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8화 (28/266)

〈 28화 〉 027. 서큐버스 사건(2)

* * *

"두 사람, 혹시 서큐버스에 대해 알고 있니?"

서큐버스. 그 네 글자 울림이 내 귓가를 간질인 순간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유의 바다 속으로 풍덩 잠겨들었다.

나는 서큐버스가 좋았다.

서큐버스. 혹은 몽마.

육감적인 몸매를 지녔으며 남성을 유혹해 정기를 갈취하는 설화 속의 악마. 유명한 악마이니만큼 그 특징은 나름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가령, 아름다운 모습은 환상으로 꾸며낸 것이고 본래는 추악한 노파의 모습을 하고 있다든가.

머리맡에 우유를 두고 자면 우유를 정액으로 착각해 정조를 지킬 수 있다든가.

정기를 갈취한 남자를 자신과 같은 서큐버스로 만들어 노예로 삼는다든가.

청소년기 몽정의 원인이라든가.

허나 그런 자잘한 설정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원전 설화의 내용이 어떻든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서큐버스란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섹스어필 요소요, 온갖 페티시의 집합체였다. 나 역시 한 사람의 건장한 남성으로서 그런 서큐버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나는 그런 서큐버스가 좋았다.

관능적인 서큐버스가 좋았다.

고혹적인 서큐버스가 좋았다.

유혹하는 서큐버스가 좋았다.

매혹하는 서큐버스가 좋았다.

강압적인 서큐버스가 좋았다.

순종적인 서큐버스가 좋았다.

상냥한 서큐버스가 좋았다.

매몰찬 서큐버스가 좋았다.

연상의 서큐버스가 좋았다.

연하의 서큐버스가 좋았다.

달달한 서큐버스가 좋았다.

사무적인 서큐버스가 좋았다.

집착하는 서큐버스가 좋았다.

능숙한 서큐버스가 좋았다.

어설픈 서큐버스가 좋았다.

농익은 서큐버스가 좋았다.

풋풋한 서큐버스가 좋았다.

세상에 온갖 서큐버스가 있다면, 나는 그 모든 서큐버스를 좋아했다.

허나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꼽으라면. 가장 꼴리는 서큐버스가 무엇인지 논하라고 누군가 내게 요구한다면. 나는 곧바로 이렇게 단언할 것이다.

수많은 서큐버스 중에서 가장 꼴리는 서큐버스란 바로 처녀 서큐버스라고.

남성의 정을 착취하는 서큐버스가 처녀라는 그 아이러니에서 오는 꼴림이 좋았다.

서큐버스임에도 성적 지식이 전무하여 풋풋한 매력을 발산하는 모습이 좋았다.

경험도 없으면서 익숙한 척 건방지게 굴다가 실전에서 당황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이윽고 첫 경험을 나눈 순간, 마침내 서큐버스로서의 자신을 알아차리면서도 눈앞의 상대에게 순종적인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는 그 순애보적인 모습이. 그 모습이 좋았기에, 나는 감히 서큐버스 중 가장 꼴리는 것이 처녀 서큐버스라 단언하곤 했다.

나는 그런 서큐버스가 좋았다. 미치도록 사무칠 정도로 좋았다.

물론 아무리 서큐버스가 좋다 한들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가령, 아랫도리를 질펀하게 놀리던 서큐버스가 히로인으로 나오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걸레는 빨아봤자 걸레. 바닥에 흘린 물을 닦을 수 있을지언정 몸에 묻은 물을 닦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허나 그 서큐버스가 처녀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처녀일 수 없는 존재가, 처녀여선 안 되는 존재가 처녀라는 아이러니에서 배가되는 것은 비단 꼴림만이 아니다. 그저 태어난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여타 처녀와 달리, 모순과 아이러니를 딛고 피어난 처녀 서큐버스의 순결이야말로 보다 지고지순한 순결인 법.

그렇기에 서큐버스 중 오직 처녀 서큐버스만이 히로인의 자리에 이름을 올릴 정당한 자격을 지닐 수 있었으며, 그런 처녀서큐버스가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뼈에 사무칠 정도로.

“서큐버스라면, 던전에서 나오는 그 서큐버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바로 그 서큐버스야.”

그리고 이 세계에도 서큐버스는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던전에서 출몰하는 B급 인간형 괴수로서.

놈들은 던전에서 마주칠 경우 매혹이나 환각, 정신조작 등을 통해 공격하며,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남성의, 특히 남성 초인의 정액에 강한 욕구를 보인다.

거기까지라면 그저 조금 특이한 괴수에 지나지 않겠지. 허나 이 세계관의 서큐버스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놈들이 괴수임에도 불구하고 던전 바깥에 이미 널리 퍼진 상태라는 점이었다.

20년 전. 미국에서의 던전 크라이시스 사태로 인해 던전 내부에 서식하던 서큐버스가 대량으로 풀려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풀려난 서큐버스의 숫자는 500 이상. 허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냥에 성공한 숫자는 300에조차 미치지 못했다. 남은 약 200여 마리의 서큐버스는 지금도 모습을 감춘 채 이쪽 세상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적어도 원작에선 그랬다. 그렇다는 설정이었다.

