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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6화 (26/266)

〈 26화 〉 025. 특수대책과로

* * *

안수호의 시험이 끝난 후. 경비대 본부 건물 회의실.

투표를 통해 안수호의 시험 합불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자리한 열한 명의 남녀는 전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E급 초인이 특수대책과 대원을 이겼다는 미중유의 사태에 저마다 생각을 정리하기 바빴다. 아카데미 총장과 이사장이 함께한 자리인지라 발언을 아끼는 것이기도 했다.

“……답답하구만 그래. 먼저 말할 사람 없으면 나부터 말하지.”

그 침묵을 깬 건 2미터가 넘는 거구에 두꺼운 근육으로 뒤덮인 흑인 남성이었다.그의 이름은 마르코 잭슨. 특수대책과 9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사내였다.

“고민하고 말 것도 없지. 안수호 그 친구가 졌으면 몰라, 압도적으로 이겼잖아. 고로 난 찬성!”

꼴에 팀장급 과장급이란 것들이 남 눈치나 보며 옹졸하게 침묵하는 이 상황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가 아니꼬운 눈빛으로 좌중을 훑자 그제야 다른 팀장들도 하나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마르코와 같은 합격. 허나 반대 의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반대야. E급 초인이 특수대책과 대원이 된다니 어불성설이지.”

반대 의견을 말한 이는 5팀장 고다은. 오태성과 함께 최초 안수호의 인사이동을 반대한 팀장이었다.

“등급 예찬론자 나셨군. 결과적으로 안수호가 최진혁을 이긴 건 사실인데 뭐가 불만이야?”

“초인의 등급은 전투 능력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니까. 등급은 말하자면 그 초인의 초인으로서의 자질이다. 제아무리 그 안수호라는 녀석이 최진혁을 이겼다 한들, 초인으로서 어딘가 흠결이 있으니 등급이 그 모양 그 꼴인 거겠지.”

“개소리.”

마르코의 거친 말에 고다은이 째릿 하고 그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 마르코가 기분 나쁜 웃음으로 응수했다.

“고다은 팀장과는 다른 이유지만, 저도 반대입니다.”

“엉? 김병철 넌 또 왜?”

마르코의 질문에 8팀장, 김병철이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그 역시 고다은과 마찬가지로 오태성의 반대 의견에 힘을 실어줬던 팀장이었다.

“특수대책과는 실력지상주의 집단.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안수호 대원의 전과도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조직인 이상 구성원의 여론이나 대외적 평판도 생각해야 하죠.”

“사내 여론이야 그렇다 쳐도 평판?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하죠. 당장 일반과가 대외적으로 어떤 취급인지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비수와도 같은 일침에 일반과 과장이 그를 노려봤다. 허나 김병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태도였다.

보다 못한 경비대장, 김수현이 입을 열었다.

“8팀장. 말조심하도록.”

“……실례했습니다. 일반과장님. 발언이 조금 과격했군요.”

과격하긴 했지만 거짓은 아니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태도에 일반과장은 속이 쓰렸다.

“……팀장급은 4대 2로 의견이 다 나왔군. 자, 그럼 두 과장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난 기권.”

대답한 건 껄렁한 인상의 특수대책과 과장이었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그 의견에 이목이 집중되자 그가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여론이니 평판이니 그딴 정치적인 것들 나는 잘 모르거든. 그러니까 기권. 나머지 분들이 알아서 결정하쇼.”

“특책과장 의견은 알겠다. 일반과장 자네는?”

“……저는 반대하겠습니다.”

“그런가. 단순히 표만 계산하면 찬성 4에 반대 3, 기권 1이군.”

안수호가 대련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로 의견이 갈렸다. 아마 그만큼 E급 초인의 특책과 전과라는 안건이 거부감이 심하다는 소리겠지.안수호가 패배하더라도 여지를 주기 위해 결과에 상관없는 투표 방식을 도입한 것이건만, 김수현으로선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었다.

'남은 표는 나를 제외하고 두 개인가.'

김수현의 시선이 이사장과 총장에게 향했다. 이 자리에서 직급이 가장 높은, 즉 발언력이 가장 강한 두 사람은 조금 전부터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사장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수현과 이사장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자연스레 좌중의 이목이 그 둘에게 집중되었다.

이사장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긴장되는 순간, 그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사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난 기권하겠네.”

“……기권, 말씀이십니까?”

“그래. 얼떨결에 투표권을 받긴 했지만 난 결국 부외자이지 않은가. 내가 의견을 말할 정도로 큰 안건도 아니고, 아카데미의 일은 아카데미 사람들이 결정해야지. 안 그런가? 경비대장?”

