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45화 (46/266)

〈 45화 〉 044. 강하늘(5)

* * *

일리아나에게 의뢰를 맡긴 뒤 나는 특수대책과 사무실로 돌아갔다. 아직 퇴근까지 시간이 남기도 했고, 겸사겸사 민채령에게 다시 한 번 이번 일에 대해서 묻기 위해서.

“출장?”

허나 민채령은 사무실에 없었다. 채소연이 말하길 다른 아카데미로 출장을 갔다고.

“다른 아카데미? 어디?”

“인천에 있는 여일아카데미.”

“여일?”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여일아카데미는 인천에 소재한 국내 2위의 아카데미로, 나름 그린하우스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사립 아카데미였다.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분명 원작 중반부의 아카데미 간 교류 에피소드였나.

근데 민채령이 왜 거길 갔지?

“무슨 일로 출장 가셨는지 알아?”

“몰?루?”

채소연이 자기 자리 칸막이 너머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곤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쟤한테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나는 사무실 안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대부분 외부 순찰 같은 임무로 빠져서 사무실에 남아있는 건 나와 채소연을 제외하곤 단 한 사람뿐이었다.

“유리 선배.”

“엣?”

내 부름에 조유리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같이 일한지 이제 일주일이 넘었건만 그녀는 아직도 내가 거북한 것 같았다. 이태호가 말하길 앞으로 한 달 정도는 저런 상태일 거라고.

“팀장님께서는 무슨 일로 여일로 출장을 가신 겁니까?”

“그, 글쎄? 나도 자세히는 잘 모르는데…….”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처럼 후배인 내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진 않았다. 그녀의 남성공포증을 생각하면 저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겠지.

“드, 듣기론 무슨 장학재단 관련 일로 출장가신다고 그랬던 것 같, 같은데? 무슨 일인지는 나도 들은 게 없어서…….”

“장학재단이요?”

그 말에 강하늘에게 접촉했던 장학사의 존재가 뇌리를 스쳤다.

그 장학사의 존재는 민채령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허나 그녀는 내게 장학사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임무를 맡긴 내게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여일의 장학재단과 접촉하기 위해 출장을 갔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공교로웠다. 고로 두 사건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으리라고 판단하는 게 타당하겠지.

‘그렇다는 건 강하늘이 말한 장학사는 그린하우스가 아닌 여일 쪽 사람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그 장학사가 강하늘에게 접근한 목적은 그녀의 자퇴를 막으려는 게 아닐 거야.’

여일 소속 장학사가 그린하우스 학생의 자퇴를 막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여일 소속 장학재단이 그린하우스 학생에게 장학금과 같은 금전적 지원을 할 이유도 없을 터.

‘그렇다면, 스카우트인가.'

나는 아카데미나 장학재단의 생리에 대해선 거의 무지했으나, 떠오르는 가능성은 그것뿐이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강하늘의 초능력은 객관적으로 아주 뛰어난 능력에 속한다. 그런 그녀가 아카데미를 자퇴하려 한다면, 그녀의 능력을 눈여겨보던 다른 아카데미에서 접근해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민채령이 여일로 간 건가? 여일이 강하늘을 자기네 아카데미로 채가는 걸 막기 위해서?’

경비대가 신경 쓸 사안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이번 임무의 주체는 민채령이었다. 강하늘의 아바타 능력을 탐내서, 장차 그녀를 자신의 밑에 두기 위해 자퇴나 편입을 막으려고 했다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해.’

다만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사실이 있었으니, 바로 왜 이러한 뒷사정을 내게 설명해주지 않았느냐는 점이었다.

민채령은 이번 임무에 있어서 내게 이상하리만치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자세한 행동방침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강하늘의 자퇴를 막아라. 그것이 민채령이 내린 명령의 전부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왜 민채령이 내게 이런 임무를 내렸는지는 모르지만, 날 통해 강하늘의 자퇴를 막고 싶었다면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세세하게 행동지침을 일러주는 편이 효과적이지 않은가.

‘일단 생각나는 가능성은 두 가지다. 무언가 캥기는 게 있어서 내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거나…….’

혹은 애초부터 내가 강하늘의 자퇴를 막아낸다는 상황 자체를 그녀가 기대하지 않았다거나.

‘대가리 깨지겠네, 시발.’

아무리 고민해 봐도 민채령, 그 뱀 같은 여자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정보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적어도 일리아나의 조사 결과라도 나와야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할 것 같았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

채소연의 물음에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지예원을 지키고 있을 얘가 어떻게 안전가옥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도 물어봐야 하는데.

“채소연. 잠깐 나 좀 보자.”

듣는 귀를 의식해 나는 채소연을 데리고 락커룸으로 향했다. 임무 투입 시간은 진즉에 지났으니 당분간은 아무도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락커룸 문을 굳게 잠근 내가 소리를 죽인 채 채소연에게 물었다.

