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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1화 (21/266)

〈 21화 〉 020. 두 개의 기연(2)

* * *

갑작스레 눈앞에 나타난 천사의 존재에, 나는 허리춤에 찼던 단검을 살며시 쥐었다.

‘천사? 원작에 천사가 존재했나?’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드는 아름다운 자태.

허나 방심할 순 없었다. 조금 전까지 밀실이었던 이곳에 존재한다는 건 즉, 던전에서 발생한 괴수일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천사의 움직임을 경계하며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여차하면 탈리스만을 발동할 수 있도록.

허나 천사는 싸울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볼 뿐. 이내 반쯤 벌어진 그 입술이 차츰 떨리기 시작한다.

­떨그렁!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샛별의 숨소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자 천사가 더욱 당황한 눈치로 입을 열었다.

“아, 그. 그게.”

한없이 떨리는 목소리. 나와 마주친 천사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헤맸다.

­펄럭.

다음 순간, 제단에 웅크리고 앉은 천사가 날개로 제 몸을 가렸다. 마치 내게서 숨으려는 듯.

“……어?”

천사의 날개가 오들오들 떨렸다. 그 깃털 사이로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그러니까. 이럴 땐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메뉴얼. 메뉴얼에 분명 나와 있었는데. 어디 보자, 하위 차원의 존재와 부득이하게 접촉했을 경우 다음 다섯 가지 예시 중 하나를 선택해 기억 조작을……. 그, 그런데 저 빙의자는 이 차원의 존재가 아니잖아? 어? 그럼 어떡해야 하지?”

작고 빠르게 이어지는 목소리. 발음이 불분명해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으나, 태도로 보아 눈앞의 천사에게 적의는 없는 듯했다. 아니, 적의가 없는 걸 넘어서 꼭 겁이라도 먹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기.”

“히익!”

내 부름에 깃털이 빳빳하게 솟구치며 천사가 더욱 몸을 웅크렸다.

“어떡하지? 빙의자와 접촉한 걸 쾌락천마님께 들키기라도 하면…….”

“뭐?”

천사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에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허나 저런 특색있는 단어를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이봐.”

천사를 불렀다.

“야. 천사.”

대답이 없기에 한 번 더 불렀다.

“고개 좀 내밀어봐. 이쪽 좀 보라고.”

계속되는 부름에 천사가 날개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숫제 눈물까지 글썽이는 천사의 모습.

허나 가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 감정보다는 분노가 앞섰다.

“너 지금, 지금 뭐라고 했냐?”

“에, 예?”

“시치미 떼지 마. 분명 쾌락천마가 어쩌고 했잖아.”

단검을 빼든 채 성큼성큼 천사에게 다가갔다.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눈앞의 천사는 미지의 존재였으나, 머리에 잔뜩 열이 오른 탓에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았다.

천사가 겁먹은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허나 이곳은 사방이 막힌 공간. 채 몇 걸음도 가기 전에 벽과 마주한 천사가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덥석!

“꺗!”

천사의 멱살을 잡았다. 멱살이랄 것도 없는 얇은 복장이었지만, 대충 목 근처에 있는 옷깃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그 탓에 천사의 가슴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나,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천사는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할 의지가 없다기 보다는, 마치 저항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그 협조적인 태도에도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조금도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쾌락천마의 부하냐? 그 글싸개 놈 앞잡이가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왜, 내가 기연 챙기려니까 배알 꼴려서 그놈이 못 먹게 회수하라고 시키기라도 했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씀드릴 수 없기는 지랄.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뻔뻔한 태도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젠 하다하다 원래 존재하던 기연에까지 손을 댄다 그거지. 그 치졸한 행동에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야, 뭐 하나만 물어보자.”

“저, 저는 질문에 대답해드릴 수 없­.”

“그 새끼는 내가 시발,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나한테 이러는 거래?”

천사에게 물었다. 그깟 개연성 좀 지적한 게, 고작 덧글 몇 개, 언쟁 한 번 붙은 게 그렇게까지 나쁜 짓이냐고.

