로서 몇 번이고 그와 충돌했다. 몇 번이고 충돌했다는 건 그들이 일회성 악역이 아니라는 것이요, 즉 그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강자들이란 뜻이었다.
앞에 나서 직접 전투를 치르는 허성찬과 그를 뒤에서 보조해주는 유진수의 듀오.
그 두 사람의 시너지가 만들어내는 강함은 류태현조차 몇 번이고 위협했을 정도였다. 즉, 지금의 안수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반응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그의 손목에 채워진 아티펙트 덕분이었다.
‘……단번에 샛별의 숨소리를 두 번이나 발동했다. 스톡이 아깝긴 하지만 올바른 선택이었어. 한 번만 발동했으면 절대 반응하지 못했을 거야.’
“그럼 이것도 따라올 수 있나 보자고!”
그 말과 동시에 허성찬의 신형이 사라졌다.
파앙! 파앙! 팡! 팡! 팡! 팡!
온사방을 메우는 파공성.
벽을, 바닥을, 천장을 발판 삼아 종횡무진 튀어 다니는 허성찬의 움직임. 4배속에 달하는 샛별의 숨소리의 가속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 속도는 겨우 쫓을 수 있을 정도였다.
“히, 히익!”
두려움에 질린 강하늘을 한 손으로 감싸며 안수호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일반적인 원룸의 벽과 바닥이라면 허성찬이 박차는 반발력을 이겨낼 수 없을 터. 얇은 벽은 진즉에 무너졌어야 했고 바닥과 천장이라 한들 움푹 패이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과 바닥에 제 형태를 유지한 채 허성찬의 발판이 되어주는 건.
‘유진수. 저 녀석의 능력인가.’
원룸 입구. 현관문 앞에서 바닥에 손을 댄 채 가만히 있는 허성찬의 동료, 유진수.
그의 능력은 형태고정. 만진 물건의 형태를 만진 그 순간의 형태대로 고정하고 가해진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었다.
그의 손에 쥐어지면 한낱 종이조차 총알을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된다. 그 능력의 대상이 된 강하늘의 원룸은 허성찬이 아무리 날뛰어도 파괴되지 않는 견고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유진수가 보조하고 허성찬이 날뛴다.
이 둘의 싸움이란 늘 이런 식이다. 안수호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으나, 아는 것과 대처할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지금 내 실력으로 저 둘을 이기는 건 무리다. 그렇다면’
“꺄앗?!”
강하늘의 몸을 옆구리에 고정한 채 안수호가 크게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도망친다!’
푸화아아아악!!
그의 손에서 뿜어진 검은 연기가 원룸을 가득 메운다.
안수호는 그 길로 곧장 현관으로 향했다.
창문으로 도망칠 순 없었다. 유진수의 능력에 의해 창문이 닫힌 상태로 고정되어 있으니까. 물론 그건 닫혀있는 현관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도망치든, 우선 능력을 발동 중인 유진수를 처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연기에 휩싸여 있던 유진수에게 있는 힘껏 스턴 블레이드를 내려쳤다.
“어딜!”
허나 다음 순간, 블레이드를 치켜들어 빈 오른쪽 옆구리에 허성찬의 발차기가 꽂혔다.
우드득!
“커헉!”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안수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그의 몸이 꼴사납게 벽에 박혔다. 동시에 그 충격에 의해 그의 능력에 의해 유지되던 연기가 일제히 사라졌다.
드러난 광경 속. 유진수는 전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손을 짚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앞에는 두 다리를 스프링으로 바꾼 허성찬이 태연한 웃음을 지으며 통통 뛰고 있었다.
“연막이라. 조잡한 능력이네! 그래도 눈속임용으론 괜찮았어!”
그 눈속임을 정면에서 파훼한 자가 그렇게 말하니 꼭 놀리는 것처럼 들렸다. 실제로도 놀리는 게 맞았다.
안수호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행동이 너무 뻔했다. 방 안이 연막으로 휩싸인 순간, 현관으로 향하는 흐릿한 형체만으로 허성찬은 안수호의 목적을 간파해낼 수 있었다.
