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5화 (25/266)

〈 25화 〉 024. (대충 약했던 주인공이 드디어 활약하는 화)

* * *

“총장님. 이제 슬슬 가셔야 합니다.”

표독스러운 인상의 비서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그린하우스 총장, 박무진은 소파에 묻혀있던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그의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제아무리 초인이라 한들 늙음 앞에선 평등한 법. 나날이 쇠약해져가는 자신의 몸이 그는 요즘 들어 불만이었다.

“그래. 출발하지.”

“안내하겠습니다.”

­뚜벅. 뚜벅.

­또각. 또각.

길게 이어진 복도에 규칙적인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나저나 의외군요. 총장님께서 직접 시험 참관을 자처하시다니.”

“화제의 인물을 직접 보고 싶었네. 거 듣자하니, 그 대원의 인사이동과 관련해서 특책과 2팀장이랑 경비대장이 싸웠다면서?”

“싸움……이랄 것까지는 아닙니다. 그저 가벼운 언쟁이었지요.”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번에 시험을 치르는 그 대원은 어떤 친구인가?”

“이름은 안수호. 저번 일반과 공채에 합격한 일반과 대원입니다. 초인 등급은 E급입니다.”

비서의 말에 총장이 놀랍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E급? E급이라고? 2팀장이 다른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E급 초인을 기용하려고 한다는 건가? 뭔가 특출난 능력이라도 있나 보지?”

“보고에 따르면 정보력이 조금 남다르다 하더군요.”

“정보력이라 함은?”

“이번 신진우 교수의 괴수 샘플 밀반출 사건. 그 사건을 제보한 게 바로 그 대원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2팀장이 여러 연줄을 앞세워 사방에서 인재를 끌어 모으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묵인해 온 일이었다.

비서는 총장에게 면접에서부터 최근까지의 안수호의 행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렇군. 최근에는 2팀장의 독단으로 일주일 넘게 차출 중이라……. 그럼 이미 특책과인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왜 이제 와서 다른 팀장들이 반대하는 거지?”

“특책과나 다름없는 것과 실제로 특책과 소속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요. 아시잖습니까. 특책과 대원들 자존심이 워낙 높아야죠.”

“실력에 걸맞은 자존심이지.”

그렇게 말한 총장의 입가엔 뿌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가 바로 경비대 특수대책과 설립의 발안자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총장이 된지 이제 7년. 그간 그가 이룬 업적은 무수히 많았으나, 그중에서도 으뜸을 꼽으라면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특수대책과를 꼽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의 특수대책과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참관하는 인원은?”

“1팀부터 9팀까지의 각 팀 팀장과 일부 팀원. 특수대책과 과장과 안수호 대원이 기존에 속해있던 일반과 팀장 및 그의 사수. 그 외에는 이사장님과 담당비서 한 명입니다.”

“이사장 그 양반은 또 왜 나오는 거지?”

“이사장이 2팀장과 각별한 사이지 않습니까.”

“각별한 사이라고? 2팀장이 이사장 애첩이라도 되나?”

“이런 미친.”

비서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총장이 그녀를 돌아보자 비서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짚은 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총장님. 그 생각 없이 말씀하시는 버릇 좀 제발 고치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뭘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나?”

“아카데미 총장으로서의 격을 지켜달라는 것이지요. 그런 천박한 언행을 다른 사람이 들었다간 총장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허허. 여기 지금 자네 말고 또 누가 있다고.”

“잘 알고 계시네요. 제가 있잖습니까.”

“자네는 내 말실수 한둘로 날 재단하려 들지 않으니까 괜찮네.”

“그럴 리가요. 감히 말씀드리는 거지만, 전 총장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지켜보며 속으로 점수를 매기고 있답니다. 방금 그 천박한 발언은 상당한 감점 사유였어요.”

비서의 말에 총장이 껄껄 웃었다. 일견 무례하게 느껴지는 언사였으나 둘 사이에 이 정도 말장난은 으레 있는 일이었다.

"웃지 마세요. 저 진심입니다."

“그래그래. 내 앞으로는 조심하지. 하여튼,이사장과 2팀장이 무슨 사이길래 그렇게 각별하다고 하는 건가?”

"정말 모르셔서 여쭤보시는 겁니까?"

"몰라서 물어보지 내 설마 알고도 물어보겠나?"

천연덕스러운 총장의 말에 비서가 한숨을 내쉬려다 삼켰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2팀장, 민채령의 사정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철두철미한 민채령이 기를 쓰고 숨기려 한 사정이었으니. 제아무리 총장의 자리에 있는 그라 한들 모를 수도 있겠지.

