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9화 (29/266)

〈 29화 〉 028. 서큐버스 사건(3)

* * *

서큐버스에게 습격당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빈혈, 저혈당, 저혈압, 무기력증 등 다양한 증세가 있지만, 그중 가장 돋보이는 건 단연 ‘현자타임’이다.

“이영한 씨?”

“…….”

“이영한 씨?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헤.”

민채령에게 사건에 대해서 듣고 우리 세 사람은 곧바로 의무실로 향했다.

그리하여 지금. 의무실 침대에 반쯤 기댄 채 멍하니 허공을 쫓고 있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 이영한을 보며 이태호가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이영한은 의식을 차린 상태였다. 허나 의식만 차렸을 뿐, 그 얼굴에는 이성의 편린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이성을 이루는 물질이 있다면, 그 물질이 모조리 빨려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이영한 씨.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소속 이태호 대원이라고 합니다. 잠시 말씀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경, 비대……?”

몇 번에 걸친 대화 시도 끝에 겨우 이영한이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매가리가 없는 게 이쪽 말을 이해는 하는 건가 싶었으나, 이태호는 꿋꿋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금일 새벽에 있었던 습격 사건 때문에 왔습니다. 이영한 씨, 혹시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진술해주실 수 있­.”

“……아.”

여전한 반응에 결국 이태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가 넌지시 저만치 떨어져 있던 조유리를 바라봤다.

“유리야. 네 능력이 필요할 것 같다.”

“……꼭 필요해?”

“그래. 이대로는 진술이고 뭐고 전혀 안 되니까.”

“…………꼭?”

“조유리.”

이태호의 단호한 부름에 조유리가 쭈뼛거리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침대로 다가왔다.

“시, 시시시시, 실례, 실례하겠습, 습니닷?”

조유리가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던 이영한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녀의 입에서 히익! 하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치 처음 주사를 맞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돌린 채 부들부들 떠는 조유리를 보며 내가 물었다.

“조유리 선배님의 능력은 뭡니까?”

“……저, 저나 다, 다른 사람의 홋! 호르……!”

“……본인이나 접촉한 사람의 신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금은 그 능력을 사용해 이영한 환자의 의식을 각성시키려는 거고.”

“아하.”

조유리 대신 설명한 이태호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문과 출신이라 호르몬이니 뭐니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대충 도파민이니 아드레날린이니 하는 것들의 양을 조절하는 능력이리라.

“흐, 흐윽.”

이영한의 손을 붙잡은 조유리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저 정도면 남성이 껄끄러운 걸 넘어 남성공포증 수준이었다.

“끄, 끝났어.”

이내 이영한에게서 손을 뗀 조유리가 쏜살같이 몸을 내뺐다.

“으, 으응?”

동시에 그간 멍한 표정이었던 이영한의 얼굴에 차츰 이성의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영한 씨?”

“어라, 당신은…….”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소속 이태호 대원이라고 합니다. 금일 새벽에 있었던 습격 사건에 대한 진술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아, 예에…….”

이영한은 마치 방금 잠에서 깬 듯한 태도였다. 허나 좀 전과 달리 이쪽의 말에 제대로 반응하고 대답하는 걸 보면 조유리의 능력이 제대로 작용한 것 같았다.

“우선 사건이 발생하기 전 이영한 씨의 동선 부터 사건 발생까지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어…. 예,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턱을 짚은 채 생각에 잠긴 이영한이 이내 진술을 시작하였다.

“그, 아시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헌터 지망이 아닌 연구원 지망입니다. 내년에 졸업하면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죠. 그래서 그, 어제도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논문을 작성하다 밤늦게 기숙사로 향했습니다.”

“그때 시간이 아마 새벽 1시가 조금 안 되었나 그랬을 겁니다. 통금 시간이 아슬아슬한 시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들어가기 전에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가려고 흡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멀리서 웬 여자 한 명이 다가오는 겁니다.”

“여자의 인상착의요? 일단 검은색에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였고, 키는 한 160에서 165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얼굴은……. 예, 보편적인 미인상이었습니다. 그냥 누가 봐도 아, 예쁘다 싶은 그런 얼굴? 인상이 깊게 남는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이목구비의 특징 보다 그저 이쁘게 생겼다, 라는 인식이 강한 얼굴이었어요. 사실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의식을 잃었던 탓인가, 전체적으로 기억이 흐릿하네요.”