고작 그깟 이유로 멀쩡히 잘 살던 사람을 대뜸 개좆같은 세상에 빙의시키고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방해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악에 받쳐 눈앞의 천사에게 외치듯 물었으나 천사는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무, 무얼 여쭤보셔도, 저는 질문에 대답해드릴 수 없어요.”

“……하. 시발, 됐다.”

나는 있는 힘껏 단검을 내리찍었다.

­콰직!

“히익!”

천사의 머리 바로 옆 벽에 단검이 박혔다. 까득, 하고 힘을 주자 잘게 부서진 수정 조각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이렇게까지 위협했는데도 저항하지 않는다는 건, 역시 저항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건가.’

그렇다면 주도권은 이쪽에 있다. 천사의 멱살을 쥔 손에 더욱 힘을 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름은?"

"아, 아라엘이요……."

“좋아. 아라엘. 지금 당장 놈한테 연락해.”

“에, 예?”

“쾌락천마 그놈한테 연락하라고. 그놈 부하면 연락 수단 하나 정돈 가지고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직접 담판을 지을 테니까.”

“그, 그랬다간 저 죽을 지도 몰라요…….”

“아니면 지금 여기서 내 손에 죽을래?”

단검을 뽑아 목에 가져다대자 천사가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저항조차 없는 상대를 겁박하는 상황. 허나 거부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끓어오른 분노에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가치관은 이미 증발해버린지 오래였다.

“저, 저를 죽이시면!”

내가 진심이란 걸 알아차렸는지 천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저, 저를 죽이면 쾌락천마 님께서 바로 알아차리실 거예요! 다른 천사들도요!”

“그거 잘 됐네. 놈이 여기 오면 직접 담판을 지으면 되니까.”

“아니에요!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쾌락천마님은 당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요! 저 말고 다른 천사가 오지도 않을 거예요! 애, 애초에 저희 천사들은 빙의자와 접촉하는 게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그래?”

솔깃한 정보에 씨익 웃었다. 천사가 놀란 눈으로 뒤늦게 제 입을 막았으나 어쩌겠는가. 이미 들어버린 걸.

“나랑 마주치는 게 금지되어 있다고? 그럼 너 지금 완전 좆된 거네?”

“그, 그건…….”

말을 잇지 못하는 천사를 보며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눈앞의 천사는 쾌락천마의 부하. 목표는 아마 샛별의 숨소리를 회수하는 것.’

‘놈 입장에선 내가 기연을 독식하고 승승장구하는 꼴이 보기 싫었겠지. 언제나처럼 치졸한 동기군.’

‘하지만 왜 직접 나서지 않고 부하를 보낸 거지? 애초에 원작자인 놈은 이 세상에서 신과 같은 존재일 터. 굳이 부하를 보낼 필요 없이 멀리서 팔찌만 회수하거나 없애는 건 불가능한 건가?’

‘그러고 보니 쾌락천마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니라 나타날 수 ’없다‘고 했어. 그 말은 즉, 신적인 존재인 놈에게도 거스를 수 없는 제약이란 게 존재한다는 건가?’

‘생각해보면 그간 놈이 날 엿 먹이던 방식도 대부분 간접적인 방식이었지. 능력치를 나쁘게 설정하거나 퀘스트 보상을 짜게 주기는 했어도 직접적인 위해를 끼친 적은 없다.’

‘제아무리 신이라 해도 직접적인 간섭은 불가능하다. 빙의물 소설에 흔히 나오는 설정이야. 만약 실제로 그런 제약이 존재하고, 그래서 쾌락천마 놈이 굳이 직접 나서지 않고 부하를 보낸 거라면…….’

지금 상황은 쾌락천마 입장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일 터. 그렇기에 천사가 이렇게 쩔쩔매는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그려졌다.

이거, 어쩌면 샛별의 숨소리보다 훨씬 좋은 기연을 얻은 걸지도 모르겠는데.

