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032. 서큐버스 사건(6)
* * *
점심시간. 그린하우스 학생식당.
류태현은 왼팔에 화상용 거즈를 덕지덕지 붙인 채 볶음밥을 깨작이고 있었다. 붉은 머리의 여학생과 함께.
류태현이 고개를 들어 눈앞의 여학생, 한겨울을 바라봤다.
허리까리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붉은 머리칼에 마찬가지로 분홍빛이 감도는 붉은 눈동자. 뒷머리의 절반을 흰색 리본으로 묶은 헤어스타일은 발랄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뽐냈다.
꼿꼿하게 바로선 채로 식사에 임하는 그 모습에선 우아한 분위기와 함께 소위 말하는 ‘배운 티’가 물씬 풍겨왔다. 수려한 외모와 더불어 그 특유의 분위기 덕에 뭇 남성들의 시선이 한 번씩은 그녀에게 향했으나, 그녀는 그러한 시선이 익숙하다는 듯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식사를 이어나가는 그녀를 보며 류태현이 넌지시 물었다.
“식사는 입에 좀 맞으시나?”
“……아뇨. 형편없네요.”
식기를 내려둔 한겨울이 류태현과 시선을 맞췄다.
“필라프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전혀 본고장의 맛을 살리지 못하고 있어요. 밥알은 질고 향신료도 재료에 녹아들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네요. 그나마도 싸구려라 없느니만 못하고. 게다가 닭고기의 풍미도 제대로 못 살렸네요. 삶을 때 월계수 잎이라도 조금 넣었다면 괜찮았을 텐데.”
“6,000원짜리 학생식당 메뉴가 다 그렇지 뭘.”
한겨울의 신랄한 비판에 류태현이 혀를 내둘렀다.
허나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눈앞의 여학생은 그 한성그룹의 차녀. 평소 그녀가 접하는 일류 쉐프에 요리에 비하면 눈앞의 필라프는 요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리라.
“뭐, 당신 지갑사정에 맞춘 결과니 어쩔 수 없죠. 게다가 학생식당은 한 번쯤 와보고 싶긴 했어요. 아무래도 다신 안 올 것 같지만.”
“거, 얻어먹는 주제에 불만이 좀 많다?”
“말은 똑바로 해야죠. 이 식사 자리는 당신이 제게 끼친 피해에 대한 벌충 아닌가요? 불만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치면 이쪽도 그쪽 때문에 입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류태현이 화상용 거즈로 뒤덮인 자신의 팔을 들어보였다. 흘끔 시선을 향한 한겨울이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코웃음 쳤다.
“대련 중에 다치는 거야 흔한 일인데 그걸 가지고 생색을 내시다니. 그렇게 안 봤는데 속이 조금 좁으시네요?”
“랭킹전도 아닌데 대충 손대중 좀 해줄 수 있잖아.”
“제가 화력조절은 조금 서툰 편이라서.”
“1학년 수석이 퍽이나 서툴겠다. 내가 강의에 늦어서 대련 순서 밀려난 것 때문에 일부러 이런 거 모를 줄 알아?”
“어머? 그래도 눈치는 좀 있으시네요?”
그 뻔뻔한 태도에 류태현이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노려봤다.
이태호 덕에 유치장에서 풀려난 그는 곧바로 대인격투술 강의 현장으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아슬아슬하게 강의가 끝나기 전에 도착하긴 했으나, 그의 대련 상대였던 한겨울은 그동안 하염없이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류태현이 도착하고 두 사람의 대련이 치러진 것은 강의 시간이 끝나기 직전.
본래 첫 수업에서의 대련은 실전 감각을 느끼기 위한 연습 개념이었으나, 한겨울은 자신의 기다림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듯 반쯤 진심으로 류태현에게 덤벼들었다. 그 결과가 바로 화상용 거즈로 뒤덮인 그의 왼팔이었다.
한겨울의 초능력은 발화능력. 그녀가 대련에서 쏘아낸 불꽃은 B급 초인인 그조차 화상을 입을 정도의 고화력이었다. 그에게 있어선 2 ,3일이면 나을 경미한 부상이었으나, 다른 학생이었다면 영구적인 화상자국이 남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한겨울이 생각도 없이 화력을 올린 건 아니었다. 교수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류태현이라면 자신의 불꽃을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니까.
