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042. 강하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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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늘이 도착한 것은 전화가 끝나고부터 정확히 1시간 뒤였다.
강하늘은 수수한 인상의 여자였다. 한국에선 흔하디 흔한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 그럭저럭 예쁜 편이지만 묘하게 인상이 옅은 수수한 얼굴에, 평범한 신장과 평범한 체형을 지닌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여자였다.
다만 외형은 평범하되 분위기는 평범하지 않았다.
반쯤 감은 퀭한 두 눈 아래로 짙게 이어진 다크서클과 진한 아이라인. 여기저기 잔머리가 뻗쳐 정돈되지 않은 헤어스타일에 후줄근한 복장까지.
그런 강하늘에게선 나이에 걸맞지 않은 퇴폐미가 풍겨져 왔다. 분명 그녀는 파릇파릇한 신입생이건만, 풍기는 분위기만 봐선 졸업을 앞둔 취준생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얼른 용건부터 말해요.”
자리에 앉은 강하늘은 음료도 시키지 않은 채 곧장 본론을 요구했다. 그 표정에선 단 1분 1초도 이곳에 있기 싫다는 강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불려나온 것이 귀찮은 것인가. 그렇게 생각했으나 귀찮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귀찮음보다는 불쾌함에 가까워 보였으며, 또한 묘하게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먼저 강하늘 학생께서 그린하우스를 자퇴하고자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냥, 헌터 말고 달리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요.”
약간의 뜸들임을 두고 나온 대답. 나는 본능적으로 저 대답이 진실이 아니리라고 직감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자퇴 이유를 숨기고자 하고 있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한겨울과의 이야기에서 유추한 그녀의 자퇴 이유는 전투에 대한 두려움. 생판 모르는 남에게 당당하게 밝힐만한 이유는 아니었다.
허나 그녀의 자퇴를 막기 위해선 확실하게 자퇴 이유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녀를 설득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하고 싶은 일이라. 그게 뭐죠?”
“……꼭 말해야 하나요?”
“아뇨. 말하기 어렵다면 굳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조금 의외군요. 달리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들 굳이 자퇴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그린하우스 커리큘럼에 준비된 다양한 진로 프로그램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는 강하늘은 시종일관 무기력한 표정이었다.
“……하여튼. 그린하우스 커리큘럼에는 초인이 초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직업에 대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명색이 국내 최고의 아카데미니까요.”
“그런 걸 제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뭐죠?”
“강하늘 학생이 새롭게 정한 진로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만, 그것이 초인 사회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직업이라면 그린하우스의 커리큘럼과 졸업장은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즉…….”
나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서 강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굳이 꼭 자퇴를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죠. 적어도 강하늘 학생이 초인 사회에서 살아갈 생각이라면”
“저기요.”
그때 강하늘이 내 말을 중간에 끊었다.
“하시는 말씀은 다 알겠지만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요. 왜 경비대가 제 자퇴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거죠?”
“꼭 자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려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굳이 헌터 지망이 아니더라도 그린하우스에는 다양한 길이”
“아니 그러니까 시발, 그걸 왜 그쪽이 신경 쓰냐고요.”
“시발?”
강하늘의 입에서 튀어나온 비속어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채소연이 고개를 들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던 채소연의 어깨를 내가 꽉 눌렀다.
“……불쾌하게 해드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다만 강하늘 학생의 미래를 생각해서”
“아니 시발, 미래고 나발이고 내가 자퇴하겠다는데 왜 그쪽이 그걸 신경 쓰냐니까?”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아까부터 입에 걸레를 물었나!”
“채소연, 가만히 있어.”
채소연이 답답하다는 눈으로 날 바라봤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상황에 채소연이 강하늘과 말싸움이라도 시작하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니까.
“하.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허나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강하늘은 이미 빡칠대로 빡친 상태였다.
“……저기요. 이미 마음 굳힌 사람한테 이런 식으로 계속 찾아오는 거 민폐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계속?”
