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013.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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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회차는 삽입된 삽화 특성상'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읽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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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호의 실수. 지예원의 빈틈. 그 두 요소가 겹친 순간 암살자는 맹렬한 기세로 도끼를 내려찍었다.
미간을 노리고 내려오는 도끼날.
그 앞에서 지예원은 불안정한 자세로나마 몸을 비틀었으나.
푸확!
다음 순간, 지예원의 어깻죽지에서 피가 튀었다.
“지예원!”
지예원의 어깨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었다. 빌려 입은 디펜시브 코트의 방호 소자 덕에 치명상은 면했으나, 결코 얕은 상처도 아니었다.
제 어깨를 부여잡고 물러난 지예원을 향해 암살자가 더욱 박차를 가해 따라붙었다.
챙! 카앙! 까앙! 깡! 카아앙!
도끼날이 번뜩일 때마다 지예원의 자세가 차츰 무너져갔다.
단 한 번.
그 단 한 번의 일격을 허용한 것이 전세를 뒤집었다. 수성전에서 공성전으로 전환하듯 기세를 높인 암살자의 공격에 지예원은 다친 어깨를 감싸며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던 검무는 그 화려함을 잃고, 암살자의 도끼는 더욱 그 기세를 더해갔다. 순식간에 그녀의 몸에 자잘한 상처들이 늘어갔다.
뒤늦게 안수호가 달려들었으나 노도와 같은 기세로 휘둘러지는 도끼에 섣불리 접근할 수 없었다.
‘젠장.’
안수호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놈에게 흐름이 넘어간 이상 이 흐름을 끊어내야만 했다. 흐름을 끊어내어, 한 번 물러나 태세를 정비해야 했다.
“지예원! 물러나!”
그렇게 생각한 안수호가 자신의 초능력을 발동했다.
검은 연기.
양손에서 검은 연막을 생성, 조종한다는 별볼일 없는 능력.
직접적인 공격력이 없는 그의 능력으로는 기껏해야 상대의 발목을 붙잡는 게 고작이겠지.
‘어떻게든 발목이라도 잡아야 해!’
허나 지금은 그마저도 간절했다. 있는 힘껏 발동한 초능력에 지예원과 암살자의 사이에 거대한 연막의 벽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 판단이 지예원에게 있어서 독으로 작용했다.
씨익.
암살자가 웃었다. 그가 있는 힘껏 도끼를 치켜들었다. 연기째로 지예원을 갈라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몸통이 훤히 비는 빈틈투성이인 자세. 허나 시야를 가로막은 연기 때문에 지예원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피해!”
뒤늦게 안수호가 외쳤고, 직후 도끼가 떨어졌다.
콰직!
왼쪽 어깨 깊숙이. 조금 전 그가 만든 상처 위로 시퍼런 도끼날이 파고들었다. 뼈가 끊어지고 살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퍼졌다.
이윽고 그가 도끼를 뽑아들자 시뻘건 피가 기세 좋게 튀었다. 멀리 떨어진 안수호의 뺨에도 묻을 정도로.
“아.”
지예원의 몸이 비틀거린다. 무릎이 꺾이고, 허리가 뒤로 넘어가며, 이윽고 지면에 완전히 쓰러진다.
“지예원!”
안수호가 그렇게 외친 순간, 암살자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직후, 부지불식간에 접근한 그의 도끼가 안수호의 목으로 빨려들어갔다.
‘죽는다.’
이건 죽었다고. 본능적으로 그가 직감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일격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안수호가 보는 세상이 완연하게 느려졌다.
모든 것이 느리게, 또한 선명하게 느껴졌다. 허나 느려진 건 그의 몸도 마찬가지. 제 목으로 짓쳐드는 도끼를 바라보면서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가능했던 건, 간신히 도끼가 다다르기 전 두 눈을 질끈 감는 것뿐.
콰드드드득!
날붙이가 살을 가르고 뼈를 끊어내는 소리.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에 수반될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안수호가 살며시 눈을 떴다. 암살자의 가슴에서 시커먼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커, 커헉!”
그가 제 가슴께를 내려다보았다. 이내 그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그런 그를 비웃듯, 그의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제대로 죽었는지 확인했어야지. 바로 눈 돌아가선 쟤한테 달려드네. 왜, 연막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였나봐?”
“어, 어떻게?”
“이렇게.”
암살자의 도끼에 베인 지예원의 왼쪽 어깨.
그 갈라진 상처 틈에서 수많은 칼날이 솟아나 있었다. 도끼가 살을 가르고 파고든 순간, 체내에서 칼날을 만들어내 가까스로 주요 장기를 지켜낸 것이었다.
그럼에도 치명상인 것은 변함없었으나,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유예시키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지예원이 칼날을 뽑았다. 제 역할을 다한 단검이 허공에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암살자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이겼다.