“하여튼 흡연장으로 다가오길래 저처럼 자기 전에 담배 피우러 나온 사람인가, 했는데 뭔가 이상한 겁니다. 그야 왜, 남자기숙사 흡연장이잖아요. 여자기숙사는 반대편이고 그쪽에도 흡연장이 있는데 왜 굳이 여기에? 라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제 옆에 다가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좀 신기하구나, 생각하면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갑자기 저한테 말을 거는 겁니다. 뭐 여기 기숙사 사는 분이냐, 몇 학년이냐, 전공은 뭐냐 하는 것들이요. 꼭 호구 조사라도 하는 것처럼요.”

“그 질문에 대답했냐고요? 예, 일단 다 대답했습니다. 무, 물론 좀 수상하게 느껴지긴 했죠! 근데 그게 그, 조금 부끄럽습니다만, 미모의 여성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어보니까 경계심을 풀게 되더라고요.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방학에도 내내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여자고 자시고 누굴 만날 시간도 없었거든요. 아하하하…….”

“그렇게 질문에 몇 번 대답했더니 갑자기 그 여자가 저한테 바짝 다가오더라고요. 머릿속으로 어라? 이게 뭐지? 무슨 일이지? 하는 사이 서로 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는데. 예. 그 다음에 그 여자가 이렇게.”

이영한이 입고 있던 환자복 목깃을 들추었다. 목에서 쇄골로 이어지는 라인에 자그마한 이빨자국 두 개가 선명하게 서려있었다.

“갑자기 절 물었습니다. 콱! 하고요.”

“……물었다? 이빨로 물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그 순간 갑자기 몸이 나른해지면서 붕 떠오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런 기억이 없네요. 정신 차렸을 땐 이곳 병실이었습니다.”

이영한의 진술에 이태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배님. 서큐버스가 사람을 물기도 합니까?”

“……아니. 내가 아는 한 그런 사례는 보고된 바가 없다. 이상하군.”

“서큐버스요? 어? 설마 제가 만난 게 서큐버스입니까?”

놀란 듯 물어보는 이영한의 질문에 나는 이태호를 바라봤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저희는 그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영한 씨께서 발견되셨을 때의 상태가 서큐버스의 착정 현장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태호가 소리 없이 품에서 사진 다발을 꺼내들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일말의 긴장감이 떠오른다.

“이영한 씨의 발견 당시 사진입니다. 사진에 찍힌 본인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도 웃기지만, 보시면 다소 충격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예?”

“보시겠습니까?”

“……예. 보여주십쇼.”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사진을 건네받은 이영한. 이내 사진을 확인한 그의 두 눈이 크게 뜨여졌다.

“아마 충격이 크시겠지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발견 당시 시각이 새벽이고 현장 통제를 신속히 한 덕에 목격자는 별로 없­.”

“과연! 이건 확실히 서큐버스의 소행이라 의심할만하군요!”

“……예?”

이태호의 당황어린 대답. 허나 이영한은 이태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여기 흩뿌려진 정액의 양을 좀 보십쇼! 평균치를 아득히 뛰어넘은 사정량입니다! 제아무리 초인이라 한들 이정도의 정액을 일시에 배출해낼 수는 없죠. 즉, 외부 자극에 의한 변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영한 씨?”

“조직 샘플은 채취했습니까? 제 목덜미나 국부에 그 여성의 타액이나 구강의 점막조직이 묻어 있었을 겁니다! 서큐버스의 DNA 구조는 데이터베이스에 있으니, 그 데이터를 토대로 샘플을 분석해보면 상대가 서큐버스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영한 씨.”

“이야, 그나저나 정말 놀랍군요! 지금 지구에 서식하는 서큐버스는 대부분 아메리카 대륙이나, 영국을 포함한 유럽 몇몇 국가에서만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설마 대한민국에서 서큐버스가 발견되다니!”

“이영한 씨. 조금만 진정해주시죠.”

열띤 목소리로 외치는 이영한의 모습에 이태호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괴수생태학 전공이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습격 상대가 서큐버스라는 사실이 이영한의 연구욕에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이 찍힌 사진을 여기저기 들이대는 그의 행각에 조유리가 기겁하며 병실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이영한 씨. 서큐버스에 대한 이영한 씨의 열정은 알겠습니다만, 우선 진술부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제가 좀 흥분했군요. 서큐버스가 워낙 이 나라에선 귀한 괴수인지라. 하하하.”

겨우 진정한 이영한을 보며 나와 이태호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진술에서 상대 여성이 이영한 씨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고 하셨죠. 질문의 내용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평범한 질문들이었습니다. 이름부터 시작해서 학년, 전공, 기숙사에 사느냐, 뭐하다 왔냐 같은 것들이요.”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특이한 질문은 없었습니까?”

“특이한 질문? 글쎄요. 특이하다할만한 질문은 딱히……. 아!”

