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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7화 (17/266)

〈 17화 〉 016. 막간

* * *

한성 그룹 소유의 안전 가옥은 말이 안전 가옥이지 거의 호화 저택이나 다름없었다.

척 봐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수천을 호가하는 명품 가구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고급품이었으며 심지어 화장실 휴지조차 달달한 냄새가 났다.

그런 고급 양옥의 주방에서 편의점에서 사온 레토르트 죽을 데우고 있으니, 참 기분이 묘했다.

‘고용인을 구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본래는 안전 가옥 이용 시에 배당되는 고용인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전부 퇴거한 상태였다. 범죄자 신분인 지예원을 사정을 모르는 민간인에게 노출시킬 수는 없었으니까.

덕분에 이 넓은 양옥에서의 청소, 빨래, 요리 등의 가사 작업은 모두 내가 맡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민채령은 팀장 일이 바쁘고, 채소연은 가사 관련해선 완전 젬병이었으니.

참고로 경비대 측에선 민채령의 요청으로 일시 차출, 다른 현장으로 파견나간 걸로 처리되어 있었다.

다른 부서 인원을 멋대로 차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채령이 가진 막강한 권한을 알 수 있었다.

“뭐해?”

고개를 돌리자 근무복 차림의 채소연이 주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왔어? 지금 죽 데우는 중.”

“죽? 아, 걔 드디어 일어났나보네?”

채소연은 본래보다 10cm 가량 작아진 상태였다. 원래는 내 가슴 근처까진 왔으나, 지금은 명치보다도 아래였다.

그녀의 체구가 줄어든 건 용화 능력의 부작용 탓이었다. 채소연의 초능력은 그 강력함만큼이나 페널티도 심했으므로.

일단 그녀는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평소부터 힘을 비축해놔야 한다. 그녀의 체구가 유독 작은 것도, 평소 신체능력이 초인치고 약한 것도 다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힘을 비축했다가 능력을 사용한다 한들 유지시간은 고작 10분 남짓.

제한시간이 지나면 능력이 강제로 풀리고 신체 능력이 극도로 약해진다.

이번에는 아주 잠깐, 시간으로 따지면 1분 남짓만 발동했던 터라 체구만 좀 줄어드는 걸로 끝났지만. 시간을 전부 사용할 경우 아예 유아체형으로 변하며 신체 능력도 초등학생 여아 수준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말 그대로 단 한 순간, 단 한 번의 전투만을 위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능력.

원작의 용화 능력자들도 이런저런 페널티가 있긴 했지만, 그녀의 경우엔 유독 심한 편이었다.

‘……혹시 지능이 딸리는 것도 능력의 부작용인가.’

차마 본인에게 물을 순 없었다. 나중에 민채령한테나 넌지시 물어보든가 해야지.

하여튼, 안 그래도 작은데 더욱 작아진 채소연은 어디로 보나 동네 꼬맹이 그 자체였다. 그녀의 본래 신체에 맞췄던 근무복조차 품이 넓어서 꼭 언니 옷을 뺏어 입은 여동생 같았다.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내 곁에 다가온 채소연이 날 올려다봤다.

“맛있는 냄새. 무슨 죽이야, 이거?”

“뺏어먹을 생각하지 마.”

“누가 달래? 참나, 아무리 나라도 환자가 먹을 건 절대로 안 뺏거든!?”

아무리 나라도, 라고 말하는 걸 보니 본인이 막무가내라는 자각은 있나 보네.

“지예원 상태는 어때?”

“괜찮아. 좀 나른해 보이는 것만 빼면. 어깨 상처도 거의 말끔하게 나았고, 그 외에 눈에 띄는 외상도 없었어.”

“그래도 사흘 동안 기절해있었지? 포션도 사용했는데 사흘이나 못 일어났던 걸 보면, 상처가 심하긴 심했­.”

채소연이 앗, 하는 소리를 내며 제 입을 막았다. 이내 조마조마한 눈으로 그녀가 날 올려다봤다.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내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고만 있자, 채소연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그, 미안.”

이내 내밀어진 사과에 내가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주변에 듣는 사람도 없는걸.”

“그래도 미안. 민감한 문제라 말조심했어야 했는데…….”

늘 뇌가 아닌 말초신경으로 사고하는 듯한 채소연치고는 퍽 진지한 태도였다.

“진짜 괜찮아. 이미 지난 일인걸.”

그런 그녀에게 나는 살며시 힘없이 미소 지었다. 마치 억지로 짓는 것처럼 힘겨운 미소.

그 미소에 그녀가 죄 지은 사람인냥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왜 자신에게 포션을 쓰지 않았냐며 따지고 들던 그녀의 태도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바뀌었는가.