순전히 전투 경험의 차이에 의한 결과. 안수호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넌 우리를 못 이겨! 많이 싸워봤으니까 알아! 강한 놈을 앞에 두면 여기, 뒷머리가 찌릿찌릿 하는데 너한테선 전혀 그런 느낌이 없거든!”
허성찬이 안수호가 놓친 스턴 블레이드를 집어들었다. 버튼을 누르자 그 위로 사나운 전류가 튀어 올랐다.
“그러니 그만 항복하지 그래? 너도 그렇고, 거기 너도 말이야.”
이내 그 시선이 안수호보다 앞. 바닥에 주저앉은 강하늘에게로 향했다.
“그냥 얌전히 우리랑 같이 가자! 아마 죽이진 않을 거야! 널 죽일 생각이었다면 우리한테 납치가 아니라 살해 의뢰를 했겠지! 그 편이 훨씬 싸거든!”
“시, 싫어.”
“싫어도 억지로 데려갈 거라니깐? 나 힘조절은 조금 서툴러서. 잘못하다 어디 한두 군데 부러질 지도 모른다?”
“싫다고 몇 번을 말해!”
강하늘이 울상을 지으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눈동자가 붉게 물듦과 동시에 그녀의 손아귀에 빨간 불꽃이 피어올랐다.
“성찬!”
“오! 해보자는 거야? 좋네! 나도 그 편이 편하고 좋아!”
심상치 않은 기세에 유진수가 다급히 그를 불렀으나 허성찬은 이미 싸울 생각으로 가득이었다. 허성찬이 자세를 낮춤과 동시에 강하늘의 손바닥이 불덩이를 뿜었다.
퐁.
아주, 약한 기세로.
“엉?”
탁구공만한 불덩이는 그녀의 손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에서 스러졌다. 허성찬과 유진수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안수호가 당황을 금치 못했으며, 그 한 가운데 있던 강하늘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역시…….”
강하늘이 체념하듯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상황을 파악한 허성찬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핫! 그게 뭐야? 설마 그 쬐끄만한 불꽃으로 날 어떻게 해보려고 했어?”
박장대소하는 허성찬. 그 옆에서 바닥을 짚고 있던 유진수가 실의에 빠진 강하늘에게 말했다.
“순순히 저희를 따라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이 왜 그렇게 약해진 건진 모르겠지만, 설령 당신의 힘이 그대로였다 해도 저희를 이기진 못했을 겁니다. 저희는 100%의 당신을 상정하고 고용된 청부업자들이니까요.”
“…….”
강하늘이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잘근 씹었다.
‘알아. 나도 안다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지금의 자신은 저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 우연히 함께 있던 경비대원도 순식간에 당했다.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저들을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강하늘은 저들을 따라간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할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절대로 좋은 꼴은 못 보겠지.’
그렇기에 입술을 잘근 씹었다. 힘없이 풀린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후들거리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 어설프게나마 자세를 취했다. 한없이 미약했으나 그건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직후, 두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오?”
허성찬이 스턴 블레이드를 쥔 채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 시선은 강하늘이 아닌 그녀보다 조금 뒤에로.
“이야, 대단하네! 그걸 맞고 일어서다니.”
이내 그 얼굴에 진한 웃음이 떠올랐다.
“에?”
강하늘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직후 그녀의 어깨를 짚는 두꺼운 손바닥.
“다, 당신…….”
그곳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서있는 안수호가 있었다.
“사, 상처는 괜찮아요?”
“……버틸만합니다.”
거짓말이었다. 부러진 갈비뼈는 지금도 그의 근육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격통이 척추를 따라 달렸다.
강하늘의 어깨를 짚은 것도 그녀를 말리거나 다독여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지탱할 곳이 필요했을 뿐.
허성찬과 유진수는 곧 그러한 안수호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그들은 프로였다. 그 눈썰미는 어설픈 연기로 속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쯤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름 모를 경호원 씨.”
그 정중한 충고에 안수호의 시선이 유진수에게로 향했다.
