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039.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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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늘.
원작의 히로인인 한겨울에게 덤볐다가 패배한 뒤, 흑화하여 다시 한 번 그녀에게 해코지를 하려 했다가 주인공 류태현에게 처단당한 단역 빌런……이라는 말도 아까운 쩌리 악역.
그런 캐릭터가 대뜸 자퇴를 한다는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의문인 건 왜 민채령이 그 캐릭터의 자퇴를 막느냐는 점이었다.
그 점이 궁금하여 민채령에게 이유를 물었으나 돌아오는 답은 묵묵부답.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니 저번 실수의 만회까지 언급하며 내게 일을 시키는 것이겠지만, 그 이유를 모르니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꼭 민채령의 꼭두각시로 놀아나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강하늘에 대해 독자적으로 조사해야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강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다음 날.
강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담당교수인 도소영을 만나러가기 전, 특책과로 출근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태호가 전해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예?”
그래.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제가 제대로 들은 거 맡습니까? 저보고 채소연이랑 투맨셀을 짜라고요?”
“그래.”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태호의 모습에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투맨셀. 대충 풀이하면 2인 1조.
경비대는 특책과든 일반과든 모든 임무에 있어 기본적으로 2인 1조(Twomancell)가 원칙이다. 내 경우엔 그동안 조유리나 이태호와 임시로 투맨셀을 짰다.
아마 정식으로 투맨셀을 이루면 이태호와 하게 되리라. 은연중에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본래 채소연의 파트너가 이태호고, 나는 안전가옥 임무로 빠진 채소연을 대체하듯 특책과에 들어왔으니까.
근데 채소연과 투맨셀을 짜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채소연은 팀장님이 따로 내린 임무 때문에 외부 파견 중이지 않습니까?”
“그 파견 임무가 어제부로 종료되었다고 한다. 오늘부터는 정식으로 출근할 예정이지.”
“근데 안 했지 않습니까?”
“……조금 늦는 것뿐이다. 아직 출근 시간까지 10분 남았으니까.”
채소연이 언제 출근하느냐는 차치하더라도, 그녀의 정식 출근 자체가 금시초문이었다. 채소연은 지예원의 감시 겸 경호역이 아니었던가. 근데 그녀가 오늘부터 특책과에 복귀한다면, 안전가옥은 누가 지킨다는 말인가.
그야 민채령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니, 따로 경호 인원을 배치했든 뭐든 조치를 취하긴 했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선배님. 채소연은 원래 선배의 파트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저한테 짬때리……. 아니, 왜 제가 채소연의 새 파트너가 된 겁니까?”
“좋은 질문이다. 거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첫 번째. 본래 팀장님의 부관인 나는 다른 대원과 정식 투맨셀 관계를 맺지 않는다. 내 평시업무는 팀장님의 보좌와 휘하 팀원 관리니까. 채소연의 경우엔 입사하고 적응하는 기간 동안 임시로 파트너를 맺은 거였다.”
“아하.”
그 말에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헌데, 그러면 막 특책과로 온 저 역시 선배님께서 관리해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심지어 채소연은 반년 일찍 들어오긴 했어도 제 동기잖습니까.”
“그게 바로 두 번째 이유다.”
“예?”
그건 또 뭔 소리야.
“특책과에 오기 전부터 채소연과 교류가 있었다고 했으니, 그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몰상식과 무지성을 겸비한 녀석이죠.”
“남을 폄하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만, 썩 괜찮은 요약이군.”
흘긋 내 눈치를 본 이태호가 조심스럽게 이어서 말했다.
“채소연과 투맨셀을 짜는 건 상당한 정신적 부담을 감내해야만 하는 일이다. 업무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말이지. 나는 스스로 그러한 스트레스를 견디는 정신력이 강하다 자부한다만, 그런 나마저도 채소연과의 지난 반년 간의 투맨셀은 차마 버티기 힘겨웠다.”
“예에…….”
“하물며 다른 2팀 대원들은 오죽하겠나. 너도 알겠지만, 2팀은 민채령 팀장님께서 오직 개성과 실력, 두 가지만을 보고 뽑은 인원들로 구성된 팀이다. 그래서 조직 생활적인 측면에선 다소 불안한 부분이 없잖아 있는 편이다. 가령 내 동기인 조유리만 해도 전투 실력만은 특책과 안에서도 상위지만, 남성공포증이라는 일상적인 사회 업무에서 장애를 초래할 요소를 가지고 있지.”
비단 그것은 조유리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다른 인원들에게도 인격적인 측면에서 소위 말하는 ‘하자’가 존재한다고. 그렇게 덧붙인 이태호가 지긋이 날 바라보았다.
“그런 다른 팀원들과 채소연을 붙여두는 건 업무적으로 위험요소가 크다. 그런 점에서 안수호, 너라면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
“모나지 않은 성격에 예의 바른 태도. 기본적인 사회적 상식을 지녔으며 처세술에도 능하지. 그런 너라면 채소연과의 투맨셀에도 능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예?”