그 답을 알기 위해선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

사흘 전. 폐건물 옥상.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포션을 지예원에게 사용하고 있자, 능력을 푼 채소연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다분했다. 아마 포션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

그녀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죽었을 줄 알았다.”

“……뭐?”

“가슴 한복판에 구멍이 뚫려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길래 당연히 죽었을 줄 알았지. 시간도 꽤 지났고 말이야.”

“내가 당하자마자 바로 포션을 썼으면 됐잖아.”

“그 순간엔 경황이 없었어. 저격수의 위치도 몰랐고, 곧바로 저놈이 올라와서 전투가 시작됐으니까. 놈을 물리쳤을 땐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어.”

“……늦게라도 날 치료했으면 지예원이 이렇게 당할 일도 없었어.”

“결과적으론 그렇지. 그렇지만 대외비니 뭐니 하면서 네 초능력을 숨긴 건 너잖아. 네 능력을 알았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너부터 살렸겠지.”

단순히 그 당시 삐져서 능력을 말해주지 않은 건지, 아니면 내가 못 미더웠던 건지.

무슨 이유에서든 네 능력을 밝히지 않은 건 너 자신이라고.

그런 내 말에 채소연이 할 말이 없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급하게 짜맞춘 변명이긴 하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어색한 부분은 없었다.

‘이쯤에서 슬슬 한 발 양보해야지.’

아무리 내 말이 맞다 한들 이대로 내 의견만 밀고 나가면 또 삐질 테니까.

“……그래도 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확실히 서럽긴 했겠네. 동료인 널 놔두고 범죄자를 먼저 챙겼으니까. 미안해. 그 점은 사과할게. 내 생각이 짧았어.”

내 사과에 그녀의 눈에 크게 뜨여졌다. 축 쳐져있던 입가가 실룩실룩 올라간다.

“그래! 엄청 서러웠다고! 그래도 뭐, 알면 됐어! 특별히 용서해줄게! 히힛.”

‘단순한 녀석.’

“그런데 그 비싼 포션은 어디서 났어? 중급 포션은 3억이나 하잖아?”

“그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나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다행히 이럴 때를 대비해서 변명은 미리 준비해둔 뒤였다.

얼굴에 착잡한 표정을 띄운다. 입술을 잘근 깨물며, 그러나 눈빛만은 아련하게 먼 허공을 바라본다. 꼭 떠올리기 괴로운 추억을 회상하듯.

“응? 어디서 났냐니까?”

단순한 채소연은 그런 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답변을 재촉한다. 오히려 좋다.

“혹시 팀장님이 보내주시기라도 하셨­.”

“할아버지 유품이야.”

“뎃?”

실실 웃던 채소연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유품……?”

“그래. 돌아가신 할아버지 유품이야. 초인으로 태어난 내가 언젠가 위험한 일에 빠질까봐, 내가 성인이 되던 날 선물이랍시고 주셨어. 일평생 알뜰살뜰 모은 돈을 전부 털어서.”

내 고백에 채소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생전에 할아버지께서 늘 몸에 지니고 다니라 당부하셨었지. 살아계실 땐 그런 걱정이 귀찮기만 했는데, 이제는 차마 떼어 놀래야 떼 놓을 수가 없겠더라고. 덕분에 필요할 때 쓸 수 있었네.”

당연히 다 거짓말이었다. 실제로 안수호의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가진 안수호로서의 지식은 필요최저한의 기억이 전부였으니까.

고로 방금 내가 한 말은 대충 지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수상하게 여겨 작정하고 조사하면 금방 어색한 부분을 찾을 수 있을 조잡한 거짓말.

“아…….”

허나 이 단순한 여자가 내 말을 의심할 리가 없지.

“그런 소중한 걸 사용한 거야? 생판 모르는 남한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무시할 순 없잖아.”

“그런……!”

채소연의 표정이 착잡하게 물들었다. 단순한 사람이 감정 이입도 쉽게 한다던가. 급하게 지어낸 짤막한 사연에 몰입한 채소연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할아버지께선 늘 내게 ‘의를 알고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어. 그 자리에서 지예원을 살리는 게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의와 도리겠지. 아마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서도 내 선택을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너무 오버했나. 일순 그렇게 생각했으나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채소연이 상대라면 다소 오글거리게 꾸며내는 편이 나았다. 실제로 그녀의 표정을 보자 그녀는 벅차오르는 감동에 눈물마저 찔끔 흘리고 있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지예원의 몸을 받쳐든 채 그녀를 올려다봤다.

최대한 애절하게, 최대한 슬픈 감정을 담아서.

“이 포션은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이야.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아.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의 일은 여기서만의 비밀로 해줄 수 없을까?”

