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6화 (16/266)

〈 16화 〉 015. 지예원(7)

* * *

어둡다. 그리고 검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흑색 일색.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새까만 세상.

몽롱한 의식으로 흐릿하게 사고를 이어간다. 내가 지금 어떻게 된 건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포근하면서도 따스한 감각에.

휴일 오전 어리광을 부리며 늦잠을 자려는 아이처럼, 나는 그 어두운 세상에서 몸을 웅크리며, 내 의식이 또렷해지는 걸 의식적으로 거부했다.

깨어나기 싫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그렇게 생각한 건, 무의식적으로 내 삶이 파탄났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부모도 친척도 없는 천애고아로 고아원에서 자랐다.

대외적으로는 평범한 고아원이었지만, 그 실상은 여명단이 새로운 조직원을 키워내는 요람이었다.

여명단은 제 딴에는 숭고한 사상을 지닌 테러 단체다.

작금의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설파하며, 모든 규범과 체계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부르짖는 사상범들의 집합소.

그런 조직에서 키워지는 아이가 어떤 삶을 살겠는가.

철이 들기 전부터 나는 증오하는 법을 배웠다. 사회를 증오하고, 제도를 증오하고, 기득권을 증오하고, 세상을 증오하는 법을 배웠다.

철이 들 무렵엔 그 증오를 실천하는 법을 배웠다. 조직이 가르치는 방법은 다양했으나, 그중 내가 가장 오랫동안 배운 건 바로 살인이었다.

나는 조직의 총알이었다. 조직이 노린 목표물에게 날아가 그 심장을 꿰뚫고 버려지는 장기말. 그게 내 역할이었다.

그 역할에 의문도 불만도 없었다. 의문을 품을 상식이 없었고 불만을 품을 감정이 없었다. 나와 같이 훈련을 받던 모든 총알들이 그랬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삶이란, 우리에게 있어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내가 다른 총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도 고생했어, 예원아! 짜잔! 이거 봐라? 아까 저녁 때 딸기우유 남은 거 몰래 숨겨놨지롱! 딱 2개밖에 없으니까 너랑 나랑 얼른 마시고 비밀로 하자? 알겠지?’

그 살풍경한 삶에, 유일하게 색채를 던져주는 이가 한 명 있었다는 점이리라.

그 아이의 이름은 민아였다. 김민아. 고아원 선생이 멋대로 지은 이름이 아닌, 제대로 부모에게서 받은 소중한 이름.

그래서일까, 무채색으로 물든 고아원 안에서도 민아는 유독 밝은 색채를 간직하고 있었다.

물론 고작 이름 따위가 환경에 영향을 줄 순 없다.

민아가 밝은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공간수납이라는 편리하고 유용한 초능력 덕분이었다. 그 능력 덕에 민아는 총알 후보가 아닌, 제대로 된 조직원으로서 길러질 수 있었으니까.

부럽지는 않았다. 민아를 부럽다고 판단할 자아가 당시의 내게는 희박했으므로.

다만 귀찮다는 감정은 느꼈다. 나이가 차고 본격적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한 ‘학생’간에는 사적인 잡담이 금지되어있어서, 그녀와의 대화를 ‘선생’들에게 들켰다간 적잖은 꾸중을 듣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분명 민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째서인지 없는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내게 다가와 말을 걸곤 했다.

그런 그녀가 귀찮았다. 그리고 부담스러웠다.

허나 늘 한결같이 다가와주는 그녀에게 어느새 감화되었는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교육이 끝나고 자기 전의 잠시간만 허락된 그녀와의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다.

시간으로 치면 고작 10분 남짓한 대화.

특별한 내용도, 유익한 가치도 없는, 그저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무렇게나 끝맺는 사소한 잡담.

허나 그 10분의 대화가 내겐 삶의 전부와도 같이 다가왔다.

어느새 민아는 내 삶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민아가 있었기에 나는 고아원에서의 고단한 생활을 이겨나갈 수 있었다.

