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018. 경비대장 김수현
* * *
경비대장이 안수호의 인사이동을 반려했다.
그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그가 듣기 하루 전.
경비대장실이 위치한 5층 복도를 거친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여성이 있었다.
벌컥!
경비대장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언짢은 표정의 민채령이 안으로 들어섰다.
“왔군.”
마치 자신의 등장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여유로운 태도. 민채령은 아니꼬운 눈으로 눈앞의 경비대장, 김수현을 바라봤다.
김수현은 30대 초반의 미청년이었다. 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단정하게 뒤로 넘긴 앞머리 아래로는 뭇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남성미 넘치는 이목구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허나 그의 외모 따위 민채령은 아무래도 좋았다.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라도 한잔하겠나?”
“김수현.”
“쯧. 아무리 단둘이 있을 때라도 직장에선 제대로 직함으로 부르라고 했을 텐데.”
“됐고. 왜 반대한 거야?”
민채령의 날 선 물음에도 김수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의 건방진 태도가 그는 이미 익숙했다. 여유롭게 커피포트와 잔을 챙기는 그를 보며 민채령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내 말 안 들려? 왜 반대한 거냐고 묻잖아!”
“뭘 그리 급하게 묻나. 일단 좀 앉지.”
소파에 앉은 채 커피를 따르는 그를 보며 민채령은 별수 없이 그 맞은편에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잔을 바라보며 김수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인사이동 건으로 온 거지? 이름이 안수호랬나? 분명 네 독단으로 면접에서 멋대로 합격시켰던 일반과 신입이었지.”
“내가 아니었더라도 합격은 했을 거야.”
“그래도 네가 멋대로 행동했다는 건 변하지 않지.”
“그래서 뭐? 이제 자중 좀 하라고? 그래서 인사이동 신청을 반려한 거야?”
“그 이유도 맞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럼?”
언짢은 기색이 역력한 민채령. 그에 비해 김수현은 시종일관 초연한 태도였다. 마치 현세를 초월한 현자처럼, 답을 닦달하는 민채령의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느긋하게 커피를 즐겼다.
“빨리 말해. 그거 말고 또 무슨 이유가 있는 건데?”
“7팀장을 앞세워 몇몇 팀장이 이번 인사이동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난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준 것뿐이야.”
“7팀장이?”
민채령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녀의 입에서 분노에 찬 한숨이 새어 나왔다.
특수대책과 7팀장. 오태성.
민채령과 입사 동기인 그는 팀장으로서 승승장구하는 민채령에게 심한 반감과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비록 민채령이 여러 인맥을 등에 업고 있다곤 하나, 팀장이 된 이래 지금까지 맡은 모든 업무를 훌륭하게 성공해낸 그 실력만은 진짜였다.
또한 자신의 인맥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경우도(이번과 같은 인사이동 건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보니, 다른 대원들은 민채령을 껄끄러워할지언정 노골적으로 반감을 품진 않았다.
허나 오태성만은 유독 민채령을 싫어했다.
동기라서 비교당하기 쉬웠던 탓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던 것인지.
그는 그녀의 업적을 전부 인맥빨, 낙하산이라고 음해하며 그녀가 벌이는 짓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훼방을 놓곤 했다.
이번 일도 같은 맥락이었다. 제멋대로 공채 합격자를 정한 것도 모자라, 다른 과 인원을 멋대로 차출하는 민채령의 월권행위에 그가 제대로 들고일어난 것이었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오태성이 귀찮게 구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오태성 그 녀석이 내 일에 트집 잡는 거야 그렇다 쳐도. 다른 팀장들도 반대했다고?”
“그래. 구체적으로는 5, 8팀 팀장이 반대했지. 명확히 의사를 표한 건 그 셋이 끝이지만, 아마 잠자코 있으면서 탐탁지 않게 여기는 팀장은 더 있을 거다.”
“이제 와서 왜? 내가 내 마음에 드는 애들 여기저기서 찾아다 내 밑에 두는 거, 이제 다들 익숙해지지 않았나?”
