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35화 (36/266)

〈 35화 〉 034. 서큐버스 사건(8)

* * *

아직 새순이 돋아나지 않아 앙상한 나뭇가지만 드러낸 나무들로 가득한 생태공원.

­콰앙!!

달빛만이 비추는 그 숲속에서 열아홉 명의 초인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콰아앙!!

김성학의 거권이 지면을 강타했다. 그 주먹은 암석질 표면으로 뒤덮여 있었다.

암석화. 신체 표면을 경질화한다는 수수한 능력.

허나 그의 압도적인 신체능력은 방어적인 그 능력마저 공격 수단으로 변모시켰다. 어지간한 괴수보다 단단해진 그의 주먹이 뻗어질 때마다 공기가 떨리고 대지가 진동했다.

“쫄랑쫄랑 도망 다니지 마라!”

김성학의 일갈에 류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 남자는 설마 목숨을 걸고 싸우는 와중에 정정당당히 붙으라느니, 그런 자세라도 자신에게 바라고 있는 것인가.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걸 보면 단순한 파워 타입인가. 그렇다는 건힘에서 밀렸다간 답이 없다는 건데…….’

이리저리 공격을 피하며 김성학의 신체능력을 가늠했으나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한 번 직접 부딪혀볼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지면을 세게 딛은 류태현이 자신에게 뻗어지는 김성학의 거권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앙!!

충돌.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힌 순간 무형의 충격파가 온 사방의 공기를 진동시켰다.

곧, 김성학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B급 괴수조차 뼈를 못 추리는 일격이다. 그걸 피하지도 않고 주먹으로 받아냈으니 받아낸 팔의 뼈가 아작났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후두둑.

부서진 건 류태현의 뼈가 아닌 그의 주먹이었다. 피가 묻은 암석질 파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팟!

두 사람이 거리를 크게 벌렸다. 이번 전투에서의 첫 충돌, 서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할 요량이었다.

“흠.”

류태현의 주먹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허나 큰 상처는 아니었다. 암석질 표면에 살이 까져 새어나오는 약간의 피. 고작해야 찰과상이었다. 그 외에는 뼈가 조금 울리는 정도.

반면 김성학은 어떤가. 피는 나지 않았지만 표면을 뒤덮은 암석질이 반쯤 부서져 떨어져나간 상태였다. 그것도 타격을 위해 특히 두껍게 장갑을 형성한 주먹 부분이. 어디 그뿐인가. 주먹에 꽈악 힘을 쥐자 시린 격통이 올라오는 것이, 뼈가 부러지진 않았어도 실금 정도는 간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반면 류태현은 태연하게 주먹을 갈무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단단하긴 하네.”

하지만 그뿐이다. 피식 웃은 류태현의 주위에 반투명한 푸른 기운이 휘몰아쳤다.

그가 가진 본래 초능력은 신체 강화.

투입한 마력에 비례해 전반적인 근력, 순발력, 반사속도, 신체강도 등을 강화해준다는, 그야말로 ‘초인’이라는 단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능력.

유일한 단점이라면 연비가 나쁘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강도의 발동은 1시간이 고작. 최대 강도로 발동하면 3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체내 마력이 고갈될 정도.

허나 그가 가진 마력흡수의 탈리스만은 그의 능력이 지닌 유일한 단점을 완벽하게 지워냈다.

그는 지금 신체강화와 마력흡수 둘 다를 100%에 가까운 강도로 발동한 상태였다. 안수호라면 그런 혹사에 몸이 버티지 못했겠지만 류태현은 달랐다. 기본적인 신체 강도가 뛰어난 건 물론이고, 신체의 내구성이나 마력에 대한 저항력마저 강화해주는 그의 능력은 탈리스만과 최적의 궁합을 자랑했다.

거기에 더해 특유의 통찰력으로 ‘마력’이라는 기운을 어렴풋이 알아채 공격에 담아내기까지.

그러한 류태현의 일격은 김성학의 방어를 어렵지 않게 벗겨냈다.

김성학은 강했다. 강했으나, 주인공의 적수가 될 정도로 강하진 않을 뿐이었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아나지 못한 그를 보며 류태현이 피식 웃었다.

“왜, 좀 따끔해서 놀랐나?”

“이 새끼가……!”

김성학이 육중한 거구를 이끌고 달려들고, 그 돌진을 류태현이 정면에서 받아냈다.