이긴 건가?
이겼다고?
얼떨떨한 승리에 안수호의 동공이 떨렸다. 그리고 그 시선이 지예원에게 향한 순간, 그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지예원?”
처음 그녀의 상태를 확인한 순간, 그는 시체가 서있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지예원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몸을 지나는 자잘한 자상들 전부에서 시뻘건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피부는 핏기가 가셔 창백했으며, 호흡은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한 번 더 베인 왼쪽 어깨의 상태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왼팔은 간신히 몸통에 매달려있다시피 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칼날로 막아냈기에 이정도로 그친 것이었다.
“괜찮, 습니까?”
“……넌 이게 괜찮아 보여?”
제 모습을 내려다 본 지예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결에서 비릿한 쇳내가 풍겼다.
“……아, 망할.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당장 병원에.”
“됐어. 이건 못 살아. 가는 길에 죽어.”
자신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지예원의 태도는 초연했다.
안수호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한 번 쯤 탓할만도 했으나 그녀는 그저 입을 꾹 닫은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이내 그녀가 제 품에서 자그마한 반지 케이스를 꺼내 안수호에게 건넸다.
“……나 대신 이거 들고 도망쳐. 다른 놈들 몰려오기 전에…….”
“도망친다니. 그쪽을 두고 제 혼자서 어떻게.”
지예원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제 죽음을 각오한 모습. 그 모습에 안수호의 말문이 막혔다.
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친 한 가지 사실.
“……포션.”
퀘스트 보상으로 올라와 있던 중급 포션. 그걸 쓰면 지예원을 살릴 수 있으리라.
“포션이, 있습니다. 중급 회복 포션이에요. 그걸, 그걸 쓰면 아마 살 수 있을 겁니다.”
안수호가 떨리는 손으로 퀘스트 창을 열었다. 퀘스트 창 하단의 보상 탭에는 그의 말대로 중급 회복 포션이라는 여섯 글자가 분명히 박혀 있었다.
허나.
‘왜 퀘스트가 안 끝나지?’
암살자가 쓰러졌는데도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다.
그 순간 안수호는 잊고 있었던 저격수의 존재를 떠올렸다. ‘암살자를 무찌르고 지예원의 목숨을 지키라’는 퀘스트 조건. 거기서 말하는 암살자가 그 저격수까지 포함이라면 아직 퀘스트는 끝나지 않은 셈이었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저격수를 찾아서 죽여야 하나? 하지만 그놈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고.’
안수호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빠졌다. 그런 그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지예원이 힘빠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민하지 마. 포션이 있으면 쟤부터 살려야지.”
“예?”
지예원이 힘없이 채소연을 가리켰다.
“나야 결국 범죄자에 불과하지만 저 여자애는 네 직장 동료잖아. 그런데 그 비싼 포션을 나한테 쓰겠다고? 쓸데없는 생각 말고 쟤나 살려.”
“하지만.”
“조직을 배신한 시점에서 난 이미 죽음을 각오했어. 그야 죽는 건 싫지만, 놈들에게 탈리스만을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만족해. ……만족하고 죽을 수 있어.”
안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채소연. 그래, 그녀도 살릴 수 있다면 살려야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선 채소연보다 지예원의 안위가 몇 배나 중요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이니 친분이니 하는 문제를 떠나, 지예원은 말 그대로 그의 목숨이 걸린 존재였으니까.
허나 그런 사정을 지예원이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눈앞의 남자가 만난 지 고작 하루도 안 된 자신의 죽음을 걱정해준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지예원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오르고,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이내 그녀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예원 씨?”
정신을 잃은 그녀의 몸이 안수호의 품으로 쓰러졌다. 얕게 새어나오는 숨소리가 금방이라도 꺼질듯 연약했다.
“예원 씨? 지예원?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멋대로 죽지 말라고 망할!”
그녀의 몸을 받친 팔에 피가 흥건히 묻어나왔다. 실혈사. 과다출혈. 그런 단어들이 그의 뇌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혼란스러운 정신으로 그가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퀘스트를 끝내려면 저격수를 찾아내 잡아야 한다. 허나 자신은 그의 위치를 모른다.
저격수가 자신을 죽이러 이곳으로 올까? 아니면 동료가 당한 걸 보고 일단 후퇴할까? 만약 후퇴한다면 퀘스트는 어떻게 되는 거지? 클리어로 처리되는 건가? 아니면 잠정 보류?
‘일단 응급처치부터.’
그런 생각에 지예원의 상처를 살폈으나 막막하기만 했다. 온몸에 그어진 자상들은 그렇다쳐도, 거의 잘리다시피 한 어깨의 출혈은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일단 부족한 대로 그녀가 입고 있던 코트로 그녀의 어깨를 동여맸으나, 그 정도로 출혈이 멎을 리가 없었다.