이사장의 엄격한 시선이 김수현의 몸을 훑었다. 내게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의견은 스스로 정해라. 그렇게 말하는 듯한 아버지의 눈빛이었다.

“……배려 감사합니다. 그럼 총장님께선…….”

“나도 기권하지. 이사장님께서 저리 말씀하셨는데 내가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 경비대 입장에서 보면 나 역시 부외자인 건 마찬가지니까.”

“이거 죄송합니다, 총장님. 제 발언이 총장님의 의견을 강요한 꼴이 되었군요.”

“아닙니다. 이사장님. 이사장님의 말씀처럼, 경비대의 일은 경비대에서 결정해야지요.”

“그럼 이제 경비대장 자네 의견만 남았군.”

두 상급자의 시선이 김수현에게 집중되었다. 그들뿐 아니라 비단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가 찬성하면 합격. 반대할 경우 찬반 동률로 인한 보류.

자신의 선택으로 결과가 결정된다는 상황이 썩 달갑지는 않았으나, 한 조직의 수장이라면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법.

좌중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마침내 김수현이 입을 열었다.

***

“자, 여기가 특수대책과 건물이야.”

경비대 본관 옆에 구름다리로 이어진 별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깨끗한 건물을 올려다 보던 나는 민채령의 안내에 따라 특책과 건물로 들어섰다.

일반과나 정보과가 위치한 본관이 사무실 같은 느낌이라면 특책과가 있는 별관은 소방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1층 면적의 대부분은 각종 차량이나 장비를 보관하는 3층 높이의 격납고였으며, 사무 업무를 위한 공간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린하우스 경비대의 총 규모는 1,073명. 그중 특수대책과 대원은 널 포함해서 83명이야. 엄선한 엘리트들인 만큼 다른 과와 비교했을 때 급여도 높고 복리후생도 뛰어나지. 물론 휴가도 많고.”

자랑하듯 특책과의 장점을 늘어놓는 민채령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지금 내게는 특책과의 워라벨 보다 관심이 가는 것이 따로 있었다.

“……열람. ……열람. ……열람.”

오고가며 마주치는 대원들의 상태창을 빠르게 스캔한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푸른 홀로그램을 읽어 내려가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생각보다 수준이 더 높은데.’

일전에 대련했던 최진혁은 약과였다. 지금껏 마주친 대원들의 능력치는 대부분 B 이상. A는 물론이고 S랭크도 심심찮게 보이는 형국이었다. 초인 등급으로 치자면 A급. 중견 길드의 간부나 길드마스터를 맡아도 될 수준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왜 경비대에 있는 거지?’

제아무리 복리후생이 좋다 한들 월급쟁이는 월급쟁이. 많이 벌면 달에 수천을 버는 헌터와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언가 내가 모르는 이점이 경비대에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사이 어느덧 나는 민채령이 팀장으로 있는 2팀 사무실에 도착했다.

­벌컥.

사무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안에 있던 대원들이 전원 이쪽을 바라보며 기립했다. 마치 군대와도 같은 풍경.

“쉬어.”

민채령의 구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이 다시 착석하여 제 업무로 돌아갔다. 그 일사불란한 모습에 놀란 나를 민채령이 팀장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자, 받아.”

민채령이 내게 상자를 건넸다. 안을 열어보자 새로 발급된 출입증과 특수대책과 제복, 그 외 이런저런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오늘은 일단 수습기간이라 치고. 내일부터 소연이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식으로 정식 업무에 들어갈 거야. 업무 내용은 네 사수가 설명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근데 채소연의 빈자리를 대체한다니, 설마 걔 잘리기라도 한 겁니까?”

“소연이는 지예원 감시 겸 경호 임무로 돌릴 거야. 네가 일하는 낮 동안에는 소연이가 안전가옥을 지키고, 네가 퇴근하면 소연이도 퇴근하는 식이지.”

“아하.”

대충 무슨 느낌인지는 알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와 채소연의 업무가 뒤바뀌었다는 뜻이었다.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모양새.

채소연이 용케 납득했구나 싶어 묻자 민채령은 태연하게 아직 채소연에겐 설명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지금부터 설명해야지.”

그렇게 덧붙인 민채령이 채소연에게 전화했다.

­뚜르르르르. 뚝.

­네 팀장님! 채소연입니닷!

얼마 지나지 않아 채소연이 전화를 받고, 민채령이 차근차근 그녀에게 업무 변경에 대해 설명했다.