다른 총알 후보들이 교육을 버티지 못하고 나뒹굴 때도, 그들을 보며 나 역시 그만 포기하고 편해지고 싶어질 때도, 민아와 하루만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일념으로 그저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런 그녀 덕에 나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 덕에 우연히 조직 간부의 눈에 띄어, 총알로서 소모될 운명에서 해방되어 정식 조직원으로 거둬질 수 있었다.

민아의 존재는 내게 있어 희끄무레한 새벽을 밝히는 아침 햇살과도 같았다.

아무리 어두운 하늘도 밝히고 아무리 짙은 안개도 쫓아내는, 포근하고 따스한 아침 햇살 같은 존재.

허나. 민아는 이제 내 곁에 없다.

범죄 조직의 일원임에도 그 천성이 착하여, 늘 선을 베풀고자 하고 불의를 참지 못했던 그녀는.

그랬기에 우연히 조직의 계획을 알아차렸을 때, 그 끔찍한 계획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 마침내 조직을 배신한 그녀는.

조직을 배신하겠다고 내게 밝혔을 때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에게 협력했을 정도로, 내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던 그녀는.

결국 조직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그녀는.

아마 조직의 손에 끝내 죽고 말았으리라고,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고문을 통해 정보를 실토하게 만들고, 폐인이 되어 쓸모조차 없어진 배신자. 여명단이 그런 그녀를 살려둘 리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깨어나기 싫었다.

그렇기에 이 어둠에 영원토록 가라앉아 있고 싶었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포근하고 따스한 감각이, 마치 그녀의 손길 같아서, 이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계속 그녀가 떠오르는데.

그리운 마음에 눈을 뜨면, 그녀가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이 어둠 속에서 깨어나기 싫었다.

이대로 영원히 잠든다 한들 누구도 날 탓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나는 이미 제 할 일을 훌륭하게 끝마친 뒤였으므로.

여명단의 암살자를 무찔렀고, 그들의 손으로부터 탈리스만을 지켜냈다. 놈들의 계획에 핵심이 되는 탈리스만은 경비대가 알아서 잘 지켜주겠지.

다만 이렇게 사리분별이 된다는 건 내 의식이 또렷해졌다는 증거고, 그 말은 즉 내가 깨어날 때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참, 그 부상을 입고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점차 선명해져가는 뇌리에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경비대라 밝힌, 말투는 예의바르지만 묘하게 신경질적인 구석이 있던 남자.

그 남자가 기어코 자신에게 그 비싼 포션을 들이부은 것인가. 어차피 미련도 없는 삶, 나 같은 범죄자 따윈 구하지 말고 제 동료나 챙기라 분명 일렀는데.

아.

의식을 잃기 바로 직전 일까지 기억난 걸 보면, 정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의식이 차츰 부상한다.

흐릿했던 정신이 또렷해지고 사라졌던 감각이 돌아온다. 등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감촉, 손등에 전해지는 따스한 감각, 은은하게 풍겨오는 소독약 향기, 닫힌 눈꺼풀로 스며들어오는 밝은 빛.

이윽고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날 반겨주었다.

소독약 냄새에 병원일 거라 예상했으나, 깨어난 곳은 으리으리한 저택 침실이었다.

온 사방이 고급스러운 가구와 화려한 장식품들로 가득했으나, 어딘가 살풍경한 것이 사람의 손때가 타지 않은 것 같았다.

뒤늦게 경비대 사람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한성 그룹 소유의 안전가옥. 아마 이곳이 바로 그 안전가옥이리라.

나는 침대를 짚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왼팔은 붕대로 몸통에 고정되어 있었다. 뒤늦게 왼쪽 어깨를 다쳤다는 걸 떠올린 나는 반대 팔을 움직였다.

­움찔.

허나 오른팔 역시 무언가 걸리는 감촉이 있었다.

적당히 무거우면서도, 묘하게 포근하고, 또한 따스한 감촉.