“익숙해지기야 했다만 이번엔 조금 선을 많이 넘었지.”
“……선을 넘었다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민채령이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작년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향후 진로 설문조사에서 우리 특수대책과가 몇 위를 했는지 알고 있나?”
“……글쎄. 한 10위쯤?”
“6위다. 헌터 길드를 제외하면 단연 1위고.”
“그거 대단하네.”
“대단하지. 누가 뭐라든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카데미의 최정예 전투부대니까. 단순 수익은 상위 길드에 밀리더라도 사회적 위상이나 명성은 결코 뒤지지 않아. 당연한 결과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특수대책과에 들어오기에, 그 안수호라는 놈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
김수현의 단호한 말에 민채령이 입을 다물었다. 그가 지적한 부분은 그녀 역시 염두에 두고 있던 문제였으니까.
“안수호. 초인 등급은 최하인 E급. 그것도 겨우 턱걸이. 심지어 근력이나 신체 강도는 기준치 이하지. 게다가 초능력조차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단순 연막. 이런 초인 같지도 않은 초인이 특수대책과에 어울릴 거라 생각하나? 고작해야 일반과 말단 대원이 한계겠지.”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전투력은 다소 부족할지 몰라도, 안수호에게는 뛰어난 정보력이.”
“특수대책과는 전투 부대지 첩보 부대가 아니다. 뛰어난 정보력이 끝이라면 굳이 특책과에 올 필요는 없지. 네가 데리고 있는 경비대 바깥의 다른 부하들처럼 쓰고 싶을 때 쓰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일반과 과장이 나 아니꼽게 생각하는 거 알잖아. 어차피 내가 품으려는 아이야. 편하게 서류상으로도 내 밑으로 두겠다는 게 뭐가 어때서?”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 월권행위다.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른 대원들은 다르지. 그리고.”
길게 말해 목이 탔는지 김수현이 잔에 든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뜨뜻한 감각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위장을 채웠다.
“사실 월권이니 원리원칙이니 하는 건 부차적인 문제다. 제일 중요한 건, 이번 인사이동에 대한 특책과 내부의 여론 자체가 좋지 않다는 점이야.”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 아카데미, 그린하우스.
그리고 그 그린하우스의 최정예 전투부대이자, 대한민국 국내라면 경찰에 준하는 활동 권한을 지닌 경비대 특수대책과.
소속 대원은 전원 제 나름대로 특책과에 대한 자부심이나 엘리트 의식을 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도 모를 E급 초인이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사실이, 그들로서는 아니꼬울 수밖에 없었다.
김수현이 지적한 부분은 바로 그 점이었다.
“직접 들고 일어난 건 팀장 세 명이지만, 그 의견에 동조하는 숫자는 결코 적지 않겠지. 경비대장으로서 그들의 의견을 난 결코 무시할 수 없어.”
“그걸 왜 네가 판단하는데? 특책과의 일은 특책과에 맡겨두면 되잖아.”
“직책은 경비대장이어도 나 역시 특책과 출신이니까. 그리고 지금 특책과장은 이런 정치적인 일에는 아예 나몰라라잖나.”
특수대책과가 전투부대라는 걸 증명하듯, 현재 특책과 과장을 맡고 있는 남자는 뼛속까지 전투광인 자였다. 복잡한 사내 정치니, 여론이니 하는 건 그의 관심 밖이었다.
그 점을 알기에 민채령은 무어라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하지 않았으나, 눈앞의 경비대장을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을 받던 김수현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돌연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네 안목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 안수호라는 대원도 네가 눈독을 들인 자이니 분명 뛰어난 구석이 있겠지. 하지만 채령아. 모든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너도 알잖냐. 내가 네 응석을 받아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거.”
“응석이라니? 네가 봐주는 편의 이상으로 난 성과를 내고 있어. 그런데 뭐가 문제인데?”
