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045. 담판
* * *
성유진이 민채령을 데리고 간 응접실은 평소 그가 재단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맞이할 때마다 즐겨 사용하는, 반쯤 그 전용의 응접실이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화려하게 꾸며진 응접실 내부는 마치 고풍스러운 유럽의 성을 방불케 했다. 인테리어에 사용된 가구나 소품은 하나같이 억을 호가하는 최고급품들이었으며, 설령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마저 주눅 들게 할 정도로 뛰어난 미관을 자랑했다.
허나 그간 이 응접실에 방문했던 손님들은 그 누구도 그런 인테리어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다. 제아무리 가구나 소품의 퀄리티가 뛰어난다 한들, 그들의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의 남자보다 시선이 가지는 않을 테니까.
성유진. 국내에 20명도 없는 S급 초인이자 공인 1급 헌터. S급 길드의 간부이며, 여일장학재단의 이사이자 그 모회사인 여일그룹의 사외이사이기도 한 남자
이 응접실에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그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주눅이 들었다.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유념하며 필사적으로 그의 눈치를 쫓기 바빴다. 이 대한민국 땅에서 성유진과 독대하며 여유로울 수 있는 사람 따위, 많아봐야 두 손에 꼽으리라.
“시간 없으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리고 민채령은 그 두 손 안에 드는 여자였다.
“거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매몰찬 거 아닙니까? 저는 우리 사이가 나름 돈독한 선후배지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선후배지간에도 지켜야 할 상도덕이란 게 있는 법이잖아. 그리고 너희 여일은 그 도덕을 어겼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시치미 떼지 마. 너희 쪽 장학사가 강하늘에게 접근한 목적을 내가 모를 것 같아? 다중능력자 연구의 샘플로 사용할 생각이지?”
“크흠.”
그 말에 성유진이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뱉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민채령의 미간을 꿰뚫었다.
“근거도 없는 음해는 그만두시죠. 다중능력 연구는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된 연구입니다. 그런 불법 행위를 저희 여일이 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어. 하고 있잖아. 용인에 있는 여일그룹 산하 초인재활연구소. 겉으로는 초능력 관련 재활 치료 연구라지만 사실은 다중능력을 연구하는 연구소잖아? 안 그래?”
그 당당한 물음에 성유진이 일순 숨을 삼켰다. 허나 곧 평정을 되찾은 그가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근거도 없는 음해는 그만두시”
“다 아는 사람끼리 왜 그래? 어차피 명목만 불법이고 그린하우스나 여일이나 암암리에 다 연구하고 있잖아.”
“이거 참.”
성유진의 입가에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웃음이 걸렸다. 명색이 아카데미 경비대란 사람이 지네 아카데미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꼴이 황당하기 그지없어서.
‘그래, 채령 선배는 원래 저런 사람이었지.’
성유진은 민채령과 함께 했던 아카데미 재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부터 원체 종잡을 수가 없는 여자였다고. 그리운 과거를 떠올린 성유진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선배한테는 정말 못 당하겠군요. 이쪽이야 그렇다 쳐도 그쪽은 국립아카데미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대놓고 인정해도 됩니까?”
“안 될 거 뭐 있어?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한 것도 아니고, 일개 경비대 팀장의 말이 공신력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다고.”
“일개 경비대 팀장…….”
민채령을 소개하는 말로 그 말만큼 듣는 이를 기만하는 말이 있을까. 비록 그녀의 공식적인 직책이 경비대 팀장 하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은 그 누구도 그녀를 ‘일개 경비대 팀장’ 따위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개 경비대 팀장이라……. 그럼 왜 고작 ‘일개 경비대 팀장’님께서 저희 장학재단의 일에 관여하시는지?”
“우리 쪽 학생을 불법적인 일에 끌어들이겠다는데 당연히 관여 해야지. 안 그래?”
“그거야 선배의 뇌내망상이지 않습니까? 강하늘 학생에게 접근한 저희 쪽 장학사는 정말 순수한 의도로 강하늘 학생의 학업을 돕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걸 지금 믿으라고?”
