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037. 정중한 부탁
* * *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 빠르고 거친 박동의 원인이 비단 이곳까지 전력으로 달려왔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가슴을 옥죄는 압박감에, 어깨를 짓누르는 긴장감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나는 투검에 관해선 일말의 소양도 없었으나, 내가 던진 단검은 십여 미터를 날아가 성공적으로 서큐버스 여자의 미간에 박혔다. 운이 좋았다.
미간을 꿰뚫린 적은 그대로 절명했다. 제아무리 재생 능력이 있다 한들 즉사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이 또한 운이 좋았다.
시선이나 끌 요량으로 던진 검이었다. 그것이 단번에 적에게 적중하고, 심지어 그 목숨까지 앗아간 건 정말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허나 행운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이게 무슨 짓이냐니까? 왜 멋대로 생포한 적을 죽여?”
살인멸구. 나는 이 세상의 진실을 깨달은 저 불쌍한 캐릭터의 입을 막는 데에 성공했다. 남은 건 싸늘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는 민채령을 어떻게든 설득하는 것이었다.
아니, 설득이란 표현은 옳지 않다. 지금부터 내가 할 건 설득이 아닌 해명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내 행동의 당위성을 설파하며 그녀의 용서를 구하는 행위였다.
마른 침과 함께 긴장감을 목구멍으로 삼킨다. 긴장하지 마라. 태연하게 말해라.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켕기는 것 따위는 없다. 그렇게 끊임없이 되뇌었다.
“…팀장님께서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위험? 내가?”
나는 적의 흡혈 능력에 대해서 민채령에게 설명했다. 그 뛰어난 제압 능력에 대해서. 단, 상대방의 기억이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은 빼고.
내 말에 민채령은 두 눈을 가늘게 찢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는 바는 알겠는데, 너는 내가 고작 이런 적한테 당할 정도로 약할 거라고 생각한 거니?”
“그야 모르죠. 전 팀장님께서 싸우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그건 그러네?”
민채령이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노인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곧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날 걱정해준 건 고마워. 그렇지만 멋대로 죽인 건 역시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네.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이번 사건의 범인은 ‘그 아이’처럼 정보원으로 써먹겠다고. 기억하고 있지?”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멋대로 범인을 죽였지?”
“그건…….”
표정을 가다듬는다. 난처하다는 듯 그녀의 시선을 피함과 동시에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치 나 역시 이 결과가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라는 듯한 태도와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수입니다. 팀장님한테서 떨어뜨려 놓으려고 어깨를 노리고 던졌는데, 설마 머리에 꽂힐 줄은…….”
“실수라고?”
“예. 안타깝게도 투검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나는 투검을 포함한 전투 기술 전반에 소질이 없었다. 그건 날 기용한 민채령 역시 잘 알고 있을 터.
혹시 내가 실력을 숨기고 있던 것은 아닐까 의심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허나 그래봐야 의심에서 그칠 것이다. 지금 당장 내 본 실력을 확인할 방법도 없으며, 설령 확인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단검의 적중이 기적 같은 우연이었던 건 사실이니까.
“실수라. 실수란 말이지…….”
진실이 어떻든 민채령은 정말 실수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허나 현실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걸 그녀 역시 알고 있을 터.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날 바라보던 민채령의 시선이 노인에게, 이내 쓰러진 여자의 시체에게로 향했다. 민채령은 한참이나 여자의 시체를 바라봤다. 마치 무언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이내 제 혼자 고개를 주억거린 민채령이 다소 힘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실수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실수에 대한 책임을 져야겠는데.”
실수라면 이해는 해주겠다만 책임은 확실하게 져라. 귀중한 정보원을 눈앞에서 날려버린 실수에 대한 책임을.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글쎄.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송구스럽게도 떠오르는 건 많지만 뭐가 가장 옳은 답일지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군요. 하지만 실수에 대한 벌충은 확실하게 해내겠습니다. 팀장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방법으로요.”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그 말에 민채령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원하는 바야 뻔했다. 민채령은 저 여자를 정보원으로써 이용하고자 했으므로, 이를 벌충하려면 내가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그녀에게 물어다주면 될 일이었다.
