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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경비원으로 빙의당했다-6화 (6/266)

〈 6화 〉 005. 시나리오 퀘스트

* * *

여전히 모퉁이에서 빼곰 고개를 내밀고 있는 채소연을 보며 권창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벌써 보름 정도 됐나? 저 여자도 아주 지극정성이구만. 아마 민팀장이 시켜서 하는 일이겠지만.”

채소연의 감시 대상은 나였다. 그러나 권창욱 역시 나와 같은 근무지에 배정 받은 이상,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거 간만에 싹싹한 신입이 들어와서 좋다 싶었는데, 또 특수대책과로 빼앗기게 생겼구만.”

그렇게 말하는 그는 반쯤 포기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경비대 특수대책과.

초인으로서는 수준미달인 인원들로 구성된 일반과와 달리, 구성원 전원이 내로라하는 초인들로 이루어진 경비대의 실질적인 전투부대.

그 전력이나 위상은 어지간한 중견 길드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카데미 졸업생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일반과와 달리, 특수대책과는 매년 꽤 많은 졸업생들이 공채에 몰리곤 했으니까.

‘그래서 면접 때 일반과 과장이 고작 팀장인 민채령에게 쪽도 못 썼구나.’

비록 직급은 과장 쪽이 높더라도, 부서간의 차이에 따른 묘한 서열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원○스 해군본부와 해군지부의 차이처럼.

“거 만약 넘어가게 되면 미리 말해라. 인원 빵꾸나면 바로바로 채워야 하니까.”

권창욱을 포함해 일반과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특수대책과로 넘어가게 되리라 믿는 눈치였다. 민채령의 부하가 날 감시한다는 것은 즉, 그녀가 날 눈독들이고 있다는 뜻이라며.

민채령.그녀는 경비대 안에서도 인재 욕심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로 유명했다. 자기 기준으로 쓸만해보이는,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지고 싶은' 인원을 발견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밑으로 데려온다. 그 대상이 일선 헌터든, 범죄자든, 경비대의 다른 과 대원이든 가리지 않고.

민채령이 팀장을 맡은 특수대책과 2팀의 공식적인 인원은 7명.

허나 그녀에겐 그 외에도 그녀가 여기저기서 모은 비공식적인 부하가 수많이 존재했다. 그 정확한 규모를 아는 이는 그녀 외엔 아무도 없다. 다만 그들 전원이 출중한 능력을 지닌 인재라는 것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민채령이 날 탐내고 있다면 아마 내 정보력이 목적이겠지.

경비대조차도 알아내지 못한 아카데미의 범죄를 밝혀낸 정보력.

그것이 개인의 조사력이든, 다방면에 뻗은 인맥이든, 혹은 전혀 상상도 못한 기발한 것이든. 민채령은 그러한 내 능력에 눈독을 들이고 날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리라.

일반과 사람들의 생각은 대충 이러했다. 허나 이제 갓 경비대에 들어온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일개 팀장이 자기 마음대로 절 특책과로 데리고 가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네가 여기 생리를 몰라서 그래. 특책과 팀장이면 경비대 안에서도 꽤 끗발이 세거든. 게다가 민팀장은 한다면 하는 여자고 말이지.”

“아무리 끗발이 세다고 해도 일개 팀장한테 인사이동 권한이 있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그 일개 팀장이 경비대장은 물론이고 아카데미 이사장에게까지 연줄이 닿아있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지. 원칙상으론 안 되지만, 높으신 분들 눈 밖에 나기 싫으니 다들 쉬쉬하는 눈치야.”

그제야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확실히 그렇게 인맥이 빵빵하다면 갓 들어온 신입의 소속 정도야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겠지.

“수호야. 만약 그쪽에서 오라고 하면 넘어갈 거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특책과로 옮기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라면 앞으로 도움이 될만한 인맥을 만들 수 있을 테니.

그러나 이번에도 내 비루한 능력치가 걸림돌이었다.

특책과는 온갖 기인들이 산재한 곳.막말로 지금 특책과로 넘어가봤자 짐덩어리 취급밖에 받지 못할 것이다.

하여튼, 뭐만 하려고 하면 다 이 몸뚱이가 문제였다.

빌어먹을 쾌락천마놈.

“왜 그리 얼굴이 죽상이야?”

“삶이 고달파서 그렇습니다.”

“벌써부터 고달프면 좀 그런데. 그래가지고 다음 달에 새 학기 시작하면 어떻게 버티려고? 그땐 진짜 죽을 맛일걸?”