“널 죽이면 쾌락천마가 곧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라는 건 아직 놈은 내가 너와 만난 걸 모른다는 뜻이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제대로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뭣하면 어디 한 군데 찔러서 직접 확인해보는 수도 있으니까.”

“윽…….”

천사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조금 전부터 느낀 거지만, 눈앞의 천사는 표정을 숨기는 데에 전혀 재능이 없었다. 표정만 보아도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맞아요. 그분께서도, 그리고 다른 천사들도 아직 이곳을 관측하진 않았어요. 하, 하지만 절 죽이면 당신도 멀쩡하지는 못할걸요?”

“허세는 관둬. 놈이 나한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었다면 진즉에 그랬겠지. 놈은 날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뺑이치며 구르는 꼴을 보고 싶어 하는 거거든. 그래서 이렇게 치졸하게 기연을 빼돌리려고 온 거 아냐. 안 그래?”

“…….”

“입 닫아도 소용없어. 표정에 다 드러나고 있으니까.”

천사가 떨어뜨린 샛별의 숨소리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천사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하나만 묻자. 이 팔찌의 회수를 실패하는 것과, 내게 정체를 들킨 사실을 쾌락천마에게 들키는 것. 둘 중 뭐가 네게 더 곤란하지?”

“……정체를 들킨 쪽이요.”

“그렇다면 얘기가 쉽지. 나랑 거래하지 않을래?”

“거래, 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한 천사에게 내가 팔찌를 들이밀며 말했다.

“이 팔찌는 내가 가져간다. 쾌락천마에게는 내가 먼저 가져가버려서 회수하지 못했다든가, 아무튼 적당히 변명을 지어내서 보고해. 그래준다면 나도 너를 통해서 다른 천사나 쾌락천마와 접촉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어. 물론, 네가 내게 정체를 들켰다는 사실도 함구할게.”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좋아. 추가로 다음번에도 오늘처럼 쾌락천마가 치졸한 짓거리를 벌이려고 하면 내게 미리 알려줘.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게.”

“그, 그건 안 돼요!”

천사가 필사적인 표정으로 외쳤다.

“저보고 스파이 노릇을 하라는 거잖아요? 전 그런 거 못해요! 분명 들킬 거라고요!”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그럴 수가…….”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날 24시간 내내 지켜보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처럼 아무도 안 보고 있을 때 슬쩍 알려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닌데…….”

천사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봤다. 아마 내가 자기 사정을 감안해주길 바라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빨리 판단하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을 끌다가 쾌락천마나 다른 천사한테 들킬 수도 있잖아?”

봐줄 생각 따위 없다는 듯 내가 싱긋 웃자, 천사의 표정이 더욱 착잡하게 물들었다.

***

백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신전.

­우우우웅.

일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신전 앞에 푸른 색으로 빛나는 게이트가 출현했다.

그 안에서 한 명의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막 게이트를 통과한 천사, 아라엘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살며시 게이트를 돌아봤다. 게이트 너머에 펼쳐진 화려한 수정동굴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겁박하던 빙의자는 이미 떠난 뒤였다.

복받쳐 오르는 설움에 아라엘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세상의 창조주를 도와 세상을 관리하는 열셋의 천사들. 그중에서도 아라엘은 천사가 된지 얼마 안 된 막내 천사였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으로 내려진 임무가 바로 이번 ‘샛별의 숨소리’의 회수였다.

샛별의 숨소리는 지금이 아닌 먼 미래에 사용되도록 안배된 요소. 지금 시점에 등장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임무를 전달해준 천사로부터 이번 일의 중요성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절대로 실패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허나, 그녀는 실패했다.

그것도 그냥 실패한 것도 아니고, 절대로 마주쳐서는 안 될 빙의자에게 정체가 들키면서까지.

아라엘의 몸이 덜덜 떨렸다. 만약 자신의 언니들이나, 혹은 자신을 천사로 만들어준 창조주께서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엄벌을 면치 못하리라.

