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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3화 (13/266)

〈 13화 〉 012. 지예원(6)

* * *

달이 가득 차오른 겨울밤.

버려진 폐건물 옥상에서 안수호와 지예원은 여명단의 암살자와 대치하고 있었다.

암살자에게 공격당한 안수호가 제 가슴을 어루만졌다. 무방비하게 일격을 허용했으나, 아프긴 해도 뼈가 부러지거나 행동불능에 빠지진 않았다.

비루한 능력치에 꼴에 자신도 초인이구나, 하고 안수호가 작게 감탄했다.

­스릉.

허리에 찬 스턴 블레이드를 뽑아 들며 안수호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적은 두 명. 눈앞에 저 금발 양아치와 먼 곳에서 이쪽을 저격한 저격수.’

허나 그 둘이 끝이라고 볼 순 없었다. 최악을 가정한다면 세 번째, 네 번째 적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으리라.

반면 이쪽의 전력은 자신과 지예원 뿐.

채소연의 부상은 심각했다. 그녀가 초인인 걸 감안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치명상. 전력으로서 기대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나쁜 상황도 아니다.’

불행 중 다행히 그의 초능력, ‘검은 연기’ 덕분에 원거리에서의 저격은 반쯤 봉인된 상태였다.

즉,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적은 눈앞의 암살자가 전부.

그의 전력은 미지수지만 지예원과 2대 1로 싸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채소연의 상태는?”

“살아는 있어. 하지만 오래는 못 버텨.”

의식을 잃은 채소연의 몸을 지예원이 바닥에 눕혔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얕은 호흡만이 그녀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소박하게 주장했다.

‘채소연은 주요 등장인물도, 아카데미 재학생도 아니다.’

즉, 설령 그녀가 죽는다고 해서 시스템적으로 안수호에게 페널티가 돌아갈 일은 없다.

허나 채소연은 민채령의 부하. 그녀의 죽음으로 민채령이 그를 탓하진 않겠지만, 살릴 수 있다면 살리는 편이 좋았다.

‘다행히 퀘스트 보상에는 중급 회복 포션도 있다.’

안수호는 원작의 지식을 토대로 포션의 회복 효과를 가늠해보았다. 치명상이니 완치는 하지 못하겠지만, 죽지 않을 정도까지 부상을 경감시키는 건 가능하리라.

‘즉, 채소연이 죽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내야 해.’

그가 스턴 블레이드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날 부분이 뭉툭해서 검으로써의 기능은 바랄 수 없었으나, 도신에 흐르는 살인적인 전류는 설령 초인이라 해도 긴장할 수준이었다.

‘다짜고짜 목숨을 건 싸움이라니.’

싸움과 관련된 인생 최고 업적이 복싱 교실 스파링에서 3분 내내 얻어맞은 거인 그였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긴장감에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푹 절었다.

“예원 씨. 미리 말하는데 저 그리 잘 못 싸웁니다.”

“보조만 맞춰.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예원이 양손에 흑색 단검을 쥔 채 앞으로 나섰다.

“오오, 도망칠 생각도 않고 맞서 싸운다니, 멋진데! 하긴, 그 쥐새끼년이 탈리스만을 훔칠 때도 네가 시선을 끌었었지? 사냥조 출신이라더니 싸움에는 도가 텄나 봐?”

암살자가 껄렁한 자세로 도끼를 어깨에 걸쳤다. 그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도 너무 서두르지는 말자고. 배신하기는 했어도 얼마 전까진 한솥밥 먹던 식구잖아? 서로 죽고 죽이기 전에 느긋하게 이야기나 하지.”

“허튼수작 부리지 마. 다른 놈들이 올 때까지 시간 벌려는 속셈인 거 내가 모를까 봐?”

지예원이 자세를 낮췄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 그에 맞춰 안수호도 엉거주춤 자세를 가다듬자 조직의 암살자가 능글맞은 얼굴로 말했다.

“섭섭하게 속셈은 무슨. 말 그대로 이야기나 하자는 건데. 네 동료가 어떻게 됐는지는 궁금하지도 않나 보지?”

그 말에 지예원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 반응을 보며 암살자가 더욱 진한 웃음을 지었다.

“말해줄까? 어떻게 됐는지? 응? 궁금하지 않냐?”

“닥쳐.”

지예원은 자신의 동료가 처한 상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정보를 다 실토했겠지. 조직의 암살자인 그가 보란 듯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게 그 증거였다.

