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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20화 (20/266)

〈 20화 〉 019. 두 개의 기연(1)

* * *

첫 번째 기연을 회수하기 위해 나는 설악산 자락에 위치한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에는 폐쇄형, 침식형, 이계형의 세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먼저 폐쇄형 던전은 던전 중에서도 가장 흔한 던전으로, 게이트 너머에 동굴과 같은 폐쇄된 형태의 던전이 존재하는 경우다.

여타 헌터물과 마찬가지로 던전 최심부의 ‘주인 괴수’를 무찌르면 던전이 소멸되며, 던전이 오랜 시간 방치되면 내부의 괴수가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크라이시스’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다음으로 침식형 던전은 게이트를 중심으로 일정 범위가 던전에 침식되어 던전으로 바뀌는 경우다. 던전 중앙의 게이트 너머에 마찬가지로 주인 괴수가 존재하며, 이를 무찌르면 침식이 풀리고 주변 환경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이계형 던전. 이계형은 게이트 너머에 아예 다른 세상이 연결된 경우로, 가장 발생 빈도가 낮은 던전이었다. 국내에는 단 두 건만이 존재하며, 게이트를 닫을 방법이 없기에 게이트 주변은 늘 군대와 헌터가 상주하며 흘러나오는 괴수를 사냥하고 있다.

그중 내가 오늘 목표로 한 던전은 폐쇄형 던전이었다. 허나 평범한 폐쇄형 던전과는 조금 달랐다.

던전 식별 코드 GW­CL­1785­C.

통칭 설악던전이라 불리는 이 C등급의 폐쇄형 던전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에 주인 괴수가 사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멸하지 않은 던전이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형태의 던전이라며 떠들썩했지만, 특이한 점은 어디까지나 그뿐.

던전 안에선 여전히 괴수가 자연 발생했으나, 주인 괴수가 죽은 탓인지 그 빈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실험 결과 크라이시스 또한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에 따라 설악던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식어갔다. 지금 와서는 사실상 거의 방치된 실정이며, 기껏해야 월 1회 협회 직원이 내부 점검을 하는 정도.

이따금 주변 아카데미의 수업 자료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으나, 일선 헌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던전. 그것이 설악던전의 현주소였다.

‘도착했다.’

산 중턱에 인공적으로 마련된 공터.

그 한복판에 을씨년스럽게 일렁거리는 파란 게이트를 보며 나는 민채령에게 받아온 장비를 점검했다.

전체적인 움직임을 보정해주고 근력을 증가시켜주는 엑소머슬 슈트.

표준형 코트보다 방호 소자를 압축해서 코팅한 D형 디펜시브 코트.

A급 괴수 안타레스의 발톱으로 만든 단검과, 대괴수용 철갑탄을 발사할 수 있는 가우스 라이플.

하나하나가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억을 호가하는 장비들을 보며, 나는 새삼 민채령의 수완에 혀를 내둘렀다.

‘하나라도 망가지면 월급에서 깐다고 했으니 조심해서 써야겠군.’

온몸에 두른 고가의 장비가 부담스러웠으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내 스펙으로 C급 던전 입장은 무리였다.

­우우우웅.

장비 점검을 마치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자,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일변했다.

던전은 넓은 동굴 형태였다. 햇빛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지만, 동굴 곳곳에 박힌 푸른 수정이 밝은 빛을 발해준 덕에 시야는 전혀 어둡지 않았다.

“와.”

마치 ‘이것이야말로 판타지 세계의 동굴이다!’하고 주장하는 듯한 신비로운 풍경.

새삼 내가 있는 세상이 원래 세상과는 동떨어진 판타지라는 걸 상기하며, 나는 동굴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케르륵?”

얼마나 들어갔을까, 동굴 모퉁이를 도는 순간 자그마한 체구의 녹색 괴물과 눈이 마주쳤다.

‘고블린인가.’

어린아이 정도 크기에 말랐지만 근육으로 뒤덮인 몸. 손에는 조악하게 만든 몽둥이가 쥐어져 있었다.

“키아악!”

고블린이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둥!

억제된 총성과 함께 7mm 철갑탄 세 발이 놈의 몸에 박혔다. 시뻘건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이 외마디 신음을 뱉으며 절명했다.

보통 헌터물 세계관에선 현대 병기가 무용지물로 나오곤 하지만 에선 그렇지 않았다. 고블린 같은 E급 괴수는 묘하게 SF틱한 작중 과학 병기 앞에 맥없이 갈려나가는 역할이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E급이나 D급의 약한 괴수의 경우.