허나 그와는 별개로, 그가 수업에 늦은 것에 앙심을 품고 화력을 올린 것도 사실이긴 했다.
한겨울은 눈앞의 남자가, 류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수업에 늦은 사람이 잘못이죠. 참나, 명색이 그린하우스 재학생이라는 사람이 늦잠 때문에 수업에 지각했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당신에겐 그린하우스 학생으로서의, 초인 사회를 선도하는 엘리트로서의 자각이 없는 건가요?”
“엘리트 의식은 딱히 모르겠고, 국립 아카데미라 등록금이 싼 거 하나는 좋다는 생각은 해.”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래, 바로 저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릇 초인으로서 가져야 할, 나아가 그린하우스 재학생으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 눈앞의 남자에겐 결여되어 있었다.
그린하우스는 국내 최고의, 나아가선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초인아카데미.
그곳의 재학생이라는 건 즉 앞으로 초인 사회를 이끌어나갈 재목이라는 뜻이건만, 이 남자는 어찌 이리도 가볍고 방자한가.
어릴 적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아왔고, 그에 걸맞은 엘리트 의식을 지닌 한겨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여튼. 다음부턴 절대로 지각하지 않도록 하세요. 첫날 당신과 제가 같은 실습조에 편성된 건 기억하시죠?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당연히 알 거라 믿을게요.”
“……같은 조니까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자?”
“당신이 오늘처럼 멋대로 수업에 빠지면 제가 계속 피해를 본다는 이야기에요!”
한겨울이 포크로 류태현을 겨누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시선을 받아내던 류태현이 슬며시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멋쩍게 웃었다.
“그, 미안하게 됐다. 아무래도 다음 강의도 빠져야 할 거 같은데.”
“……예?”
“그래도 이론 수업이니 첫 수업부터 조별과제 같은 건 없겠지.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먼저 일어날게?”
당황한 표정의 한겨울을 뒤로하고 류태현이 식기를 정리해 일어섰다.
“자, 잠깐만요! 이번엔 이유가 또 뭔데요?”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그 이런저런 일이 뭐냐는.”
납득하지 못한 한겨울을 내버려둔 채 류태현이 테이블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한겨울은 멍하니 멀어져가는 류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입술을 잘근 씹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교수님께 조를 바꿔달라 부탁드려야 할 것 같네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라고.
***
류태현이 탈리스만을 가지고 있다.
이태호의 취조 결과로부터 들은 그 사실에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야, 그가 가졌어야 할 탈리스만은 내가 가로챘으니까.
원작의 전개대로라면 지예원이 그에게 여명단으로부터 훔친 탈리스만을 넘겼어야 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선 그 역할을 내가 빼앗아갔다. 그렇다면 류태현에게는 탈리스만이 없어야 했다. 그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류태현은 탈리스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에 담긴 능력이 원작 그대로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탈리스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태호가 말해준 취조 내용에는 탈리스만에 담긴 능력에 관해서는 담겨 있지 않았으니까.
다만, 한 가지 알아낸 건 그에게 탈리스만을 넘긴 자의 이름이 김민아라는 것.
김민아.
공교로운 우연이 아니라면 그 김민아는 아마 지예원의 친구요, 그녀와 함께 조직을 배신한 김민아가 맞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황이 얼추 들어맞는 것 같기도 했으나, 여전히 자세한 정황은 오리무중이었다.
수많은 의문이 빠르게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본래 탈리스만이 두 개가 있었고 김민아와 지예원이 하나씩 가졌던 것인가. 그럼 왜 지예원은 탈리스만이 두 개라는 걸 알지 못했던 건가. 김민아가 지예원에게 사실을 숨긴 것인가. 아니면 지예원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에게 밝히지 않은 것인가.
고민해봤지만 당장 결론이 나올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지금 당장 결론을 내야만 하는 문제도 아니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류태현의 협력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하여 경비대 회의실에서류태현을 기다리며, 나는 작금의 상황과 내 계획을 다시 한 번 되짚어봤다.