“믿지 않으면 어쩔 겁니까? 여일이 불법인 다중능력 연구를 위해 그린하우스 학생을 스카우트하려 한다, 뭐 그런 성명이라도 낼 겁니까?”
성유진은 그게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민채령의 힘은 그녀 자신이 아닌 그녀의 다양한 인맥과 연줄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인맥은 그린하우스뿐 아니라 이곳 여일에도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대놓고 여일과 척을 지는 짓은 할 수 없다.
그녀에게 가능한 거라곤 기껏해야, 지금처럼 혼자서 찾아와 관계자와 직접 담판을 짓는 것 정도뿐이었다.
“그리고 말씀은 정확히 하셔야죠. ‘우리 쪽 학생’이라니. 강하늘 학생이 그린하우스를 자퇴하면 더 이상 그쪽 학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모를 일이지. 사람 마음이란 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거잖아?”
“글쎄요. 이야길 들어보니 강하늘 학생은 그린하우스에 아예 학을 뗀 것 같던데.”
“너야말로 말을 똑바로 해야지. 강하늘은 그린하우스에 학을 뗀 게 아니라 헌터 업계, 나아가선 초인 사회 전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여일이 최고의 조건을 제시하며 스카우트를 시도했음에도 거절당한 거잖아?”
“그거야 저희가 알아서 할 일이고”
성유진이 몸을 깊숙이 앞으로 숙였다. 손가락을 쭉 편 채 깍지를 낀 그가 양손으로 미간을 받쳤다. 흘러내린 앞머리가 그의 두 눈에 짙은 그늘을 만들어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는 어떠한 불순한 의도도 없이 강하늘 학생을 스카우트하려는 것뿐입니다. 고로 이 건은 경비대 팀장인 선배가 나설 일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만약에”
성유진의 눈높이에 맞춰 민채령도 몸을 숙였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깝게 마주 붙었다.
“만약에 강하늘이 너희 쪽 요구를 끝까지 듣지 않았을 때 너희가 강경한 수단을 택한다면? 가령 여일의 연구에 협력할 생각이 없는 강하늘을 억지로 납치한다든가…….”
“여일은 그런 불법적인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여일 산하에서 일하는 사람만 수천이 넘는데 그들 모두의 행동을 네가 보장할 수 있어? 예를 들어서, 연구 의욕이 앞선 연구원이 멋대로 강하늘을 납치해서 연구 재료로 사용하려고 할 지도 모르잖아?”
“논리의 비약이 조금 심하군요.”
그렇게 말했으나 성유진은 민채령의 말에 강하게 반박할 수 없었다. 실제로 연구소 쪽에서 비슷한 의견이 나오긴 했으니까.
다중능력 연구에 있어서 강하늘은 결코 놓칠 수 없는 귀중한 샘플.
온건한 방법으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다소 급진적인 방법을 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지나친 생각이라며 곧바로 좌절된 의견이지만 강하늘이 계속해서 이쪽의 스카우트를 거절할 경우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이번 일에 관여한 여일의 경영진 대부분은 여명단 같은 빌런이 아닌 보편적인 도덕관을 지니고 있는 일반시민이었으나, 결국 그들의 본질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이었다.
다중능력이라는 매력적인 과실을 위해서라면 다소의 범법 따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겠지. 본인이 가진 보편적 도덕관 따윈 가볍게 접어둔 채.
“나도 논리의 비약이길 바라고 있어. 하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여일에서 강하늘에게 강경책을 꺼내든다면”
“꺼내든다면?”
“그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가 직접 나설 거야. 일개 경비대 팀장으로서.”
민채령은 여일에 해가 되는 일을 할 수 없다. 허나 대의명분이 주어진다면 다르다. 여일이 먼저 일선을 넘었을 경우, 그녀 자신도 마찬가지로 일선을 넘겠노라고. 그러한 의미를 담은 선언이었다.
“……고작 학생 한 명에게 참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시는군요.”