“……알겠어. 반드시 비밀로 할게. 반드시.”

결연한 한 마디.

그 답변에 만족하며 내가 싱긋 웃자, 그녀가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내가 그동안 좀 착각했나봐. 널 나쁘게만 보고 있었는데. 너, 의외로 좋은 녀석이었구나?”

“……크흠.”

사뭇 진지한 그 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차마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방심했다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웃음을 참는 내 두 어깨가 파들파들 떨렸다. 내가 숨죽여 울기라도 하는 줄 알았는지, 그녀는 말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천천히 멀어져가는 채소연의 등을 보며 내가 생각했다.

‘……단순한 녀석.’

***

그러한 이유로, 채소연과 나 사이에 있어 ‘포션’이라는 단어는 언급해선 안 되는 볼○모트 같은 단어가 되어 있었다.

그 증거로, 내가 괜찮다 했음에도 채소연은 저만치 앉아서 이쪽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나로선 좋은 일이었다. 저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는 걸 보면 다른 사람에게 포션에 대해 말하진 않을 테니.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왔어?”

다 데운 죽을 그릇에 담으며 내가 물었다.

“팀장님께서 상태 좀 보고 오라고 하셨거든. 팀장님은 걔가 심하게 다쳤던 걸 모르시니까, 3일이나 의식을 잃고 있으니 걱정되셨나봐.”

아마 걱정이 아니라 의심이겠지. 일부러 의식을 차리지 못한 척 하는 건 아닌가 하는.

“팀장님께 깨어났다고 연락한다?”

“그래. 부탁 좀 할게.”

쟁반에 죽을 올린 채 나는 주방을 나섰다.

지예원의 상태가 민채령에게 전해지면 아마 당장 내일에라도 심문이 시작되겠지.

여명단의 대략적인 행보나 구성원에 대해선 원작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가진 정보를 경시할 수는 없었다.

‘분명 이 탈리스만이 계획의 핵심이라 그랬지.’

본래 주인공의 능력이었던 마력흡수의 탈리스만이 핵심이 되는 계획.

그 계획에 대해선 나조차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탈리스만에 관한 떡밥은 원작에서도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내용이었으니까.

무려 주인공의 능력과 관련이 있는 계획이니 필시 결코 가벼운 내용은 아니리라. 쾌락천마는 이런 중요 떡밥을 무의미하게 소모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스토리가 상당히 바뀌겠군.’

계획에 연루된 지예원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여명단의 행보는 크게 바뀔 것이다. 그 바뀐 행보가 원작의 전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주인공이 먹을 기연을 낼름한 시점에서 스토리가 바뀌지 않는 게 이상하지만.

“하아.”

막막하기만 한 미래를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예원을 살린 것도, 탈리스만을 내가 가로챈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적어도 앞으로 변경될 스토리에 준비하고 대응할 시간만은 있길 빌며, 나는 지예원이 있는 침실로 향했다.

***

한편, 그 시각.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어느 허름한 상가 건물 지하.

그곳에 세 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 유현호.

온몸이 근육으로 뒤덮인 거한, 김성학.

그리고 농염한 눈웃음이 일품인 여성, 박지현.

자그마한 테이블을 둘러싼 채 앉아 있던 세 사람 중, 김성학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영감. 우릴 부른 이유가 도대체 뭐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그가 인상을 쓰며 투덜거리자 박지현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쪽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은 나 없으면 아예 돌아가지도 않거든? 용건이 있으면 좀 빨리 말해줄래?”

그 말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노인, 유현호가 입을 열었다.

“김성학, 박지현. 현시간부로 너희 둘이 진행하던 임무는 잠정 보류다.”

“뭐?”

“이봐, 영감.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지부장님 지시다. 우리 셋에게 긴급 임무가 하달됐어.”

“긴급 임무?”

“며칠 전에 서울 지부에서 배신자가 나온 건 알고 있지?”

노인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신자 건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으나, 간부인 그들에게만은 대략적인 소식이나마 전해졌으니까.

“전투원 한 명이 혼자서 팀원을 싹 다 죽이고 날랐다며? 그리고 다른 한 명이 무슨 물건도 훔쳤다고 그러던데.”

“뭔 일인지 물어봐도 본부 놈들이 기밀이다 뭐다 하면서 입 꾹 닫고 덮은 사건이잖아. 근데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야?”

“그 배신자를 쫓던 본부 암살팀 두 놈이 연락이 닿지 않는단다. 아마 죽었겠지.”

두 사람의 표정이 굳었다. 그 한 마디만으로 두 사람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다.

“설마 본부 놈들이 싼 똥을 우리보고 치우라고? 어림도 없지!”

