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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7화 (7/266)

〈 7화 〉 006. 히끅!

* * *

채소연은 근무복 차림이던 낮과 달리 핑크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변장을 위해서 옷을 갈아입은 거야 그렇다 쳐도, 하필이면 색깔이 핑크색이라니.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미행의 기본 전제를 정면으로 역설하는 그 복장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우리 팀장님께 할 말이 있다고?”

양 어깨를 붙들린 채 채소연이 날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왔다갔다했다.

“……일단 이것부터 놓고 이야기하면 안 돼?”

“놔주면 또 도망칠 거잖아요.”

“안 도망칠 거야.”

“정말로?”

“정말로.”

“그럼 좋습니다.”

채소연을 붙든 팔을 놓았다. 그녀가 붙잡혔던 어깨를 문지르며 가만히 날 올려다보았다.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굴러다녔다.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듯한 태도.

"저, 괜찮으십­."

그리고 다음 순간, 순식간에 내 뒤로 돌아선 채소연이 다리를 걸어 날 바닥에 쓰러뜨렸다.

­쿵!

“크윽?!”

“수, 순순히 날 놔주다니! 걸렸구나, 멍청한 녀석!”

그녀가 재빠르게 내 위로 올라타 팔을 꺾었다. 졸지에 제압당한 내 등에 대고 채소연이 크게 소리쳤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조용히 해 이 변태! 야음을 틈타 부녀자를 희롱하다니! 그린하우스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대 대원으로서 널 긴급 체포하겠다! 차가운 철창 안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라!”

“뭐?”

그게 뭔 소리야 갑자기.

“범죄자? 그게 지금 댁이 할 소립니까? 그쪽은 벌써 며칠째 절 미행하지 않았습니까? 스토킹은 뭐 범죄도 아닙니까?”

“마, 맞아. 스토킹은 범죄긴 하지.”

“그럼 피차 마찬가지­.”

“하지만!”

채소연이 평평한 가슴을 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처럼 귀여운 여자애가 졸졸 따라 다녀주는데 너희 업계에선 포상 아니야? 안 그래?”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대가리가 반쯤 돌아버린 게 분명했다.

“업계 포상은 무슨! 그딴 변태새끼들이랑 같은 취급하지 마십쇼!”

“으슥한 골목길에서 가녀린 여자를 막무가내로 껴안더니 강제로 벽으로 밀어붙였으면서. 그게 변태가 아니면 뭔데?!”

“그건!”

반문하려던 말문이 막혔다. 듣고 보니 그렇게만 말하면 변태가 맞긴 하다.

허나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대 불순한 의도는 정말 없었다.

“인정하죠. 방금 행동은 그렇게 해석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붙잡지 않으면 또 도망쳤을 거 아닙니까?”

“경비대는 범죄자의 변명 따위 듣지 않는다!”

채소연이 병아리처럼 빼액 소리 질렀다.

“그쪽도 절 스토킹했으니 피차일반 아닙니까. 범죄자 대 범죄자로서. 서로 지은 죄는 잠시 눈감아주고 대화로 해결합시다.”

“경비대는 범죄자와 대화 따위 하지 않는다!”

한 마리 병아리가 삐약 하고 울었다.

“아니, 하다못해 제가 접근해오면 어떻게 하라고. 민채령 팀장님한테서 뭐든 지시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서 제가 접근하면 자기한테 연락하라­.”

“경비대는 범죄자에게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다!”

귀여운 병아리가 부리를 벌리고 삐약……. 시발, 더는 못 들어주겠다.

“이런 시발 진짜!”

절로 튀어나온 욕설에 채소연이 눈을 부라렸다. 허나 알 바 아니었다.

“아까부터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대화가 진행이 안 되잖아! 대화를 좀 하자고, 대화를!”

“경비대는 범죄자와 대화 따위­.”

“그놈에 경비대, 경비대, 경비대!”