그런 설정이 있었기에 나는 내심 기대하곤 했다. 수많은 서큐버스가 있다면 그중 처녀 서큐버스도 있을 터. 어쩌면 어디선가 나타난 처녀 서큐버스가 새로운 히로인으로서 주인공의 하렘 멤버에 편입되지 않을까. 그런 행복한 기대를 품곤 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없었다. 쾌락천마는 히로인 추가는커녕 온갖 드리프트를 남발하여 있는 히로인들마저 죽이기 바빴으니까.

하여튼.

서큐버스의 히로인 편입 여부와는 별개로, 어찌 되었든 이 세상에는 200마리가 넘는 서큐버스가 살아가고 있었다. 때문에 잊을만하면 그러한 서큐버스에 의한 피해 사례가 발생하곤 했다.

바로 지금처럼.

“오늘 새벽에 남자기숙사 B동 뒤편 흡연장에서 남학생 한 명이 실신한 채 발견됐어.”

민채령이 서류더미 사이에 끼워져 있던 사진 몇 장을 꺼냈다. 뒷면이 위로 향하게 뒤집어둔 채로.

차마 만지기조차 싫다는 듯 손가락 끝으로 사진을 집은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현장 발견 당시 사진이야. 그, 사진이 좀 껄끄럽긴 한데, 볼래?”

“저는 상관없습니다.”

이태호의 망설임 없는 대답. 민채령에게서 사진을 건네받은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사진을 휙휙 넘겼다.

“……과연. 확실히 서큐버스의 소행이라 의심할만한 사진이군요.”

도대체 어떤 사진이길래 저렇게 단언하는 걸까. 내가 사진에 눈독을 들이고 있자 이태호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보지 마라. 눈 버린다.”

“그렇게 심각합니까?”

“할 수만 있다면 이 사진을 보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다.”

“어…….”

내가 감을 못 잡고 있자 이태호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하반신 전라의 남성이 온 사방에 백탁액을 흩뿌린 채 두 눈을 까뒤집고 침을 질질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진이다. 중요부위는 모자이크가 되어 있다만, 오히려 그 모자이크 때문에 더 기분이 나쁘군. 내 설명을 듣고도 굳이 보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

“…………아뇨. 됐습니다.”

세세한 묘사 덕에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떻게 그런 사진을 보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지. 새삼 이태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피해자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의무실에 입원 중. 증세는 빈혈에 저혈당, 저혈압, 탈수, 무기력증이야.”

“서큐버스에게 착정 당했을 때의 증상과 동일하군요. 인간에 의한 단순 강간 사건일 가능성은 배제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애초에 초인을 상대로 저혈당 쇼크를 일으킬 정도로 착정할 수 있는 건 서큐버스 밖에 없지만.”

“CCTV에는 달리 찍힌 건 없습니까?”

“응. 건물 뒤편에는 CCTV가 없고, 주변을 찍은 영상에도 특이사항은 없었다고 하네.”

“그렇다면 더욱 서큐버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아지겠군요. 놈들은 몸을 안개로 바꿀 수 있으니까.”

주거니 받거니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그런 나를 이태호가 지긋이 바라보더니 민채령에게 넌지시 물었다.

“헌데, 왜 하필 저랑 신입에게 이번 임무를 주시려는 겁니까? 저야 그렇다 쳐도, 신입은 이제 갓 들어와서 일을 배워야 하는 시점 아닙니까?”

“좋은 질문이에요. 이태호 대원. 거기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답니다.”

민채령이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네 개 펴보였다.

“우선 첫 번째. 특수대책과의 업무는 결국 실전. 책상에 앉히고 교범을 달달 외우게 시키는 것보다 한 번의 실전에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야.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두 번째. 수호의 진가는 정보력이야. 그게 본인의 특별한 능력이든 아니면 여러 인맥을 사용한 정보 수집이든 이번 임무를 해결하는 데에 적합하리라 판단했어.

세 번째. 두 번째 이유랑 일맥상통하는 이유인데, 입사 면접 때 수호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거든?”

민채령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렷 자세로 곧게 선 그녀가 허공을 보며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절 채용해주시기 바랍니닷! 저라면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색출해낼 수 있습니닷!’였던가? 대총 이런 내용이었을 거야 아마. 푸흐흐.”

민채령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지며 그녀가 입가를 가린 채 작게 웃었다.

“……수호. 정말 면접 때 저렇게 말했나?”

“예. 일단은요.”

내가 멋쩍게 대답해자 이태호가 피식 웃었다.

“수호 너 입사 포부부터가 남달랐구나.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빙의에 면접이다 퀘스트다 뭐다 혼란스러웠을 때 아무렇게나 꺼낸 말이었다. 분명 내 입으로 한 말이긴 했지만, 이렇게 눈앞에 들이밀어지니 묘하게 부끄러웠다.

“헌데, 팀장님. 분명 이유가 네 가지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머지 하나는 뭡니까?”