“게다가 마침 너희 둘은 서로 동기지 않느냐. 선임과 후임 사이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겠지. 그래, 네가 동기로서 그 녀석을 챙겨주며 서로 절차탁마한다면”
“저, 선배님.”
내 입에서 흘러나온 차가온 목소리에 이태호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결국 제가 제일 짬이 안 되니 채소연을 짬때리겠다 그 말씀 아닙니까?”
“……외람된 말씀이라. 그런 식으로 불합리한 일을 따질 때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점. 그런 점을 높이 샀기 때문에 널 채소연의 파트너로”
“만약 제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미안하다, 안수호! 정말 미안하지만! 부디 이 무능력한 선배를 이번 한 번만 용서해줄 수 없겠나!”
이태호가 숫제 고개까지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채소연의 복귀가 결정된 이상 누군가는 그녀와 투맨셀을 맺어야 한다! 허나 그 짜증나는 꼬맹이를 감내할 수 있는 인격자는 우리 팀에 나와 너 두 사람밖에 없을 거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뭐하지만, 채소연을 제외하더라도 2팀 팀원들은 대부분 인격적으로 하자가 있으니까!”
“아니, 그럼 선배님께서 다시 데리고 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나는!”
이태호가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처연한 눈빛이 그 두 눈에 감돌았다.
“나는, 지쳤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낸 듯 토해낸 그 절절한 외침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 반년 동안 참피같은 도마뱀년에게 고통 받은 남자가 있었다.
반년 만에 그녀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한 번 만끽한 자유를 결코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업무적인 부분에선 내가 도와주마. 평소에 부과되는 업무량은 최저 수준으로 조정해주겠다. 야간 순찰 같은 시간 외 근무에서도 편의를 봐주도록 하지. 이건 나뿐만 아니라 팀장님께서도 동의하신 부분이다.”
“그렇군요…….”
거기까지 이야기가 됐다면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설령 확정되지 않은 일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채소연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는 그를 보고 있자니 차마 거절하기 미안했다.
도대체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반응일까.
문득 지난 일주일 간 그의 얼굴에 감돌던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원래 미소를 잘 짓는 줄 알았더니 그게 사실 해방의 기쁨이었던 건가.
“그렇다면 별 수 없죠. 알겠습니다. 채소연과 투맨셀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다.”
“그럼 오늘부터 당장 투맨셀로 행동하면 되겠습니까? 그, 팀장님께 개인적으로 받은 일이 있어서.”
“그래. 그래주었으면 한다. 채소연이 사무실에 없는 편이 나도 편할 것 같거든.”
채소연이 없는 편이 좋다고 아예 대놓고 말하는 이태호를 보며 나는 애써 웃어보였다.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특책과는 공채가 있는 4월을 기준으로 1년 단위로 동기를 끊는다. 그리고 채소연은 2팀 인원 중 유일하게 나와 동기인 대원이었다. 선배 대원보다는 동기인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긴 하겠지.
반쯤 스스로를 세뇌하듯 나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이태호 앞에서 대놓고 불쾌한 표정을 지어버릴 것 같았다.
***
……그러나 현재.
도소영 교수와 약속을 잡고 그녀의 연구실로 향하는 길, 나는 연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눈앞이 깜깜하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눈앞이 깜깜했다.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겨울이 끝난 초봄의 하늘은 맑기 그지없었고, 보고 있자니 가슴 한 켠이 편안해지는 풍경이었으나, 그럼에도 이 엿 같은 기분은 좀처럼 나이지지 않았다.
“빰→빰→빠~밤↗! 빰→빰→빠↘밤↗! 빰→빰→빠~밤↗! 빰→빰→빠↘밤↗!”
채소연은 저만치 앞을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며 미션 임○서블의 OST를 입으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 자체론 별 일 아니었으나 묘하게 꼴받는 행동이었다.
“빠라 바~~~~암. 빠라 바~~~~~암. 빠라 바~~~~~~~암. 빠밤!”
뭐가 그리 신났는지 계속 노래를 흥얼거리는 채소연.
그런 그녀를 지나가는 학생들이 이상한 눈치로 쳐다봤다. 자기 혼자 집에서 흥얼거리는 것도 아니고, 대낮의 대로에서 저러고 있으니 이상하게 여기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차마 같이 걷기가 부끄러워 걷는 속도를 늦추자, 이를 칼같이 알아본 채소연이 고개를 홱 돌렸다.
“뭐야! 왜 그렇게 늦게 걸어?”
“부끄러워서 그런다, 부끄러워서. 제발 좀 닥치고 걸으면 안 되냐? 뭐가 그리 신났어?”
“당연히 신나지!”
채소연이 배시시 웃었다. 말랑말랑한 볼살이 빵빵하게 강조되었다.
