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026. 서큐버스 사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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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반적인 경비 업무가 아닌 ‘특수’한 상황에 대한 ‘대처’를 주업으로 삼는, 명실상부 그린하우스의 핵심 전력.
그 위상은 대형 헌터 길드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그 전력 또한 막강한 것은 마찬가지.
구성원은 전원 초인으로서 일류, 베테랑, 달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들뿐. 설령 겉으로 보이는 등급은 낮더라도 그 겉보기 이상의 자질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 모인 곳. 특수대책과란 그런 곳이었다.
초인이란 선택받은 자. 제아무리 자신에겐 선민의식 따위 없다 자부하는 초인이더라도, 그러한 인식이 아예 없을 수는 없으리라.
하물며 그러한 초인 중에서도 엄선된 특수대책과 대원들이라면 건방진 우월감 정도야 조금씩은 가지고 있겠지.
허나 그런 특수대책과 안에도 겸손의 미덕을 아는 자가 있었으니.
특수대책과 2팀 대원 이태호. 그는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지극히 겸손한 남자였다.
“전과 서류 수속 말씀이십니까?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전 중에 다 끝내놨거든요.”
“……이미 끝내두었다니 고맙구나.”
당연히 내가 끝내두었어야 할 서류 작업을 마쳤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거나.
“이해했습니다. 일반적인 순찰 업무는 일반과에 거의 일임하다시피 한 거로군요. 특책과는 사태 발생 시에 신속히 투입해야 하니까. 말하자면 5분대기조 같은 느낌이네요.”
“……이해했다니 고맙구나.”
별로 어렵지도 않은 업무를 이해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거나.
“저쪽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사오려고 하는데, 혹시 선배님께서도 드시겠습니까? 같이 사오겠습니다.”
“……내 것까지 챙겨줘서 고맙구나.”
사회인으로서 당연한 의례에도 감사를 잊지 않는 등.
이태호는 이상하리만치 감사가 헤픈 남자였다. 마치 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듯한 태도.
왜 그렇게 매사에 감사하느냐 묻자 그는 해탈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채소연은 너와 달리 고작 서류 수속 하나를 계속 까먹어서 끝마치기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채소연은 너와 달리 간단한 업무에 대해서도 몇 번을 설명해야 겨우 이해했다.”
“채소연은 너와 달리 매번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단 한 번도 내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사람을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만, 그럼에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고맙다, 안수호. 네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지성과 예의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지 않을 수가 없구나.”
덤덤히 말하는 그에게서 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스님의 모습을 엿보았다. 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서글퍼지는 모습에 나는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훔쳤다.
이태호. 그는 채소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감사하는 마음가짐을 배우게 된 불쌍한 남자였다.
“채소연의 능력은 알고 있다. 막강한 능력이지. 왜 팀장님께서 그 꼬맹이를 2팀에 들이셨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전투 능력과 별개로 같이 일할 상대로서는 별로다. 하물며 사수부사수의 파트너로서는 최악이지.”
“꽤 시달리셨나보네요.”
“말도 마라. 살다살다 특책과에서 보모 노릇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
특책과 건물 안내가 끝나고 그린하우스 부지 내 주요 경계 거점들을 돌아보는 길. 그의 입에서는 채소연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마치 그간 쌓였던 억하심정을 해소하듯.
나는 그의 불만을 묵묵히 들어줬다. 이따금 추임새를 넣으며 맞장구를 쳤다. 직장 선배의 넋두리란 으레 들어주기 힘든 법이건만, 나 역시 채소연에게 시달린 경험이 적게나마 있던 탓에 그의 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넌 정말 좋은 녀석이군.”
그런 내 태도가 이태호는 썩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던가. 딱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고맙다, 채소연. 네 덕에 내 직장 생활이 꽤 순탄해질 것 같구나.
“대충 둘러봤으니 슬슬 돌아가자.”
주요 거점을 다 돌아본 우리는 다시 특책과 건물로 향했다. 아직 초봄이라 해가 짧아서 그런가, 하늘은 어느새 저 끄트머리부터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어라? 저 사람은…….’
특책과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한 여성이 우리 두 사람과 교차하듯 건물을 나섰다.
