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42화 (43/266)

〈 42화 〉 041. 강하늘(2)

* * *

강하늘이라는 캐릭터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나 본인의 집착과 아집 때문에 패망한 비운의 캐릭터다.

강하늘은 주인공과 같은 1학년 1분반 신입생이다. 즉 기본적인 자질은 검증된 셈이다. 거기에 더불어 그녀가 가진 초능력, 아바타(Avatar)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막강한 능력이었다.

아바타 능력은 머릿속으로 이미지한 인간 형태의 아바타를 구현, 원격으로 조종하거나 이를 몸에 직접 두르는 능력.

아바타는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뛰어나며, 몸에 두를 경우 신체능력의 증강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구현된 아바타는 그 형태에 따라 별도의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원작 기준으로 강하늘이 아바타 능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초능력은 발화능력, 가속, 천리안의 세 가지.

즉 강하늘의 아바타 능력은 신체능력 증강, 변신, 발화능력, 가속, 천리안의 다섯 가지 초능력이 어우러진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초인이 한 가지의 초능력만 타고난다고 한들, 초능력이란 게 꼭 한 가지 효과만 지니리란 법은 없다. 왼손에선 불을 뿜고 오른손에선 얼음을 뽑아내는 복합적인 능력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허나 다섯 가지 능력이 섞인 강하늘의 아바타 능력은 그런 복합계 초능력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자질만 따지면 가히 주연급 캐릭터로도 손색없는 수준.

허나 앞서 언급했듯 강하늘은 스스로의 집착과 아집 때문에 1회성 악역으로 소모되었다. 제 재능만 믿고 한겨울에게 덤볐다가 패배하여, 그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자존심을 안은 채 그대로 타락한 것이다.

“강하늘은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대부분의 초인이 선민의식을 지니고 있는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도 강하늘은 특히 에고가 강했다. 태도는 자신감 넘치고 행동은 거침없었으며 자신의 생각에는 일말의 의문도 품지 않는 여자. 그것이 원작에서의 강하늘이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조용하고 소심해 보이는 사람이었어요.”

허나 한겨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조용? 소심? 강하늘 학생이 말입니까?”

“네. 말수도 적고 이렇다 할 자기주관도 없었죠. 조별 활동에서도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고 그저 저나 다른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만 하더군요. 그냥 되는 대로 묻혀가려는 인상이 강하달까, 별로 인상에 남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겨울이 말하는 강하늘이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강하늘이 맞나 싶었다. 설마 또 무언가 원작에서 변경점이 생긴 것인가.

“아, 그러고 보니 중간에 저랑 단둘일 때 저한테 좀 무례한 질문을 하더라고요.”

“어떤 질문이었죠?”

“대기업 후계자인데 왜 굳이 헌터가 되려고 하느냐. 어차피 안전하고 안정된 삶이 보장되어있지 않느냐. 싸우다 다치는 게 무섭지 않느냐……. 장황하게 말하긴 했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죠. 하, 나 원 참.”

한겨울이 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정된 삶? 웃기지 말라 그러세요. 저랑 후계자 자리를 두고 싸우는 형제자매만 넷이에요. 가족 말고도 그룹의 경영권을 노리는 하이에나는 수십 수백은 될 테고요. 그 안에서 살아남아 권좌를 손에 쥐려면 자신만의 힘을 키워야 해요. 그리고 운이 좋게도, 저는 태어나길 초인으로 태어났죠.”

한겨울이 그린하우스에 입학한 건 단순히 헌터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린하우스는 다른 경쟁자들과 싸울 힘을 키우기 위한 요람이자, 미래에 있을 권력 승계 과정에서 그녀를 도와줄 여러 인맥을 형성하기 위한 장소였다.

“게다가 뭐요? 싸우다 다치는 게 무섭지 않냐고? 그깟 알량한 두려움 따윈 진즉에 극복한지 오래에요. 제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은 그런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한겨울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대한민국 1위 기업의 후계자라는 상징성 때문에 온갖 범죄의 표적이 되었으며, 같은 그룹의 사람들은 물론 피를 나눈 가족들조차 서로의 등에 칼을 꼽으려고 기회를 노렸다. 그녀의 말마따나 어지간한 각오론 버틸 수조차 없는 삶이었겠지.

그런 그녀에게 후계자로서의 안정된 삶이니 싸움의 두려움이니 따위의 질문을 해댔으니 당연히 불쾌하리라.

“그런 질문을 한 걸 보면 그 강하늘이라는 학생은 헌터로서 싸우는 게 두려웠나보군요. 보통 그런 질문은 상대방이 공감해주길 바라고 하는 거니까.”

류태현의 의견은 그럴듯했다. 그럴듯했으나, 나로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의견이었다.

‘강하늘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야. 소심하지도, 조용하지도, 겁이 많지도 않다. 분명히 제 잘난 맛에 사는 오만방자한 캐릭터였을텐데…….’