“그런 부분이 응석이라는 거야. 아무리 성과가 따라온다 한들, 본래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
정론이었기에 민채령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얼굴엔 불만을 품은 기색이 역력했다.
스스로 능력이 뛰어나다 자부했다. 또한 인맥 역시 능력의 일부라 생각했다.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걸 전부 이용해서 결과를 내는 것이 도대체 어디가 잘못되었던 말인가.
언짢은 표정의 그녀가 말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시럽이 잔뜩 들어간 그녀 취향의 달달한 맛. 그 친절함조차 지금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민채령이 지긋이,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김수현이 민채령의 편의를 봐주는 것을 그는 응석이라 표현했다. 그 단어 선택에서 드러나듯, 김수현은 민채령에게 나름대로 호의를 품고 있었다.
비록 이번엔 그녀의 결정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형태가 되었으나, 평소의 그였다면 팀장급이 반발하든 말든 방관했을 것이다. 특책과의 일은 특책과장이 해결하라며 적당히 모른 척했겠지.
이번에 그가 나선 건 어디까지나 과 전체의 여론이 좋지 않았기에 총대를 멘 것일 뿐.
“결론은 안수호의 능력이 부족한 탓에 특책과 내 여론이 나빠서 인사이동을 허락할 수 없다. 그거지?”
즉, 안수호에 대한 나쁜 여론만 해결하면 된다는 소리였다.
“오태성이랑, 그 외 나머지 팀장들한테 전해. 안수호는 내가 책임지고 어엿한 초인으로 키워내겠다고. 그럼 되는 거 아니야?”
“채령아.”
“결국 여론이 문제라는 거잖아. 그럼 그 여론만 해결하면 되겠네. 그럼 너도 불만 없는 거 아니야?”
“민채령.”
“내 말이 맞잖아. 그리고 너도 알고 있을 거 아냐? 내가 한다면 반드시 하는 사람이라는.”
“……도대체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냐.”
그 말에 민채령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서두른다고?”
마치 못된 장난을 들킨 아이처럼 민채령의 시선이 파르르 떨렸다. 그런 그녀를 김수현이 착잡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는 민채령에게 나름대로 호의를 품고 있었다. 품고 있었기에, 요즘 들어 유독 여유가 없는 그녀의 모습이 걱정되었다.
“네가 인재에 대한 집착이 강한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만, 최근 들어 유독 더 심해진 것처럼 느껴지면 내 착각인가?”
“……심해졌다니? 딱히 모르겠는걸.”
“작년 가을부터인가. 온갖 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람을 모으기 시작하지 않았냐. 거들떠보지도 않던 일반과 면접에 면접관으로 들어간 것도 그렇고. 뭐가 그리 급한 거지?”
민채령은 문무양도 뛰어난 초인이었다. 개인으로서도 능히 입신양명하여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겠지.
허나 그녀는 개인으로선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이 세상에 잔뜩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을 모았다. 고위급 인사들과 연줄을 트고, 실력 있는 자들과 친분을 다지고, 채 개화하지 않았으나 싹수가 보이는 이들은 직접 거둬 지원해 부하로 삼았다.
특히 민채령이 중요시하는 것은 직접 키워낸 부하들이었다. 앞선 다른 인맥들과 달리, 은혜를 입히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키워낸 부하들은 보다 끈끈하게 그녀와 이어져 있었으니까.
그렇게 닥치는 대로 모은 연줄이, 동료가, 부하들이 곧 그녀가 가진 힘이요, 능력이자, 언젠가 그녀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 난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리라.
그것이 민채령이 인재에 집착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김수현은 그러한 이유를 대강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그가 보기에도 요즘 민채령은 유독 급해 보였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내게 말을.”
그렇기에 김수현은 순전히 걱정되는 마음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으나.
“아니.”
민채령은 그런 그의 호의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안수호를 내 밑으로 보내줘. 여론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아서 한다니. 사내 여론이란 게 한 사람이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팀장급만 납득시키면 그 이하 일반 대원들은 알아서 침묵하겠지.”