그래. 죽을 맛이긴 할 거다. 내가 생각하는 죽을 맛이랑 권창욱이 생각하는 죽을 맛은 전혀 다른 의미겠지만.

“거, 경비실 지키느라 지루했을 텐데 잠시 숨 좀 돌리고 와라. 담배라도 한 대 태우고 오든가.”

“감사합니다.”

그의 배려에 나는 경비실을 나서 흡연장으로 향했다. 방학이라고 해도 훈련장을 이용하는 인원은 꽤 있었기에, 흡연장에는 몇몇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이 나를 스윽 흘겨봤다. 그 시선을 무시한 채 담배를 입에 문다.

‘담배도 좀 줄여야 하는데.’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고부터 흡연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다 삶이 고달픈 탓이었다.

“후우우우우.”

하얗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싸악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띠링!

그 순간,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 퀘스트 발생! ]

===

‘!!’

물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며 눈앞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거의 2주 만에 나타난 퀘스트 알림.

주르륵 이어지는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던 나는, 이내 당황을 금치 못했다.

===

[ 시나리오퀘스트 발생! ]

[ 드디어 당신이 활약할 순간이 왔습니다! <초인들의 시대="">에 지겹도록 등장하던 메인 빌런 조직 ‘여명단’의 암살자가 조직의 배신자이자 아카데미 재학생인 ‘지예원’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암살자를 무찌르고 그녀의 목숨을 지키세요! ]

[ 지예원은 그린하우스 재학생임과 동시에 시스템에 설정된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만약 지예원이 죽게 될 경우, 페널티로 당신 역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

[ 사건 발생 예상 지점의 위치 정보를 시야에 표시합니다! ]

[ 사건 발생까지 남은 시간 : 2일 10시간 43분 15초. ]

<보상/>

1)경비율 증가 3%(현재 경비율2%)

2)중급 회복 포션

3)<스킬 :="" 아카데미의="" 경비원="">등급 상승

===

“……허?”

혹시 잘못 읽었나 싶어 다 읽은 메시지를 다시 위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전후사정도 없이 빌런 조직의 암살자와 싸우라는 것. 그리고 퀘스트를 실패할 경우 나 역시 죽게 되리란 것.

거기까진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첫 정규 퀘스트치고 난이도가 높긴 했지만, 쾌락천마는 본래 그런 놈이었으니까.

‘지예원이라고?’

그럼에도 내가 당황을 금치 못하는 건.

‘……그게 누군데?’

분명 주요 등장인물이라 언급된 저 캐릭터가 내가 전혀 모르는 캐릭터였기 때문이었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

다 타들어간 담배 끝에서 하얀 재가 무너지듯 흘러내렸다.

나는 곧바로 다음 담배를 꺼내들었다. 바닥에는 내가 태운 담배꽁초들이 이미 수북이 쌓여 있었다.

‘차분히 정리해보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원작 스토리 시작지점은 주인공의 입학식 이후.’

‘메인 빌런 조직인 여명단이 등장하는 건 던전 탐사 에피소드부터. 편수로 따지면 최소 30편은 지나야겠지. 지금 시점에 등장할 놈들이 아니야.’

‘애초에 지예원이라는 이름부터가 금시초문이야. 그럼에도 그 캐릭터가 주요 등장인물이라는 건 즉 둘 중 하나라는 소리지. 설정으로만 존재한 채 원작에서 등장하지 못했거나, 혹은 등장은 했지만 이름이 나오지 않았거나.’

‘후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이름을 보니 아마 여자일 테고. 이 시점에서 죽는다는 건 즉 원작 스토리에서도 이미 고인이라는 뜻이야. 그러면서 여명단 조직원이자 아카데미 재학생. 그런 캐릭터가 원작에 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과거를 다룬 에피소드에서의 직접적인 출연. 혹은 등장인물의 입을 빌린 간접적인 출연.’

‘전자든 후자든 이런 특색 있는 캐릭터가 출연했다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즉, 지예원은 아마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던 캐릭터겠지. 나중에 등장할 예정이었든 맥거핀으로 남든, 최소한 내가 읽었던 원작에선 등장하지 않았던 캐릭터다.’

뇌리에 떠오른 생각이 정리되면 정리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쾌락천마 이 개새끼가 진짜.’

이젠 하다하다 원작에 등장조차 없었던 사건으로 지랄이라니. 놈의 치졸함에 치가 떨렸다.