"이사장님께서 몇 번 재혼하신 건 알고 계시죠? 지금은 이혼하신 이사장님의 두 번째 아내분이 2팀장의 모친이십니다. 피는 이어져있지 않으니 말하자면 2팀장에게 있어 이사장님은 의붓아버지가 되시는 거죠."

“그래? 헌데 분명 경비대장도 그 양반 아들 아니었나?”

“맞습니다. 경비대장은 이사장님의 세 번째이자 현재 아내분의 자식이죠. 따라서 2팀장과 경비대장은 굳이 따지면 의붓남매가 되는 셈입니다. 일단 피는 이어져 있지 않으니까요.”

"경비대장이 세 번째 아내의 자식이라고? 경비대장이 2팀장보다 나이가 많지 않나?"

"경비대장은 이사장님께서 첫째 아내분과 결혼생활 중이실 때 불륜으로 낳은 자식입니다. 그 불륜 상대가 지금의 세 번째 아내분이시고요."

“완전 개판이군.”

“동감입니다.”

총장은 경비대장이 이사장의 아들이란 건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가계도가 막장으로 꼬여있을 줄은 몰랐다. 한참 머리를 굴리며 가계도를 정리한 총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끌끌 웃었다.

"이거 참. 경비대에서 가장 뛰어난 두 사람이 알고 보니 이사장의 친자식과 의붓딸이라. 도무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군."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라.아비와 딸을 두고 애첩이니 뭐니 말씀하셨을 때 저 역시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크흠. 도착했군.”

비서의 핀잔을 무시한 채 총장이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시험장은 교내 랭킹전 등에 사용되는 탁 트인 경기장이었다. 가운데에는 충격 흡수 패널로 만들어진 경기장이 있었고, 그 주위를 2층 구조의 관중석이 덮는 형태였다.

관중석 군데군데에는 특수대책과 각 팀 팀장들이 저마다 제 팀원을 거느리고 앉아 있었다. 총장의 등장에 좌중이 한 차례 술렁거렸다.

그들을 뒤로하고 총장은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두 명의 남성이 농구장 크기의 경기장 양 끝에 각각 서있었다. 한쪽은 몇 번 얼굴을 본 기억이 있는 특책과 대원이었다. 총장의 시선이 자연스레 반대쪽으로 향했다.

‘저 자가 안수호인가.’

180을 조금 넘기는 키에 탄탄한 체격. 비율이 좋아서 그런가 옷맵시가 제법 살았다. 겉모습만은 나름 그럴듯하지 않은가, 하고 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2팀장이 다른 팀장들의 반대조차 무릅쓰고 품으려 한 남자.

과연 저 남자가 특수대책과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총장의 입가에 기대감에 찬 웃음이 떠올랐다.

***

한편, 맞은편 관중석.

­팀장님. 안수호 쟤 정말 괜찮을까요?

민채령의 옆자리에 놓인 태블릿에서 채소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지금 안전가옥에서 영상통화를 통해 시험장을 보고 있었다. 지예원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탈리스만이 있다지만 쟤 싸움 진짜 더럽게 못 해요. 그때 여명단 놈하고 싸웠을 때도, 쟤가 실수한 거 때문에 지예원이 죽을 뻔했거든요.

“글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채소연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민채령은 마냥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채소연은 그 여유가 썩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팀장님은 정말로 쟤가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세요?

그 질문에 민채령은 안수호의 상대역을 맡은 남자를 바라봤다.

특수대책과 소속 대원 최진혁. 그는 이번 인사이동 건에 가장 먼저 반대한 7팀장, 오태성의 직속 부하인 남자였다. 안수호에 대한 생각은 제 팀장과 비슷한지 안수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적대적이기 그지없었다.

초인 등급은 특책과 안에서는 다소 떨어지는 편인 C급. 허나 명실상부 특책과의 일원인 만큼 그 실력만은 진짜였다. 바깥에 널리고 널린 어중이떠중이 C급과는 궤를 달리했다.

한편 안수호는 어떠한가. 초인 등급은 최저 등급인 E급에 그마저도 턱걸이.

이렇다 할 경력도 없이 4년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이제 갓 경비대 일반 대원이 된 그가 과연 최진혁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기는커녕 싸움다운 싸움조차 성립되지 않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채소연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민채령만은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안수호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사흘 뒤면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일주일 전, 안수호는 그녀에게 그 말만을 남기고 사흘 동안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가 마련해준 고가의 장비들을 가지고.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디 던전에서 실전 경험이라도 쌓으려는 모양이지만, 과연 그것이 크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었다.