“채소연. 너 오늘부로 다시 사무실로 출근한다며. 그럼 지예원 쪽은 어떻게 된 거야?”

“지예원? 걔 나갔는데?”

“뭐?”

“나갔다고. 걔 이제 안전가옥에 없어. 그러니까 감시역인 나도 더 이상 거기 있을 필요가 없는 거고.”

금시초문이었다. 지예원이 더 이상 안전가옥에 없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당초 그녀가 안전가옥에 자리하게 된 건 여명단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서였다. 비록 유현호를 위시한 일련의 일당을 붙잡았다고는 하나, 조직의 핵심 프로젝트와 관련된 그녀에 대한 추격의 손길이 고작 그 정도로 끝날 리가 없었다.

지예원은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헌데 그녀가 안전가옥을 나갔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냔 말이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설명을­”

“자세한 사정은 본인한테 직접 들어.”

본인한테 직접 들으라니? 민채령에게 전화라도 해서 들으라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지예원한테 직접 들으라는 이야기야?”

“응. 맞아. 사실 나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거든.”

“지예원은 안전가옥에서 나갔다며. 그럼 지금 어디 있는데?”

“나도 몰라.”

“그게 뭔…….”

이것도 모른다, 저것도 모른다, 아주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허나 무작정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 내게도 그랬듯 채소연에게도 민채령이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자기 혼자서 일을 추진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지예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본인한테 사정을 들으란 거야. 그 왜, 팀장님한테서 아무런 말도 없었어?”

“있었어.”

“뭐라고 하셨는데.”

“지예원이 어디 있는지는 오늘 퇴근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고 하셨어.”

“그건 또 무슨 소리래.”

퇴근 시간에 맞춰 예약 문자라도 보내둔 건가. 아니면 집 우편함에다가 몰래 쪽지라도 넣어두기라도 했나.

뭐가 되었든 그냥 말해주면 될 걸 왜 복잡하게 저러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그런 심정을 토로하자 채소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나름대로의 서프라이즈라고 하시던데.”

“서프라이즈는 무슨.”

머릿속에 입을 가린 채 여우같은 눈웃음을 짓는 민채령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프라이즈고 나발이고 그냥 시원스레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진짜.

‘퇴근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고?’

오늘은 야간 근무 없이 정시 퇴근이었다. 고로 퇴근까지 남은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채소연이 전해준 민채령의 말 때문에 괜히 몸이 근질거렸다. 까놓고 말해서 불안했다. 지예원이 안전가옥 바깥으로 나갔다는 건 즉, 그녀의 소재가 여명단에게 들킬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니까.

지예원을 해방하면서 민채령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허나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주요 등장인물인 그녀의 목숨은 여전히 내 목숨과 직결되어 있었으니까.

고작해야 1시간. 그 안에 지예원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없지만, 그렇다고 여기 가만히 앉아서 1시간을 기다리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좋아, 결정했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결정을 내린 나는 곧바로 잠겨있던 락커룸의 문을 열었다.

“유리 선배.”

“후엣!”

내 부름에 자리에 앉아있던 조유리가 흠칫 몸을 떨며 이쪽을 바라봤다.

“왜, 왜 불러?”

“조퇴하겠습니다.”

“뭐?”

“엥?”

내 당당한 선언에 조유리와 채소연의 탄성이 겹쳤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요.”

가만히 앉아서 1시간이나 기다리고 있는 건, 아무래도 성미에 맞지 않았다.

***

헌터의 양성에는 돈이 든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자, 헌터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대한민국 내에서 헌터는 1, 2, 3급 헌터와 민간 헌터의 총 4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기본적으로 사립 헌터아카데미를 졸업한 모든 인원에는 국가공인 3급 헌터자격이 주어진다. 국립아카데미인 그린하우스를 졸업했을 경우에는 2급 자격증이 수여되며, 사립 출신 헌터는 별도의 시험을 거쳐 2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1급 헌터는 국가에서 지정한 특수한 몇몇 초인에게만 주어지는 자격이며, 그 외 아카데미 출신이 아니나 별도의 교육을 수료한 이들에게는 민간 헌터 자격증이 부여된다.

특수한 경우인 1급, 민간 헌터를 제외하고 보편적인 2, 3급 헌터의 양성에 들어가는 시간은 평균 4.7년. 양성 비용은 1인당 약 5억원 상당.

양성 비용의 태반은 국가지원금이나 기업의 후원을 통해 충당된다. 허나 약 40%인 2억 가량은 재학생 본인이 부담해야한다.

