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12화 (12/266)

〈 12화 〉 011. 지예원(5)

* * *

이 세상에 마법은 없다. 허나 마력이란 힘은 존재했다.

마력.

그것은 괴수의 중심에 자리한 마석에 담긴 에너지이며, 모든 초인들이 저마다 체내에 품고 있는 힘이자, 초능력을 사용하는 데에 소모되는 자원이었다.

초인의 신체능력이 월등한 것도, 과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다 이 마력이라는 힘 덕분.

허나 현 시점의 인류는 마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초능력을 연구하는 일선 과학자들도 겨우 윤곽만 잡은 상태.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마력의 존재가 알려지는 건 원작 중반부 이후의 일이었다.

단, 원작의 주인공, 류태현만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마력의 개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가 지닌 탈리스만에 담긴 능력이 마력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초능력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초능력.’

이 능력의 정체는 대기 중에 퍼진 마력을 탈리스만을 매개로 흡수, 정제하여 체내 마력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력 흡수’라 할 수 있겠지.

그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던 덕분에 주인공은 어렴풋이나마 마력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다른 초인보다 감각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이곤 했다.

능력 자체도 사기적인데 그러한 부가적인 효과까지 있었으니, 주인공이 초반 스토리에서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그게 왜 여기서 나와?’

문제는 그 탈리스만이 어째서인지 주인공이 아니라 지예원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차분히 생각해보자.’

혼란스러운 가슴을 진정시키며 나는 빠르게 원작 스토리를 훑었다.

‘주인공이 이 탈리스만을 어쩌다 얻었더라? 그래. 분명 300화 쯤인가 과거회상 에피소드에서 관련 내용이 나왔던 것 같은­.’

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번뜩이는 영감이 뇌리를 강타했다.

주인공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직전 겨울. 일요일 밤. 주인공에게 탈리스만을 맡긴 의문의 여성.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빠르게 맞춰졌다. 이내 자연스레 돌아간 고개가 지예원에게 향했다.

그 순간, 나는 사건의 전모가 어떻게 된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왜 원작에 나오지도 않은 지예원이 주요 등장인물인가 했더니.’

오판이었다. 지예원은 원작에 등장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비록 비중은 단역에 불과할지라도, 그녀는 확실하게 원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주인공에게 탈리스만을 넘긴 여성. 그게 지예원이었군.’

경비대와 만나지 않았을 원작의 지예원은 내일 탈리스만을 찾으러 폐건물로 향했을 테고, 거기서 여명단의 암살자와 만나 사투를 벌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어찌 도망친 끝에 우연히 조깅 중이던 주인공과 만나, 탈리스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에게 넘겼으리라.

그러고 다신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여명단의 암살자에게 당한 거겠지.

그래. 원작에서 묘사되었던 그대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확실하게 들어맞았다.

들어맞았으나.

‘빌어먹을.’

꼬일대로 꼬여버린 상황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는 연재분에서 밝혀진 모든 기연의 종류와 습득 절차를 알고 있었다. 최소한의 능력만 받쳐준다면 그 모든 기연을 독식하는 것 따위, 내게 있어선 누워서 떡 먹기였다.

허나, 나는 주인공이 받을 기연만은 빼앗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주인공은 스토리의 핵심. 내가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주인공이 약해지면 분명 어딘가에서 문제가 터질 것이다. 모든 사건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일어날 것이므로.

‘쾌락천마 이 자식이 진짜…….’

그렇게 다짐했건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주인공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연인 탈리스만을 졸지에 내가 가로채게 생겨버렸으니.

‘아니, 차라리 내가 가로채면 낫지. 이대로 가다간 영락없이 경비대에서 회수할 게 뻔해.’

어떻게든 탈리스만을 빼돌려 주인공에게 넘기거나, 하다못해 내가 사용할 방법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사이 어느덧 지예원과 채소연이 나갈 채비를 마쳤다.

“뭐해? 나가지 않고.”

“……그래.”

두 사람의 재촉에 원룸을 나섰다. 채소연의 차에 탑승한 우리 세 사람은 그대로 탈리스만이 숨겨져 있는 폐건물로 향했다.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래?”

지예원이 걱정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녀는 내가 사준 스타킹과 더불어 여분으로 가져온 디펜시브 코트까지 걸친 채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무슨. 아까 내가 탈리스만 이야기 했을 때부터 표정 곱창났더만.”