“쉽지 않을 거다. 너도 알겠지만 안수호 대원은 고작해야 E급 초인이야. 단기간에 그를 특책과에 어울리는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건 불가능해.”
“나도 알아.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는 거야.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본래의 안수호라면 그랬겠지. 허나 그에게는 이제 탈리스만이 있었다.
며칠 전, 채소연의 보고를 통해 전해 들은 안수호의 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현장 검증과 은폐를 맡은 그녀의 부하들도, 그 흔적이 마치 전쟁을 방불케할 정도라며 혀룰 내둘렀다.
그 압도적인 무력의 편린만 보여줘도 오태성을 제외한 나머지 팀장들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게 되리라.
“김수현. 너는 자리만 마련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제 할 말만 마친 민채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민채령.”
“분명 말했어.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쾅!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민채령이 경비대장실을 나갔다. 세게 닫은 문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우우.”
민채령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김수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그녀의 행태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면서도, 한편으로는 평소대로의 모습이었던지라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다만, 반말은 그렇다 쳐도 호칭마저 정 떨어지게 이름 석 자로 부르는 건 조금 섭섭했다.
‘……정말죽어도 오빠라고는 부르지 않는구나.’
이복 여동생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그가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서 그 결과, 팀장급 대원의 입회 하에 제 자질을 시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거군요.”
“맞아. 날짜는 2월 28일 금요일. 학기 개강 전 마지막 평일이야.”
그 날이 아니면 팀장급이 다 같이 시간이 나는 날짜가 없다고 민채령이 덧붙였다.
‘정석이라면 정석적인 전개인데…….’
아카데미 입학 직후 치러지는 테스트. 여러 아카데미물에서 익히 봐온 전개였다. 학생이 아닌 경비대 대원으로서 테스트를 받는다는 차이만 제외하면.
“시험 내용은 뭡니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어. 하지만 아마 전투와 관련된 능력을 평가하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다행이라 해야 할지.
이쪽은 여전히 전투에 있어선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지만, 시험 방식에 따라선 탈리스만을 활용해 손쉽게 통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남은 기간은 일주일 정도. 이제 와서 훈련으로 네 신체 스펙을 끌어올리는 건 무리야. 그러니.”
“실전 압축 경험으로 빠르게 센스를 갈고 닦는다. 뭐 그런 거 아닙니까?”
“눈치는 있네. 바로 맞췄어.”
이 역시 소설에서 익히 본 전개였다. 시간이 촉박할 때의 수련은 으레 훈련을 빙자한 실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단, 내 경우는 그런 훈련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게 문제였다.
전투의 ‘ㅈ’ 자도 모르는 현대인을 일주일 정도 험하게 굴린다 한들 무슨 성장이 있고 성취가 있겠는가.
민채령이 나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였으나, 장담하건대 내 자질은 그녀의 평가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고로, 일주일간의 훈련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다만, 빙의자에겐 빙의자만의 방식이 있는 법이었다.
“더 좋은 방법?”
“예.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물건을 준비해주시고, 제게 사흘 정도만 시간을 주시면 됩니다.”
“무슨 물건이 필요한데?”
내가 필요한 물건 목록을 읊기 시작함에 따라, 그녀의 표정이 점차 아리송해져 갔다.
“어…….”
이내 목록을 다 들은 민채령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어디 던전이라도 들어가서 폐관 수련이라도 할 생각이니?”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하며 반신반의하며 물은 듯했으나, 나는 그 질문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비슷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원작의 기연들을 챙기러 갈 생각이었다.
헌터물 특성상 대부분의 기연은 전인미답의 던전 내에 존재한다. 그동안은 던전을 답파할 능력이 없어 손가락만 빨며 구경하던 기연들.
허나 이번에 얻은 탈리스만의 능력과, 민채령의 전폭적인 지원만 있다면 충분히 노려볼 만했다.
“사흘 뒤에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사흘 뒤면 더 이상 E급 초인 안수호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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