파바바밧! 두 사람의 주먹이 교차했다. 김성학은 늘 하던 대로 방어를 도외시한 공격 일변도. 그 앞에 선 류태현은 회피에 집중하며 이따금 그의 빈틈에 일격을 꽂아 넣었다.

­투웅!

허나 그 일격의 위력이 범상치 않았다. 옆구리에 꽂힌 주먹이 김성학의 내장을 뒤흔들었다. 잘게 부서진 암석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김성학의 얼굴에 일순 초조한 감정이 서렸다.

자신의 공격은 맞지 않는다.

적의 공격은 자신의 방어력을 능가한다.

표면의 장갑은 부서져도 능력으로 재생할 수 있다. 허나 안쪽의 신체는 그렇지 않다. 이따금 기회를 노리고 내지르는 류태현의 일격에, 김성학의 몸에는 확실하게 대미지가 쌓여가고 있었다.

명백히 그가 불리한 상황.

허나 김성학의 입가에는 어느새 진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조금 불리하지만 즐겁군.’

스스로 불리하다고 느낄 정도의 싸움을 해보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김성학은 강자와의 전투에서 느끼는 이 긴장감과 흥분감이 좋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전투의 열기에 녹슬어 있던 그의 전투감각이 차츰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슬로우 스타터라는 놈이었다. 감각이 깨어남에 따라 허공만 가르던 그의 주먹이 점차 류태현의 움직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새 성장했나! 아니, 내 움직임에 적응하기 시작한 건가!’

류태현의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허나 동시에 알 수 없는 희열이 차오르기도 했다. 전투를 즐기는 건 류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성부터가 무인인 두 사람의 웃음이 교차했다.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분명히 목숨을 건 실전임에도 불구하고, 얼핏 보면 친한 친구끼리 대련을 주고받는 것으로 보였다.

“으아아아!”

한편, 전장의 반대편에서는 두려움에 찬 비명이 연신 울려퍼지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여명단원들. 그 한복판에 고개를 숙인 채 서있는 벚꽃색 머리카락의 여성.

그 양손에는 조금 전 그녀에게 덤벼들었던 단원 둘이 각각 붙들려 있었다. 건장한 사내 둘이 가녀린 여성에게 목이 잡힌 채, 호흡조차 이어가지 못하며 컥컥댔다.

조유리가 고개를 들었다. 싸늘한 시선이 좌중을 훑었다.

그 시선에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여명단원들이 저마다 긴장한 채 자세를 잡았다.

잔챙이들은 자신이 맡겠다. 그렇게 선언하긴 했지만 적들이 자신하고만 싸워줄 거란 보장이 없었다. 제아무리 그녀가 강하다 한들 물리적으로 붙잡을 수 있는 숫자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허나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지현과 김성학을 제외한 나머지 단원들은 전원 조유리 앞에 모여들었다.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그녀에게 달려든 세 명의 단원이 채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으니까.

조유리를 둘러싼 사내들의 뇌리에 저마다 의문이 스쳤다.

전투에 돌입하기 전 조유리가 보인 모습이 어땠는가. 흔들리는 시선, 떨리는 목소리, 잔뜩 웅크린 자세에 이르기까지. 조유리의 모습은 경계해야 할 강자는커녕 적으로조차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나약해 보였다.

헌데 전투가 시작되자.

그 분위기가 180도 돌변했다.

몸의 떨림이 멎었다. 흔들리던 시선이 차분해졌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고 두 눈이 싸늘한 안광을 뿜었다.

마치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듯한 변화.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이들은 지면을 뒹굴고 있다.

­꿀꺽.

전장에 긴장감이 흐른다.

조유리를 둘러싼 사내들은 그 누구도 먼저 움직일 수 없었다. 허튼 각오로 덤볐다가 어떤 꼴을 보는지, 지면을 굴러다니는 자신들의 동료가 이미 증명했으므로.

어느새 그녀의 손에 잡혀있던 두 사내마저 의식을 잃은 채 축 늘어졌다.

남은 인원은 아홉.

그 한복판에 선 조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사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자세를 낮췄다.

‘너희들이 오지 않으면 내가 가겠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제스처에 사내들이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들었으나.

결사의 각오를 한 돌격은, 그 각오가 무색하게도 손쉽게 무위로 돌아갔다.

종횡무진 적들 사이를 누비는 조유리의 움직임은 결코 붙잡을 수 없는 바람과 같았다.

육체를 이용한 공격도, 초능력을 이용하는 공격도, 심지어 그녀를 노리고 빗발치는 초음속의 총알들조차.

사내들의 공격은 단 하나도 그녀에게 적중하지 못했다.