살며시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가 의자에 앉은 채 내 팔을 베개 삼아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난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안수호. 내가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내 곁에 있었던, 바로 그 남자이리라.

아마 잠든 나를 간호하다가 피곤한 나머지 잠든 모양.

흐릿한 의식 속에서 느꼈던 따스함이 이 남자의 감촉이었을까 생각하며 나는 살며시 그를 흔들어 깨웠다.

“으, 으음.”

얕게 신음하던 그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었다. 당황한 두 눈동자와 내 시선이 마주친다.

“……깨어나셨네요.”

“응. 방금.”

우리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어찌나 당황했는지 아직도 내 오른손을 잡고 있는 채였다. 내가 잡힌 손에 꽈악 힘을 주자, 그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뺐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의식을 되찾으셔서 다행입니다.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습니까? 혹시 아직 아픈 곳이라든가­.”

“왜 살린 거야?”

그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듯한 표정.

“절대로 살아날 수 없는 부상이었어.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곤 해도 폐가 찢어지고 동맥을 다쳤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살아난 걸 보면, 기어코 나한테 포션을 쓴 거지?”

그는 분명 중급 회복 포션이라고 했다. 중급 포션이면 도매가로도 개당 3억은 할 터. 생면부지의 남에게 선뜻 쓸 액수는 아니었다.

“……예. 사용했죠.”

“어째서?”

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원 씨는 중요한 정보원이니까요. 그 자리에서 잃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무리 포션 값이 비싸다 한들, 예원 씨가 제공해주는 정보는 분명 그 이상의 값어치를 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네 동료도 죽어가고 있었잖아. 내가 줄 수 있는 정보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도 모르면서, 동료보다 날 우선시했다고?”

“그, 채소연을 말하는 거라면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냥.”

내 허망한 목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상대는 내 목숨을 구해준 은인. 그런 은인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내 입술은 내 의지완 관계없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냥, 죽게 내버려뒀으면 좋았을 텐데.”

무심코 튀어나온 본심에 입술을 잘근 씹었다. 허나 입술은 여전히 제멋대로 움직였다.

“……조직을 배신했을 때 난 죽음을 각오했었어.”

“그리고 민아가 조직에 잡혔다는 걸 알았을 땐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렸고.”

“정말슬프고 괴로웠지만, 오직 놈들의 계획을 저지하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텼어. 솔직히 말해서, 탈리스만만 놈들에게 넘어가지 않는다면 내 목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어.”

“아니, 내심 죽는 걸 바랐을지도 몰라.”

“하나밖에 없던 친구가 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쓸모가 없어진 그 아이의 죽음이 정해진 사실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그리고 마침내 암살자를 쓰러뜨리고 네게 탈리스만을 넘겼을 때.”

“해야 할 일은 다 끝냈고, 더 이상 살아갈 이유도 없으니. 나는 내심자신의 죽음을 기꺼워하며 받아들였던 걸지도 몰라.”

“네가 그 비싼 포션까지 써가며 날 살리겠다고 말했을 때, 아주 조금은 기뻤어. 그렇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웠어.”

“어차피 난 말단조직원이야. 내가 아는 정보래 봐야 별 거 없어. 네가 쓴 포션만큼의 값어치조차 안 될지도 모르지.”

“그런 날 선뜻 살렸다가, 동료의 죽음까지 감수하며 날 살려냈다가, 정작 내가 내어준 정보에 너희가 실망한다면.”

“친구를 잃고, 생면부지인 남의 목숨까지 희생해가며 살아남은 내가 결국 너희에게 쓸모없다고 생각된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삶도 또 없겠지. 죄악감과 부채감에 절여진 채 죽지 못해 살아가게 되겠지. 그래서, 그래서 차라리 그 자리에서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그럼에도 결국 넌 나를 살렸구나. 나 말고 네 동료를 살리라고 말했음에도, 기어코 날 살렸어.”

“참 고맙네. 진짜.”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던 말을 마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 자신이 너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구해졌으면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왜 자신을 구해주었냐며 역정을 내는 꼴이라니.