아주 제대로 봤다. 허나 이쪽 사정을 곧이곧대로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지예원도 포기한 듯 고개를 돌렸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불빛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은 일단 눈앞의 퀘스트에 집중하자.’

수습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다. 지금은 탈리스만을 회수하고 지예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끼익.

그때 교차로 신호에 걸린 차가 멈췄다.

때마침 잘됐다는 듯 채소연이 뒷좌석에 탄 나와 지예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탈리스만을 회수하면 곧바로 안전가옥으로 갈 거야. 만약 그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

잠시간의 뜸.

그 사이 신호가 바뀌자 채소연이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지나가듯 말했다.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안수호 네가 책임지고 지예원을 데리고 가.”

“시간을 번다고? 네가?”

차라리 다 같이 응전하는 편이 낫지 않느냐. 그렇게 반문했으나 채소연은 내 말에 피식 웃어보였다.

“내가 말했잖아. 다른 건 몰라도 싸움 하나는 잘한다고.”

그간 보여준 모습만으론 글쎄올시다였지만, 저렇게 자신하는 걸 보면 믿는 구석이 있는 거겠지.

“……나름 보험도 있고.”

채소연의 중얼거림이 허공에 흩어졌다.

그로부터 약 30분 뒤. 미행을 경계해 일부러 빙 돌아 이동한 우리는 마침내 탈리스만이 숨겨져 있는 폐건물에 도착했다.

“서두르자.”

지예원이 앞장서 건물에 들어가고 나와 채소연이 그 뒤를 따랐다. 살풍경한 로비를 지나친 우리는 곧장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덜컹.

녹슨 문을 열고 나가자 을씨년스러운 밤의 옥상이 우리를 반겨줬다.

“여기야?”

채소연의 물음에 지예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소매를 걷자 팔 안쪽에 새겨진 열쇠 모양의 문신이 은은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녀가 천천히 옥상을 나아갔다. 그에 따라 문신의 빛도 점차 밝아졌다.

이윽고 그녀가 옥상 중앙에 도착했을 때.

“개방.”

짧은 시동어를 읊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새하얀 틈이 주욱 그어졌다.

‘오.’

그 신기한 광경에 자연스레 시선을 빼앗겼다. 꼭 CG 그래픽을 보는 것 같았다. 지예원이 문신이 새겨진 손을 뻗자 허공에 그려진 틈이 좌우로 벌어졌다.

그 틈 사이로 그녀가 손을 집어넣고, 이윽고 손이 빠져나왔을 때 그 손에는 자그마한 반지 케이스가 쥐어져 있었다.

긴장감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본래라면 주인공에게 전해졌어야 할 ‘마력흡수’의 능력이 담긴 탈리스만.

그 탈리스만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자연스레 주먹이 꽈악 쥐어졌다.

지예원이 반지 케이스를 열어 안쪽을 확인했다.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우리에게 말했다.

“내용물에 이상은 없어.”

“바로 이동하자.”

지예원과 채소연이 발걸음을 돌렸다. 나 역시 그녀들을 따라 옥상 계단으로 향하려 했다.

허나 그 순간.

갑작스레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

[ 퀘스트 정보가 갱신됩니다. ]

[ 사건의 진행이 본래 전개에서 크게 벗어났습니다! 불확정요소로 인해 사건 발생까지 남은 시간이 변동됩니다! ]

[ 사건 발생까지 남은 시간 : 0시간 0분 5초. ]

===

순간, 사고가 멈췄다.

메시지의 내용을 파악하기까지 약 2초.

무어라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곧바로 저만치 앞서가는 지예원을 향해 달려갔다.

“지예원!”

남은 시간 3초.내 외침에 지예원이 고개를 돌렸다.

2초.뒤늦게 돌아본 채소연의 표정에 의문이 서렸다.

1초.시야 구석에서 자그마한 빛이 번쩍이고.

0초.불길한 예감이라도 들었는지 채소연이 내게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채소연의 몸이 저만치 날아가 나뒹굴었다.

“어?”

“어?”

­타앙……

나와 지예원의 탄성이 겹치고, 뒤늦게 멀리서 육중한 총성이 울렸다.

‘저격!’

그렇게 판단한 순간, 지예원은 이미 건물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얼른 이쪽으로!”

지예원에게 달려가며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시선이 향한 곳은 조금 전, 새하얀 섬광이 터졌던 방향.