특히 안수호는 창조주께서 유독 각별한 관심을 쏟는 빙의자. 최악의 경우 존재의 소멸마저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차라리 마주치자마자 게이트를 열고 도망칠걸. 그랬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천사는 하계의 존재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칠 수 없다. 결코 어길 수 없는 세상의 법칙이었다. 그나마 관리자의 권능으로 기억을 지우는 등 정신에만 영향을 주는 건 가능했으나, 그마저도 빙의자인 안수호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판단은 재빨리 내빼는 것이었다. 허나 이제 와서 제대로 판단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이미 그에게 들켜버린 뒤인데.

“아라엘? 돌아왔군요.”

그때,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아라엘이 고개를 돌렸다. 곧 그녀의 표정이 더욱 착잡하게 물들었다.

“처음으로 가본 하계는 어땠나요? 첫 임무라서 무척 들떠있었잖아요. 감상을 들려주실래요?”

새하얀 설원 같은 흰색 단발머리에 이지적인 빛을 띤 금빛 눈동자. 머리 위에는 아라엘의 것보다 더욱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헤일로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라미엘 언니…….”

라미엘. 열셋의 천사들 중 두 번째 위계에 속한 그녀가 바로 아라엘에게 이번 임무를 내린 장본인이었다.

그녀를 마주하자 아라엘의 몸이 자연스레 떨렸다. 같은 천사라 하더라도 위계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했다. 하물며 지금 그녀는 임무에 실패한 상태. 아라엘의 유약한 성품으론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라엘. 왜 그렇게 떨죠? 무슨 일인가요?”

“그, 그게…….”

아라엘이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숨길 수도 없는 일, 이실직고하자는 심정으로 아라엘이 임무 실패에 대해 보고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안수호를 만났다는 것만은 보고하지 않았다. 라미엘에게는 안수호의 조언대로 ‘빙의자가 먼저 다녀가서 팔찌를 회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과연. 그렇게 되었군요.”

보고를 마친 아라엘이 라미엘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반응에 따라 자신의 처우가 결정되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천사임에도 불구하고 손아귀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실패한 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고생했어요. 아라엘.”

“어, 네?”

예상 외로 담백한 반응에 아라엘이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아라엘이 실패한 건 빙의자가 미리 던전에 다녀갔기 때문이죠? 회수 시간을 지정한 건 아라엘이 아니라 저예요. 아라엘은 제 말에 따른 것뿐이니, 이번 실패는 결국 제 책임이라 할 수 있겠죠.”

“라, 라미엘 언니?”

“그러니 아라엘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쾌락천마님께도 제 불찰이었다고 말씀드리죠. 첫 임무 수고했어요, 아라엘. 많이 긴장했을 텐데 이만 돌아가서 편히 쉬세요.”

당연히 엄벌에 처하리라 생각한 아라엘은 이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후 라미엘이 두 번이나 더 괜찮다고 말해준 뒤에야 얼떨떨한 얼굴로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힘없는 몸짓으로 저 멀리 날아가는 아라엘을 보며 라미엘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아라엘에겐 미안한 짓을 했군요. 첫 임무를 실패한 경험은 평생 그녀에게 상처로 남을 테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라엘이 아닌 다른 천사였다면, 설령 회수 타이밍을 늦게 지정했다 하더라도 결코 임무에 실패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마 이번 일의 책임을 문 저는 당분간 근신에 처하겠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어요. 앞으로 예정된 고난을 그가 이겨내기 위해선, 샛별의 숨소리만은 반드시 그에게 가야만 했으니까요.’

라미엘은 아라엘이 임무에 실패할 것이라 믿고 그녀에게 임무를 전달했다. 설마 그 와중에 천사의 존재마저 들키게 될 거라곤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천사의 존재와 천사나 쾌락천마가 그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것.

그 지식은 안수호에게 앞으로 중요한 판단 잣대가 되어줄 것이다. 뭐가 되었든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라미엘로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라미엘이 천사의 권능으로 하계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던전을 빠져나온 안수호의 팔에는 샛별의 숨소리가 채워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라미엘이 진한 미소를 지었다.

‘부디, 열심히 발버둥 쳐주시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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