그녀의 움직임이 총알보다 빠른 건 아니었다. 그 이전에 움직임의 속도만 놓고 보면 그녀를 상대하는 사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상황 파악과 그에 따른 판단이 그들보다 한 박자 빨랐다.

조유리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흔들렸다. 동요에 의한 흔들림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전장을 살피며 자신에게 위험이 되는 요소를 파악하려는 움직임이었다.

‘11시 방향 총구. 발사까지 0.5초.’

‘2시 방향 나이프. 도달까지 2초.’

‘7시 방향 초능력. 손에서 전류 반응. 아마도 전격 계열.’

순식간에 전장을 파악한 그녀의 몸이 지면을 미끄러졌다.

다음 순간, 그녀를 노린 번개가 조금 전까지 그녀가 있던 허공을 훑고 지나갔다. 직후 이어지는 사격. 허나 마찬가지로 그녀의 그림자만 쫓을 뿐이었다.

뒤늦게 도달한 나이프. 조유리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나이프와 교차하듯 사내의 팔을 타고 올라간 그녀의 손날이 사내의 안구를 짓이겼다.

“끄아악!!”

시야를 잃고 비틀거리는 사내를 방패처럼 내세운다. 직후, 그의 몸 위로 동료들이 쏜 총알이 사정없이 박혔다.

빗발치는 총알. 흩날리는 핏방울.

뒤늦게 그들이 사격을 멈췄으나, 이미 자신의 동료는 총알 세례에 절명한 뒤였다.

‘적들의 당황에 의한 유예. 예상 시간 약 7초.’

조유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나 그 사고만은 어느 때와 같이,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차분했다.

그녀의 초능력은 대사조절.

호르몬을 포함한 체내의 모든 작용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은 조유리라는 인간을 가장 전투에 적합한 형태로 최적화했다.

고통이 방해되므로 통각을 차단했다. 두려움이 방해되므로 감정을 거세했다. 전신의 근육과 장기는 오직 싸우기 위한 부위만 활동했으며 단 한 톨의 에너지도 낭비하지 않았다. 심장은 평소의 여섯 배에 달하는 속도로 혈액을 펌프질했으며, 사고 속도와 반사 신경이 향상되고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크게 확장됐다.

세포에 산소를 전달하는 적혈구 하나, 대뇌를 거치는 전기신호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통제 하에 있었다.

조유리는 기계였다. 오직 전투를 위한 기능만으로 최적화된 효율 100%의 기계.

그녀가 다시 한 번 전장을 훑었다. 어느덧 남은 적은 여섯.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기계가 다시 한 번 최적의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한편 같은 시각. 전장의 또 다른 장소.

붉고 검은 두 가지 색의 안개가 온 사방에 즐비한 한복판, 안수호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망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살핀다. 사방에 퍼져있는 붉은 안개. 의지를 갖고 유유히 흐르던 안개가 이윽고 한 곳으로 모이더니 아름다운 여성의 형상을 이뤘다.

“아하하하하!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네 공격은 하나도 안 통한다니까?”

“안 통하긴 무슨. 위험할 것 같을 때마다 안개화로 도망치는 주제에.”

“잘 알고 있네! 그러니까 안 통한다는 거잖아! 꺄하하하핫!”

명백히 이쪽을 놀리는 언행에 이빨을 빠득 갈았다.

그 말대로 내 공격은 조금 전부터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적은 날 상대하며 교묘하게 간을 보고 있었다. 견제용 공격은 적절히 피하거나 방어하면서, 결정적인 일격만 안개화로 피하길 반복했다. 덕분에 이쪽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안개화 상태에선 저 자도 날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과, 안개화를 상시 유지할 수는 없어 보인다는 것.’

허나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이길 방법이 없다. 심지어 적은 재생 능력도 지니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지는 건 내 쪽이 되리라.

‘차라리 크게 한 방 갈길까?’

일순 여명단의 암살자를 죽였던 그 일격이 떠올랐으나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 필살기는 쓰는 순간 곧바로 전투불능에 빠지는 양날의 검이었다. 여인혁의 근골정렬 덕에 신체 내구도가 조금 올랐다고는 하나, 그래봤자 2, 3번이 한계겠지.

그런 공격을 통할지 안 통할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대에게 낭비할 순 없었다.

‘그 반지의 힘을 담아 공격하면 안개로 변해도 타격이 들어갑니다. 원리는 모릅니다. 아무튼 들어갔어요.’

전투 돌입 전, 류태현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빌어먹을 재능충 자식.’