문득 정신을 차리자, 나는 어느 새 그 방향을 향해 오른팔을 뻗고 있었다.

­푸화아아악!

부지불식간에 초능력이 발동되고 오른손에서 검은 연막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퍼진 연막이 내 몸을 가렸다.

직후.

­퍼석!

­타앙……

다시 한 번 총소리가 울리고,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 콘크리트 파편이 튀었다.연막이 저격수의 시야를 가리는 사이 나는 재빨리 지예원의 옆으로 붙었다.

“방향 남서쪽! 거리 최소 500미터 이상! 미행이 아니야. 애초부터 이 장소를 알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지예원의 말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심장이 쿵쾅대며 박동하고 순식간에 호흡이 가빠졌다.

날뛰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저 멀리. 채소연이 고개가 돌아간 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그녀의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울컥울컥 솟구치는 혈액이 순식간에 바닥을 적셔갔다.

“채소연?”

채소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쓰러진 그녀는 미동조차 없다.

불안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죽었다.

죽었나?

아니, 그럴 리가.

정말 죽었다고? 단 한 발에?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뇌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어대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입안이 바싹 마르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짜악!

그 순간 뺨에 느껴진 알싸한 아픔.

“정신 차려!”

그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지예원이 내 따귀를 친 모양이었다.

“얼타지 마! 정신 못 차리고 머뭇거리다간 너나 나나 다 죽은 목숨이니까! 알겠어?!”

지예원의 단호한 일갈. 그와 함께 찾아온 얼얼한 아픔에 조금이지만 정신이 맑게 개었다.

“방금 그 연막은 뭐였어? 연막탄이라도 쓴 거야?”

“아니, 내 능력이야.”

“그 능력 다시 한 번 쓸 수 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턱으로 옥상 계단을 가리켰다.

“신호하면 있는 힘껏 연막을 피워. 다행히 주변에 다른 건물이 많으니까, 옥상 아래로 내려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저격당하진 않을 거야.”

“알겠어. 한 번 해볼게.”

아직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은 초능력이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채소연은 어떻게 하지?”

“……데리고 가자.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으니까. 옮기는 건 내가 할게. 대신 너는­.”

“운전은 내가 하란 이야기지? 안전가옥 위치는 이제 나만 알고 있으니까.”

“그래. 셋 세면 능력을 발동해. 하나…….”

지예원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능력 발동을 준비했다.

‘잠깐. 뭔가 이상해.’

그 순간 불현듯 스친 위화감.

저격수는 우리가 이곳에 올 걸 알고 미리 멀리서 대기하고 있었다.

허나 지예원의 말했듯 주변에 건물이 많은 탓에, 옥상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저격수는 시야에서 우리를 잃을 것이다.

이상한 점은 바로 그 점이었다.

‘왜 굳이 불확실한 저격을 택한 거지?’

주변 건물 때문에 시야가 방해되리란 건 놈도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왜 굳이 저격을 선택했는가.

지예원이 혼자일 거라 생각해서? 한 명이라면 일격에 끝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명색이 여명단의 암살자라는 놈 일처리가 그렇게 허술할 리가…….

“……셋!”

고민하는 사이 카운트다운이 끝났다. 나는 곧바로 저격수가 있는 방향을 향해 연막을 있는 힘껏 흩뿌렸다.

‘생각은 나중이다. 일단 저격수를 피해 옥상을 벗어나는 게 먼저야.’

지예원이 채소연을 데리러 간 사이 나는 먼저 옥상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암살자가 꼭 한 명이란 보장은 없잖아.’

기다렸다는 듯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남성.

나는 곧바로 테이저 건을 뽑아들어 그를 겨눴다.

겨눴으나.

­퍼억!

다음 순간, 둔탁한 충격과 함께 몸이 허공을 날았다.

“크윽!”

수 미터를 날아간 몸이 사정없이 콘크리트 바닥을 굴렀다. 폐에 담긴 공기가 일제히 빠져나가며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커헉! 헉!”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는 정면을 바라봤다.

“이놈은 또 뭐야? 그새 또 동료가 생겼나?”

날 공격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 껄렁한 인상의 젊은 남성. 머리는 샛노랗게 물들이고 옷에는 시대착오적인 악세사리가 주렁주렁 달려있었으며, 그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안수호!"

그 외침에 한 박자 늦게 남자가 지예원을 발견했다.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린 남자의 얼굴에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반갑다 배신자. 물건 받으러 왔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