“이번 일 팀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맡긴 임무라며? 그럼 엄청 중요한 임무라는 뜻이거든! 이번 일을 잘 끝내면 저번 실수도 만회받을 수 있을 테니까!”
“저번 실수?”
채소연도 나처럼 뭔가 켕기는 짓을 했나 싶다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 감시를 들켰던 일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건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래. 잘 해봐라. 이번엔 제발 멋모르고 테이저부터 쏘지 말고.”
“내가 알아서 잘 할 거거든!”
“알아서 잘 하기는 퍽이나.”
내 핀잔에 채소연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현실에서 화난다고 복어마냥 볼을 부풀리는 사람이 진짜 있긴 하구나.
아니, 여기 소설 속이지 참.
“야. 안수호. 너 아까부터 말이 좀 건방지다? 이게 감히 선배를 뭘로 보고!”
“선배는 무슨. 1년 동기제라 너랑 난 동기거든?”
“그런 게 어디써! 먼저 들어왔으면 선배고 늦게 들어왔으면 후배지! 그리고 아무리 겉으로는 동기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할 거 아니야!”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동갑끼리 뭘 그리 쩨쩨하게 따지냐고.”
“엥?”
지예원과 처음 만난 날 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채소연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내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그녀가 입술을 달싹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고 보니 그날 이런 말도 했었지. 특책과로 넘어오면 내 짬에 감히 너랑 눈도 못 마주칠 거라고. 근데 이걸 어쩌나. 못 마주치기는커녕 아예 동기끼리 잘 해보라고 투맨셀로 엮였는데.”
“이, 이익!”
“아무튼 잘해보자 동기야.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보고.”
“야!!!”
내 이죽거림에 더는 못 참겠는지 채소연이 달려들었다. 앙증맞게 쥔 주먹이 호선을 그리며 내 가슴팍으로 향했다.
그러나.
턱!
그 공격은 손쉽게 무위로 돌아갔다. 나름 진심으로 휘두른 팔이 가볍게 막힌 것에 놀랐는지 채소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본래 나와 채소연의 신체능력은 비등비등했다. 채소연의 초능력은 뛰어났지만 그 초능력 탓에 그녀의 평소 신체 스펙은 초인으로서 미달급이었던 과거의 나보다 조금 나은 정도.
여인혁의 근골정렬을 통해 크게 향상된 내 스펙은 이미 그녀보다 훨씬 위에 있었다.
졸지에 휘두르던 팔을 붙잡힌 채 내게 매달려 있다시피 한 채소연을 내려다보며 내가 말했다.
“내가 분명 말했잖아. 정 선배 대접을 받고 싶으면 좀 선배다운 모습을 보이라고. 거 말 몇 마디 좀 했다고 후배라는 놈한테 손찌검부터 하는 게 무슨 선배야?”
“뭐래!!”
채소연이 내 손을 뿌리치며 빼액 소리질렀다.
“선배가 후배한테 손찌검 좀 할 수도 있지 뭘 그거 가지고 그래? 원래 선배는 후배 때려도 되는 거거든?! 말 안 듣는 놈 정신 차리게 하는 데에 주먹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와.”
그야말로 구시대적 가치관이었다. 요즘 군대도 대놓고 선임이 후임을 패지는 않을 텐데. 아니면 설마 이쪽 세상에선 아직 군대나 직장 내 구타가 만연한 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말 그대로 태호 선배께 드려봐라. 아마 아주 좋아하실걸?”
제아무리 이태호라도 채소연 본인이 패도 된다고 하면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때릴 것이다. 그간 쌓인 게 여간 많은 게 아닐 테니.
“??? 태호 선배가 날 좋아해? 왜?”
허나 채소연은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기 보다는 본인이 이태호에게 있어서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바보는 삶이 행복하다고 하던가. 나와 달리 아무런 걱정 근심도 없어 보이는 저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오면서도 조금은 부러운 감정이 들었다.
“……인생을 너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거 칭찬이야?”
“그래. 칭찬이야.”
“그래?”
비꼬는 말이었음에도 칭찬이라는 그 한 마디가 그리 기쁜지 채소연이 배시시 웃었다. 정말 고민이라곤 단 하나도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쪽은 민채령이니 여명단이니 쾌락천마니 원작의 사건이니 하루하루 걱정과 고민이 마를 날이 없는데.
“내 삶이 부럽다면 날 롤 모델로 삼고 배우도록 해! 옆에서 보고 따라하는 건 공짜니까!”
평평한 가슴을 힘껏 펴며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그녀를 보며, 문득 원래 세계에서 들었던 격언이 떠올랐다.
그래. 분명 바보는 삶이 행복하다, 뭐 그런 격언이었는데.
정말 딱 채소연에게 어울리는 말이라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녀의 눈에 비치는 인생은 핑크빛 꽃밭으로 가득하겠지.
조금 전까지는 아주 약간은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별로 부러워 할 삶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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