“이름이 분명 김민아였나 그랬는데. 너 그 쥐새끼랑 꽤 친했다며? 같은 고아원 출신이었던가?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 정말 안 궁금해? 마침 그년 고문할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 원한다면 생생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데.”

“닥치라고 했지!”

“여러모로 아쉬운 고문이었지. 고문을 맡은 놈이 신입이라 좀 미숙했거든.”

지예원이 무어라 하든 암살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마치 이야기하고 싶어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그가 흥분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고로 고문이란 원래 강도를 조금씩 높여가며 살살 조여주는 게 묘미인데, 이 놈이 글쎄 긴장했는지 초장부터 너무 세게 나가는 거야.”

“시작이 뭐더라?그래, 일단 정석적으로 손발톱부터 다 빼고 시작했지. 근데 그 정도로는 입도 뻥끗 안 하더라고. 팔다리 다 합해서 20개를 다 뺐는데도 눈빛이 살아있는 게, 고문관 놈이 뭐라 묻든 결코 말할 수 없다며 굳게 버텼지.”

“근데 내가 말했잖아. 고문관 놈이 신입이었다고. 분명 배운 대로 했는데 상대가 굴복의 ㄱ 자도 보이질 않으니 초조해진 거지.”

“원래 첫 고문에 실토하지 않으면 자백제를 투여하고 좀 놔둬서 약물에 절인 다음에 다시 질문해야 하는데, 이놈은 곧바로 다음 고문으로 넘어갔어. 손가락을 뻰치로 으깨고, 손등을 망치로 짓이기고, 나이프로 팔뚝의 살을 조금씩 져몄지. 꼭 무슨 교과서라도 보고 그대로 따라하듯 손끝부터 순서대로 올라가는데. 이야, 신입인 건 신입이고 참 잘 배웠구나 싶다니까?”

“그런데 이제 거기서 문제가 터진 거지. 원래 이 고문이란 게, 특히 신체적인 고문은 너무 큰 고통을 주면 안 돼요. 쇼크로 뒤질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정신이 너무 심하게 망가지면 여러모로 귀찮거든. 그래서 자백제든 마약이든 미리 약에 절여둬서 고통을 좀 경감시켜줘야 해. 고문이란 게 결국 고통을 주는 게 목적인데 참 아이러니하지?”

신나서 말하던 그가 지예원을 바라봤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던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암살자는 지예원의 그 표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겉으론 아닌 척해도, 결국 궁금한 건 궁금한 거지.’

김민아와 지예원의 관계가 얼마나 각별한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 그녀는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의 안위가 걱정되고 또한 궁금하리라.

그렇다면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게 도리라며, 메마른 입술을 혀로 훔친 그가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내가 말했잖아. 이 신입 놈이 자백제를 포함해서 약물류는 어떤 것도 쓰지 않았다고.”

그 말에 지예원의 표정이 굳었다. 이어서 남자가 어떤 말을 꺼낼지 예상이 되었기에.

"아무래도 신입이 자존심이 꽤 상했나봐. 그년이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결코 고문을 멈추지 않더라고. 그러다가 무슨 이상한 바늘로척추 쪽 신경을 건드리는 고문을 했는데 글쎄, 이상하게 반응이 없는 거야. 아차 싶어서 보니까 이미 정신이 나가 있더라고. 몸은 살아있는데 정신은 죽었다고 해야 하나? 뒤늦게 응급처치도 하고 진통제도 투여하고 별 지랄을 다 해봤는데도 회복이 안 되더군."

"……뭐?"

"덕분에 이 장소 알아내는 것도 참 고역이었어. 말조차 제대로 못하고 그나마 입을 열어도 아프다, 싫다, 죽여달라, 이 말밖에 안 했거든!”

한바탕 떠든 그가 후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이 모든 내용을 제대로 전해서 홀가분하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미리 탈리스만을 회수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거야. 장소까지는 어떻게 알아냈는데 맛이 하도 가서 초능력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더라고. 뭐, 그 공간수납? 그거 열려면 본인이 직접 가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열쇠인지 뭔지를 줘야 한다며? 인사불성으로 침이나 질질 흘리는 년한테 그게 가당키나 하겠어? 덕분에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잠복근무할 생각에 치가 떨렸는데, 하루 만에 나타나줘서 참 고마워!”

암살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비꼬는 의도가 다분한 행동.