그의 표정이 착잡하게 썩어들어갔다. 면전에 대고 저런 말을 해댔으니 무리도 아니다.

뒤늦게 사과하라고, 잊어달라고 말하려다가, 그런 말이 과연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

“……몇 가지만 정정하죠.”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정?”

“우선 첫 번째. 채소연은 죽지 않았습니다. 종류가 좀 다르긴 해도 재생능력자였거든요. 지금은 후유증 하나 없이 말끔이 나아서 업무에 복귀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

내가 무어라 물을 새도 없이 그가 이어서 말했다.

“두 번째. 예원 씨는 자신이 가진 정보의 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정보라도 그 정보를 통해 놈들을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고, 그 결과 놈들이 벌이는 테러의 피해자를 단 한 명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깟 포션 값 정도가 대수겠습니까?”

“세 번째. 부채감이니 부담감이니 운운하시면서 차라리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냐고 말씀하시는데. 예원 씨는 제게 트라우마라도 안겨줄 셈입니까?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꼴을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겁니까? 그렇게 예원 씨가 죽고 나서 저 혼자 ‘내가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못했어!’ 하며 후회하길 원하십니까? 예원 씨가 무슨 감정을 느끼든 제 알 바 아닙니다. 제가 살리고 싶어서 멋대로 살린 거니까요. 그러니 부채감이니 부담감이니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자살 따위는 생각하지 마십쇼. 기껏 살려놨더니 삶에 미련이 없네 뭐네 하면서 자살이라도 했다간, 저도 같이 죽어 귀신이 되가지고 평생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굴 겁니다.”

담담하게, 또한 또렷하게 귀에 박히는 목소리.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게 됐다.

내 자기연민에 빠진 우는 소리에도 나를 비난하지 않고, 행여 내가 부채감을 느끼지 않게끔 일부러 우스갯소리를 섞어서 말하는 그를 보는 나는, 정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저는 그 민아라는 분이 예원 씨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허나 상투적인 표현입니다만, 그분께선 결코 예원 씨가 자신 때문에 삶의 미련을 잃고 생을 마감하길 원치 않으실 겁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그럼 반대로 묻죠. 예원 씨의 친구는 자기가 죽으면 친구도 같이 따라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아니, 민아는 그런 사람이 결단코 아니었다.

내가 힘없이 고개를 젓자 안수호가 표정을 풀며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징징거리는 소리 좀 그만하십쇼. 기껏 비싼 포션 들여서 살려놨더니 계속 우는 소리만 하면 제가 뭐가 됩니까?”

“…………그러게. 미안해. 네 말이 맞아.”

한숨을 푹 내쉬며 그에게 사과했다.

‘……감정 과잉이네.’

하도 이런저런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 탓에 잠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민아의 일은 슬펐다. 미치도록 사무칠 정도로 슬펐지만, 그가 말했듯 민아는 내가 자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도, 자길 따라서 삶을 마감하는 것도 원치 않을 테니.

“좀 진정됐습니까?”

“응.”

“그럼 진정된 김에 저도 사과 하나만 하죠.”

“어?”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살며시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어?”

그의 검지에 보란 듯이 끼워져 있는 탈리스만.

그 반지를 본 순간, 그때까지 품고 있던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단번에 씻겨 내려갔다.

“……야.”

“예.”

“그게 왜 네 손에 있어?”

“크흠.”

“그게 왜 네 손에 있냐니까?”

그의 입에서 내가 기절해 있던 동안 일어난 일들이 차근차근 흘러나왔다.

내가 쓰러뜨린 줄 알았던 조직의 암살자가 사실 재생능력자여서, 내가 기절한 뒤 상처를 회복하여 부활했다는 것.

그를 다시 쓰러뜨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탈리스만을 착용했다는 것.

그런데 극악의 확률을 뚫고 탈리스만이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그 결과 놈을 무찌르긴 했으나 직후 반동으로 인해 그 역시 쓰러진 것.