“피차 돈으로 고용된 사람들끼리 목숨 걸고 싸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 이상 덤비겠다면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세요. 그냥 거기 얌전히 쓰러져 계시는 겁니다. 그럼 저희도 굳이 당신을 죽이진 않겠습니다.”
그 말에 안수호가 피식 웃었다. 너무나도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으니까.
안수호는 유진수가 어떤 성격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파트너인 허성찬과 달리 철두철미한 지략가 타입. 자기네들의 얼굴을 본 자신을 살려줄 리가 없다고.
그렇기에 안수호는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수호가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자 유진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내 그가 나지막하게 성찬을 불렀다.
“성찬.”
“알겠어!”
파앙!
다음 순간, 좀 전과 마찬가지로 사방을 종횡무진 누비기 시작한 허성찬.
키이이잉!
그 모습에 안수호는 지체 없이 샛별의 숨소리의 마지막 스톡을 해방했다. 세 번의 발동 효과가 겹치며 그의 몸이 8배 속도로 가속했다.
“흡!”
안수호의 등을 노린 허성찬이 주먹을 찔러 넣었다.
허나 그 주먹은 실없이 허공을 가르고, 그 다음 순간 안수호가 나타난 곳은 허성찬의 등 뒤였다.
“어라?”
나지막한 탄성 직후, 안수호의 주먹이 허성찬의 옆구리에 꽂혔다.
콰아앙!!
“커헉!”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트럭에 치인 것처럼 옆으로 날아간 허성찬. 허나 그 몸이 벽에 닿기 직전, 앞질러서 도착한 안수호의 주먹이 다시 한 번 허성찬의 몸을 가격했다.
콰앙! 콰앙! 콰아앙!
새된 폭발음이 연속으로 울려댔다. 절반은 안수호가 땅을 박차는 소리요, 나머지 절반은 허성찬의 몸에 꽂히는 그의 주먹이 만들어낸 소리였다.
3차원으로 어지러이 움직이던 허성찬과 달리 안수호의 움직임은 한없이 직선적이었다. 직선적이었으나, 그럼에도 피해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속도였다.
“우오오오오오!!!”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 판단한 허성찬이 회피나 방어를 포기한 채 안수호에게 맞섰다. 두 사람의 주먹이 사방에서 교차했다.
콰앙! 쾅! 콰아앙! 콰앙!!
인간의 주먹이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폭발음들.
그 대부분은 안수호의 주먹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속도에서 우위를 점한 안수호는 허성찬의 주먹을 대부분 피해내며 자신의 일격을 적중시켰다.
허나 모든 주먹을 피해내진 못했다.
콰아앙!!
이따금 사각에서 뱀처럼 휘어서 들어오는 허성찬의 일격에 안수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샛별의 숨소리의 효과는 오직 가속뿐. 내구력은 그대로인 그의 몸에 꽂힌 허성찬의 공격은 한방 한방이 치명적이었다.
반면 안수호의 공격은 빠르고 무겁되 치명적이진 않았다. 공격이 닿는 순간 허성찬이 해당 부위에 능력을 발동한 탓이었다. 나선형으로 말린 근육은 자체적으로 내포한 탄성으로 안수호의 주먹에 담긴 위력을 효과적으로 분산시켰다.
압도적인 속도를 지녔지만 내구성이 발목을 잡는 안수호.
반면 속도에선 밀리지만 뛰어난 내구성으로 끝없이 버티는 허성찬.
두 사람의 싸움의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두 개의 그림자가 종횡무진 원룸 안을 누비며 끊임없이 주먹과 주먹을 주고받았다.
“저게, 무슨…….”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 유진수의 중얼거림이 맥없이 허공에 흩어졌다.
능력의 탄성을 적극 활용한 허성찬의 속도는 어지간한 A급 초인과 엇비슷한 수준. 헌데 그 허성찬이 속도에서 밀리고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안수호의 속도는 허성찬의 최고 속도를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이내 있는 힘껏 내지른 안수호의 주먹이 허성찬의 복부를 찔렀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몸이 원룸 반대편 벽에 꼴사납게 처박혔다.