빠득, 소리를 내며 지예원이 이빨을 갈았다. 단검을 쥔 그녀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예원 씨. 진정하세요.”

“……진정은 무슨. 나 아주 멀쩡해.”

뻔히 보이는 도발이었다. 지예원은 가까스로 마음을 다스렸다. 암살자의 언행에 분노할지언정 그 이성만은 차갑게 유지했다.

“고문이고 나발이고 이미 서로 각오한 바야. 그 정도 각오도 없었으면 여명단을 배신할 생각도 안 했지.”

“오, 각오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걔는 한 세 시간 지나니까 살려만 준다면 내 좆이라도 빨 기세던데. 참 알량한 각오로군.”

"……이개새끼야!"

허나 음흉한 눈으로 혓바닥을 놀리는 그의 모습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뚝 끊어졌다.

­팟!

살벌한 표정과 함께 지예원이 지면을 박찼다. 안수호가 그렇게 인지한 순간, 그녀는 이미 순식간에 추격자의 품으로 파고든 뒤였다.

­카앙!

직후,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맹렬하게 울렸다.

­카앙! 캉! 카앙! 카아앙!

흐릿한 반사광이 허공에 수놓아졌다. 칼날과 도끼날이 사방에서 교차한다. 일반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 안수호조차 간신히 잔상을 쫓는 게 고작이었다.

­카아앙!

양손에 쥔 단검을 종횡무진 휘두르는 지예원.

그 모습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과 같았다.

전투라기보다는 검무에 가까운 움직임. 보는 이의 시선을 어지럽히는 화려한 춤사위였다. 비록 분노에 몸을 맡겼을지언정 그 움직임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까아아앙!

한편, 암살자의 공격은 지극히 단순했다.

공격을 막고, 횡으로 휘두르거나, 종으로 내려찍는다.

단순한 삼박자의 움직임이었으나 빈틈이 전혀 없었다. 우직하게 도끼를 휘두르는 그 기세는 마치 견고하게 다져진 철옹성과 같았다.

창과 방패의 싸움. 얼핏 길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세.

그러나 암살자와 싸우고 있는 건 지예원 혼자만이 아니었다.

­파지지직!

뒤늦게 뛰어든 안수호가 스턴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지예원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암살자를 공격할 수 있는 절묘한 위치. 전투에 문외한인 것 치고는 썩 괜찮은 위치 선정이었다.

허나 그래봤자 초보자의 움직임. 전투에 이골이 난 암살자를 위협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퍼억!

“크윽?!”

부지불식간 날아든 발차기에 안수호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진심을 다한 공격이 아닌, 지예원을 상대하며 견제로 뻗은 일격.

허나 안수호를 상대하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비루한 그의 몸뚱이에는 암살자의 가벼운 일격마저 치명상으로 다가왔으니.

“어째 동료들이 다 시원찮군! 한 명은 저격 한 방에 뒤졌고, 남은 놈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데?”

“너 하나 죽이는 데엔 나 혼자서도 충분해!”

“아주 잘났군 그래!”

­까아아앙!

다음 순간, 암살자의 도끼에 지예원의 단검이 부서졌다.

암살자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자세를 추스르려 뒷걸음질 친 지예원의 품으로 그가 매섭게 달려들었다.

­까앙!

허나 그가 기세 좋게 휘두른 도끼는 안수호의 스턴 블레이드에 막혔다. 서로간의 근력 차이 때문에 안수호의 무릎이 꺾였다.

꺾였으나, 그가 만든 잠시간의 틈은 지예원이 자세를 정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초능력으로 만든 새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피슛!

암살자의 팔이 얕게 베였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지만 상처는 상처. 순식간에 십여 미터를 물러선 그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꽤 하네?”

“……칭찬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암살자가 혀를 찼다.

‘지예원. 사냥조 출신이란 건 들었지만 역시 강하군. 저 안수호라는 놈도 느려터진 거에 비해 센스가 좋아서 묘하게 거슬리고…….’

암살자가 흘끗 자신의 등 뒤를 바라봤다. 그의 동료 저격수가 있는 방향의 허공을 시커먼 연막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람에 흩어지지도 않는 걸 보면 평범한 연막은 아닌가.’

아마 저 안수호라는 남자의 초능력이겠거니 하며 그가 자세를 낮췄다.