“아니, 성학이 아저씨. 그래도 지부장님 명령이라잖아. 까라면 까야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왜 하필이면 우리야? 그 배신자 놈이 강원도로 튀기라도 했대?”

“그래.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이 속초라더군.”

“이런 우라질!”

“잠깐, 속초?”

박지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속초면 그린하우스 바로 옆이잖아. 설마 거기랑 뭐 관련 있는 건 아니지?”

“그래. 배신자의 대외 신분이 그린하우스 재학생이었다고 하더군.”

그 말에 김성학과 박지현의 반응이 엇갈렸다. 열불을 내던 김성학은 돌연 재미있겠다며 웃음지은 반면, 박지현은 머리를 감싸 쥐며 앓는 소리를 냈다.

“설마 아카데미랑 연루된 건 아니겠지? 그럼 골치 아파지는데.”

“그럴 일은 없다. 배신자의 신상 정보와 여명단 단원이었음을 증명하는 내용을 그린하우스에 익명으로 보냈으니까.”

“즉, 아카데미로 도망치려 해도 곧바로 경찰 신세다?”

“그래. 그리고 경찰에 체포되면 그쪽 끄나풀들이 곧바로 소식을 전해오겠지.”

“쳇. 이번 기회에 아카데미 문짝 좀 걷어차 보나 했는데. 그럼 아무런 소용없잖아.”

“꼭 그렇지만도 않다.”

노인의 말에 김성학이 몸을 테이블 쪽으로 바짝 붙였다. 얼른 말해보라는 듯, 그 얼굴에 흥미진진한 기색이 떠올랐다.

“암살팀의 저격수가 무전으로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배신자에게 신원 미상의 협력자 둘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협력자들이 쓰는 장비가 특이했다더군.”

“특이해?”

“그래. 초인용 테이저 건에 스턴 블레이드. 거기에 상용 디펜시브 코트. 초인 중에 그런 장비를 운용하는 놈들이 누가 있을 것 같나?”

괴수 사냥용 장비가 아닌, 철저하게 사람만을 상대하기 위한 장비.

대부분의 초인이 괴수를 사냥하는 헌터가 되는 이 시대에, 굳이 대인용 장비를 구해서 사용하는 초인은 얼마 없었다.

“경찰인가? 경찰이 배신자랑 붙어먹었다고?”

“그런 가능성도 부정할 순 없겠지. 사법 거래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만약 협력자가 경찰이면 그 끄나풀인지 뭔지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성학이 아저씨. 생각을 좀 해봐. 경찰이 범죄자랑 협력하는 건데 당연히 비밀리에 움직이지 않겠어?”

“박지현 말이 맞다. 그리고, 협력자가 꼭 경찰이란 법도 없지. 마침 장소도 속초지 않은가.”

대인 진압용 장비를 사용하는 건 대부분 경찰이었으나, 꼭 경찰만 사용하리란 법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 경비대도 경찰용 장비를 썼지. 그럼 아카데미에 붙었을 가능성도 있는 건가?”

“아하! 이제야 알겠어! 경찰이랑 아카데미랑 둘 다 때려 부수면 된다는 소리군! 피가 끓는구만!”

“아서라. 아무리 너라도 그렇게 날뛰었다간 금방 잡힐 거다.”

“잡히긴 무슨! 날 잡으려면 S랭크 헌터쯤은 데리고 와야 할걸?!”

“네 실력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내려온 임무는 그게 아니야.”

노인의 말에 박지현이 대충 알겠다는 표정으로 기지개를 켰다.

“이 멤버가 불린 걸 보면 보나마나 뻔하지. 현호 할아버지나 나는 첩보부 출신이잖아. 우리보고 조사하라는 거겠지.”

“엥? 그럼 나는?”

“글쎄? 배신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면 가서 족치는 역할?”

“오! 그건 마음에 드는군!”

실실 웃는 김성학을 보며 박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 뇌까지 근육으로 되어있는 듯한 남자는 머릿속에 오직 싸움밖에 없는 것 같다며.

“대충 알아들었으면 슬슬 본격적인 임무 내용을 설명하겠다. 임무 자체는 지부장 명령이지만, 당연히 실제로 명령을 내린 건 그보다 더 윗선일 거다.”

“윗선이라면­.”

“최소로 잡아도 지부장이지. 어쩌면 더 위일 수도 있고.”

그 말에 박지현이 얕게 탄성을 뱉었다.

여명단에서 지부장보다도 위라면 단 한 사람, 조직의 수장밖에 없으니까.

“자, 이제 이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지금부터 하는 설명을 한 자도 놓치지 말고 새겨듣도록. 알겠나?”

허름한 사무실 지하에서, 여명단 간부 세 사람의 밀담이 은밀하게 오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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