찌릿.
그 순간 경종을 울린 유진수의 감각.
파앙!
직후 타깃을 바꾼 안수호가 곧바로 유진수에게로 달려들었다. 반응할 새도 없는 속도였다.
유진수가 뒤늦게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고작 손수건일 뿐이었지만 그의 능력이 있다면 훌륭한 방패가 되어줄 터.
허나.
‘늦었다!’
그가 방패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안수호가 도달하는 것이 빨랐다. 찬란한 붉은 빛을 내뿜는 팔찌와 함께 안수호의 주먹이 유진수의 미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딜 한 눈을 팔아!!”
그러나 그 순간, 가까스로 안수호를 따라잡은 허성찬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중심이 흐트러진 안수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진수!”
둘 사이에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허성찬의 다급한 부름에 유진수가 곧바로 원룸을 대상으로 다시 능력을 발동했다.
파앙!
허성찬이 크게 뛰어올라 천장에 붙었다. 직후 천장을 지면 삼아 박찬 그의 주먹이 안수호의 위로 내리꽂혔다.
뒤늦게 반응한 안수호가 몸을 내뺐다. 반응이 다소 늦었다곤 해도 안수호의 속도라면 능히 피해낼 수 있는 일격.
키이잉…….
허나 그 순간 압도적인 광량을 발하던 샛별의 숨소리가 빛을 잃었다. 하필이면 그 순간 먼저 발동했던 두 번의 가속 효과가 끝난 것이었다.
‘이런…….’
안수호의 무릎이 덜컥 굳었다. 가속 배율이 달라짐으로써 생겨난 찰나의 틈. 허성찬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흐읍!”
나선형으로 휘감긴 주먹이 안수호의 등에 꽂혔다.
‘……시발.’
이래서 도망치려고 한 건데, 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콰아아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그의 몸이 매서운 기세로 튕겨나갔다.
“……!”
깔끔하게 들어간 일격에 안수호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가까스로 몸을 비튼 덕에 척추는 지켜냈다고 하나 그뿐이었다. 등 뒤에서 그의 옆구리에 적중한 허성찬의 주먹은 단번에 그의 근육을 끊어내고 혈관을 터뜨렸으며 내장을 짓뭉갰다.
“쿨럭!”
그의 식도가 망가진 펌프처럼 연신 혈액을 쏟아냈다. 잔경련이 퍼져나가던 몸이 서서히 굳으며 안수호가 제 피로 만들어진 웅덩이에 고개를 처박았다.
그 모습을 본 유진수와, 허성찬과, 그리고 강하늘의 뇌리에 동일한 생각이 스쳤다.
저건 끝났다. 죽었다. 다신 일어서지 못한다.
그 동일한 감상에 유진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성찬은 후련한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겹친 복잡한 표정이었다.
“아, 아아……!”
그리고 강하늘에 이르러서는 두려움에 질린 채 어깨를 덜덜 떨어댈 뿐이었다.
“……슬슬 돌아갑시다. 저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곧 경찰이 들이닥칠 겁니다.”
유진수가 바닥에 주저앉은 강하늘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를 올려다본 강하늘의 얼굴에 짙은 두려움이 번졌다.
“시, 싫어…….”
유진수가 억지로 그 손목을 잡아끌자 강하늘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어떻게든 뿌리치려고 애썼지만 불가능했다.
“가만히 계시길. 저희도 되도록이면 온전한 상태로 당신을 데려가고 싶습니다. 당신도 쓸데없이 다치는 건 싫지 않습니까?”
유진수가 바닥에 쓰러진 안수호를 가리켰다. 혹시 너도 저렇게 되고 싶은 거냐고.
그 제스처에 강하늘은 저항을 포기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힘없이 끌려가며 그저 얕게 떨어댈 뿐이었다.
“흐윽.”
강하늘의 뇌리에 불길한 상상이 스쳤다. 왜 이들이 자신을 납치하려는 건지는 몰랐으나, 그 이유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아무것도 없는 그녀를 납치할 이유 따위, 그녀의 초능력 외에 뭐가 있겠는가.