2억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러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재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재학생들은 각 아카데미마다 설립되어 있는 장학재단을 통해 장학금……이라는 명목의 빚을 져가며 헌터 교육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민채령이 향한 여일아카데미 산하의 여일재단 역시 그러한 장학재단 중 하나였다. 여일재단은 한성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일그룹의 자금으로 운용되는 재단으로, 여일아카데미 외에도 7곳의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명실상부 국내 최대 규모의 장학재단 중 하나였다.

그 규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듯, 여일재단의 본사 사옥은 25층 높이의 대형 빌딩이었다. 전면 유리로 된 외벽으로부터 쨍하게 반사되는 노을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민채령이 당당한 발걸음으로 그 안에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민채령 팀장님.”

곧 그녀를 알아본 데스크 직원이 그녀의 응대를 위해 나섰다. 허나 민채령은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말할 뿐이었다.

“김요한 장학사는 위에 있나요? 오늘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김요한 장학사님께서는 금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사정?”

민채령의 싸늘한 시선이 직원을 훑었다. 본능적인 위압감을 느낀 직원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남의 아카데미 학생을 대놓고 빼가려고 수작질한 주제에 사정? 지금 저희랑 정말 대놓고 해보겠다는 건가요?”

민채령 딴에는 딱히 위압을 가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감정을 담아 쏘아낸 말에 불과해다. 허나 일반인인 직원이 감당하기에는 그마저도 충분히 벅찬 수준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김요한 장학사님께선 현재 용인지사에서 재단 이사분들과의 회의에 참석하신 상태라…….”

“그러니까. 왜 분명 오늘 만나기로 한 장학사 놈이 인천이 아니라 용인에 가서 회의에 참석하고 있냐고.”

“그, 그건…….”

직원으로선 억울한 심정이었다. 애초에 민채령이 말하는 약속이란 것부터가 그녀가 어제 멋대로 정해 통보한 것에 불과했다. 본래 민채령은 이렇게 대놓고 큰소리 칠 입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이 그녀에게 쩔쩔매는 건 상부로부터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린하우스에서 손님이 방문할 예정이다. 안하무인하고 무례한 손님이겠지만 최대한 비위를 맞춰라. 절대로 심기를 거스르지 마라.’

그 저의를 짐작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지시였으나 말단 직원인 그녀로선 따를 수밖에 없었다.

듣자하니 그린하우스 쪽 경비대 팀장이라고 하던데, 도대체 왜 일개 경비대 팀장 때문에 재단 이사급들로부터 특별 지시가 내려오는가.

일개 데스크 직원인 그녀는 그 내막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기에, 그저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최대한 민채령의 비위를 맞추고자 노력할 뿐이었다.

“김요한 장학사는 언제 돌아오죠?”

“예정된 바로는 내일 아침 9시 출근 시간에…….”

“하. 꼬박 하루를 기다리라고? 내가 분명 목 닦고 기다리고 있으라 했는데 그게 말 같지 않았나 보지?”

그 말은 직원을 향한 말이 아니었으나, 그녀의 손아귀는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뭐길래 이리도 당당한가. 뭐길래 재단 이사진들이 그녀의 심기를 신경 쓰는가. 처음에는 그 이유가 궁금했으나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그녀가 바라는 건 오로지, 1분 1초라도 빨리 이 불편한 응대 상황이 끝나는 것이었다.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데스크 직원한테 화풀이하는 건 그쯤 하시죠, 민채령 팀장님.”

그런 그녀의 바람을 이루어준 걸까.

등 뒤에서 들린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직원이, 이내 한층 풀어진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유진 이사님……!”

성유진. S급 길드 ‘겨울 동맹’의 간부이자 여일재단의 이사며, 수많은 던전을 공략해낸 1급 헌터이자 이십대의 젊은 나이로 국내에 몇 없는 S급 초인의 자리에 오른 떠오르는 초신성.

그런 그의 등장에 데스크 직원이 이젠 살았다며 안도했다. 반면 민채령은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그를 흘겼다.

“이게 누구야? 얼굴 보기 힘들기로 소문이 자자한 성유진 헌터님이시네? 여긴 어쩐 일이셔?”

“귀한 손님이 왔는데 마중도 급이 맞는 사람이 해야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민채령 팀장.”

“팀장이란 직함은 떼렴. 여기가 그린하우스도 아니고.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선배라고 부르지 그래?”

그 말에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유진이라고 하면 국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헌터. 그런 그에게 저토록 허물없이 대하는 저 여자의 정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하하. 여긴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아서요.”

반면 성유진은 곤란하다는 듯 멋쩍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이내 그가 뒤편의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민채령에게 말했다.

“여일재단에 잘 오셨습니다 민채령 팀장. 응접실로 모시도록 하죠.”

“그러시든가.”

그렇게 대답한 민채령의 얼굴에는 어느새 불쾌한 기색이 싹 사라져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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