­엣. 저보고 지예원을 전담하라고요? 저 걔랑 아직 좀 어색한데요. 게다가 안수호 걔가 제 업무로 들어간다니. 그게 도대체…….

예상대로 채소연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소연아. 부탁 좀 할게. 내가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그래.”

­……네?

그 순간 민채령이 상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쪽은 언제 여명단이 쳐들어올지 모르잖니. 얼마나 강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이상, 우리 팀 최강의 전력인 널 그곳에 둘 수밖에 없었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최강? 제가 2팀 최강이에요?

“그럼! 어디 2팀 최강이겠니? 전투 능력만 따지면 우리 소연이가 경비대에서 가장 강하잖아. 안 그러니?”

­에헷? 그, 그렇긴 하죠?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싸움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그래. 안수호랑 달리 너라서 믿고 맡길 수 있는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 저만 믿으세요, 팀장님! 어떤 놈이 쳐들어오든 지예원은 제가 지켜낼 테니까요! 헤헤헤.

“그래. 너만 믿을게, 소연아. 끊는다?”

­네 팀장님!

전화가 끊기고 민채령이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채소연을 잘 다루시는군요.”

“내가 스카우트한 애니까. 내가 잘 다루지 못하면 누가 다루겠니?”

“그것도 그렇네요. 헌데 채소연에게 안전가옥 쪽을 완전히 맡겨도 괜찮겠습니까? 좀 불안한데요.”

“여명단 놈들이 습격해오는 쪽? 아니면 지예원이 탈출하는 쪽?”

“둘 다요.”

내 꾸밈없는 대답에 민채령이 피식 웃었다.

“뭐, 괜찮겠지. 안전가옥의 보안이나 감시 체계는 확실하고. 지예원도 발신기를 달아놨으니 섣불리 도망치진 못하겠지. 그리고 소연이 걔가 전투 능력만 보면 믿을만한 건 사실이잖니?”

그 말에 저격 한 방에 나뒹굴던 채소연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믿을만하다고? 글쎄올시다.

“안전가옥 쪽에는 내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뒀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보다 오늘 네 업무에 관해서 말인데.”

그렇게 말한 민채령이 내선전화 버튼을 꾹 눌렀다.

“들어가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실로 말끔한 차림의 남성 대원이 들어왔다.

180을 조금 넘기는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말끔하게 넘긴 헤어스타일과 지적인 무테 안경 덕에 척 봐도 인텔리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 대원이었다.

“태호야. 얘가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야. 이름은 안수호.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소연이가 외부 임무로 나가있는 동안 수호가 그 자리를 대체할 거야. 태호 네가 원래 소연이 사수였으니까, 수호도 네 부사수라 생각하고 잘 가르쳐줘.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수호 넌 오늘 하루 태호를 따라다니도록 해. 같이 다니면서 건물 구조도 익히고 무슨 업무를 하는지도 눈으로 봐. 알겠지?”

“예. 팀장님.”

“좋아. 그럼 슬슬 나가봐. 아, 특책과에 온 걸 환영할게.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만.”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민채령을 뒤로하고 나는 태호라 불린 대원과 함께 팀장실을 나섰다.

팀장실을 나서자마자 그가 악수를 권하며 내게 말해왔다.

“이태호라고 한다. 잘 부탁하지.”

“안수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그래. 일단 탈의실에서 특책과 제복으로 갈아입고 오도록. 그 뒤에 건물을 안내해줄 테니.”

“알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사무실 한편에 있는 락커룸으로 향했다.

“……잠깐. 그 전에 뭐 하나만 먼저 물어봐도 될까?”

가던 발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면서도 사뭇 진지한 태도에 내가 넌지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별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다. 혹시 너는 워드나 한글, 엑셀 같은 프로그램들을 다룰 줄 아나?”

뜬금없는 질문. 도무지 의도를 짐작할 수 없는 물음에 나는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단 다 다룰 줄은 압니다.”

“……그런가. 그럼 됐다.”

허나 그 대답에 그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옅게 웃으며 너스레 떨었다.

“……이번 신입도 문서작업을 할 줄 모르면 어쩌나 싶었거든. 다행히 내 기우에 불과했군.”

진심으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그제야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이 사람 원래는 채소연의 사수였다고 그랬지.

'뭐래! 어차피 난 평소에도 출근해서 일 하나도 안 하거든!'

며칠 전 채소연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그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내 시선을 느낀 그가 힘없이 웃었다.

채소연의 직장 생활이 어땠을지 대충 감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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