‘119. 119에 연락해야.’
그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앰뷸런스를 부르면 필연적으로 따라올 경찰 조사나 지예원의 신분 같은 건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우선은 어떻게든 그녀를 살려야 한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허나 그 순간.
“크으윽.”
굵은 신음소리와 함께, 쓰러져 있던 암살자가 몸을 일으켰다.
“어?”
암살자가 비틀거리며 도끼를 쥐었다. 안수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테이저 건을 쥐었다. 곧바로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파지지지지직!
“크으으으으으!”
전류가 일고 암살자가 신음했다. 허나 지예원 때와 달리 그는 테이저의 전기 충격을 버텨냈다. 그 모습에 안수호가 당황한 사이, 암살자가 떨리는 손으로 테이저의 와이어를 쳐냈다.
안수호가 몸을 일으켰다. 적잖이 당황한 기색.
“어떻게…….”
“……어떻게 살아났냐고? 아니면 어떻게 죽지 않았냐고?”
암살자가 비릿하게 웃으며 제 옷자락을 열어젖혔다.
너덜너덜해진 셔츠 안쪽, 지예원에 의해 꿰뚫린 가슴팍의 상처가 꿈틀거리며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내 초능력은 ‘육체재생’. 어지간한 상처는 다 치유하고 설령 죽음에 이르는 치명상이더라도 한 번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살아날 수 있지. 수수한 능력이지만 꽤 쓸만해.”
터벅터벅 다가오는 암살자를 보며 안수호가 스턴 블레이드를 뽑아들었다. 지예원을 지키듯 앞으로 나선 그를 보며 암살자가 비릿하게 웃었다.
“아서라. 아무리 내 몸상태가 병신이라지만 넌 날 못 이겨. 얌전히 탈리스만만 넘기고 꺼져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줄 테니.”
“……탈리스만을 넘기면 지예원은 죽일 건가?”
“당연하지. 여명단은 배신자에겐 가차 없거든.”
“그렇다면 물러날 수 없겠는데.”
"허."
결사의 각오를 다지며 안수호가 검을 겨눴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자세. 암살자가 보기에는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거 굳이 죽고 싶다면야 어쩔 수 없지.”
파앗!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안수호에게 달려들었다.
부상의 후유증 때문인지 확연히 느려진 속도. 그러나 여전히 안수호보다는 월등히 빨랐다.
쐐애애액!
아래에서 올려치는 공격. 안수호의 허리가 활처럼 휘고, 그 위를 도끼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피했.’
퍼억!
허나 직후 이어진 발차기가 그의 명치에 꽂혔다. 뭐에 당했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안수호의 몸이 수 미터를 날아가 옥상 벽에 박혔다.
“커헉?!”
폐 속의 공기가 전부 밖으로 나왔다. 디펜시브 코트 위로도 여실히 전해지는 충격. 내장이 파열할 것만 같은 고통에, 숨을 쉬어보려고 해도 연신 꺽꺽대는 소리만 새어나왔다.
안수호가 생각했다. 이건 절대로 못 이긴다고.
“뭐라고 했더라? 물러날 수 없어? 속 빈 강정 주제에 입만 살았군.”
암살자의 입가에 여유로운 웃음이 떠올랐다. 지예원이 쓰러졌으니 자신이 질 요소는 없다.
반쯤 노는 감각으로 그가 안수호를 향해 도끼를 쳐들었다.
반쯤 노는 감각으로, 그를 죽이려 했다.
그 사실을 직감한 안수호가 몸을 떨었다.
두려웠다. 그저 두렵기만 했다.
물씬 앞으로 다가온 죽음의 향기가 그의 심장을 꽈악 거머쥐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죽는다.
허나 맞서 싸워도 죽는다.
설령 이긴다 해도 지예원이 죽으면 자신 역시 죽는다.
온 사방에 죽음이 가득한 상황.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몸을 일으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지금 그에게 가능한 건 오직 하나.
“오, 더 하려고?”
그저, 처절한 발버둥뿐.
“쓸데없는 저항이군.”
암살자가 이죽거리며 웃었다.
다음 순간, 순식간에 다가선 그의 손바닥이 안수호의 뺨을 후려쳤다. 고개가 홱 돌아가며 그의 입 안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내가 말했잖아. 도망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비틀거리는 안수호의 멱살을 쥔 채 그가 연신 손바닥을 휘둘렀다.
짜악!
“보내준다고 했을 때.”
짜악!!
“곱게 도망이나 칠 것이지.”
짜악!!!
“뭐? 물러날 순 없다고?”
짜아악!!!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입만 살았군!”
짜아아아아아악!!
체중을 실은 따귀에 그의 몸이 또다시 수 미터를 날아갔다. 거친 콘크리트 바닥 위에 그의 몸이 쓰레기처럼 구르다 난간에 부딪혔다.