‘불평해봤자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은 이번 퀘스트를 어떻게 깨야할지 생각해야 해.’

다행히 시간은 아직 이틀이나 남았다.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대책을 세우기엔 충분한 시간이리라.

‘암살자를 무찌르고 그녀의 목숨을 지키세요, 라.’

배신자를 처단하러 온 암살자라면 필시 실력이 출중할 터. 나 혼자 정면으로 붙어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경비대 사람들의 협력은……. 구하기 어렵다고 봐야겠지.’

여명단은 작중 가장 대표적인 빌런 조직. 그리고 지예원은 배신자라곤 해도 그 조직의 일원이었다.

아무리 지예원이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해도 결국 범죄자였다. 그런 그녀를 구하는 데에 경비대의 협력을 구한다? 협력은커녕 이쪽이 여명단 단원으로 의심받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이쪽에서 결백을 주장한다 한들 정보의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이상 누구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으리라.

물론 정 방법이 없으면 이판사판으로 부탁할 수밖에 없다. 뒷수습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잠깐, 뒷수습?’

그 순간 불현듯 민채령의 존재가 떠올랐다.

‘다른 경비대 사람이라면 몰라도, 민채령이라면 어떻게 비벼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민채령은 날 영입하고 싶어 한다. 어지간한 일은 덮어버릴 수 있는 권한이나 권력도 있다. 협력을 구할 상대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민채령을 끌어들이면 필연적으로 지예원이나 여명단에 관해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해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이미 신진우 교수 건으로 한 번 얼버무린 이상, 민채령이 이번에도 내 변명에 넘어가 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경비대 전체를 상대로 해명하는 것보다야 민채령 개인만을 상대하는 게 더 편할 테고.’

설령 해명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민채령이라면 다소 안심이다.

민채령이 원하는 건 내 정보력. 내가 제대로 된 정보를 물어오는 이상, 다소 뒤가 구리더라도 당장은 그 문제에 대해 추궁하진 않으리라.

‘……좋아. 결정했다.’

그 뒤로 한참을 고민해봤으나, 민채령의 협력을 구하는 것 이상으로 괜찮은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특책과 내선전화로 전화를 걸어 민채령과의 연락을 시도했다.

시도했으나­

“……출장이라고요?”

­네. 팀장님께선 이번 수요일부터 외부에 파견 나가셨습니다. 아마 다음 주 월요일이나 돼야 돌아오실 겁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퀘스트 타이머가 가리키는 시각은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 민채령이 돌아올 시점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민채령 팀장님 개인 전화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어어. 그게…….

전화기 너머 대원이 곤란하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팀장님께서 개인정보 관련해서 꽤 민감하셔서요. 번호를 드리는 건 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혹시 급하게 전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제가 대신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할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수화기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어쩐다.’

생각해라.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른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고 민채령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아.”

그때, 시야 구석에서 기웃거리는 금발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기웃기웃.

날 감시하던 채소연과 눈이 마주쳤다. 눈을 크게 뜨며 놀란 그녀가 뽈뽈 거리는 발걸음으로 건물 뒤편으로 도망쳤다.

동시에 이 사태를 타파할 방법이 떠올랐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채소연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나는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

그날 밤.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주전부리를 구입한 나는 집으로 향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자,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채소연이 잔망스러운 발걸음으로 내 뒤를 쫓아왔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벽에 바싹 붙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리자 멀리서부터 ‘도도도도’ 하고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윽고, 모퉁이 너머로 채소연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와락!

나는 그녀의 몸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엣?"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순간적으로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채소연과 내 신장이 거의 30cm가까이 차이가 나다보니,졸지에 내 품에 안긴 채소연은 허공에 발이 뜬 채 반쯤 내게 매달리다시피 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대로 채소연을 번쩍 들어올려 벽에 밀어붙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결코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

내 행동에 채소연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팽그르르 돌아갔다.

“으와아아아앗? 잠깐, 잠깐! 이거 놔줘! 이거 놔달라고! 갑자기 왜 껴안는 거얏?!”

“채소연 씨.”

앳된 소리를 내며 발버둥치는 그녀를 필사적으로 붙잡은 채 내가 말했다.

"뭐야?! 뭔데?! 왜 그렇게 진지한 표정인데? 나한테 왜 이러는데!? 설마 너­."

“잠시만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민채령 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엣?”

그 말에 채소연이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우리 팀장님한테…?”

그녀가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며 날 올려다봤다.

[ 사건 발생까지 남은 시간 : 2일 1시간 15분 7초.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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