‘조금 예상 외긴 하지만, 딱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지예원이 갈만한 다른 장소를 지키고 있던 조직의 다른 추격자들. 그들 전원이 지금 그가 있는 이 폐건물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저격수 또한 지금쯤 연막에 방해받지 않는 곳으로 위치를 옮기고 있을 터.

지금 당장은 일시적으로 그가 불리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정도 유불리는 자연스레 뒤집히게 되리라.

일순 지예원에게 다른 동료가 있을 가능성이 스쳤으나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범죄자인 그녀가 몸담았던 조직마저 잃었는데 어디서 동료를 구하겠는가.

설령 이전에 알고 지내던 동료가 있다 해도 여명단을 적으로 돌린 그녀를 선뜻 도우려고 나서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 연놈들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느냔 말이지.’

채소연과 안수호를 번갈아보며 그가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의 정체에 대해 이런저런 가능성이 떠올랐으나 하나같이 착 와닿지 않았다.

제아무리 조직의 암살자로 이골이 난 그라도 설마 아카데미 경비대가 먼저 지예원에게 접선하여 도움을 자처했으리라곤 예상치 못하리라.

‘모르겠다.’

결국 그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래봤자 어설픈 실력의 사내 한 명에 저격당해 다 죽어가는 여자 한 명. 큰 위협은 아니었다.

‘보아하니 둘이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것 같지는 않은데…….’

좀 전의 전투로 그는 두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뒤였다.

지예원은 강했다. 춤사위와 같은 현란한 검술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허나 감당하지 못할 정도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반면 안수호는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재능은 다소 있어 보이나 실력은 일천. 초인으로서의 신체능력도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둘 중 하나를 노린다면 저놈이군.’

암살자가 씨익 웃었다. 어떻게 눈앞의 두 사람을 쓰러뜨릴지 그의 머릿속에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파앗!

암살자가 달려들었다. 노도와 같은 기세로 휘둘러지는 도끼가 안수호의 목을 노렸다.

­카앙!

그 일격을 지예원이 막아내고, 틈을 놓치지 않고 안수호가 블레이드를 휘두른다.

그 공격에 반응하자 이번에는 지예원이, 그 다음에는 또 안수호가 파트너의 틈을 메꾼다.

2대 1이라는 장점을 살린 두 사람의 공격에, 암살자의 몸에 자그마한 상처가 점차 늘어갔다.

얼핏 보면 썩 괜찮은 연계.

허나 세세하게 보면 군데군데 틈이 많았으며, 특히 안수호의 움직임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이길 수 있다.’

반면 안수호 본인은 예상 외로 유리하게 흘러가는 전세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길 수 있어. 충분히 해볼 만 해!’

처음 경험하는 목숨을 건 실전. 온몸을 죄어오는 긴장감과 흥분감. 대뇌를 적실 정도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에 그의 피가 들끓었다.

전투 돌입 전 느끼던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었다. 첫 실전의 흥분감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자신감이 그의 판단력을 흐렸다.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대담해져가는 움직임.

이를 알아차린 지예원이 억지로 그의 템포에 맞췄으나, 그로 인해 두 사람의 급조된 연계에는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금은 거대한 균열이 되었다.

“흐읍!”

안수호가 있는 힘껏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빈틈투성이인 일격. 허나 암살자는 그 빈틈을 노리지 않고 그의 공격을 등 뒤로 흘려냈다.

기세를 이기지 못한 안수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초보적인 실수. 허나 그 누가 그를 탓할 수 있으랴. 오히려 이때까지 어설프게나마 지예원의 움직임에 맞출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제 몫을 한 것이었다.

다만, 이것은 목숨을 건 실전.

설령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제 실수에 의한 결과는 온전히 그가 책임져야 할 몫이었다.

혹은, 그의 동료가 책임지거나.

­까아아앙!!

암살자의 일격. 새된 울림과 함께 지예원의 칼날이 또다시 부러졌다.

그녀의 단검은 그녀의 초능력으로 만들어낸 것. 값비싼 괴수의 소재로 만든 암살자의 도끼보다는 질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새로운 검을 만들어내며 그녀가 물러섰다. 본래라면 그 빈틈을 안수호가 메꿔줘야 했으나, 그는 제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저만치 앞서나간 상태.

지예원의 얼굴에 낭패라는 기색이 스쳤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암살자의 도끼가 맹렬하게 내려찍히고.

­푸확!

다음 순간, 새빨간 피가 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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