‘일어서.’
땅을 짚는다. 몸을 일으킨다. 허나 연이은 따귀에 뇌가 흔들려 반쯤 일어서던 몸이 옆으로 기운다.
‘일어서야 해.’
가까스로 난간에 상체를 기댄다. 후들거리는 무릎을 짚고 어떻게든 일어서려 노력한다.
‘하지만, 일어서서 뭐?’
여기서 일어선다 한들, 바뀌는 게 있을까.
어차피 이미 죽은 목숨인데.
“이런 씨발 진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불합리한 상황에 자연스레 욕이 튀어나왔다.
그의 뇌리에 쾌락천마, 그 가증스러운 이름이 떠올랐다. 분노보다도 억울함이 앞섰다. 싸움 한 번 안 해본 일반인을 대뜸 이런 세상에 빙의시켰으면 뭐라도 손에 쥐어줘야 활약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능력치는 쓰레기에 초능력도 별 볼일 없다.
빙의 특전이랍시고 준 스킬은 당장 활용할 여지조차 없는 반쪽짜리.
하다못해 주인공마냥 어디서 그럴듯한 기연이라도 줍는다면 모를까, 비루한 능력치 때문에 뻔히 아는 기연조차 가지러 가지 못하는 실정.
‘아니. 잠깐.’
그 순간. 찰나의 번뜩임.
‘……기연?’
안수호가 주머니를 뒤졌다. 그곳엔 좀 전에 지예원에게서 받았던 탈리스만이 있었다.
본래 주인공이 얻었어야 할 기연.
허나 지금은 자신의 눈앞에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탈리스만이야말로, 가증스러운 작가가 날 위해 준비한 기연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멍하니 탈리스만을 내려다보고 있자, 암살자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아서라. 탈리스만을 착용한다고 무조건 새로운 능력을 각성하는 건 아니야. 적성이 맞아서 능력을 각성할 확률은 기껏해야.”
“1만분의 1. 나도 알고 있어.”
1만분의 1. 0.01%.
상식적으로 생각해 실패할 게 당연한 극악의 확률.
그러나 모든 가능성이 막힌 지금에야말로, 그 일말의 가능성에 도전해야 할 때이리라.
‘쾌락천마 이 빌어먹을 글싸개 새끼야.’
그가 탈리스만을 꺼내들었다. 푸른 보석이 박힌 아름다운 반지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 행동을 암살자는 굳이 막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비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네게 정녕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다면, 이 탈리스만이야말로 바로 내게 주어진 기연이렷다!’
이마저도 안 된다면 더는 방법이 없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이를 악 물며, 그가 탈리스만을 오른손 검지에 끼웠다.
띠링!
직후, 그의 시야 가득 시스템 메시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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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탈리스만을 착용했습니다. ]
[ C랭크의 행운에 의해 성공 확률에 보정을 받습니다. ]
[ 해당 탈리스만이 당신에게 정착할 확률은 0.03%입니다. ]
[ 탈리스만 정착 시도 중. . . . . . ]
[ 탈리스만 정착 시도 중. . . . . . ]
[ 탈리스만 정착 시도 중.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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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오오오오오!!!
반지를 낀 손을 중심으로 거센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온 사방에 산재한 정체모를 기운이 그의 오른손으로 빨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빠득! 빠드드득!
다음 순간 오른손을 중심으로 격렬한 격통이 찾아왔다.
"커헉!"
낯선 기운이 전신을 유린했다. 아마도 이 기운이 마력일 거라고, 그가 짐작했다.
허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정도의 고통이 엄습했다. 그저 아프고 또 아팠다.
한계치를 가볍게 뛰어넘는 고통에 시야가 아득해졌다. 그 아득한 시야 저편으로부터 주마등이 펼쳐졌다.
수많은 장면들이 그의 시야를 스쳤다. 스치는 장면마다 하나같이 다 저쪽 세상에서의 소중한 추억이요, 기억들이었다.
그 모든 걸 두고 이 세상에 왔다.
억지로 이 세상에 빙의당했다.
그 사실이 그저 억울했다. 억울함은 곧설움이 되었고, 설움은 곧 분노가 되었다. 그 분노는 이윽고 악에 받친 의지력으로 화했다.
전신을 유린하는 고통 앞에서 그 분노만이 그의 유일한 아군이었다. 악에 받친 의지력으로 체내에서 날뛰는 마력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그렇게 찰나와도 같은 영원이, 혹은 영원과도 같은 찰나가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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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리스만 정착 시도 중. . . . . . ]
[ 탈리스만 정착 시도 중. . . . . . ]
[ 정착에 성공했습니다. ]
[ A랭크 초능력 를 각성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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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성공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난 순간.
아득해졌던 그의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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