인체실험. 그 짤막한 단어 하나가 강하늘의 뇌리를 강하게 뒤흔들었다.
‘결국.’
그 끝에 찾아오는 감정은 체념.
‘결국 이렇게 됐구나.’
언젠가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린하우스를 자퇴했다. 파격적인 장학사의 요구마저 거절하고 조용히 살아가고자 했다. 초인이니 초능력이니 하는 것과 하등 상관없는 일반인의 세계에서.
하지만 행동하는 게 늦었던 건지, 아니면 이게 곧 자신의 운명이었던 건지.
결국 우려대로 벌어진 이 상황에 강하늘이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며 체념했다.
체념하려 했으나, 이 남자들에게 끌려간 뒤 자신에게 닥칠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체념할 수 없었다.
“……누구, 누구 없어요?”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 강하늘의 중얼거림이 힘없이 허공에 흩어졌다.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여기 지금……읍읍!”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 입을 틀어쥐었다. 유진수가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 강하늘의 목에 겨누었다. 그 이상 떠들지 말라고.
겁에 질린 강하늘이 비명을 멈췄다. 멈추지 않았어도 입이 막힌 이상 비명을 지를 순 없다. 저항할 수도, 발버둥칠 수도, 비명을 지를 수도 없는 강하늘에게 가능한 것이라곤 이제 간절히 비는 것뿐이었다.
부디 누군가. 아무라도 좋으니 제발. 자신을 구해달라고.
강하늘은 간절히 빌고 또 빌었으나 무의미했다. 꽤나 소란스러운 전투였으나 전투에 의한 충격이나 소음은 유진수의 능력에 의해 철저히 막혔으니까.
‘제발……!’
설령 소리가 새어나갔다고 해도 그녀가 살고 있는 원룸의 주민은 대부분 학생이나 직장인. 대낮임에도 집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그녀 정도가 끝이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그것이 현실이었다. 제아무리 그녀가 간절히 바란다 한들, 이야기처럼 그녀를 구할 히어로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커헉!”
다만, 이미 스러진 엑스트라가 미련하게 몸을 일으킬 뿐.
그 이질적인 소음에 세 사람의 시선이 안수호에게로 향했다. 비틀거리는 무릎을 짚은 채 겨우 일어선 그를 보며 세 사람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오?”
허성찬이 반가운 얼굴로 탄성을 뱉었다. 그의 팔이, 다리가 순식간에 나선형으로 말려들어갔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로.
“……미련하군요.”
유진수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쓰러져 있었다면 목숨은 건졌을 텐데, 왜 미련하게 일어서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그리고 강하늘에 이르러서는, 그저 놀란 눈으로 안수호를 바라볼 뿐.
그 두 눈에 다양한 감정이 스친다.
처음에는 놀라움이.
놀라움이 곧 안도감으로.
허나 안도감은 직후 실망감으로.
실망감은 이내 두려움을 야기했고.
곧 그 하늘색 눈동자 끝까지 차오른 두려움에 강하늘이 막힌 입으로 외마디 신음을 흘렸다.
안수호는 이미 만신창이였다.
허성찬의 주먹에 맞은 곳은 어디 하나 가릴 것 없이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으며, 상의는 그 자신이 토해낸 핏물로 시뻘겋게 물들어있었다. 두 무릎은 당장이라도 꺾일 듯 불안정했으며, 서는 것만으로도 한계라는 듯 그 고개를 축 늘어진 채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희망적으로 생각해도 안수호가 자신을 구해줄 수 있으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신창이인 저 남자가 갑작스레 각성하여 이야기처럼 자신을 구해내는 일 따위, 일어날 리가 없다고.
강하늘은 그런 헛된 희망을 품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그래도. 어쩌면.’
그녀에게 가능한 것이라곤 그 헛된 희망을 품는 것밖에 없었기에.
이내 그 가녀린 두 주먹을 꽈악 말아 쥐며.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헛된 희망에 답하기 위해.
“…….”
비릿한 핏물에 잠겨있던 목구멍으로, 안수호가 낮은 숨을 토해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