성유진으로선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고작해야 학생 한 명의 안위 때문에 여일과의 관계에서 척을 지겠다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경비대 팀장이라는 입장에서 학생의 안전에 신경을 써야하는 건 맞지만, 민채령이 힘들게 일궈낸 연줄보다 자신의 대외적 명함을 더 중시할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강하늘 학생한테 도대체 무슨 메리트가 있다고…….’
처음에는 잘 키워서 나중에 자기 부하로 써먹으려는 생각인가 싶었지만 이유라기엔 여전히 부족했다. 고작 유능한 부하 한 명 얻겠다고 여일과의 연줄을 포기한다니 말이 되는가.
‘잠깐, 그러고 보니 분명 조금 전에…….’
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친 한 가지 가능성.
‘다 아는 사람끼리 왜 그래? 어차피 명목만 불법이고 그린하우스나 여일이나 암암리에 다 연구하고 있잖아.’
조금 전, 민채령은 다 알고 왔다는 듯한 태도로 저런 말을 뱉었다. 그린하우스나 여일이나, 이미 암암리에 불법인 다중능력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만약 그 말이 단순히 뻔히 보이는 거짓말은 그만두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을 암시하는 것이었다면?
“……설마.”
성유진이 다소 질린 기색으로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린하우스에서도 다중능력 연구에 강하늘을 이용하려는 겁니까? 그래서 자퇴나 스카우트를 막으려고 한 거고?”
“글쎄? 난 일개 경비대 팀장이라 그런 속사정은 몰라.”
민채령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허나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성유진은 순진하지 않았다.
민채령의 뒤에는 그린하우스가, 나아가선 그 그린하우스가 속한 이 나라의 정부가 버티고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레 식은땀이 흘렀다. 제아무리 그가 내로라하는 초인이라 한들, 한 나라의 정부를 상대로 객기를 부릴 깜냥은 못 되었다.
“그런가요.”
허나 그는 이 자리에 성유진 개인이 아닌, 여일그룹의 사외이사로서 자리한 것이었다.
“말씀하신 바는 알겠습니다.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되지만, 혹시라도 저희 쪽 사람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강하늘 학생에게 접근하려 한다면 제 선에서 막도록 하죠. 하지만”
그리고 그 한성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일이라면, 한 나라의 정부를 상대로도 충분히 객기를 부릴 수 있었다.
“저희가 합법적인 방법으로만 강하늘 학생을 스카우트하려는 이상, 일개 경비대 팀장인 선배께선 이 일에서 손을 떼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
성유진의 그 말에 민채령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래도 나름 알아듣기 쉽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못 본 사이에 좀 많이 건방져졌다?”
“자리에 걸맞은 태도를 가지게 된 것뿐이죠. 설마 아직도 제가 선배한테 쩔쩔매던 아카데미 후배로 보이십니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유진으로부터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꾸드득.
무형의 기운이 사방에서 민채령의 몸을 옥죄었다. 성유진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으나, 그는 지금 체내의 마력을 뿜어내 물리적으로 민채령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S급 초인 쯤 되면 마력의 개념을 모르더라도 이를 운용할 수 있는 법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성유진과 민채령을 중심으로 주변 집기들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뿜어내는 기운은 실로 강력했다. 일반인이라면 단숨에 졸도해버릴 것이고, 어지간한 초인조차 맥을 추리지 못할 수준.
허나 민채령은 그 압박감의 한복판에서도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A급 초인이라곤 하나, S급인 성유진과의 격차는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성유진.”
다만, 민채령이라는 여자는 상식이 통하는 자가 아니었다.
성유진이 뿜어내는 압박감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민채령이 허리를 곧게 펴며 그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매섭게 교차한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민채령은 그와 함께 했던 아카데미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의 명성이 거짓말이라는 듯 하는 짓마다 어설픈 성유진과, 그나마 순수한 티가 남아있던 그녀 자신이 함께 어울렸던 기억.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요, 현재의 두 사람은 그때 그 시절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가 되었다. 어설프던 후배는 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가 되었으며, 건전한 향상심만 가지고 있던 선배는 온갖 더러운 세계에 발을 들이며 어두운 권력을 키워내고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돈독할 선후배지간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런 관계가 되어버렸는지.