계속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강하늘과 방금 막 처음 만난 사이인데.
“계속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쪽 아카데미서 하는 짓거리니 알고 있을 거 아녜요. 담당교수야 뭐 그렇다 쳐도 웬 듣도보도 못한 장학사란 사람이 수시로 집에 찾아오질 않나, 이젠 경비대까지 내 자퇴 가지고 뭐라고 하네. 아니 도대체 학생 한 명 자퇴한다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렇게까지 못 붙잡아둬서 안달이세요?”
강하늘은 뻔히 알고 있는 일 아니냐고 말했으나 금시초문이었다. 적어도 민채령으로부턴 장학사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다.
“이제 그만 좀 찾아오라는 의미에서 확실하게 말할게요.”
그 장학사란 사람에 대해 강하늘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있는 대로 화가 난 듯한 그녀는 도저히 내 질문에 대답해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졸업장이니 커리큘럼이니 향후 진로니 연구장학생이니 뭐니 하나도 관심 없어요. 이미 마음 떠났다고요. 초인 사회고 나발이고 전 이쪽 초인 관련된 일엔 아예 발조차 들일 생각 없으니까, 제발 갈 길 가게 내버려두세요. 예?”
“……그렇게 말해도 강하늘 학생은 결국 초인이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지 초인 사회를 떠나려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가 뭐냐고요? 저는 제 분수를 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강하늘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제 분수를 잘 알고 있다. 본래 그녀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말이었다. 강하늘이라는 캐릭터를 이루는 근간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강인한 에고였으므로.
“저는 아주 운 좋게도 초인 중에서도 상위에 드는 신체능력과, 수많은 초능력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력한 초능력을 타고났죠.”
하지만 그뿐이다.
그렇게 덧붙인 강하늘이 돌연 내게 물었다.
“혹시 일반인이랑 초인 중에 평균 수명이 어느 쪽이 더 높은지 아세요?”
“……일반인이 더 높은 걸로 압니다.”
“맞아요. 아이러니한 일이죠. 본래라면 강인한 신체능력 덕에 노화도 늦게 오는 초인이 훨씬 오래 살아야 하는데, 실상 평균수명을 보면 초인이 일반인보다 10년은 일찍 죽는데요.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죠?”
세상에 천수를 누리고 죽는 초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허나 적지 않은 초인이 스스로에게 허락된 수명을 다 살아내지 못하고 죽는 게 현실이었다.
전체 초인의 60%가 괴수와 싸우는 헌터가 되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헌터의 사망률은 그 어떤 직업보다 높았다.
본래라면 일반인보다 훨씬 길어야 할 초인의 평균수명을 10년도 넘게 깎아먹을 정도로.
“저는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하게 천수를 누리고 죽고 싶거든요. 어중간한 능력만 믿고 설치다 차가운 던전 바닥에서 객사하긴 죽어도 싫네요.”
강하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처럼.
“그러니 다신 연락하지 마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강하늘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채소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 탄성을 뱉었다. 한겨울도 그렇고 강하늘도 그렇고 요즘 신입생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다며.
그 순간.
지지직.
귓가를 간질이는 노이즈와 함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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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rodlq■라 dms스?트slr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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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시야에 표시된 글자들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의 오류처럼 깨졌으며,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쉴 새 없이 귓가에 울려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빙의 후 처음 마주하는 현상에 당황한 찰나, 깨졌던 글자가 차츰 본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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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트라 퀘스트 발생 ]
[ 강하늘의 자퇴를 막으세요. 강하늘과 친분을 쌓으세요. 강하늘을 당신의 곁에 두세요. 그녀의 존재는 당신에게 분명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
< 보상 >
1. 경비율 증가 3%(현재 경비율 : 8%)
※경비율이 10%에 이를 경우 <스킬 :="" 아카데미의="" 경비원="">의 효과에 의해 1개 능력치의 랭크를 1단계 상승시킬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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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엑스트라 퀘스트라는 퀘스트 형태. 거기에 더해 평소와는 묘하게 다른 말투의 메시지.