‘민채령은 내게 여명단 내부의 독자적인 정보원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 정보원을 밝히라고 하는 건 곤란하지만, 쓸만한 정보를 물어오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겐 원작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까.’
앞으로 일어날 테러에 대한 정보나 주요 기관들에 잠입한 여명단의 스파이 목록. 민채령이 구미가 당길만한 정보는 얼마든지 손에 쥐고 있었다. 그것들을 몇 개 넘겨주면 이번 ‘실수’에 대한 벌충으로는 충분하고도 남겠지.
“좋아. 그 자신만만한 태도를 봐서 이번 ‘실수’는 특별히 넘어가줄게.”
“……감사합니다.”
묘하게 실수에 강세가 담긴 발음. 민채령의 시선이 노인에게로 향하더니 이내 그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이네. 네가 던진 단검이 이 노인한테 박히지 않아서.”
띠링!
그 순간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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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스트 클리어! ]
[ 서큐버스에 의한 착정 사건인줄 알았던 이번 사건은 지예원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한 여명단의 소행이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특수대책과 대원으로서의 첫 임무를 당신은 훌륭하게 완수해냈습니다! 당신의 상사는 당신을 눈여겨볼 것이고, 함께 싸운 동료는 당신을 믿음직한 동료라 받아들일 것입니다! 참 잘 됐네요! ]
[ 퀘스트 클리어에 따라 다음 보상을 제공합니다. 보상 수령 및 상세 정보를 확인하려면 보상 탭을 활성화하세요! ]
<보상/>
1)경비율 증가 3%(현재 경비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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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켕기는 구석은 있지만, 어쨌든 이걸로 이번 퀘스트도 일단락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줄곧 이쪽을 짓누르던 긴장감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
안전가옥 지하 벙커.
어둑어둑한 조명에 의지한 채 나는 민채령이 가져다 준 이번 사건의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류태현을 미끼로 사용해 사건의 배후인 여명단을 끌어내려던 이번 작전은, 본래 하루에 하나씩 여명단의 아지트를 습격하며 며칠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었다. 설마 하루만에 서큐버스 사건의 범인을 포함한 배후가 잡힐 거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습격한 아지트에서 검거한 단원을 제외하고, 어제 있었던 류태현 습격 사건에 연루된 여명단원은 총 17명.
그중 유일한 사망자인 박지현을 제외한 16명은 전원 산 채로 경비대에 체포되었다.
허나 보고서에 공식적으로 올라온 체포 인원은 15명.
보고서에서 누락된 남은 한 사람. 유현호는 경비대로 넘어가기 전 이곳 안전가옥 지하 벙커로 빼돌려졌다. 이에 대해 들킬 염려는 없었다. 유현호는 현장에서 다른 단원과 일절 접촉하지 않은 채 민채령에게 제압당했으니까.
내게 보고서를 전달해준 민채령은 지금 이 벙커 안쪽의 패닉룸에서 유현호를 심문하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만약 박지현이 스스로 알아낸 이 세상의 진실을 유현호에게 전했다면, 그를 통해 민채령 역시 진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독심 능력을 포함해서, 앞으로 정신에 간섭하는 초능력은 특히 경계해야겠군.’
설마 이런 방식으로 소설 속 캐릭터가 이 세상이 소설임을 알아차리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럴 만 했다. 웹소설에서 소설 속 캐릭터가 자신이 소설 속 캐릭터임을 인지하는 일은 어지간해선 일어나지 않는다. 순간순간의 몰입감이 중요한 웹소설에서 제4의 벽을 넘는 시도는 그리 좋은 도전이 아니니까.
‘만약 민채령이 자신이 캐릭터임을 깨닫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도무지 짐작이 안 되는걸.’
