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008. 지예원(2)
* * *
모텔 현관에 들어서자 흑색 대리석으로 마감된 작달막한 로비가 우리를 맞이했다. 벽 한쪽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쳤다.
검은 코트로 몸을 꽁꽁 싸맨 수상한 차림의 두 남녀.
한쪽은 건장한 20대 청년. 다른 한쪽은 키 145 정도의 앳된 외모를 한 금발 여자아이.
누가 봐도 오해할법한 그 그림에 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드르륵.
그때, 현관 맞은편 작게 난 창이 열리며 모텔 주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내게 아주 잠시 머물렀던 그의 시선이 곧바로 채소연에게로 향했다.
카운터까지 걸어가는 내내 주인의 시선은 채소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카운터 앞에 도착한 순간, 그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그전까진 없던 깊은 주름을 미간에 새겨둔 채로.
그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차마 눈을 마주치기가 겁났다.
“……숙박인가요? 아니면 대실?”
모텔 주인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언뜻 본 그 눈은 꼭 범죄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이었으나, 다행히 나와 그녀의 관계에 대해 추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경비대라 밝힐 순 없으니 일단 아무 방이나 대실하는 게 낫겠지.’
괜히 일을 시끄럽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주말 대실이라고 해봐야 끽해야 몇만 원이고.
“대실로.”
“둘 다 아니에요. 703호에 친구가 있어서 잠깐 얼굴 좀 보러 왔어요!”
그때 채소연이 내 말을 끊으며 해맑게 대답했다.
“……703호?”
주인이 눈을 치뜨면서 반문하더니 이내 미심쩍은 얼굴로 컴퓨터를 조작했다. 투숙객 명부라도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703호에는 이십 대 여성 손님 한 분께서 투숙하시는 중인데, 친구분이라는 게 그분 맞습니까?”
“네 맞아요! 잠시 올라가 봐도 되죠?”
“일단 인터폰으로 연락부터 해보겠습니다. 그, 확인도 안 하고 마음대로 올려 보내드릴 순 없어서.”
“앗. 그건 좀 곤란해요! 사실 저희가 서프라이즈 이벤트 계획 중이라서!”
“서프라이즈요?”
그렇게 반문하는 주인에게 채소연이 해맑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이런 미친.’
쩔그럭.
그녀가 꺼내든 건 은색으로 도장된 수갑이었다. 평범한 수갑이 아닌 초인을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제품.
허나 모텔 주인이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다. 모텔 로비에서 해맑게 수갑을 꺼내든 그녀를 보며 주인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갔다.
“오늘이 그 친구한테 특별한 날이라 여기 이 오빠랑 이런저런 이벤트를 좀 준비했거든요. 좀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네?”
“…….”
천진난만한 채소연의 태도에 주인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좀 전과 달리 그 시선에선 묘한 부러움과 경외감마저 느껴졌다.
아마 그의 눈에는 내가 주말 대낮부터 여자를 둘이나 끼고 변태적인 플레이를 일삼는 괴짜로 보이겠지.
‘시발.’
그 시선에 내가 멋쩍게 웃자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올라가십쇼. 그렇지만, 다음부터 추가 투숙객이 생길 땐 미리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네! 다음번에 올 때 참고할게요!”
채소연의 해맑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부럽다 시발.”
주인의 허망한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우우우우웅.
엘리베이터 안에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채소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좀 전에 꺼냈던 수갑을 주섬주섬 코트 안쪽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 채소연 씨.”
“왜?”
“방금 그 대화. 그러니까 그, 일부러 의도하신 거죠? 주인이 오해하게끔?”
“오해? 저 아저씨가 뭘 오해하는데?”
채소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
이내 그녀가 아! 하고 손뼉을 쳤다.
“방금 로비에서 이벤트니 뭐니 했던 거? 그거 다 팀장님이 알려주신 건데?”
“예?”
“팀장님이 미리 그러셨거든. 모텔 들어가서 주인이 미심쩍은 눈으로 보면 좀 전처럼 행동하라고. 그럼 아무 말도 안 하고 올려 보내줄 거라 하시던데?”
말하는 걸 들어보면 채소연은 이쪽 방면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게 분명했다. 민채령도 참 무섭다. 어떻게 이런 애한테 그런 연기를 시킬 생각을 했는지 원.
“그런데 왜 그냥 올려보내 준 거지? 수갑 때문에 경찰이라고 오해하신 건가?”