류태현 딴에는 나름 조언이라고 한 것이겠지만, 범재조차 못 되는 둔재인 내가 고작 그 정도 조언으로 공격에 마력을 담는 기술을 깨우칠 수 있을 리가.

마력이라는 개념 자체는 알고 있다. 탈리스만을 사용할 때마다 감각적으로 마력을 느끼기도 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체내의 마력.

류태현이 말하는 ‘반지의 기운을 담아내라’는 말은 그 마력을 체외로 꺼내 겉에 두르라는 소리였다.

마력을 체외에 두르는 건 지극히 어려운 기술이다. 류태현은 아무런 이론도 없이 감각적으로 그 묘리를 깨우친 모양이지만, 전투에 관한 재능 따위 하나도 없는 내게 같은 짓을 바란다 한들 무리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상념에 젖어있던 사이 적이 날카로운 손톱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사방팔방 종횡무진 휘둘러지는 손톱. 일전에 상대했던 암살자나 특책과 대원보다 빨랐다. 이미 샛별의 숨소리를 한 번 발동한 상태건만 온몸에 자잘한 상처가 늘어갔다.

‘아직 두 번째를 사용할 수는 없다.’

전투가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이상 3회밖에 없는 스톡을 함부로 낭비할 순 없었다. 여차할 때 기습적으로 4배속을 걸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1개의 스톡은 남겨놔야 했다.

허나 그때까지 내가 버틸 수나 있을지.

­푸확!

적의 일격에 어깻죽지에서 피가 튀었다. 길에 늘어뜨린 손톱에 맺힌 핏방울을 핥으며 적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맛은 별로 없네? 약해빠져서 그런가?”

“맛없으면 먹지 말든가!”

단검을 총신 삼아 초능력을 발동했다. 허나 충분한 무게가 담기지 않은 연기덩어리를 적은 손쉽게 베어냈다.

­투확!

직후 기습적으로 대량의 연기를 압축해 뿜어냈으나, 위협을 감지한 적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안개로 변해 내 일격을 피해냈다.

검은 연막 사이로 붉은 안개가 스며들며 적의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졌다.

“이런 망할.”

이대로는 끝이 없다. 차라리 이판사판으로 필살기를 쓸까? 아니면 이 틈에 류태현에게 가세해 저 덩치 큰 적을 먼저 쓰러뜨릴까?

­스윽.

그때, 등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

한 박자 늦게 몸을 돌렸으나, 어느새 형체를 이룬 적이 이미 품안 깊숙이 들어온 뒤였다.

­푹!

기다란 손톱이 어깻죽지에 박혔다. 공격이 아니다. 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은 모양새. 그렇다면 진짜 공격은 무엇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적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내 목덜미에 박혔다.

“커.”

고통은 없었다. 일순 짜릿한 고통이 있었으나, 곧바로 찾아온 쾌감과 나른함이 그 고통을 순식간에 밀어냈다.

“흐응. 역시 맛없네. 저 류태현이라는 남자애는 꽤 좋은 맛이었는데.”

무릎이 힘없이 꺾이고 몸이 뒤로 넘어간다. 그 위에 포개어지듯 올라탄 적이 연신 목덜미에서 피를 빨아댔다. 매초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져가는 쾌감과, 반대급부로 전신을 잠식하는 나른함에 금방이라도 눈꺼풀이 닫혀 잠에 들 것 같았다.

‘잠들면 죽는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직감한 나는 오른손으로 단검을 꽉 쥐었다. 손잡이가 아닌 날 부분을.

“크으으윽!”

날카로운 아픔과 함께 손아귀가 피로 물들었다. 그 덕분에 정신이 잠시 돌아왔다.

그대로 날을 잡은 채 시뻘겋게 물든 단검을 치켜들었다. 허나 적은 피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가 공격하는 순간 안개화로 도망칠 심산이겠지.

그래선 안 된다. 놈을 잠시 쫓아낸다 한들 내가 그 사이 회복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할 수 있다면 이번 일격으로 놈을 끝장내야, 최소한 부상이라도 입혀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고통과 쾌감, 나른함 그 사이 어딘가에서, 찰나의 순간 수많은 단편적인 사고가 뇌리에 흘렀다.

단검으로 공격하자. 허나 안개화로 도망칠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안개화를 뚫어야 한다.

방법은 안다. 공격에 마력을 둘러라. 허나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필살기를 쓸까? 하지만 거리가 너무 가깝다. 이렇게 붙어있어서야 아무리 초능력을 조절한다한들 나 역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랬다간 기껏해야 동귀어진이다.