워낙 태도가 당당하여 보내주긴 했지만, 내심 불안했던 마음도 있었다.

허나 사흘이 지나고 안수호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곳에 더 이상 E급 초인 안수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모든 참관인이 모인 관계로 지금부터 안수호 대원의 특수대책과 전과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상념에 젖어있던 사이 심판을 맡은 4팀장의 말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던 참관인들이 일제히 침묵하며 경기장에 집중했다.

­앞서 공지해드린 대로 시험 방식은 전반적인 전투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1대1 대련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련 시간은 10분. 한쪽이 의식을 잃거나 대련 속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수준의 부상을 입었을 경우, 장외로 나가거나 스스로 패배를 시인했을 경우 그 시점에서 대련은 종료됩니다. 그 외 기타 세세한 규칙은 재학생 랭킹전의 범용 규칙을 따릅니다.

­대련의 승패와는 별개로 안수호 대원의 시험 합격 여부는 정식 참관인분들에 의한 투표로 결정됩니다. 투표권을 지니신 분은 심판인 저와 2팀장, 7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특수대책과 팀장 여섯과 일반과, 특수대책과 과장님 두 분. 그리고 경비대장님과 총장님, 이사장님까지 총 열한 분입니다.

­이상으로 사전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양 경기자는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

“……하여 두 사람은 이것이 어디까지나 평가를 위한 대련임을 주지하도록 하며, 절대로 필요 이상으로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심판이 말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대한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최진혁은 자신의 상대를 바라봤다.

‘대련이고 뭐고 신경 쓰지 말고 압도적으로 밟아버려라. 뒷감당 걱정은 하지 말고. 그런 건 내가 알아서 다 커버쳐줄 테니까.’

경기장에 오르기 전, 오태성이 했던 말이 그의 뇌리를 스친다. 민채령이 자기 마음대로 특책과를 흙발로 짓밟는 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오태성은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비단 그가 가진 민채령에 대한 반감은 그런 이유에서만이 아니었으나, 오태성이 들먹인 대의명분은 최진혁 자신으로도 여실히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를 E급 초인 따위가 감히 특책과를 넘봐?’

선민사상에 가까운 특수대책과에 대한 자부심. 에고로 똘똘 뭉친 그는 안수호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물며 자신의 상사가 직접 훔씬 두들겨 패주라고 말했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최진혁은 이번 대련에서 안수호를 문자 그대로 곤죽으로 만들 셈이었다.

최진혁이 노골적인 적대감을 담아 안수호를 노려봤다. 허나 안수호는 고개는 최진혁에게 향해 있었지만, 그는 최진혁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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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혁’의 상태창 ]

이름 : 최진혁

성별 : 남성

신장/체중/나이 : 177.1cm/78kg/26세

직업 : 아카데미 경비원

소속 :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7팀

보유 초능력 : 발경(B)

[ 능력치 ]

근력 C

민첩 C

내구 A

마력 C

기교 B

의지 A

행운 D

[ 보유 스킬 ]

1. 근접 격투(커먼. B)

2. 팔극권(레어.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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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관계자에 한한 상태창 열람 권한. 저번 지예원 퀘스트 보상으로 경비원 스킬의 등급이 D로 상승하면서 해금된 새로운 기능이었다.

‘스킬이나 초능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안 나오지만, 이것만으로 어디냐.’

쾌락천마가 설정한 보상치고는 꽤 쓸만한 기능이라며, 최진혁의 상태창을 지운 그가 이번엔 자신의 상태창을 띄웠다.

===

[ ‘안수호’의 상태창 ]

이름 : 안수호

성별 : 남성

신장/체중/나이 : 182.3cm/76.6kg/24세

직업 : 아카데미 경비원

소속 : 그린하우스 경비대 일반과

보유 초능력 : 검은 연기(D), 마력 흡수(A)

[ 능력치 ]

근력 D+*

민첩 C+*

내구 D

마력 C

기교 C

의지 E

행운 B*

1. <스킬 :="" 아카데미의="" 경비원="">의 효과로 아카데미 부지 내에서 행운이 1랭크 상승합니다.

2. <샛별의 숨소리="">의 착용 효과에 의해 근력과 민첩에 플러스 보정이 붙습니다.