그때 뒤늦게 암살자의 동료 저격수가 현장에 도착하고,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상처를 재생한 채소연이 나타나 저격수를 제압한 것.

이후 주변 사람이나 경찰의 눈에 띄기 전에 두 사람이서 현장을 수습하였고. 현재 저격수는 이 안전가옥 지하 쉘터에 감금되어 있다는 것까지.

설명을 듣는 내내 온갖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만분의 1이라는 확률은 어떻게 뚫었으며, 채소연의 용인화 능력은 도대체 뭐고, 그런 능력을 지닌 주제에 첫 저격에 어이없이 죽기 직전까지 간 건 도대체 어째서이며, 그 난리를 쳤는데도 도대체 어떻게 경찰에 들키지 않았는가.

온갖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나, 그는 그런 문제는 다 사소한 일이라며 일축했다.

“정 궁금하면 나중에 물어보세요.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당연하다는 듯 그가 내뱉은 말.

허나 묘하게 가슴을 울리는 그 말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뭉클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래, 고마워.”

표정을 다잡으며 그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그 전처럼 비꼬는 의미가 아닌, 진심을 담은 감사를.

“감사는 됐습니다.”

그가 멋쩍게 웃었다. 새삼 감사받을 일도 아니라는 듯.

“여명단이니 탈리스만이니 다 떠나서, 그쪽은 아카데미 학생이고 저는 경비대 경비원이잖습니까. 경비원은 늘 재학생의 안위를 위해 노력해야하죠. 그저 밥값을 했을 뿐입니다.”

그 웃음이 이내 짓궂게 변했다. 노골적인 생색이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이쪽의 기분을 배려한 의도적인 우스갯소리.

"하핫."

그 서툴면서도 다정한 배려에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웃으니까 그나마 보기 좋군요.”

그 미소를 본 그가 짐짓 놀라더니, 이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막 깨어나셔서 출출하시죠? 간단히 죽이라도 끓여서 오겠습니다. 그 외에도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다 제게 말씀하세요. 제가 예원 씨 담당이니까.”

“고마워. 근데 담당이라니? 그게 뭐야?”

“간병인 겸 경호원 겸 감시원입니다. 환자를 혼자 둘 수도 없고, 여명단 놈들이 또 쳐들어올 지도 모르고, 일단은 범죄자 신분이시니 감시의 눈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냥 예원 씨 관련된 일은 다 저를 통해서 이뤄진다고 보면 됩니다.”

“……참 고생하네.”

“예원 씨만 협조적으로 나오면 고생할 것도 없죠. 이 일 덕분에 평시 업무는 당분간 싹 면제거든요.”

마침 안전가옥도 고급 저택 뺨치고, 반쯤 휴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덤덤히 덧붙이곤 방을 나섰다.

“…….”

홀로 남겨진 나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묻었다. 기분 좋은 포근함이 등 전체를 감싸 안았다.

‘……살았구나.’

그제야 새삼 내가 살아남았다는 실감이 들었다.

살아남았다.

살아남아버렸다.

민아는 지금쯤 죽었을 텐데. 나 혼자서만.

‘또 부정적인 생각.’

혼자 남자 자연스레 생각이 다시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갔다. 상념을 떨쳐내고자 나는 방 구경이라도 할겸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라?”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 옷이 갈아입혀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나는 속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품이 넓은 가운만 입고 있는 상태였다. 꽤 고급품인지 표면에 부드럽게 올라온 울이 살결을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하긴, 원래 입고 있던 옷은 피에 절었을 테니 갈아입힐 수밖에 없었겠지만­.

‘잠깐, 갈아입혀?’

그 순간 뇌리를 강타한 의문.

묘하게 기시감이 드는 의문에 나는 안수호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이번엔 누가 갈아입혀준 거지?’

바라봤으나,내 의문을 해소해줄 남자는 이미 한참 전에 방을 나선 뒤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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