우선 기본 전제. 이번 서큐버스 사건의 범인과 류태현을 습격한 자는 동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범인은 여명단 단원. 범인은 지예원과 탈리스만의 행방을 쫓고 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류태현에게 그 탈리스만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 그를 습격했다.
'진술을 들어보면 류태현은 이번 일에 그냥 휘말린 거에 지나지 않아. 탈리스만에 대한 내막도 전혀 모르는 것 같고. 김민아나 지예원과 커넥션이 있다고 보기엔 무리겠지. 하지만.'
하지만 범인은 과연 그 사실을 알까. 그것이 관건이었다.
아마 범인은 류태현이 김민아나 지예원과 긴밀한 관계게 있는 협력자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들이 훔친 탈리스만을 그가 가지고 있었으니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배신자들의 협력자를 발견한 범인은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마침내 찾아낸 탈리스만의 행방에 기뻐하는 한편, 류태현에 대한 습격이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인해 그가 어떻게 나올지 예의주시하고 있을 테지.
핵심은 그 부분이었다. 범인이 류태현의, 그리고 그 뒤에 있을 지예원이나 다른 협력자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그 경계심을 역으로 이용하면 된다.’
이미 경계하는 자의 경계심을 푸는 건 지극히 어렵다. 허나 그 경계심을 자극해 과민반응을 유도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울 터.
‘류태현에게서 탈리스만을 발견한 이상 범인은 류태현을 주시하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류태현을 통해 범인을 이끌어내는 것도 가능할 거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랬다.
우선 공개된 장소에서 경비대와 류태현이 접촉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날 밤 곧바로 지예원을 통해 알아낸 여명단 아지트 중 한 곳을 급습한다.
류태현과 아지트 습격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허나 사정을 모르는 범인이 보기에는 류태현이 경비대에 보호를 요청하며 자신들의 정보를 팔아넘긴 것으로 보이겠지.
여명단 아지트를 습격할 병력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다. 경비대 병력만 해도 어지간한 헌터길드 이상이고, 민채령의 연줄을 동원하면 경찰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어렵진 않을 테니까.
낮에는 류태현과 경비대가 계속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밤에는 지예원의 정보를 토대로 놈들의 아지트를 하나씩 급습해나간다. 그 상황에서 범인은, 그리고 여명단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예원 수색이고 자시고 일단 몸을 내빼야한다고 판단하겠지. 제아무리 여명단이 국내 최악의 범죄조직이라 한들 결국 일개 사조직. 공권력과 정면으로 붙는 상황은 껄끄러울 테니까.’
허나 탈리스만은 놈들의 핵심 계획인 ‘여명 프로젝트’의 열쇠가 되는 요소. 놈들 입장에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탈환하고 싶을 것이다.
만약 그 시점에 류태현이 무방비하게 놈들에게 노출된다면?
‘여명단은 그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다. 놈들은 이미 지예원을 한 번 놓쳤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진 않을 테지.’
함정이란 걸 알아도 놈들은 걸려들 수밖에 없다. 설령 걸려들지 않더라도 아지트 급습을 통해 지예원에 대한 주목도를 낮출 수 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럴듯한 계획. 그 민채령이 일단 채용하기라도 했으니 성공할 여지는 있었다.
단, 그녀의 지적대로 이 계획의 핵심은 류태현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건 그를 미끼로 사용하는 걸 전제로 한 계획이었으니까.
허나 이는 걱정할 것 없었다. 나는 그를 납득시킬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끼이익.
“실례합니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류태현을 보며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반갑습니다. 류태현 학생.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소속 안수호라고 합니다.”
“그린하우스 1학년 류태현이라고 합니다.”
내가 권한 악수에 그가 응했다. 내 오른손을 꽈악 쥐는 다부진 손을 느끼며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드디어 만났다.’
이 세상에 빙의하고 1개월. 드디어 이 세상의 주인공과 만났다.
그 사실에서 오는 묘한 고양감과 두근거림에 내가 씨익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류태현 역시 살며시 웃었다.
“왼팔에 상처가 있군요. 다치셨습니까?”
“가벼운 화상입니다. 대인격투술 강의에서 모의전이 있었거든요. 한 사흘이면 나을 겁니다.”
모의전에서 입은 화상.
그 말에 듣자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안도감에서 우러나온 미소였다.