[ 보유 스킬 ]

1. 아카데미의 경비원(유니크. D)

===

최진혁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능력치. 허나 본래 능력치를 생각하면 이정도로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여인혁의 근골정렬 덕에 근력, 민첩, 내구, 마력이 각각 1랭크씩 상승. 거기에 샛별의 숨소리에 의한 플러스 보정과 경비원 스킬의 행운 등급 상승까지.

비록 초라한 능력치긴 해도, 현재 그의 능력치는 그가 지금 시점에서 보유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다.

본래 자리로 돌아간 안수호가 허리춤에 패용한 대련용 검을 뽑아들었다. 대련용이라곤 해도 날이 서있지 않을 뿐 제대로 금속으로 이루어진 검이었다.

한편 최진혁은 아무런 장비도 없는 맨몸이었다. 무릎을 굽히고 손바닥을 앞으로 향한 그가 말없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긴장되는 순간. 경기장 전체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내 두 사람이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심판이, 마침내 대련 시작을 알리는 공을 울렸다.

­땡!

­쿠웅!

다음 순간, 있는 힘껏 지면을 밟은 최진혁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런 그를 향해 안수호가 검을 겨눈다. 헌데 그 자세가 조금 기묘했다.

한 손으로는 검신을, 다른 손으로는 손잡이를 쥔 채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검을 겨눈 모양새.

마치 총을 겨누는 듯한 그 자세에 최진혁이 의문을 품은 순간, 안수호의 검신이 시커먼 연기를 뿜었다.

­파앙!

“크윽?!”

야구공 크기의 검은 연기덩어리가 최진혁의 팔과 격돌했다. 고작 연기덩어리라 치부하기에는 꽤 묵직한 아픔.

“이게 무슨­.”

어찌된 영문인지 가늠하지 못한 최진혁에게 두 번째, 세 번째 연기덩어리가 짓쳐들었다.

­파앙! 파앙! 파앙!

수평으로 겨눈 검을 총신 삼아, 그의 손에서 뿜어진 연기가 총알처럼 최진혁에게 날아갔다. 가드를 굳힌 그의 몸이 천천히 뒤로 밀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데이터 상으로는 분명 평범한 연막 능력이랬는데?’

양팔을 때리는 묵직한 감각에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는 최진혁.

한편 안수호는 회심의 미소를 지은 채 계속해서 흑색 탄환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오른손 장갑의 손가락 부분이 희미한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안수호의 공격은 여명단의 암살자와 싸웠을 때의 일격을 응용한 것이었다.

탈리스만을 통해 흡수한 마력으로 쏘아내는 연기의 속도와 질량, 밀도를 높였다. 허나 그 모든 수치를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절했다. 이전처럼 일격의 반동만으로 쓰러지지 않도록.

그 때문에 일격에 담긴 위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이 약해졌으나, 그마저도 소총탄의 절반 가까이 되는 위력이었다.

면적이 커서 결정적인 살상력은 없으나, 견제로서는 더할나위 없이 충분한 위력.

이를 증명하듯 기세 좋게 달려들던 최진혁은 가드를 굳힌 채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뭐야? 최진혁이 쪽도 못 쓰는데?”

“뭘 쏘고 있는 거지? 능력의 응용인가?”

“E급 초인이래서 단번에 결판이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선방하는군. 2팀장님이 괜히 기용한 게 아니라는 건가?”

안수호의 선전에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민채령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까드득!

한편 그 반대편. 최진혁의 상사인 오태성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촌극에 이를 갈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뭐냐. 분명 데이터베이스에는 쓰잘데기 없는 D급 연막 능력이라고만 나와 있었는데!’

연기를 가속시켜 탄환처럼 쏘다니 금시초문이었다. 적어도 그가 열람했던 안수호의 정보에는 저런 사실이 적혀있지 않았다.

‘단순히 정보력이 탐나서 E급 나부랭이를 품으려 했다고 생각했건만, 나름 싸움 흉내는 낼 줄 안다는 건가.’

허나 그런 사실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민채령이 데려온 일반과 대원이 자신의 부하를 시종일관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진혁! 정신 차려라! 그래봤자 E급 초인이다! 접근만 하면 네 상대가 못 돼!”

오태성의 외침에 심판을 맡은 4팀장이 그를 째릿 노려보았다. 허나 오태성은 심판의 시선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한편 최진혁 역시 오태성과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 팀장님 말씀이 맞아. 상대는 E급 초인. 몸통에 주먹 한 방만 꽂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진혁이 발바닥에 힘을 집중했다. 그의 초능력은 발경. 특정 부위에 계속 힘을 주는 것으로 다음 일격의 위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초능력이었다.

­콰앙!