상상만해도 피곤해지는 가정이었다. 부디 박지현이 미처 그 불편한 진실을 주변에 알리기 전에 죽었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불편한 진실이라.”
문득 뇌리에 지예원의 존재가 떠올랐다.
박지현과 유현호와 함께 간부급 단원으로 추정되는 인물, 김성학의 심문을 토대로 경비대는 류태현의 진술에서 언급된 김민아가 아직 살아있음을 밝혀냈다.
그것이 제대로 살아있다는 걸 의미하는지, 아니면 정말 문자 그대로 ‘살아만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지는 미지수였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예원에게 과연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가…….’
도의적으로는 말해야만 했다. 김민아는 지예원에게 있어 각별한 존재였으니까. 허나 섣불리 진실을 말해주었다가 지예원이 허튼 마음을 먹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는 건 이쪽이었다.
김민아를 구하기 위해 탈출이라도 했다가 여명단의 손에 그녀가 죽기라도 하면 나 역시 죽게 될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말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들키게 되는 거라면 몰라도, 지금은 진실을 잠시 덮어두고 그녀를 이 안전가옥에 붙잡아두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지예원의 얼굴이나 볼겸 지하 벙커에서 지상층으로 올라갔다.
“후우. 후우. 후우우…….”
지예원은 1층 거실에 있었다. 회색 면티에 돌핀팬츠 차림인 그녀는 단련이라도 하려는 심산인지 거실 한복판에서 한 팔로 물구나무를 선 채 버티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한 팔도 아닌 한 손가락이었다. 지예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엄지손가락 하나로 전신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피이잉. 피이잉. 피이잉…….”
한편 채소연은 그 옆 소파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풍선 바람 빠지는 듯한 코골이 소리까지 들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 깊이 잠든 듯 했다.
본인이 지예원의 감시역이라는 자각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흠.”
지예원의 안부나 물을 심산이었지만 단련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관두었다.
‘커피나 한 잔 마실까.’
나는 지예원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어?”
그런 내 눈에 주방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흰색 서류들이 보였다. 서류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곧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미친.’
서류의 정체는 이번 사건의 보고서였다. 조금 전 내가 민채령에게 받아서 지하에서 읽었던 것과 같은.
즉 이렇게 함부로 널브러져 있어서 될 서류가 아니었다. 이 보고서에는 김민아에 대한 내용도 기재되어 있으니까.
‘채소연 저 자식이…….’
안 봐도 뻔했다. 보나마나 채소연 저 참피같은 녀석의 소행이겠지.
채소연에게 흘긋 원망어린 시선을 보내며 나는 지예원이 볼 새라 빠르게 서류를 정리했다.
“그거.”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가온 지예원이 티셔츠자락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치고 있었다.
“아하하. 단련은 끝나셨습니까? 방해될 것 같아 자리를 피해드리려고 했습니다만…….”
“그 서류.”
“아, 별 거 아닙니다. 일상적인 업무 서류에요. 굳이 특별한 내용은”
“이미 봤어. 이번에 아카데미서 벌어진 사건 보고서잖아.”
그 말에 표정이 저절로 구겨졌다. 채소연, 저 생각 없는 참피가 기어코 일을 냈구나. 그런 생각에.
허나 이어지는 지예원의 말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었다.
“민채령 팀장이 나한테 주고 갔어. 나보고 한 번 읽어보라던데.”
“……예?”
무의식적인 반문. 순간 지예원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명단에서 날 찾아내려고 일으킨 사건이라며? 일단 나도 관련이 있으니까 한 번 읽어보라고 주던데.”
관련이 있기야 했다. 아니, 오히려 지예원이야말로 이번 사건의 당사자라 할 수 있었다.
허나 그것과 사건의 정보를 그녀에게 공개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민채령도 분명 알고 있을 터다. 이번 사건에 대해 지예원에게 말하는 게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런데 왜? 어째서 민채령은 지예원에게 보고서 째로 정보를 넘긴 거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잇지 못하는 날 보며 지예원이 차갑게 조소했다.