팔을 붙들려 제압당한 채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봤다.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그 어설픈 미행에 장단을 맞춰줘야 하는데?어차피 민채령 목적은 내 영입이잖아? 그래서 부하 한 명 붙여서 대놓고 감시하는 거 아니야! 남들한테 쟤 자기가 데려갈 거라고 눈도장 찍어두는 거 아니냐고!”

“아, 아니거든!”

“그럼 뭔데!?”

“팀장님은­!”

채소연의 외침이 허공에 흩어졌다. 일순 그 얼굴에 망설임이 서리더니, 이내 말끝을 흐린 그녀가 입술을 잘근 씹는다.

“……팀장님은 일단 당분간은 지켜보기만 하신다고 하셨어. 그래서 나보고 들키지 않게 조심히 감시하라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일부러 대놓고 감시한 게 아니라고?

채소연의 말에 고조되었던 감정이 착 가라앉았다.

“그럼 그게 들키지 않게 감시한 겁니까?”

“……응.”

“일부러 남들 눈에 보이게 감시한 거 아니라?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내가 서툴러서…….”

“그럼 원래 들키면 안 되는 거였습니까? 민채령한테 그쪽 이야기만 세 번은 했는데?”

채소연이 입을 앙 다물었다. 분함을 넘어서 서글픔까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엄청 혼났어. 이런 일 하나 제대로 못 하냐고.”

내 팔을 붙잡은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 틈을 노려 그녀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채소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달까, 가냘픈 어깨를 부르르 떨며 고개를 떨군 꼴이 참 처량했다. 보고 있자니 뭔가 안쓰러워지는 광경이었다.

“그, 괜찮으십­.”

“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지.”

채소연이 고개를 들었다. 눈시울이 발갛게 번져 있었다.

“예. 급하게 전달해야 하는 일이라­.”

“그, 그냥 말 안 하면 안 돼?”

“예?”

이내 벌게진 눈시울을 따라 커다란 눈물 방울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한다.

채소연은, 울고 있었다.

“……저번이 마지막 기회라 하셨단 말야. 히끅! 또 들킨 걸 티, 팀장님이 아셨다간, 나, 나 진짜 잘릴 지도 몰라아…….”

방울져 내리는 눈물을 채소연이 손등으로 훔쳤다. 어찌나 눈물이 커다란지 순식간에 그녀의 소매가 진하게 젖어 들어갔다.

“아니. 갑자기 왜 웁니까?”

“흐끅! 그, 그치마아안…….”

당황스럽다. 다 큰 어른이 고작 이런 일로 운다고?

‘아니, 어른이긴 한가?’

그녀의 모습을 면밀히 살핀다. 어려보이는 얼굴, 앳된 목소리, 작은 체구. 근무복을 입었을 땐 어찌어찌 성인으로 보이긴 했으나, 이렇게 보니 영락없는 미성년자 여자애였다.

‘설마 민채령이 미성년자를 자기 팀원으로?’

그럴 리가 없다­라고 생각했으나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민채령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저기, 소연 씨. 혹시 몇 살입니까?”

“흐끅! 스, 스물네살인데……?”

정정. 채소연은 번듯한 성인이었다. 적어도 주민등록상으로는.

“그럼 다 큰 어른이 그깟 일로 울지 마십쇼.”

"그깟 일이라니! 팀장님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데!"

채소연이 분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더니 앗, 하고 제 입을 틀어막으며 곁눈질로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하세요."

“그, 진짜 꼭 팀장님께 연락해야 해……?”

“예.”

“안 하면 안 돼?”

“급한 일입니다. 그쪽을 통해 연락하지 못한다면 저도 하는 수 없이 특책과 통해서 정식으로 연락드릴 수밖에 없어요.”

정식이라는 말에 채소연이 경기를 일으켰다.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라는 듯 그녀가 내 소맷자락을 붙잡고 늘어졌다.