그 변화에 의문을 가진 찰나, 다 읽기가 무섭게 시야에 표시되었던 시스템 메시지가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누군가로부터 메시지를 숨기려는 것처럼.
‘이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혼란스러운 머릿속에 수많은 단어들이 뇌리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했다.
‘천천히 상황을 정리해보자.’
우선 발단은 민채령의 명령이었다. 서큐버스 사건의 범인이었던 여자를 죽인 것에 대한 벌충으로, 민채령은 내게 강하늘의 자퇴를 막을 것을 요구했다.
허나 강하늘의 자퇴는 원작에서 없었던 일이었다. 게다가 방금 만난 강하늘은 원작과 전혀 딴판인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웬 장학사라는 사람이 나와는 별개로 그녀의 자퇴를 번복시키려 그녀에게 접근했으며, 그녀가 떠나자 수상한 노이즈와 함께 엑스트라 퀘스트라는 생소한 형태의 퀘스트가 등장했다.
혼란스러웠다. 상황을 정리해보려고 해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민채령의 의도, 강하늘의 변화, 의문의 장학사, 엑스트라 퀘스트까지. 하나같이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조금 짜증나는군.’
그 정보의 부재가 지긋지긋했다. 내가 모르는 일만 계속 터지는 탓에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휘둘리기만 하는 이 상황이 짜증났다.
돌이켜보면 빙의한 이래로 줄곧 이랬다. 분명 잘 알고 있는 소설 속 세상으로 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줄곧 수동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빙의한 안수호는 원작 스토리와 동떨어진 존재. 마주치는 캐릭터도, 주변 환경도, 직면하는 사건들까지 죄다 원작에선 묘사조차 되지 않았던 것들뿐이었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그나마 알고 있던 내용들도 쾌락천마의 조정이나 내 행동에 의한 나비효과로 인해 이렇게 저렇게 변경되기 일쑤였다.
소설 빙의라는 상황이 무색하게도 나는 빙의한 이래로 줄곧 정보적 약자였다. 당장 지금도 민채령의 의도며, 강하늘의 속마음이니, 장학사의 정체니, 엑스트라 퀘스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고 이런 식이면 결국 쾌락천마 놈의 뜻대로 놀아날 뿐이야.’
쾌락천마는 분명 악의를 가지고 내 주변 상황을 조정하고 있다. 빙의 첫 날 면접부터 시작해 최근의 서큐버스 사건까지. 꼬일대로 꼬인 사건 진행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런 놈의 농간에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만 해대다가는 결국 언젠가 막다른 길에 몰리고 마리라.
놈은 나의 고통과 고난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한 놈의 의도대로 놀아나지 않으려면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상황의 주도권을 쥐어야 했다. 그리고 주도권을 쥐려면 정보가, 직면한 상황에 대한 정보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엑스트라 퀘스트처럼 소설 외적인 부분에 대해선 나 스스로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허나 강하늘이 자퇴를 결심하게 된 진짜 이유나 민채령의 의도, 장학사의 정체처럼 소설 내적인 부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소설 안의 일이라면 마찬가지로 소설 안의 장치를 활용해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지금 상황에서 내가 정보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그 캐릭터를 만나러 가야겠군.'
다음 목표를 정한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채소연. 먼저 사무실로 돌아가서 팀장님께 보고해. 나는 따로 갈 곳이 있으니까.”
“따로 갈 곳? 어디?”
“화장실.”
“아하.”
내 대답에 채소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혼자 납득했다. 물론 정말로 화장실 따위에 갈 생각은 아니었다.
“먼저 가라는 거 보면 큰 거인가 보네. 천천히 볼일 보고 와.”
“그래.”
채소연에게 대답한 나는 그 길로 곧장 카페를 나섰다.
“……뭐야, 화장실 간다면서 쟤 어디 가?”
등 뒤에서 채소연의 황당한 중얼거림이 흐릿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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