문득 떠올린 과거와 현재의 간극이 문득 기꺼워진 민채령이, 성유진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많이 컸네?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웃음을 본 순간 성유진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그 웃음은 그녀가 늘 짓던 속내를 알 수 없는 웃음이 아니었다. 과거 그녀가 성유진과 함께할 때 몇 번이나 그에게 보여주었던, 아직 깨끗하던 시절의 아카데미 선배 민채령으로서의 웃음.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는 변하지 않았으나, 그 시선은 전혀 고압적이지 않았다.
마치 남동생을 바라보는 자상한 누나처럼 포근한 그 시선에, 자신의 성장을 대견하게 여기는듯한 그 웃음에, 성유진은 뿜어내던 살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허.”
이내 그의 입에서 허탈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많이 컸다니…….”
그 말을 곱씹던 그가 이내 피식 웃었다. 민채령의 태도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허나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제가 어떤 자리에 오르든 결국 전 선배의 후배다 그겁니까?”
“대한민국에서 학연만큼 짙은 인연도 없잖니. 그러니 선배에 대한 예우로써 이번 일에선 손 좀 떼줄 수 없을까?”
“그런 꼰대 같은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다니, 채령 선배도 늙긴 늙었군요.”
“…………뭐?”
미간을 찌푸린 민채령을 보며 피식 웃은 성유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더 이상 이 자리에서 할 이야기는 없다는 듯이.
“한때는 선후배였지만 이제는 각각 여일과 그린하우스의 사람이지 않습니까. 옛 정에 기댈 생각일랑 마시고 정정당당하게 능력으로 승부하시죠.”
“그거, 네 나름의 선전포고라고 받아들여도 되겠니?”
“마음대로 생각하십쇼.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일은 이번 일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그래, 좋아.”
한숨을 푹 내쉰 민채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 문으로 향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여일은 이번 일에 관해서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가 속한 그린하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충돌뿐이었다. 합법적인 충돌이든, 혹은 불법적인 충돌이든.
'일단 급한 대로 임무가 없던 안수호한테 강하늘의 자퇴를 막으라 시키긴 했지만, 아마 성공하진 못하겠지.'
기실 그녀가 안수호에게 내린 임무는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내린 임무였다. 굳이 그에게 기대한 역할을 꼽자면 여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미끼이자, 여일의 행동에 대처하기 위한 시간벌이 용도 정도일까.
'말하는 투를 보면 적어도 성유진 본인은 납치 같은 급진적인 방법을 택할 생각은 없는 것 같지만…….'
성유진에게 등을 돌린 채, 민채령이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내뱉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아주 약간이라도 불법적인 껀덕지가 잡히는 순간 바로 특책과 수사 권한으로 체포해버릴 거야. 그러니 알아서 행동 조심하렴.”
"선배님의 말씀 깊이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예의바른 척 해도 소용없어.”
그 말만 남기고 민채령이 별다른 인사도 없이 응접실을 나섰다. 여일의 이사를 대하는 태도로는 무례한 태도였으나, 그 또한 민채령답다면 민채령다웠다.
"흐음."
홀로 남겨진 성유진은 멍하니 그녀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머릿속이 복잡한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래 여일은 눈여겨보던 강하늘이 자퇴한다길래 이때다 싶어 조용히 그녀를 빼내려던 속셈이었다. 민채령을 위시한 그린하우스와의 대립은 그들로서도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허나 바라지 않던 대립이라 해도, 대립하게 된 이상 여일은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라.
곧바로 재단 이사들과 행동방침을 논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한 그의 시선이 문득 민채령에게 대접했던 찻잔으로 향했다. 모처럼 고급 브랜드의 홍차를 우려냈건만, 찻잔 안의 홍차는 한모금도 줄지 않은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여전히 홍차는 별로 좋아하지 않나 보군.’
그런 점은 학생 때와 달라진 게 없다며, 적막이 내려앉은 응접실에서 성유진이 낮게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