“상대는 한겨울 학생입니까?”
내 질문에 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와, 그건 또 어떻게 아셨대? 저 대련하는 거 보기라도 하셨습니까?”
“한겨울 학생이야 워낙 유명하지 않습니까. 1학년 수석입학생인데.”
“하긴, 그건 그렇죠.”
그와 한겨울의 첫 만남인 대련이 불발되어서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대련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역시 주인공이라 그런가, 어떻게든 히로인과 엮이긴 하는구나.
“오늘 류태현 학생을 호출한 건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협력을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류태현에게 이번 사건의 전말과 내 계획에 대해 말해주었다. 물론 지예원에 관한 이야긴 제외하고.
“오….”
이야기를 다 들은 류태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충 들어보니까 저 완전 좆된 거 같은데 맞습니까?”
“예. 대충 좆되기 직전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제가 좆되기 전에 적들을 먼저 조진다는 뜻이군요. 절 미끼로 써서.”
“그렇습니다.”
“허어…….”
류태현이 머리를 싸맨 채 테이블에 엎드렸다. 아무리 그라도 대뜸 여명단과 엮이게 된 건 역시 충격이었던 걸까.
“그러게 수상한 사람이 주는 물건을 넙죽 받지 말았어야죠.”
“……사람이 상처투성이로 도와달래는데 외면할 순 없잖습니까. 아, 그래도 설마 상대가 여명단이라니. 재수도 참 지지리도 없지.”
“후회됩니까?”
“설마요. 자기 의지로 결정한 일엔 후회하지 말자는 주의라서.”
곧바로 대답한 류태현이 상쾌하게 웃어보였다. 볼멘소리를 하긴 했어도 결국 류태현은 천성부터가 주인공이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곤란한 사람은 도와줘야 직성이 풀리는, 류태현이란 그런 남자였다.
“자기가 결정한 일에는 후회하지 않는다라,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개인적으로 본받고 싶군요.”
“아하하하. 뻔히 보이는 사탕발림은 그만두십쇼. 그러지 않으셔도 계획에는 협력할 테니.”
류태현은 내 제안을 시원하게 수락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괜찮으시겠습니까? 여명단에게 노려지는 겁니다.”
“제 몸 하나 정돈 지킬 수 있으니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놈들을 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귀찮게 굴 거 아닙니까. 이제 막 시작한 캠퍼스 라이프를 방해받고 싶지는 않아서요.”
“…감사합니다.”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나는 씨익 웃었다. 그는 별 고민 없이 이쪽의 계획에 협력해주었다. 예상대로였다.
민채령은 내 계획에 있어서 류태현의 협력을 구하는 게 난관일 거라 예상했지만 천만의 말씀.
애초에 계획을 구상한 시점에서 나는 당연히 류태현의 협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류태현은 원래 이런 캐릭터니까.’
오지랖이 넓고, 안전보다는 모험을 좋아하며, 스스로 필요하다 생각한 일에는 망설임이 없고, 보호받기 보다는 차라리 직접 나서서 싸우기를 원하며, 결정적으로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류태현은 천성부터가 주인공이었다. 다소 경박한 부분이 있긴 해도 근본은 착한 영웅형 주인공. 그것이 류태현이란 캐릭터였다.
‘원작에선 중반부부터 피에 목마른 복수귀로 변하지만.’
이런 그조차 성격을 버릴 정도로 원작의 전개는 막장 그 자체였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전개다.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강의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렇게 호출한 점 사과드리죠. 워낙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다보니까 부득이했습니다.”
“공결처리만 해주시면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이론강의에 첫 수업이니 대충 OT나 하다가 끝났겠죠.”
공결처리라. 그러고 보니 원작 초반의 류태현은 성적이나 장학금에 혈안인 캐릭터였지. 그립다, 그리워.
“당분간은 경비대 숙소에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강의를 제외하곤 되도록 외출은 삼가주시고요. 가족분들에겐 저희가 따로 경호 인력을 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 작전은 언제부터 시작한답니까?”
류태현의 질문에 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시작됐습니다.”
그날 밤. 그간 그늘에 숨어있던 여명단 아지트 한 곳이 경찰에 의해 급습당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