“별 거 아니야. 너희 두 사람이 그래도 우리 팀에서는 제일 잘생겼잖니.”

“……예?”

갑작스러운 칭찬.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민채령이 싱긋 웃었다.

“서큐버스는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한다더라. 너희 둘 정도면 미끼로 쓰기엔 안성맞춤일 것 같아서.”

“흠. 확실히 타당한 이유군요.”

민채령의 낯간지러운 말에 이태호가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말에 대놓고 ‘그래, 나 잘생겼다’하고 인정하는 걸 보면 그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런 그를 내가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자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이태호가 피식 웃었다.

“오해하지 마라. 딱히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 팀에 젊은 남자가 너랑 나밖에 없을 뿐이다.”

“아, 그런 겁니까?”

“푸흐흐흣.”

“……뭐가 웃기십니까?”

“아니, 그냥. 조금 놀려보자는 심정으로 말한 건데 네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서.”

따스한 노을빛 때문인가, 소녀처럼 웃는 민채령의 모습은 묘하게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그간 철두철미하게 일을 처리하던 그녀의 모습만 봐왔던지라 이렇게 장난치는 그녀의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그런데 팀장님. 서큐버스를 상대하기에 남자뿐인 이 멤버는 조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맞아. 안 그래도 한 명 더 붙여줄 생각이었어. 너희랑 비슷하게 호출했는데, 너희가 너무 일찍 와서 아직 도착을 안 한 것 같네.”

­똑똑.

그 순간 때마침 들려온 노크소리.

“어머.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호랑이는 아니고 토끼 같은 아이지만. 그렇게 덧붙인 민채령이 팀장실 문을 향해 들어오라고 말했다.

­끼익. 덜컥!

­덜컥! 덜컥 덜컥!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팀장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연신 덜컥거리기만 하는 문고리에서 문 너머의 상대가 느끼는 당황이 그대로 전해졌다.

“……누구인지 알겠군.”

그렇게 말한 이태호가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내 그가 문을 당기자, 그동안 열리지 않았던 게 거짓말이라는 듯 스무스하게 문이 열렸다.

“조유리, 이거 미는 문이다.”

“아……! 그, 그렇네요……!”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유약한 인상의 이십대 여성이었다.

벚꽃색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맵시 있게 차려입은 근무복 위로 드러나는 몸매는 발군이었으나, 잔뜩 움츠린 자세 때문에 잘 부각되지 않았다.

커다란 눈망울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흔들렸으며, 전체적으로 민채령의 말처럼 토끼 같은 인상을 주는 여성이었다. 그런 인상 때문인지 작지 않은 키에도 불구하고 유독 체구가 작게 느껴졌다.

“조…!”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시선을 내리깔며 작게 말했다.

“조, 좆…!”

“……예?좆?”

“아뇨!조, 조유리라고 해요…! 가, 같은 팀! 이니까. 그, 자, 자자자자 잘 부탹, 부탁드, 드리나요……? 아니, 드릴게요!”

그 짧은 문장에 몇 번이나 혀를 씹었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한 마디. 말을 마친 좆유리. 아니, 조유리가 내 시선을 피하며 또르르 이태호의 뒤로 숨었다.

“……조유리. 너나 나와 마찬가지로 특책과 2팀 대원이다. 내 입사 동기기도 하고.”

이태호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렇게 설명했다.

“신입 앞에서 이게 무슨 꼴이냐. 선배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라.”

“그, 그그그 그렇지만. 나, 나나, 그, 남자는 껄, 껄끄러허서…….”

“며칠 지나면 좀 나아질 거다. 얘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워낙 낯을 많이 가려서.”

“아. 예.”

“하으으. 미, 미안, 미, 미밋밋, 미안, 해요……?”

낯을 가리는 수준이 아니라 두려움마저 느끼는 듯한 태도였으나 그러려니 했다. 채소연 같은 정박아도 있는 마당에 소심녀 정도야 양반이지.

“이태호. 조유리. 안수호. 너희 세 사람이서 이번 서큐버스 사건을 조사해보도록 해. 조사 과정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내게 말하고.”

민채령의 말에 우리 세 사람이 각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태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하으. 네, 넵!”

조유리는 여전히 이태호의 옷깃을 잡은 채 시선을 내리깔며.

“……예.”

그리고 나의 힘없는 대답을 마지막으로. 우리 세 사람의 대답을 들은 민채령이 싱긋 웃었다.

“그래. 너희들만 믿을게.”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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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 퀘스트 발생! ]

[ 그린하우스에서 벌어진 의문의 착정 사건! 그 범인은 과연 예상대로 던전에서 탈출한 서큐버스일 것인가?!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진실이?! 특수대책과 배속 후 첫 임무! 믿음직스러운 선배들과 협력하여 베일에 싸인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보세요! ]

[ 이번 퀘스트는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원작의 다양한 인물들과의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부디 성심성의껏 퀘스트에 임해주세요! ]

1)경비율 증가 3%(현재 경비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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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떠오른 퀘스트 메시지를 보며 나는 주먹을 꽈악 말아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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