“그럼 결론 났네! 자퇴 원인은 결국 걔가 겁쟁이라서라는 거잖아. 안 그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채소연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뭐가 간단하지 않은데?”

“단순히 싸우는 게 무서웠을 뿐이라면 굳이 자퇴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린하우스의 커리큘럼에는 헌터 지망 외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하니까.”

“군인이나 경찰 같은 거?”

“초인의 진로가 꼭 전투 능력이 필요한 직업만 있는 건 아니야. 헌터 협회 사무직이나 초인 관련 정부기관 공무원이라는 선택지도 있을 거고, 학문에 뜻이 있다면 관련 분야 교직이나 연구원을 지망할 수도 있겠지.”

당장 저번 사건의 피해자였던 이영한만 해도 그린하우스 재학생이면서 연구원 지망이었다. 초인이라고 해서 꼭 몸으로 싸우는 일만 하라는 법은 없었다.

“뭐가 됐든 간에 초인으로서 직업을 구할 때 그린하우스 졸업장은 엄청난 메리트로 작용해. 그런데도 불구하고 굳이 자퇴를 한다는 건…….”

“아예 초인 사회를 떠나겠다. 그런 뜻 아닐까요?”

류태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었다. 왜 강하늘이 그런 마음을 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요. 왜 경비대가 일개 자퇴생 한 명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거죠?”

“그건…….”

“왜냐하면 우리가 강하늘의 자퇴를 막을 거니깟!”

“자퇴를 막는다고요?”

‘이런 미친.’

그걸 곧이곧대로 말하면 어떻게 하냐. 한겨울이 왜 자퇴를 막아야 하는 거냐고 묻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거 완전 쓸데없는 짓 아닌가요?”

허나 우려와 달리 한겨울은 우리가 강하늘의 자퇴를 막으려는 이유에 대해서 추궁하지 않았다.

“싸우는 게 무서워 자퇴하겠다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패배감에 찌든 낙오자는 스스로 극복해내지 못하는 이상 외부에서 뭐라 한들 소용없을 거예요. 설령 당신들 덕분에 자퇴를 번복한다 한들, 그런 줏대 없는 정신머리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무섭다며 자퇴서를 써내겠죠. 뻔한 일이에요.”

과연 한겨울다운 날카로운 분석이었다. 그런 감상을 품고 있자 그 옆에 앉은 류태현이 한겨울을 보며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죠?”

“아니, 그냥. 그래서 우리 한겨울 씨는 나한테 진 패배감을 극복하셨나 싶어서.”

“네?”

한겨울의 얼굴에 일순 떠오른 의문.

이내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 그깟 패배감 따위 당연히 극복했죠!! 아니, 애초에 패배감을 가져본 적도 없어요!! 게다가 그저께 대련에선 분명히 제가 이겼었잖아요?!”

“그리고 어제 대련에선 다시 내가 이겼지. 총전적 4승 1무 1패야.”

“그래봤자 심판도 없는 간이 대련이잖아요! 이, 이번 주에 랭킹전이 시작되면 그때가 진짜예요! 그땐 절대로 안 질 테니까!”

“그래도 수석입학생이라 랭킹전 시작은 1위겠네. 그 자리 잘 맡아둬. 금방 찾으러 갈 테니까.”

“찾으러 오긴 무슨! 올라오는 족족 밟아줄 거거든요!?”

삿대질까지 해가며 외친 한겨울이 일순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얼굴이 더욱 빨갛게 물들었다.

“……10분 지났으니 이만 가겠어요.”

그렇게 말한 한겨울이 몸을 홱 돌려 떠났다.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자 류태현이 내게 물었다.

“뭘 그리 흐뭇하게 봐요 형?”

“그냥…….”

나는 멋쩍게 웃으며 답을 얼버무렸다.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한겨울의 모습에 감격했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세상은 소설 속이고 눈앞의 이들은 전부 소설 속 캐릭터다.

그렇게 생각하며 쓸데없는 감정을 품지 않으려 했으나, 한때 좋아했었던 히로인이 살아서 움직이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근데 저렇게 그냥 보내도 돼요?”

“어. 물어볼 건 대충 물어봤으니까. 오늘 자리를 마련해줘서 고마워.”

“뭘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류태현에게 나 역시 마주 웃어주었다. 소설에서 보던 모습과 판박이인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후 자리를 정리하고 카페를 나서 류태현과 헤어지자, 입을 삐죽 내밀고 있던 채소연이 내뱉듯 말했다.

“나 아까 걔 마음에 안 들어.”

“누구? 류태현?”

“아니, 그 한겨울이라는 여자애.”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이었다. 한겨울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나와 달리, 채소연이 보기에 그녀는 고압적이기만 한 건방진 재벌가 아가씨로밖에 보이지 않았겠지.