단검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시간을 지체해 나른함이 고통을 이겼다. 아득해져가는 시야에 붉게 물든 단검이 잡혔다.

붉게 물든 단검.

내 피로 물든 단검.

본래 내 체내에 있던 혈액. 마찬가지로 내 체내에 흐르는 마력.

마력이 흐르는 길은 알고 있다. 심장을 중심으로 전신의 혈관을 따라 흐른다. 그리고 혈관에는 혈액 또한 흐른다.

출혈이 일어나면 마력 역시 빠져나간다. 즉, 혈액은 마력을 띠고 있다. 알고 있다. 원작의 설정이다.

마력을 띤 피로 물든 단검.

고로, 마력으로 물든 단검.

‘………아.’

단락적인 사고 속에서 번뜩인 발상.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집중한다. 탈리스만을 약하게 발동한 채 집중한 정신으로 체내를 관조했다.

대기 중에 퍼져있던 마력이 오른손으로 흡수되었다. 오른팔을 타고 올라 심장에 다다른 마력이 다시 혈관을 따라 오른팔로 내려갔다. 이윽고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함께 단검에 아주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대기 중에 흩어졌다.

마력을 느낀다. 심장의 마력을, 오른팔의 마력을, 오른손의 마력을, 그 안에 흐르는 피의 마력을, 상처 바깥으로 흘러나간 피의 마력을.

체내의 마력에 비해 바깥에 노출된 혈액의 마력은 한없이 약했다. 흘러나간 피는 죽은 것이기에 마력을 품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대기 중에 노출되었기 때문일까.

이유는 모른다. 원작엔 그런 세세한 설정이 언급되지 않았다. 허나 흘러나간 피는 확실하게, 미약하게나마 마력을 띠고 있었다.

다만 너무나도 미약했다. 순식간에 증발하기에 미약하기 그지없다.

당연한 일이다. 마력을 체외에 두르는 건 지극히 어려운 기술. 고작해야 무기에 피를 두르는 것으로 그 기술을 재현할 수 있다면 어려운 기술로 취급받지 않았겠지.

“하.”

허나 다행히도. 참으로 공교롭게도.

싸움에 관해선 그 어떤 재능도 갖추지 못한 내게 유일하게 넘치는 것이, 바로 그 마력이었다.

­슈오오오오오!!!

탈리스만을 발동했다. 힘조절 따위 하지 않고 최대강도로. 순식간에 한계치 이상으로 차오른 마력이 심장을 거쳐 오른손의 상처로 빠져나가, 이윽고 단검에 맺힌 혈액에 이르렀다.

날을 더욱 세게 쥔다. 보다 많은 피가 흐른다. 노출된 마력은 순식간에 증발한다. 허나 그 양이 워낙 많은 탓이었을까, 전보다 많은 마력이 단검에 머물러 있었다.

적은 방심하고 있다. 내 단검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위협으로 여기진 않았다. 공격당하는 순간 안개화로 도망치면 그만이라 생각할 테니까.

그렇다면 그 방심을 이용할 뿐이다.

이윽고 내가 단검을 내려찍자, 적이 씨익 웃으며 보란 듯이 몸을 안개로 바꿨다.

무형의 안개에 단검이 꽂히고, 흐르는 강물을 가르듯 날을 따라 안개가 갈렸다.

다음 순간.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온 사방에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 사방에 퍼진 안개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기괴하게 꿈틀거리던 안개가 얼기설기 모여들더니, 이내 피를 철철 흘리는 여성의 형상을 이뤘다.

“이런 씨바아아알! 왜 공격이 통한 거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설마, 설마 너도 저 남자처럼­!”

격통에 사무쳐 외치던 적이 일순 정지했다.

“……어?”

전신을 잠식하는 나른함을 이겨내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허나 적은 그런 나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경악에 물든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허공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적은 분명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좌우로 움직이는 동공은내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뭐야 이게? 진짜? 아니, 에?”

적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 시선에는 적의고 뭐고 없었다. 그저 혼란과, 당황만이 가득했다.

“……아. 아니, 무슨 소리야 이게. 어? 말이 안 되잖아. 거짓말이지? 하지만 기억이, 기억이 거짓말이라는 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적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내 그 모든 의문을 담아 적이 날 바라봤다.

"야."

날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마치 알아선 안 될 끔찍한 진실을 목도한 것 같은 눈으로.

“…………이 세상이 소설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냐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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