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32화 (33/266)

〈 32화 〉 031. 서큐버스 사건(5)

* * *

유현호. 김성학. 박지현.

지부장의 명령에 의해 지예원의 행방을 쫓고 있던 세 명의 여명단 간부. 그들이 2주 만에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박지현의 호출에 응해서.

“박지현. 다시 한 번 묻지. 배신자의 흔적을 찾아낸 게 확실한가?”

“확실해. 내 능력으로 알아낸 거니까.”

유현호의 신중한 질문에 박지현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가진 초능력의 이름은 흡혈귀화.

던전에서 출몰하는 A급 괴수인 뱀파이어로 변신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가진 초능력의 정체였다.

변신을 통해 그녀는 다양한 능력을 지닌다. 기본적인 신체능력 향상, 신체 변형, 재생력 증가, 전신의 안개화, 그리고 흡혈귀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흡혈 능력까지.

그중 흡혈 능력이야말로 그녀의 능력의 핵심이었다. 흡혈 과정에서 대상에게 극도의 오르가즘과 만족감을 선사하는 그녀의 흡혈 행위는 손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였다. 허나 그 능력의 진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흡혈 행위에는 피를 빠는 것을 통해 대상의 신체능력을 약화시키거나 정신을 매료시키는 등 다양한 부가 효과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다양한 효과 중에는 빼앗은 피의 양에 비례해대상의 기억을 엿볼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나는 상대의 피를 빨 때 그 사람이 그 순간 전후로 떠올린 기억을 엿볼 수 있어. 즉 질문한 직후 피를 빨면 그 질문에 대한 상대의 기억을 엿볼 수 있다는 거지.”

그녀의 흡혈 앞에서 거짓은 있을 수 없었다. 제아무리 피를 빨리는 자가 그녀를 속이고자 해도 그녀는 기억 그 자체를 엿보는 거니까.

“그 류태현이라는 놈 저항이 꽤 거셌다며? 그런데 용케 이빨을 박았군.”

“서로 드잡이질하다 딱 달라붙었을 때 이때다 싶어 빨았지. 곧바로 반격당해서 얼마 빨지도 못했지만.”

어지간한 초인은 그녀의 이빨이 박힌 순간 저항할 의사를 잃는다. 헌데 류태현은 허투루 주인공 자리를 꿰찬 게 아님을 증명하듯, 강철과도 같은 의지력으로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허나 그 짧은 순간의 흡혈만으로 박지현은 자신에게 필요한 기억을 엿볼 수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똑똑히 봤어. 그 남자가 가지고 있던 탈리스만은 김민아가 조직에 잡히기 전에 직접 넘긴 거야. 기억 속에서 탈리스만은 두 개였으니까, 아마 하나를 그 남자에게 넘기고 남은 하나를 자기 능력으로 폐건물 옥상에 숨긴 거겠지.”

“즉 두 개의 탈리스만 중 하나는 그 류태현이라는 남자가. 나머지 하나는 지예원을 도왔다던 의문의 협력자들이 챙겼다는 거로군.”

“이봐, 영감. 그 협력자 놈팽이들 관해서는 영감이 조사한다 그러지 않았어? 그쪽은 뭐 수확 없나?”

“마침 말하려던 참이었다.”

김성학의 물음에 유현호가 품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이 꼬맹이는 누구야?”

“채소연.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대원이다.”

“뭐? 특책과? 기껏해야 중삐리로밖에 안 보이는 이 꼬맹이가 특책과 대원이라고?”

“특징적인 외관이지. 덕분에 추격자가 보고한 인상착의로 금방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었다.”

지예원을 쫓았던 저격수가 보고한 두 협력자의 인상착의. 안수호의 경우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 신원을 특정하기가 어려웠지만, 채소연의 경우 ‘신장 140 중반의 금발 여성’이라는 요소가 너무 특징적이라 금방 특정할 수 있었다.

“탈리스만을 챙긴 놈들이 한 놈은 아카데미 신입생, 다른 한 놈은 아카데미 경비대라.”

김성학이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뻔할 뻔자군. 배신자년들이 그린하우스랑 붙어먹은 거야.”

“그건 아닐걸? 그 채소연인지 뭔지 하는 애는 몰라도, 적어도 류태현은 김민아와 우연히 마주친 거였어.”

“그 만남이 계기로 놈들과 아카데미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겼을 수도 있지! 그리고 그게 다 뭔 상관이야? 결국 탈리스만 두 개가 다 아카데미에 있다는 건 사실이잖아? 당장 쳐들어가자고!”

“너무 서두르지 마라. 아직 지예원의 행방도, 남은 한 개의 탈리스만의 소재도 모르지 않느냐. 행동하는 시기는 최소한 박지현이 채소연을 통해 그 둘의 행방을 알아낸 뒤다.”