“첫인상은 좀 별로겠지만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는 학생이지. 쟤랑 절친 먹으면 인생이 편해질걸?”

“헤헹. 됐네요. 대기업 후계자래봤자 결국 돈만 많은 꼬맹이일 뿐이잖아? 세상 일이라는 게 돈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거덩.”

채소연이 고개를 저으며 훗 하고 웃었다. 제 딴에는 어른스러워 보이려는 제스처였겠지만, 내가 보기엔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한겨울 정도면 어지간한 일은 돈으로 다 해결할 수 있을걸?”

“뭐 얼마나 대단한 회사 후계자길래 그러는데? 한성그룹 딸내미라도 된대?”

“어.”

“엥?”

채소연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한성그룹? 내가 아는 그 한성그룹 말하는 거야?”

“어. 바로 그 한성그룹 후계자야.”

“……계열사 사장 딸?”

“아니. 한성그룹 한건우 회장 둘째 손녀.”

“지, 진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문하는 채소연을 보며 내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망연자실한 채소연의 시선이 저 멀리, 한겨울이 떠나간 방향으로 향했다. 당연히 한참 전에 떠난 그녀가 거기 있을 리가 없다.

이내 고개를 돌린 채소연이 날 올려다봤다. 불안감이 차오른 두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왜 저런 반응인지 이해가 되었다. 한성그룹은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기업. 그룹 총회장인 한건우의 자국 내 위상은 과장 좀 보태서 대한민국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즉 채소연은 왕의 손녀와 말다툼을 한 셈이었다. 조선 시대였으면 역적으로 몰려 삼족이 멸해졌으리라.

물론 지금은 조선 시대도 아니고 채소연이 극형에 처해질 일도 없다. 허나 그녀가 지금 느끼고 있을 부담감만은 결코 그에 뒤지지 않으리라.

“………………나 이제 어떡하지?”

채소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앗!”

다음 순간, 채소연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호, 혹시 이제 막 기, 기업 차원에서 나한테 보복하는 거 아니야?!”

한겨울 성격 상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채소연은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불안에 떨 뿐이었다.

“큰일 났다……! 나 핸드폰도 한성전자 폰이고. 자동차도 한성자동차고. 보, 보험도 한성보험 꺼 들어놨는데……!”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임을 증명하듯 한성그룹은 이미 채소연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 상태였다. 만약 정말 한성그룹이 채소연에게 보복을 감행한다면, 그녀의 삶은 순식간에 파탄나리라.

“흐, 흐끅!”

물론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 절대로 없으나, 이미 채소연의 머릿속에선 집도 차도 전부 빼앗긴 채 길거리에 나앉은 자신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는 듯 했다.

“흐에에에엥…….”

눈가에 커다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소연의 모습에 내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들었다. 그러자 채소연이 희망의 불빛을 발견한 듯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흐끅! 호, 혹시 아까 걔한테 전화하는 거야……? 한 번만 봐달라고……?”

“아니, 다른 사람이야.”

“흐에에에에엥…….”

“그만 징징대. 한겨울은 그런 일로 쪼잔하게 보복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지, 진짜?”

“그래. 진짜.”

내 말에 채소연이 킁! 하고 흐르던 콧물을 삼켰다. 비위가 상하는 광경에 등을 돌리며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었다.

“그, 그럼 누구한테 전화하는 건데?”

“대충 자퇴 사유도 알아냈으니 이제 본인을 직접 만나러 가야지.”

무미건조하게 이어지던 신호음이 끊기고, 전화기 너머에서 푹 가라앉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소속 안수호라고 합니다. 강하늘 학생 번호 맞습니까?”

­네, 제가 강하늘인데……, 경비대? 그린하우스에 경비대가 있었어요?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강하늘이 잠긴 목소리로 횡설수설했다. 시간이 오후 3시가 넘었는데 설마 진짜 방금 일어난 건가?

“예. 그린하우스 경비대입니다. 강하늘 학생의 자퇴 건에 대해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한 번 만나뵐 수 있겠습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건조한 침묵이 잠시간 흘렀다.

­좋아요. 경비대시라는 분이 왜 제 자퇴에 신경 쓰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니 만나 봬야죠.

이내 떨어진 수락에 내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협조 감사합니다. 어떻게, 제가 댁으로 찾아뵈면 될까요?”

­……아뇨. 제가 그린하우스로 갈게요.

“알겠습니다. 시간은 언제 쯤?”

­……지금 바로 가죠. 한 1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확인했습니다. 저는 부지 내 N관 옆 카페 스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시든지요.

강하늘은 시종일관 졸린 듯한 목소리였다. 그 태도에서 원작에서 보았던 자신감이나 자부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잠결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뭐, 만나보면 알겠지.’

이윽고 전화를 끊은 나는 눈가를 주먹으로 비비적대는 채소연을 데리고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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