“몰라도 됩니다. 아니, 모르는 게 낫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놔두는 편이 낫다. 발자국 하나 없이 새하얗게 펼쳐진 설원에 굳이 나서서 발자국을 찍고 싶진 않았다.
띵.
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하고. 이내 우리 두 사람은 지예원이 묵고 있는 703호 앞에 도착했다.
코트 안쪽에 감춰둔 테이저 건을 꺼내들며 내가 작게 물었다.
“어떻게 합니까? 그냥 강제로 열고 들어갈까요?”
“나한테 맡겨. 다 방법이 있으니까!”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 채소연이 똑똑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룸서비스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동네 모텔에 룸서비스가 어디 있습니까?”
“엥? 없어? 그럴 리가?”
“……설마 이것도 팀장님이 알려준 방법입니까?”
“아니? 그, 이건 내가 어디서 본 건데.”
“어디서 뭘 봤는데요.”
“유○브. 미국 경찰 관련 영상 올리는 채널이 있는데. 거기선 분명 모텔 잠입할 때 이렇게 말하니까 범인이 문 열어주던데……?”
묘하게 익숙한 설명이었다. 분명 소아성애자 범죄자를 검거하는 미국 보안관 영상인가 그랬을 거다. 원래 세상에서 예전에 어쩌다 본 기억이 있었다.
그 채널이 이쪽 세상에도 있구나. 응.
아무래도 좋을 정보였다.
“이, 이제 어떡하지? 그냥 부수고 들어가고 나중에 배상하면 괜찮지 않을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
덜컥.
그때,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모텔 문이 살며시 열렸다. 그 틈 사이로 퀭한 눈동자가 우리 두 사람을 바라봤다.
마치 마약중독자처럼 시커멓게 썩어들어간 눈동자.
그 눈동자의 주인은 모텔 주인의 말대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성이었다. 아마 그녀가 지예원이리라.
“……룸서비스라고?”
“아뇨! 그린하우스 경비대입니다!”
채소연이 해맑게 대원증을 내세우며 외쳤다. 그걸 본 지예원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직후.
파앗!
갑작스레 튀어나온 단검이 내 턱을 향해 쇄도해왔다.
“으왓?!”
채소연이 날 밀쳤다. 직후 단검이 내 뺨을 스치고 벽에 박혔다.
“쳇.”
“어딜 도망가려고!”
지예원이 혀를 차며 문을 닫으려던 찰나 채소연이 방문을 발로 걷어차며 안으로 난입했다.
“그린하우스 경비대 특수대책과 채소연이다! 현시간부로 널 경비대원에 대한 폭행 및 상해죄로 긴급 체포한다!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는 게 좋을걸!”
호기롭게 외치며 채소연이 스턴 블레이드를 꺼내들었다. 버튼을 누르자 검이라기보다는 몽둥이에 가까운 도신에 시퍼런 전류가 파지지직 하고 흐르기 시작했다.
한편 대치하는 지예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맨몸이었다. 조금 전에 던진 단검 외에 다른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까득. 까드드득.
그렇게 생각한 순간,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바닥에서 흑색 칼날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완성된 두 자루의 검을 겨누며 지예원이 자세를 낮췄다.
“……경비대가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야?”
“물질 조성계 초능력? 범죄자 주제에 꽤 성가신 초능력을 가지고 있네?”
“묻는 말에나 대답해. 무슨 볼일이냐고 묻잖아.”
“잠깐!”
순식간에 험악해져 가는 분위기에 내가 급하게 달려들어 외쳤다.
“지예원 씨!”
내 부름에 지예원이 찌릿 내 쪽을 돌아보았다. 서둘러 대원증을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린하우스 경비대 대원 안수호라고 합니다! 저희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일단 진정하고 대화를 합시다!”
“대화는 무슨. 쟤는 다짜고짜 널 공격했어. 애초에 저런 범죄자 따위랑 대화가 될 리가 없지.”
“먼저 수상하게 접근한 건 그쪽이잖아. 참나, 이런 동네 모텔에 룸서비스가 어디 있다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무심코 열어봤네.”
“미국 모텔은 있거든?!”
“웃기지도 않네. 그래서 여기가 미국인가? 아니, 상대를 속이려면 좀 그럴듯한 거짓말을 치든가. 대가리에 도대체 뭐가 든 거야?”
“뭐?! 너 말 다했어?!”
“좀 둘 다 진정 좀 합시다!”