C급 괴수 정도만 되어도 보병 레벨에서 운용하는 철갑탄 정도는 가뿐히 씹어 먹을 정도로 강해지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초인으로 이루어진 헌터가 필수 불가결했다.

­키이익?

가령,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갑옷도마뱀’처럼.

갑옷도마뱀은 대형견 정도 크기의 전신이 두꺼운 금속제 갑각으로 뒤덮인 C급 괴수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놈의 갑각은 어지간한 총알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저런 괴수의 처리야말로 강인한 신체와 초능력으로 무장한 초인 헌터의 몫이었다.

­파바바바밧!

갑옷도마뱀이 자세를 낮춘 채 내게 달려들었다. 둔중해 보이는 몸과 달리 그 움직임은 무척 날랬다.

놈을 상대로 총은 소용없다. 나는 곧바로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E급 초인인 내가 C급 괴수를 근접전으로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허나 민채령을 통해 전신에 둘둘 두른 현질템들이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팟!

갑옷도마뱀이 날카로운 이빨을 앞세우고 내게 달려들었다.

­콰직!

다음 순간, 쩍 벌어진 놈의 주둥이가 내 왼팔을 물었다.

“크으윽!”

팔이 뒤틀리는 듯한 아픔. 허나 놈의 이빨은 판매가 2억 5천만 원짜리 D형 디펜시브 코트의 방호를 뚫지 못했다.

“현질 만세다 이 자식아!”

악에 받쳐 외치며 놈의 눈알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키이이이이익!!!

“크으으으으!!”

놈이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흘리며 더욱 내 팔을 꽉 물었다. 나 역시 찔러넣은 단검을 휘저으며 놈의 머릿속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살이 짓이겨지는 징그러운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키이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의 몸이 축 늘어졌다. 단검을 빼낸 나는 곧바로 왼팔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이런 시발.”

디펜시브 코트와 엑소 머슬. 두 겹으로 보호받았음에도 왼팔에는 이빨 자국을 따라 시퍼런 피멍이 들어 있었다. 만약 맨몸이었다면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팔이 뜯겨나갔겠지.

‘생각보다 빡센데 이거.’

그나마 한 마리여서 다행이었지 둘 이상이었으면 고작 피멍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으리라.

탈리스만을 사용한다면 몇 마리가 몰려오든 간단히 무찌를 수 있겠지만, 가급적이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탈리스만은 반동이 심한 필살기 개념. 괴수가 몇 마리 나올지 모르는 이상 함부로 남발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 몸뚱이로 잡을 수라도 있는 게 어디냐.’

E급 나부랭이가 C급 괴수를 잡아낸 것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장비 점검을 마친 나는 다시 동굴 안쪽으로 향했다.

이후 고블린 두 마리, 거대박쥐 두 마리, 갑옷도마뱀 한 마리와 추가로 조우했다. 다행히 갑옷도마뱀 무리를 만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나는 심각한 상처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굴 중간에 나타난 넓은 공동.

그 공동 구석을 살피자 반쯤 무너져내린 석조 제단이 있었다.

이 제단 너머에 숨겨진 방으로 향하는 샛길이 있다.

무릇 헌터물에서 동굴 형태를 한 던전의 숨겨진 방에는 전통적으로 기연이 잠들어있는 법.이는 그간 발표된 무수한 헌터물 웹소설을 통해 증명된 법칙이었다.

가령 영혼을 조종하는 마녀의 은신처라든가, 원하는 대로 형태가 바뀌는 무기라든가, 흑마법사가 비밀리에 개발한 수수께끼의 심장이라든가, 그림자군단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전직서라든가.

당장 떠오르는 사례만 수십 가지였으며, 초인들의 시대 역시 그 법칙의 예외는 아니었다.

설악던전은 원작 초반부 던전 실습 에피소드의 배경이었다.

괴수와 싸우던 중 우연히 제단이 있던 동굴 벽이 무너지고, 이를 통해 드러난 샛길에 홀로 들어간 주인공은 던전의 숨겨진 방에서 팔찌 형태의 아티팩트를 발견하게 된다.

거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기연 발견 에피소드겠지만, 어디 쾌락천마가 그런 클리셰 대로의 내용을 썼겠는가.

주인공이 팔찌를 들고나오자 대뜸 ‘진철’이라는 비호감 남캐 한 명이 던전 실습의 원칙 따위를 내세우며 주인공을 막아섰다.

곧 진철은 주인공이 발견한 팔찌를 뺏어 그대로 교수에게 제출했다. 실습 도중 자신과 주인공이 발견한 아티팩트랍시고.