“제, 제바알. 이렇게 빌게에. 제발 한 번만 봐줘어어…….”

초등학생 여자애가 떼를 쓰듯 그녀가 내 팔에 매달렸다. 방울져 흐르는 눈물에 소매가 순식간에 젖어들어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하고 불쌍해보이는지, 잘못한 게 없음에도 괜히 가슴 한 구석이 시큰하게 아파왔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채소연의 팔을 살포시 뿌리치며 내가 말했다.

“아마 이 건을 가지고 민채령 팀장님이 그쪽을 추궁할 일은 없을 겁니다. 말했잖습니까.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팀장님께서도 사정을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치만­.”

"어차피 그쪽을 통해 연락하지 않아도 연락할 방법은 많습니다. 그냥 포기하세요."

무어라 반박하려던 그녀가 고개를 푹 떨궜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만이 주변을 감돌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알겠어.”

반쯤 체념한 얼굴로 채소연이 스마트폰을 내게 건넸다. 화면에는 민채령의 것으로 보이는 번호 열한자리가 반듯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곧바로 낚아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채소연의 입에서 앗,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뚝.

­무슨 일이니?

이윽고 신호음이 멎자 수화기 너머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채령 팀장님.”

­목소리가 소연이가 아니네? 누구니, 너?

“경비대 일반과 안수호입니다.”

­안수호?

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정적이 흘렀다.

­하아. 하다하다 들키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연락처까지 넘겨? 아니, 연락처를 넘긴 건 아닌가. 직접 통화시켜준 거지? 그럼 지금 옆에 있겠네?

“그렇긴 하죠.”

­그럼 바꿔줄래?

작게 새어나온 그 소리에 채소연이 화들짝 놀랐다. 시선을 그녀에게 향하자 그녀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살려달라는 것처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전화를 든 채 채소연에게서 멀어졌다.

“……그것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일단 그쪽부터 말씀드려도 될까요?”

­중요한 이야기라니?

“제가 정보를 또 하나 물었거든요. 이번에는 여명단 관련해서.”

여명단이라는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여명단? 내가 아는 그 여명단 맞아?

“예. 정보의 출처는 밝힐 수 없습니다만, 믿을만한 정보입니다."

­믿을만한 정보면 경비대에 말하지 그래?

“그럴 순 없습니다. 출처를 밝히지 못하는 이상 경비대에서 의심할 게 뻔하니까요.”

­그럼 나는? 나는 경비대 아닌가? 왜 나한테는 이렇게 순순히 말하는데?

살짝 고조된 목소리. 수화기 너머로도 그녀의 흥분감이 진하게 전해져왔다.

"팀장님은 괜찮습니다."

­왜 괜찮은데?

"팀장님께선 자잘한 것들보단 결과를 중시하시니까요. 설령 다소 미심쩍더라도, 정보만 확실하다면 굳이 추궁하지 않으시겠죠. 안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는 무슨. 우리가 얼마나 봤다고 다 아는 듯이 말해?

불쾌하다는 듯한 어투.

허나 그 목소리에는 이쪽에 대한 끈적한 기대감이 녹아있었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해.

나긋나긋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가 말했다.

­네 말대로 정보만 확실하다면 굳이 추궁할 생각은 없어.설령 네가 여명단이든, 테러리스트든, 반정부주의자든 알 게 뭐야? 네 정체가 무엇이든 다 찍어누르고 내 마음대로 써먹을 자신이 있는데.

일견 오만해보이기까지 한 태도.

그러나 능력이 뒷받침된다면 그것은 오만이 아닌 자신감이라 불린다. 그리고 민채령은 그 자신감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제대로 들어봐야겠지만.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파악했어.

그리고 민채령은 제 능력이 닿는 한, 굴러들어오는 먹잇감을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주길 원해?

그녀의 OK 사인에 나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 사건 발생까지 남은 시간 : 2일 1시간 03분 11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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