이내 집중하던 힘이 해방되고, 그의 몸이 폭발적인 기세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다. 서로간의 주먹이 능히 닿는 거리.

최진혁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제법 선전하긴 했지만 상대는 초능력에 의존하는 원거리 특화형. 접근한 이상 자신의 승리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진혁의 일장이 안수호의 명치로 빨려들어갔다.

­파앙!

동시에, 샛별의 숨소리가 붉은 빛을 발했다.

­후웅!

최진혁의 일장이 허공을 가른다.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다는 사실에 그가 경악했다. 허나 경악도 잠시, 곧바로 정신을 추스른 그가 다음 일격을 내질렀다.

­후웅!

공기를 가르는 돌려차기. 이번에도 맞지 않았다.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다음 일격을 쏘아낸다.

­쐐액!

날카롭게 뻗어진 당수. 역시 맞지 않았다.

­콰앙!

기습적으로 밟은 진각. 역시 맞지 않았다.

­팟!

재빠르게 휘두른 팔꿈치. 마찬가지로 맞지 않았다.

최진혁의 팔다리에서 수많은 연격이 뿜어져 나왔다. 본래 팔극권은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한 방에 적을 제압하는 무술. 연격은 그의 장기가 아니었으나, 그의 손발에서 터져 나오는 공격들은 하나하나가 일격필살이라 부르기 손색이 없었다.

허나 맞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닿지 못한다.

제아무리 일격필살이라 한들 적의 몸에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 쾌도적인 최진혁의 일격을 안수호는 바람 같은 몸놀림으로 전부 피해냈다.

‘말도 안 돼.’

최진혁이 안수호의 움직임을 쫓았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초보적인 움직임. 적의 수를 읽고 반응하기는커녕 눈앞에 닥쳐오고 나서야 겨우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리멸렬한 회피.

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상대는 그가 쏘아낸 모든 일격을 피해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최진혁의 뇌리에 떠오른 의문. 허나 답은 이미 그의 눈앞에 있었다.

‘말도 안 돼.’

안수호의 움직임에는 어떠한 기술도 묘리도 없었다. 그는 그저 빠를 뿐이다. 최진혁의 공격이 닿지 않는 건, 그저 그의 움직임이 안수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단순명료한 이유에서였다.

‘고작해야 E급 초인이 내 움직임에 반응한다고? 아니, 나보다 빠르다고?’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비단 당사자인 최진혁뿐 아니라 이 대련을 참관하는 모든 이가 공유하는 감상이었다.

오직 단 한 사람, 민채령만을 제외하고.

‘아직 놀라긴 이른데.’

안수호의 왼팔에서 빛을 발하는 샛별의 숨소리를 보며 그녀가 작게 웃음 지었다. 그 순간, 팔찌에 맺힌 붉은 빛이 다시 한 번 점등했다.

회피 일변도였던 안수호가 공세로 전환했다. 종횡무진 휘둘러지는 검을 피하던 최진혁이 경악했다.

‘마찬가지다. 회피와 마찬가지로 공격에도 아무런 기술이 없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휘두를 뿐.’

허나 빨랐다. 오히려 더욱 빨라졌다. 도합 4배 속도로 가속된 안수호의 검격이 최진혁의 몸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안수호와 달리 그는 무술의 달인. 가까스로 그 공세에 반응하긴 했으나 워낙 속도의 차이가 나는 터라 몇몇 일격은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진다고? 고작 E급 초인한테? 이럴 리가 없다. 이럴 리가 없어!’

­콰앙!

발바닥의 발경으로 크게 거리를 벌린 최진혁이 주먹을 뒤로하고 자세를 잡았다. 그의 손아귀에 지금까지완 비교되지 않는 힘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놈이 들어오는 순간 카운터로 발경을 먹이는 거다. 놈의 움직임은 초보나 다름없어. 지근거리에서의 카운터에 반응할 순 없겠지!’

관중석의 팀장들은 최진혁의 노림수를 알아차렸다. 단 한 번의 카운터를 노리는 것. 최선의 수는 아니더라도 결코 나쁜 수는 아니었다.

아닐 터였다.

­아.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드는 안수호를 보며, 화상통화로 대련을 지켜보던 채소연이 탄성을 뱉었다.

안수호의 몸에서 푸른빛이 일렁였다. 그의 양손에서 뿜어진 연기가 검신을 휘감고 크게 솟구친다.

­끝났네.

이내 안수호가 검을 내리친 순간.

드넓은 경기장에 새까만 밤이 찾아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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