묘하게 낯이 익은 얼굴. 곧 나는 그 여성의 정체를 떠올릴 수 있었다.
‘도소영인가?’
도소영. 주인공과 히로인들이 속한 1학년 A분반의 담당 교수이자 히로인 중 한 사람.
2D 일러스트로밖에 보지 못한 상대였지만 나는 그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기억 속에 있는 일러스트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3D 실사풍으로 필터링되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떠나가는 그녀에게 내가 시선을 빼앗기자 이태호가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왜 그러지? 아는 사람인가?”
“예. 도소영 교수라고, 1학년 A분반 담당 교수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헌데 어째서 그녀가 경비대에, 그것도 특수대책과 건물에서 나오는가.
‘설마.’
묘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또 다시 사건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순식간에 뇌리를 가득 채웠다.
내가 불안한 눈치로 도소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이태호가 말했다.
“정 궁금하면 행정실에 가서 확인해 봐라. 외부인이 특책과 건물에 용무가 있다면 십중팔구 행정실에 들렀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난 먼저 사무실로 올라가 있지.”
그와 헤어진 난 곧바로 특수대책과 행정실로 향해 그곳 직원에게 도소영에 관해 물었다.
“도소영 교수님이라면 재학생 관련 사건 조사 의뢰 때문에 오셨어요.”
“사건 말씀이십니까?”
“네. 교수님 담당 분반의 학생 한 명이 오늘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정은 이러했다. 도소영의 담당인 1분반 학생 한 명이 오늘이 개강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았다. 단순 결석인가 싶어 학생에게 연락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가족에게 연락을 시도하자 웬걸, 가족 역시 벌써 일주일 전부터 해당 학생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
이에 도소영은 해당 학생이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특수대책과에 사건 조사를 의뢰했다.
“왜 경찰이 아니라 경비대에 신고를 한 거죠?”
“특수대책과는 아카데미와 관련된 사건에 한해 경찰과 동일한 수사권을 지니니까요. 만약 사건일 경우 경찰과 특책과가 공조 수사에 나서게 되니 미리 저희 쪽에도 신고하신 거겠죠. ……특책과 대원이신데 설마 모르고 계셨나요?”
직원이 내 목에 걸린 특책과 대원증을 미심쩍게 바라봤다. 아직 뽑힌 지 얼마 안 되어 그랬다고 얼버무리며 나는 행정실을 나섰다.
‘……1분반 학생 실종이라. 원작에선 없던 일인데.’
적어도 원작에 묘사된 사건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새롭게 발생한 사건인가? 아니면 지예원 때와 마찬가지로 묘사만 되지 않았을 뿐 본래 일어났던 사건인가?
퀘스트 알람이 뜨지 않는 걸 보면 중요한 사건은 아닌 것인가? 하고 생각했으나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시스템 역시 쾌락천마가 만들어낸 것.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기거나 늦게 공개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우우우웅.
그 순간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이태호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전화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용무는 끝났나?
“예. 지금 막 끝났습니다.”
그럼 바로 팀장실로 올라와라. 팀장님께서 찾으신다.
용건만 전달하고 끊긴 전화.
설마 방금 전 도소영의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나는 민채령이 기다리는 팀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을빛으로 물든 사무실이 날 반겨주었다. 커다란 창문을 등진 채 역광에 잠겨있는 민채령. 그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묘하게 무거운 분위기에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아무래도 평범한 일로 호출된 것은 아니겠구나. 그렇게 짐작했다.
“오늘 하루 어땠니? 태호가 업무라든가 잘 설명해줬어?”
“예.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중얼 거리며 민채령이 한 다발의 서류를 꺼내보였다. 맨 앞장에는 ‘사건 번호 no.xxxx’ 따위의 일련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걸 본 이태호가 눈빛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사건입니까?”
“맞아. 신입한테 첫 날부터 사건을 맡기는 일은 보통 없지만, 이 사건에는 너희 두 사람이 적임인 것 같아서.”
“무슨 사건이죠?”
설마 도소영이 의뢰한 그 사건인가. 그렇게 짐작했으나, 직후 민채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두 사람, 혹시 서큐버스에 대해 알고 있니?”
노을을 등진 민채령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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