‘그때 덧글창이 아주 난리가 났었지.’

진철인지 뭔지 저 트롤 자식은 뭔데 나대냐.

쟤 때문에 하차 마렵다. 당장 죽여라.

죽이더라도 아주 끔찍하고 잔혹하게 죽여라.

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작스레 등판한 트롤 캐릭터에 독자들은 온갖 아우성을 쳐댔지만, 그 비호감 남캐는 이후로도 잊을만할 때마다 등장하여 착실히 비호감 스택을 쌓았다.

그리고 그 끝은 겨울방학의 여명단 습격 에피소드 때 살기 위해서 여명단으로 전향.

애초에 캐릭터 자체가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쫓는 캐릭터였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진해서 빌런 조직으로 전향해준 덕에 이후 주인공이 거리낌 없이 놈을 죽일 수 있었다는 점일까.

‘이 세상에선 아직 살아있을 텐데. 미리 죽여야 하나.’

학생 때야 비호감 짓을 제외하면 별다른 사건도 일으키지 않던 놈이지만, 여명단 전향 이후에는 사사건건 주인공을 귀찮게 했었지. 죽일 수 있다면 죽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

허나 한편으로는 그 캐릭터 덕분에 내가 이 기연을 거리낌 없이 취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만약 이게 주인공이 먹을 기연이었다면 뒷맛이 찝찝했을 테니까.

‘가뜩이나 탈리스만도 뺏어버렸는데, 다른 기연까지 뺏을 수는 없지.’

진철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제단으로부터 스무 걸음정도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슈오오오오.

오른손의 장갑을 벗고 탈리스만을 발동했다. 곧 뜨거운 감각이 오른팔을 타고 올라 심장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원작에선 주인공의 탈리스만을 발동한 일격에 동굴 벽이 무너졌다. 공교롭게도 그 탈리스만은 지금 내게 있었으니, 같은 방식으로 벽을 무너뜨리면 될 터.

“크윽!”

내장을 휘젓는 듯한 고통에 이빨을 악물며, 한계까지 압축한 마력을 오른손에 거머쥔 채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아앙!!!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터져나온 검은 연기가 동굴 벽을 강타했다.

­콰르르르르르!

온 사방이 진동했다. 흙먼지가 일고 천장에 매달려 있던 종유석이 떨어졌다. 몸을 숙이며 두 팔로 머리를 보호한 채, 나는 능력을 해제하여 눈앞을 가득 채운 연기를 지웠다.

지근거리에서의 폭발에 동굴 벽은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있었다. 어찌나 폭발의 위력이 강력했는지, 바닥에서부터 이어진 거대한 균열은 동굴 천장까지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의 중앙에, 사람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샛길이 있었다.

‘빙고.’

저 샛길이 바로 원작에 나왔던 그 샛길일 터. 나는 망설이지 않고 샛길 안으로 들어갔다.

“크흠.”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비릿한 피 맛에 마른 침을 삼켰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반동이 찾아왔으나 그 강도는 이전보다 덜했다. 폭발의 위력도 그전보다는 약했던 걸 보면 무의식중에 힘 조절을 성공한 것이리라.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샛길을 나아갔다. 곧 손에 거머쥘 기연의 존재에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 샛길 너머에 있는 팔찌는 후에 ‘샛별의 숨소리’라 불리는 1급 아티팩트로, 효과는 기본적인 힘과 순발력의 증강과 더불어 하루 세 번에 한해 사용자의 움직임을 잠시간 2배 속도로 가속하는 것.

기본 효과도 효과지만 발동 효과는 원작 후반부에서도 활약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원작자 피셜 이 팔찌를 주인공이 가졌다면 원작 전개가 여럿 바뀌었을 거라 할 정도로.

'다른 건 몰라도 샛별의 숨소리는 무조건 내가 먹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샛길이 끝나고 거대한 수정들로 뒤덮인 자그마한 공간이 나타났다.

온 사방이 수정에서 뿜어진 빛으로 가득했다. 갑작스레 밝아진 시야에 눈을 찡그리며 그 안을 둘러보았다.

그 한복판, 수정으로 이루어진 제단 위에는 새하얀 날개를 늘어뜨린 아름다운 천사가…….

“어?”

순간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제단 위에 자리한 천사는 여전히 그곳에 존재했다. 신기루나 헛것 따위가 아니었다.

천사와 눈이 마주친다.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천사가 스윽 하고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등 뒤로 숨겼다.

붉은 보석이 박힌 은색 팔찌를.

그걸 본 순간 내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이런 시발.”

정신차렸을 땐 이미 입술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너 뭐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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