“마냥 속이 시꺼먼 여자인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배려심이 있더라고. 어디 사는 누구랑은 다르게.”
지예원의 시선이 따갑게 내게 꽂혔다.
“……그거 혹시 절 말하는 겁니까?”
“어제 저녁에 장비 챙기러 왔을 때, 그때 이미 다 알고 있었지? 류태현이라는 남학생이 민아한테서 탈리스만을 받았다는 거. 그런데 나한테는 귀띔도 없더라?”
“보안을 요구하는 일이었으니까요. 함부로 발설할 수 없었습니다.”
“보안은 무슨. 난 여기 갇혀있는 신세인데 정보가 밖으로 새어나갈 리가 없잖아.”
“……김민아에 대해 들으면 예원 씨가 흥분해서 잘못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선택? 왜, 내가 니들 몰래 탈출하기라도 할까봐?”
지예원이 피식 웃었다. 허나 입은 웃되 그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한 채였다. 싸늘한 채로 줄곧 내게 고정된 상태였다.
“내가 미쳤다고 그러겠어? 도망쳐봤자 발신기 때문에 어차피 금방 잡힐 테고, 행여 여명단 놈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곧바로 죽은 목숨인데?”
“…….”
“근데 그러고 싶더라. 사실 나 지금 당장에라도 뛰쳐나가서 민아를 찾고 싶어. 여명단한테 들키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좆까라 그래. 민아의 생사를 몰랐다면 모를까, 민아가 살아있다는 걸 안 이상 그까짓 목숨 정도야 얼마든지 걸 수 있으니까.”
지예원이 차갑고도 뜨겁게 고했다. 모순된 표현이지만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말에 담긴 감정은 뜨거웠으나, 그 감정을 토해내는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
“그런데 안 그랬어. 왜 그랬는지 알아? 내 멋대로 여기서 도망치는 건, 너희가 내게 베푼 호의를 짓밟는 거니까. 비록 내가 가진 정보를 노린 거래였다곤 해도 결국 너희는 날 도왔고 내 목숨을 구해줬어. 특히 안수호, 너한테는 특히 감사하고 있어. 너야말로 직접적으로 내 목숨을 구한 생명의 은인이니까. 내 사정만 쫓아서 멋대로 행동했다가 네가 곤란해지면 뒷맛이 별로 좋지 않거든.”
이쪽의 사정을 고려해주는 건가. 일순 그렇게 생각했으나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예원은 단념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그녀의 말은 선고에 가까웠다. 목숨의 빚을 진 내게 정식으로 고하는 선고.
“그래서 네가 돌아오면 이렇게 직접 마주보고 부탁하려고 했어.”
“저는…….”
“민아를 찾아달란 말은 안 해. 그저 날 이제 여기서 내보내주기만 하면 돼. 내가 아는 정보는 전부 다 넘길게. 민아를 찾는 것도 내가 알아서 다 할게. 너희한텐 그 어떤 폐도 끼치지 않는다 약속할게.”
그러니까, 제발.
그녀가 그렇게 덧붙인 순간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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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하우스 재학생 지예원이 당신에게 ‘정중한 부탁’을 요구해왔습니다! ]
[ <스킬 :="" 아카데미의="" 경비원="">의 효과로 인해 이 정중한 부탁을 거절할 경우 일정 시간 동안 행운 랭크가 1단계 하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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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전가옥을 떠나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의 페널티 예고에 나는 직접적인 답변을 유보했다. 허나 지예원은 전혀 물러설 기세도 없이 더욱 나를 압박해왔다.
“말했잖아. 목숨을 걸 각오는 되어 있다고. 그만큼 내게 민아는 소중하니까.”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그럼에도 네게 묻는 거야. 네가 살려준 목숨을 거는 거니까, 네 허락을 반드시 구하고 싶었어.”