“아,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박지현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스쳤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유현호가 그녀를 바라보자 박지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요 며칠 그린하우스 안에 잠복한 동안 경비 동선 파악하려고 경비대를 계속 주시했거든? 근데 그 채소연이라는 대원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추격자가 보고한 인상착의는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지나가다가도 봤으면 분명 알아봤을 텐데.”

“그런가. 우연히 못 봤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대원이 지금 아카데미 안에 없을 가능성도 고려해야겠군.”

가령 어딘가에 있을 은신처에 지예원과 함께 숨어있다던가.

충분히 있을법한 일이었다. 만약 지예원과 아카데미가 협력 관계라면 경비대 대원 한 명쯤 전담으로 빼주는 거야 일도 아닐 테니.

‘이럴 경우를 우려해서 지예원의 정체를 아카데미에 제보한 건데 다 헛수고였나.’

실제로 지예원에게 협력한 건 민채령을 포함해 세 명밖에 없고 경비대는 그가 보낸 투서를 철썩같이 믿고 지예원의 행방을 쫓는 중이지만, 그러한 사정을 외부인인 유현호가 알 턱이 없었다.

“그렇다잖아 영감. 어떻게 할 거야?”

“……상부에선 배신자의 처단보다 탈리스만의 회수를 우선하라 했지.”

그가 현재 상황을 되짚었다. 배신자의 행방은 모른다. 탈리스만의 소재도 겨우 하나만 알아낸 상황.

허나 지체했다간 그나마 찾은 탈리스만마저 놓칠지 모를 노릇이었다. 설령 류태현이 본래 아무런 사정도 모르고 있었다 해도, 어제의 전투로 인해 자신들의 존재를 경계하기 시작할 테니.

그렇다면 류태현이 행동을 취하기 전에 그가 가진 탈리스만을 회수해야만 했다.

“기왕이면 한 번에 처리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군. 우선 그 류태현이라는 남자가 가진 탈리스만부터 회수하도록 하지.”

“이봐, 영감. 그 말은 즉­.”

“날뛸 생각은 마라. 쓸데없는 경계를 사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하게 해결해야 하니까.”

“크흐흐흐. 싸울 수만 있으면 됐어. 거, 계속 가만히만 있으니 몸이 근질근질거리던 참이었거든!”

김성학의 흉악한 웃음에 유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박지현이 이기지 못한 상대니 이 무뢰한이 나서는 건 어쩔 수 없으나, 행여 그가 쓸데없는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영감. 언제 싸우러 갈 거지?”

김성학의 질문에 가늘게 뜨여진 유현호의 눈이 형형한 안광을 빛냈다.

“기왕 결정한 거 시간을 끌어봤자 뭐하겠나. 오늘 밤 곧바로 처리하세나.”

***

유치장 철창을 사이에 두고 류태현은 이태호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박지현과의 전투에 대해서, 그 이전에 있었던 김민아와의 만남에 대해서, 그리고 탈리스만에 대해서도.

사정을 털어놓는 데에 거부감은 없었다. 김민아로부터 딱히 비밀 엄수를 부탁받지도 않았고, 애초에 그가 휘말린 이번 사태는 그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경찰이든 경비대든 전문적인 조직의 도움이 필요했다.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진술 감사합니다, 류태현 학생.”

류태현의 이야기를 다 들은 이태호가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덤덤한 무표정이었으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단순 서큐버스에 의한 습격인 줄 알았던 사건의 뒤에 여명단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김민아라는 여성은 또 누구고 탈리스만은 또 뭐란 말인가.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사건이 걸린 것 같다. 골머리를 썩히던 그가 이내 민채령에게 전화했다. 전화해서 그녀에게 그가 들은 모든 사실을 전달했다.

“……알겠어. 류태현이 풀려나면 곧바로 내게 데리고 와. 나도 물어볼 게 많을 것 같으니까.”

전화를 마친 민채령이 미간을 짚은 채 고개를 숙였다. 이태호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니, 복잡하기로는 이태호보다 그녀가 훨씬 더했다.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그녀가 작금의 상황을 천천히 되짚었다.

하나. 류태현의 진술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범인은 서큐버스가 아닌 비슷한 초능력을 지닌 인간이다.

둘. 범인은 류태현이 가지고 있는 탈리스만을 노리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셋. 그 탈리스만은 지예원의 동료인 김민아가 그에게 맡긴 것이며, 탈리스만에 담긴 능력은 안수호가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

넷. 김민아가 여명단으로부터 훔친 탈리스만은 애초에 2개라는 게 된다. 하나는 우연히 마주친 류태현에게 맡겼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폐건물 옥상에 숨겨두었다가 안수호에 의해 회수되었다.

다섯. 허나 안수호는 물론이고 지예원조차 탈리스만이 2개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여섯. 류태현은 김민아, 그리고 여명단과 어떠한 접점도 없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주장했다. 그가 김민아와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일곱. 그렇다는 건 즉 범인과 류태현이 마주친 것도 우연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만약 탈리스만의 소재를 여명단이 알고 있었다면, 2주나 지난 지금이 아닌 더 이전에 류태현에게 접근했을 테니까.