“뭔가 있었습니까?”

“그러고 보니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 뭐라고 했더라?”

애매한 기억을 애써 떠올리려는 듯 미간을 찡그린 채 그가 말했다.

“‘지예원이라는 이름의 학생을 아느냐.’ 분명 그런 질문이었죠.”

…………뭐?

“지예원, 말입니까?”

“예.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아마 맞을 거예요.”

순간 사고의 흐름이 멎었다.

이영한과 이태호의 대화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당혹감에 빠진 정신을 가다듬으며 나는 좀 전에 이영한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지예원이라는 이름의 학생을 아느냐. 분명 그런 질문이었죠.’

처음에는 잘못 들었다 생각했다. 허나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이영한은 분명하게 그 이름 석 자를 입에 올렸다.

지예원. 저번 퀘스트에서 내가 살려낸 재학생이자, 지금도 채소연과 함께 안전가옥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녀의 이름을.

‘어째서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오는데?’

인간형 괴수인 서큐버스는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 왜 서큐버스가 착정 상대의 인적사항을 물어봤는지는 의문이지만, 가능 불가능만 따지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허나 그 입에서 지예원의 이름이 나올 가능성은, 단언컨대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서큐버스는 지예원의 이름을 말했다. 지예원을 아느냐고 이영한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서큐버스가 지예원을 알지? 그리고 놈은 왜 이영한에게 그녀에 대해 물은 거지?

‘아니, 애초에 서큐버스가 범인이 맞긴 한 건가?’

여러 정황 증거로 범인이 서큐버스일 거라 예상하고 있을 뿐, 아직 정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다. 범인이 서큐버스가 아닐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가령, 서큐버스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여명단의 추격자라든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섬뜩한 오한이 들었다.

“이영한 씨는 그 지예원이라는 학생을 알고 계십니까?”

“이름 정도만 들어본 사이입니다. 저랑 같은 학년이거든요. 아마 헌터 지망일 겁니다.”

“그 지예원이라는 학생과 특별한 접점은 없으십니까?”

“전혀 없습니다. 헌터 지망하고 연구원 지망은 수업도 거의 겹치지 않고, 애초에 같은 학년이래도 학생 수가 거의 천 명이니까요. 어지간해선 마주칠 일이 없죠.”

“하긴. 그것도 그렇­.”

­우웅.

그때, 이태호의 스마트폰이 나지막하게 진동했다.

“잠시 실례.”

화면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곧 눈에 띄게 심각해졌다.

“……무슨 일입니까?”

“방금 전 두 번째 피해자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장소는 제2 사격훈련장 3층 남자화장실.”

“아직 해가 지기 전인데 범인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겁니까?”

“아니. 아마 발견이 늦어진 거겠지. 어제까지만 해도 방학이었으니 훈련장을 이용하는 학생이 적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두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 피해자일 가능성도 있겠군요.”

이영한보다 먼저 습격당했으나 발견이 늦어졌을 가능성. 이태호의 말마따나 방학 기간에는 훈련장 이용객이 현저히 줄어드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근데 잠깐. 발견 장소가 훈련장 화장실이라고?

그렇다는 건 즉…….

“선배님. 장소가 건물 바깥이 아니라 훈련장 내부라면­.”

“그래. 온 사방이 CCTV란 소리지.”

이태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엉겁결에 함께 일어선 내게 그가 말했다.

“안수호. 너는 이영한 씨에게서 마저 진술을 들은 뒤 팀장님께 보고해라. 나는 지금 바로 조유리와 함께 두 번째 피해자에게 가겠다. 조유리, 가자.”

“어, 으응!”

거침없이 병실을 나선 이태호의 뒤를 조유리가 쭈뼛쭈뼛 따랐다.

고개를 돌리자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는지 이영한이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영한 씨.”

“어, 예.”

“오늘 진술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 끄, 끝난 겁니까?”

그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 경위를 전부 들은 마당에 더 이상 물어볼 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중요한 건 진술 따위가 아니다.’

이영한에게 인사하고 병실을 나선 나는 곧바로 민채령에게 전화했다.

“팀장님. 안수호입니다.”

­무슨 일이야? 태호한테서 문자는 받았어. 너 혼자 진술 마무리하고 나한테 보고하러 온다며?

“예. 그 건과 관련해서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데?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재빨리 살핀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에 여명단이 관련된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진술하길 범인이 지예원이란 학생을 아느냐고 피해자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뭐?

민채령의 놀란 목소리. 곧 그녀의 심각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와서 설명해. 지금 당장.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곧바로 팀장실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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