“만약 제가 허락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곧바로 민채령한테도 날 내보내달라 요구할 거야. 만약 거절하면 그때는 억지로라도 도망칠 거고.”
“만약 제가 반대한다면…….”
“그건 그때 가보면 알겠지.”
내가 반대하면 잠자코 이 안전가옥에 남겠다. 그런 답을 바랬으나 지예원의 의지는 확고해보였다.
“부탁할게. 뻔히 보이는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서 네 생각을 말해줘.”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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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하우스 재학생 지예원이 당신에게 거듭 ‘정중한 부탁’을 요구해왔습니다! ]
[ <스킬 :="" 아카데미의="" 경비원="">의 효과로 인해 이 정중한 부탁을 거절할 경우 일정 시간 동안 행운 랭크가 1단계 하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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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떠오른 메시지. 이곳에서 도망치는 걸 눈감아달라는 부탁과 더불어 거짓을 입에 담지 말아달라는 정중한 부탁.
이 이상 답변을 미루는 건 불가능할 터. 그렇다면 하다못해 그녀의 말대로 내 진심을 말해주는 게 맞겠지. 행운 랭크가 2단계나 하락하게 놔둘 순 없으니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두 눈을 감았다. 이내 다시 뜬 눈을 잠깐 지예원과 맞췄다가 그 시선을 아래로 피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하는 편이 나았다. 눈빛으로 어줍잖은 감정을 전달할 바에야, 시선을 피하면서 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테니까.
“……저는 예원 씨를 여기서 내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왜?”
“예원 씨가 죽지 않았으면 하니까요.”
나는 지예원의 시선을 살며시 피하면서, 목소리에 꾸며낸 애절함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비록 담아낸 감정은 꾸며냈을지언정,단언컨대 담긴 의미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다.
“어째서?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잖아. 내가 죽든 말든 그게 너한테 무슨 상관이라고…….”
“그건…….”
네가 죽으면 나도 죽으니까. 진실을 말하자면 그렇겠지만 그런 사정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
어떻게 말하면 진실을 숨긴 채로도 시스템에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인식될 수 있을까. 더불어 어떻게 하면 그녀의 양심을, 죄책감을, 부채감을 자극할 수 있을까. 입을 다문 채 그 지점을 가늠한 내가 이내 힘없이 말했다.
“만난지 얼마 안 된 사이기는 하지만, 예원 씨가 죽으면 아마 많이 괴로울 것 같습니다.”
착잡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의도적으로 진실을 숨기며, 최대한 그녀가 내게 부채감을 가지도록 유도한다.
“괴로울 거라고…….”
“예. 괴로울 겁니다. 아주 많이요.”
그야 괴롭기는 하겠지. 죽음이란 괴로운 법이니까.
“…………그래.”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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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아카데미 재학생 ‘지예원’의 정중한 부탁을 1회 거절하였습니다! ]
[ <스킬 :="" 아카데미의="" 경비원="">의 효과로 인해 24시간 동안 행운 랭크가 C에서 D로 하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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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원의 대답과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1회 거절하였습니다.'라는 문구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나마 2랭크 하락만은 어떻게든 피해냈다.
“……아주 괴로울 거다. 그 말이지.”
착잡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지예원을 앞에 두고서, 나는 지예원의 기분을 헤아리기보다 하락한 행운 랭크에 의한 영향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약간의 혐오감을 느끼긴 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행운 랭크가 떨어졌다 한들 곧바로 영향이 오진 않을 거다. 적어도 지예원이 당장 오늘 밤 탈출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지예원은 내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곳은 소설 속 세상. 제아무리 진짜 같다 한들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쾌락천마가 적어 내려간 텍스트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그 무엇도 나 자신의 안위와,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는 내 목표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래. 그 무엇도 말이다.
‘그 부채감을 잘 자극하면 이대로 지예원을 이곳에 계속 묶어둘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나는 지예원의 감정을 이용하는 데에 양심의 가책을 거의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나마 느껴지는 죄책감마저, 애써 무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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