대치하고 있는 둘 사이에 끼어들며 외쳤다. 지금 상황에 우리끼리 싸워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쓸데없이 소란을 일으켰다간 주변의 이목을 끌게 된다. 쫓기고 있는 지예원이나, 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 우리들이나 그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전투 도중 지예원이 죽기라도 한다면 졸지에 나까지 죽어버리게 되니까.
“지예원 씨. 지금 여명단으로부터 쫓기고 있죠? 저희 경비대가 당신을 보호하겠습니다. 그러니 무기를 거둬주세요.”
“보호? 너희가 날? 도대체 왜?”
“그야 당신이 저희 아카데미 학생이기 때문이죠. 당연한 것 아닙니까?”
“개소리 집어치워. 내가 니들 꿍꿍이속을 모를 것 같아?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훔친 조직의 물건이 탐나서 이러는 거잖아?”
“조직의 물건?”
그건 또 금시초문이었다. 애초에 그녀에 대해 금시초문이 아닌 게 없긴 했지만.
‘여명단을 배신한 이유가 그 물건이랑 관계가 있나?’
상식적으로 멀쩡히 속해 있던 조직을 배신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그리고 그녀의 태도로 미루어보건대, 그녀가 여명단으로부터 훔쳤다는 물건은 다른 조직도 탐낼 만큼 귀한 물건임이 분명했다.
“당신이 훔친 물건이 무엇인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저희가 아는 건 그저 당신이 여명단을 배신해서 쫓기고 있다는 사실뿐이에요. 물건이니 뭐니 전혀 관심 없습니다. 순전히 당신을 보호하려던 것뿐입니다!”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지예원이 겨눈 칼끝이 살짝 떨렸다. 여전히 경계하고 있으나 그 전보다는 다소 누그러진 태도.
“됐어! 범죄자랑 무슨 대화를 한다고. 어차피 2대 1인데 그냥 싸워서 제압하면 싫어도 우리랑 같이 동행하게 될.”
“닥치세요.”
“뭐?”
“좀 조용히 하라고요. 저 대화 중이니까.”
내 뒤에 있던 채소연이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눈앞에 있는 지예원에게만 집중했다.
“지예원 씨. 다짜고짜 나타나서 믿어달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거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믿어야 할 때입니다. 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그 여명단을 상대로 혼자 도망쳐봤자 얼마나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금방 잡힐 게 뻔하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지금 당신이 살아남으려면 믿을만한 협력자가 필요하단 겁니다. 그 협력자로 아카데미 경비대 정도면 나름 괜찮지 않습니까?”
“…….”
지예원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발 설득되라고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숨 막히는 대치 상황을 먼저 푼 건 지예원 쪽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겨누고 있던 검을 내렸다.
"……그래."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이었다. 묘하게 후련해진 표정으로 지예원이 힘없이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지금 내 상황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
“빈틈 발견!”
그 순간, 잠자코 있던 채소연이 테이저 건을 겨눴다.
“어?”
“엣?”
나와 지예원이 반응한 순간에는 이미 테이저 건의 전극이 지예원의 몸에 꽂힌 뒤였다.
파지지직!
“끄흐으으으윽?!”
다음 순간, 요란한 신음과 함께 지예원의 몸에서 시퍼런 전류가 튀었다.
쿵!
지예원의 몸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입가에 거품을 물며 그녀의 몸이 물 밖에 나온 생선마냥 파들파들 떨었다.
“하하! 걸렸구나, 범죄자 녀석!”
채소연이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그러나 곧 그 표정에 차츰 경악이 서리기 시작했다.
“어, 어라? 이게 왜 안 멈춰?”
채소연이 곤란한 표정으로 테이저 건의 다이얼을 드르륵 돌렸다.
파지지지지직!!
다음 순간, 눈으로 보기에도 더욱 강해보이는 전류가 지예원의 몸을 강타했다.
“꺄흐으으으으으읏?!”
“어?”
“이런 미친!”
곧바로 지예원에게 달려가 전극이 달린 와이어를 걷어냈다. 전기 충격에서 벗어난 그녀의 몸이 외마디 신음을 흘리며 추욱 늘어졌다.
‘살아있나? 살아있겠지?’
급하게 몸 상태를 살폈으나 다행히 호흡도 맥박도 정상이었다.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직후.
쉬이이이이.
물 새는 소리와 함께 시큼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쓰러진 지예원의 청바지 한복판이 진한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어서 고개를 돌리자, 벙찐 얼굴로 테이저 건을 들고 있던 채소연과 눈이 마주쳤다.
이걸 어쩔 거냐는 눈으로 채소연을 바라보자, 그녀가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 작전 성공……?”
작전 성공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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