여덟. 참고로 그 탈리스만은 이미 류태현에게 정착한 상태라고 한다. 탈리스만의 정착 확률은 만분의 일 수준이지만, 이 또한 우연하게도 그 탈리스만이 류태현의 몸에 적합했나보지.

‘우연. 우연. 또 우연인가.’

또 공교롭게도, 우연인가. 그런 생각에 그녀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며칠 전 안수호와 나눴던 대화가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수많은 우연이 겹친 끝에 여명단의 핵심 프로젝트와 관련된 탈리스만을 손에 넣은, 심지어 정착까지 성공시킨 안수호.

그런 그에게 민채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만한 우연히 겹친 것은 즉 우연이 아니라 필연 아니냐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류태현 역시 수많은 우연이 겹친 끝에 여명단의 탈리스만을 손에 넣었다. 심지어 그 능력은 안수호의 것과 동일했으며, 그 역시 기적 같은 확률을 뚫고 탈리스만을 정착시켰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필연인가. 그럼 그 두 사람이 공교롭게도 자신과 엮인 이 상황 또한 필연이란 말인가.

개연성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민채령이 실소를 흘렸다.

그녀는 무신론자였지만 이쯤 되면 슬슬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극도로 싫어하는 신이 그녀를 괴롭히려고 그녀 주위에 온갖 우연을 남발하며 장난치는 것이라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참 더럽게도 꼬였네.’

대뜸 여섯 번째 피해자라는 류태현이 탈리스만이니 김민아니 새로운 정보를 던져댔으니 수사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척 봐도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녀로선 달갑지 않은 변화였다. 사건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녀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점차 늘어날 테니까.

이에 민채령은 깔끔하게 타협했다. 사건의 모든 요소를 조율하는 건 포기. 최소한의 목표를 정하고 오직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동방침을 수립하기로 했다.

‘일단 첫 번째. 범인을 최대한 빠르게 잡는다. 기왕이면 다른 경비대 사람들 몰래.’

안전가옥 지하에 구금된 저격수처럼 몰래 빼돌리는 건 불가능할 터. 허나 경비대나 경찰에 넘기기 전에 개인적으로 심문 정도는 하고 싶었다. ‘여명 프로젝트’에 관련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야 했으니까.

‘두 번째. 어떻게든 지예원에 대한 주목도를 줄인다.’

어차피 커진 규모, 아예 경비대가 지예원 개인이 아닌 여명단 전체에 주목하게 만들어 상대적으로 지예원에 대한 주목도를 옅게 만든다. 물론 범인이 진술 과정에서 지예원에 대해 진술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따로 대책을 준비해야겠지.

‘그리고 세 번째. 이건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지만, 기왕이면 류태현을 내 밑에 둘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번 신입생 중 가장 상위 분반 소속. 20살의 나이로 B급 초인의 자리에 오른 원석. 심지어 안수호와 같은 탈리스만까지.

그 능력이 탐나는 것도 탐나는 것이었으나, 이와는 별개로 그녀는 류태현을 자신이 관리할 수 있었으면 했다. 적어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 입단속은 필수였다. 그가 여명단에 관한 정보를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간 반드시 어디선가 날파리들이 꼬일 테니까.

대강의 행동방침을 정한 민채령은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잔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채 그녀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똑똑.

그때 들려온 노크 소리.

“팀장님. 안수호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렴.”

팀장실로 들어오는 안수호를 보며 그녀가 미소 지었다. 타이밍 한 번 참 기가 막힌다고.

“부르려던 참인데 마침 잘 됐네. 류태현에 대해선 태호한테 들었지? 그 건에 관련해서 앞으로의 계획을 좀 짜려고 하는데…….”

“안 그래도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예. 저 나름대로 생각한 계획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무언가 단단히 준비해온 듯한 태도에 민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에게서 여명단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고 싶은 점이나 지예원에 대한 주목도를 줄이고 싶은 건 안수호 역시 마찬가지일 터.

자신과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면 그가 수립한 계획도 나름 채용할 여지는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하나의 의견으로서 들어볼 가치는 있겠지.

어디까지나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심산이었다.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흐음.”

허나 안수호의 설명이 끝났을 때, 민채령은 그 전과 달리 진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름 괜찮은 생각이네. 그런데 네 계획이 성립하려면 류태현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협력해야 하잖아. 과연 그가 순순히 네 계획을 따라줄까?”

“예.”

자신만만한 즉답. 그 태도에 민채령은 넌지시 직감했다. 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구나. 그래서 저렇게 확신에 찬 거구나, 하고.

그 속내를 추궁하고 싶었으나 관두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기도 했고, 어차피 안수호가 자신의 밑에 있는 한 언젠가는 알게 될 내용이었으니까.

속을 내비치지 않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민채령이 달뜬 어조로 말했다.

“좋아. 채용할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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